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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1월 P의 예언-이미지 첫번째.

   진우의 사람들은 밤낮으로 모였다. 올림포스 호텔 꼭대기 층의 둥그런 방에 원으로 앉았다. 창 앞에 앉아 손바닥처럼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커피를 마신 다음에는 서로의 귀가 닿을 만큼 가까이 붙은 채, 모니터 속을 살폈다. 그 안에서 사민이 돌아다녔다. 진우의 사람들은 눈을 떼지 않았다. 지극히 사랑하는 이라도 구경하듯이.
   화면 속 사민은 작고 붉은 점으로, 대부분 작은 원 안에서만 이동했다. 아파트 두 채를 오가고, 몇 가지 생필품을 샀으며, 가끔 카페에 들렀다. 이후에는 인천과 서울의 경계 지대에 있는 공장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공장의 주소까지 알아낸 뒤, 진우의 사람들은 잠시 쉬었다. 비밀을 공모한 이들의 은밀한 미소가 그들의 얼굴에 번졌다.
   진우도 자주 웃었다. 그는 아침마다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젊고 영리해 보였다.
   그는 몇 주에 한 차례씩만 쌍둥이들에게 찾아갔다. 가끔씩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솟구칠 때마다. 너희가 아니었으면 그 여자는 평생 그림자도 내비치지 않았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대신에, 그는 도넛이며 케이크 따위를 사갔다. 술도 몇 병 챙겼다. 일과 란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 크고 푹 들어간 눈으로 진우를 응시하기만 했다. 버려진 개들처럼, 일과 란은 사람을 쉽게 안심시켰다. 진우는 홀로 한껏 술을 마신 뒤에, 우물대는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호적수라니, 이 나이에. 얼마나 기쁜 일이냐.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길게 내리던 비가 그친 날에, 진우의 사람들은 빌린 차에 올랐다. 공장 지대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그들은 조금씩 흥분했다. 오래된 음악을 틀고 담배를 피웠다. 길 잃은 꿩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지도상의 위치에 다다르자 모두 잠시 숨을 멈췄다. 진우가 창을 내렸다. 그들은 차에서 내렸다. 갑자기 늙어버린 얼굴로, 뒷짐을 진 채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텅 빈 논에는 불타버린 건물 몇 채와 빈 차 하나뿐이었다. 그들이 추적기를 부착한 바로 그 차였다. 차의 양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바퀴는 모두 터진 채였다. 뒷좌석의 문 바깥으로 시트가 흘러나왔다. 혀라도 내미는 양 보였다.

2020년 11월 P의 예언-이미지 두번째.

   사민은 아파트 정문 앞에 섰다. 인터폰의 종이 몇 차례 울리고 화면이 켜졌다. 두 개의 얼굴이 그를 쳐다보았다. 식은 도넛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물었다.
   ―정말로 데려다줄 거예요?
   ―그래야 나를 만나준다면서.
   화면이 꺼졌다. 잠시 뒤에 정문이 열리고, 일과 란이 걸어나왔다. 그들의 눈이 사민의 얇은 코트, 긴 가방, 그들이 선물해준 스카프에 잠시 머물렀다. 사민은 모른 체 말했다.
   ―좋은 곳에 사네.
   주차장 가장자리마다 심긴 은행나무 아래로 황금빛 잎사귀들이 고였다. 나무 정자에 모여 앉은 노인들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나누어 마셨다.
   ―정말로 걱정 많이 했어.
   일과 란은 답하지 않았다. 비슷한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맞아. 누군가 똑같이 말했어. 아마 진우였겠지. 그들은 옅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바다를 건너오고 나서부터, 그들은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만족했다. 한 몸처럼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사민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처음 보는 차가 거기 있었다. 녹색이 도는 미끈한 차였다. 쌍둥이들이 차를 향해 한 걸음 내딛은 순간, 사민이 앞을 가로막았다.
   ―잠시만, 잠깐만. 미안.
   쌍둥이는 사민이 그들의 주머니를 뒤지도록 내버려두었다. 진우에게 받은 핸드폰이며 지폐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사민은 구겨진 소지품들을 몽땅 우체통에 쏟아넣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손이 자신의 가방을 건넸다. 쌍둥이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쇠붙이의 번쩍임이 잠시 형태를 가렸다. 일과 란은 그들에게 주어진 수갑을 들고 사민을 보았다. 그가 스카프의 매듭을 잡아당겨 느슨하게 풀었다.
   ―너무 너무 미안해. 그래도 그것 좀 차줘. 안 그러면 갈 수가 없어.
   꼭 닮은 얼굴들이 웃었다. 수갑을 앞뒤로 살폈다. 가벼워 보였지만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들이 손목을 묶자, 사민은 뒷문을 열어주었다. 쌍둥이는 비척이며 차에 탔다. 아프진 않지? 사민의 물음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민이 한 차례 숨을 고르더니 운전석에 앉았다. 같이 드라이브 하는 거 오랜만이다, 그치. 과장되게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일과 란은 뒤를 돌아보았다.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차에 시동이 걸리고,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정자에 모여 앉은 노인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행나무의 금빛이 그들의 얼굴을 환히 비쳤다. 가장자리에 앉은 노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2020년 11월 P의 예언-이미지 세번째.


   강 건너의 마천루 모두가 먼지에 휩싸여 흰 그림자로 보였다. 세 사람은 오래된 벽돌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강을 바로 앞둔 건물이었다. 옆 벽에는 ‘하수처리장’이라는 글자가 흐릿하게 바랜 채 붙박여 있었다. 정문 위로도 ‘별관’ 글자가 뿌연 빛으로 적혀 있었다. 사민이 몸을 구부린 채, 낡은 문의 자물쇠를 풀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다들 우리가 어마어마한 장소에라도 처박혀 있는 줄만 알아.
   열쇠가 돌아가고 문이 열렸다. 사민이 돌아서 손짓했다. 일과 란은 꼭 같은 걸음걸이로 안에 들어섰다. 너머는 어둡고 미지근했다. 벽 안쪽에서, 아래를 향해 흐르는 물소리가 왕왕 울렸다.

   그들은 1시간 정도 그 안에서 머물렀다. P의 신전은 땅 아래, 춥고 어두운 곳에 있었다.
   바깥으로 되올라갈 때, 사민은 쌍둥이의 한가운데에 섰다. 금기를 어기는 기분으로 양옆의 팔짱을 꼈다. 그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 한쪽이 중심을 잃을 때마다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우리는 이제 비밀을 나눈 사이라고, 그는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문이 열리자 모두가 잠시간 눈을 찌푸렸다. 눈앞이 잠시 노랗게 보였다. 잠시 후 사민은 양옆에 선 이들이 그를 뚫어지게 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쌍둥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사민은 어깨를 움츠렸다. 호텔의 로비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느끼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적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고, 깡마르고, 퀭한 몸들이었다. 어디에 있건 비참해 보였다. 빛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갑을 찬 손들이 사민의 양 팔을 붙들었다. 비켜서요, 말하는 목소리를 들은 듯 했다. 되물을 새도 없이, 양편의 몸들이 사민을 누르기 시작했다. 장난이라도 치듯이 온몸을 그에게 문지르고 밀어붙였다. 뼈들이 소리를 질렀다. 거대한 손아귀에 붙잡힌 양, 사민은 휘청거렸다.
   한 쌍의 몸이 그를 건물 뒤쪽까지 밀어냈다. 도무지 버틸 재간이 없었다. 사민이 풀썩 주저앉은 순간, 그들은 그대로 그를 내리눌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토록 가벼운 몸들이었는데, 그 아 깔리니 숨이 막히도록 무거웠다. 바로 위에 누운 이가 묶인 손으로 사민의 얼굴을 지그시 눌렀다. 그의 뺨이 눌리며 옆쪽을 돌아보았다. 수갑의 냉기가 귀를 적셨다.
   ―보세요.
   이제 목소리는 한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 덩어리째 들리는 목소리는 예언처럼 엄숙했다. 사민은 눈을 떴다. 그들이 지시한 방향을 보았다.
   멀리서 오고 있었다. 서커스 천막처럼 샛노란 트럭이었다. 천막보다도 더 거대하고 묵직한 크기였다. 앞면의 붉은 로고는 마치 부리처럼 보였다. 앞창 안쪽의 얼굴들이 눈동자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늙고 쪼글쪼글하며, 일과 란만큼이나 남루한 얼굴들이었다. 한 손에는 여전히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사민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곧 송두리째 들이닥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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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출력되는 즉시, 건물이 무너지며 쏟아지는 물로 인해 완전히 잠겨버리고 말았다.


   작업 노트


※스튜디오 풀옵션의 AI는 지난 11월, 구글의 뉴스 데이터를 모조리 빨아들인 뒤 재조립했다. 위의 세 가지 문장은 AI가 수집한 데이터를 완전히 다른 배열들로 새롭게 추출한 것이다. 이는 스튜디오 풀옵션이 본 프로젝트를 제작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단계에 해당한다.(〈P!ng〉의 프롤로그에서 나타나는 첫번째 단계 참고. 바로가기) 우리는 위 문장들을 구글에 던져 건져낸 이미지들을 P의 예언 삼아 6화를 제작하였다. 풀옵션의 AI와 P를 통해 두 세계는 미미하게 연결되고 있다.
위 모든 과정은 프로그래밍 언어 Python을 통하여 제작되었다.



스튜디오 풀옵션

텍스트와 이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번역합니다. 가능한 멀리까지 공놀이를 지속하며 오해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글 쓰는 함윤이와 디자인 하는 김형도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2020/12/29
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