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일상키트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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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로 거리가 복작이는 일요일, 신촌의 스터디카페에 다섯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거리에 학생들이 많네요.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우리는 음료가 나올 때까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전 다시 학생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누군가 웃으며 말하자 모두 창밖 풍경에서 눈을 떼고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학교 다니던 때를 되돌아보면 초?중?고 시절이든 대학 시절이든 전반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다들 유쾌한 느낌인가요? 저는 중, 고등학교 무렵을 되돌아보면 좋은 친구들도 만났고 좋은 기억의 단편들도 분명히 있지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검정고시 볼 것 같아요. 별로 학교 다니고 싶지 않아요.” _거북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규정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왜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처럼 바지 교복을 입으면 안 되는지, 왜 성장기에 구두를 신어야 되는지, 왜 머리의 염색이나 파마도 아니고 길이를 규정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쓸데없이 엄격했던 조항들이 많았어요. _시리

   “친구 관계에 관해서는 마음의 문을 닫고 혼자 지냈는데요. 나중에는 관계의 실타래를 풀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때는 마음의 상처가 있으니까 상대에게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잘못은 저에게 있었어요. 당시에는 마치 모든 시련이 나에게만 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 모든 게 힘들게 느껴졌거든요.” _드림

   “맞아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제일 예민하고 편협했던 시기인 거 같아요.” _달래

   “요즘 학생들은 유튜브를 많이 보잖아요. 살인이나 자살 등 유해한 콘텐츠가 일인 미디어를 통해서 생중계되는 실정이라 걱정이에요. 학생들이 필터링 없이 볼 테니까요. 강력한 법적 규정이나 기준을 통해 규제를 해야 하는데 역부족이니 아이들이 그 안에서 통제를 못하는 거예요.” _쪼꼬미


   ‘학교’라는 단어는 모두를 회상에 잠기게 했다. 다들 할말이 많았다. 학교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추억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규제였고, 누군가에게는 후회,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었다. 컴퓨터는 대화의 주요한 토픽으로 ‘학교’ ‘사교육’ ‘유튜브’ ‘교복’ ‘졸업’을 꼽았다. 키-ㅌ 팀원들이 예상한 대로였다. 서로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이번 대화는 대부분 테마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영상 매체에 관심이 많은 참여자들이 있어서 학교 관련 토픽 이외에도 ‘유튜브’라는 토픽이 주요하게 거론됐다.

   다음은 선정된 토픽과 단어들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픽이다.



   키-ㅌ 팀원들은 ‘학교’ ‘사교육’ ‘유튜브’ ‘교복’ ‘졸업’이라는 토픽과 함께 스크립트에서 각기 단어를 골랐다. ‘시선 지도’를 만들고, 토픽에 대한 단상을 글로 남겼다. 수업 시간에 몰래 끼적이던 낙서나 쪽지처럼 서로의 이야기가 교차되었다.

A의 시선 지도. 당신의 생각에서 정답만 고르려고 했던 나는 결국 비가 내리는 시험지를 받아들고 말았다.


   새로운 업무 분장이 시작되는 시기면 어김없이 학교가 어수선해지곤 했다. 그리 흔치 않은 일은 아니지만 몇 년 전 전근 온 이 사립학교는 유독 담임을 맡고 싶어하지 않는 선생이 많았다. “K 선생님은 당연히 담임 맡아주실 거죠? 이 학군 엄마들이 좀…… 알아서 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교무부장이 힘주어 어깨를 쥐며 말했다. ‘알아서 잘’이라. 뭘 믿는다는 걸까, ‘알아서’ 잘인 건지 알아서 ‘잘’인건지. 10년이 넘게 교직에 있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뾰족한 결론 없이 나는 2학년 3반 담임으로 배정됐고 새 학기가 시작됐다. 다행히 지난해에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꽤 눈에 띄었다. 의례적인 면담을 하다보면 유독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몇 있기 마련인데 P가 그랬다. “문예부네, 책 읽는 거 좋아하나봐?”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법한 질문으로 면담을 시작했다. “아뇨, 딱히.” 예의바르지만 무신경한 말투였다. 이런 학생은 대개 두 부류다. 1년 동안 부딪힐 일이 아주 많거나 아예 없거나. 얜 무슨 부류일까, 머리를 재빨리 굴리려는 찰나 P가 의자를 뒤로 끌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오늘 못한 숙제가 있어서 가봐야 할 거 같은데. 담에 드릴 말씀 있으면 따로 드리면 안 될까요?” P는 인사 대신 “제 일은, 알아서 잘할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3월 첫 주의 일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알아서 잘’인지 ‘알아서 적당히’인지는 모르겠지만 P와 딱히 부딪힐 일은 없었다. 그날까지는.
   그날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고 교무실에 교과서를 가지러 갔더니 내 자리에 P가 와 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P는 여전히 무신경해 보였다. 모르는 문제를 물으러 온 표정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얼굴이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일단 앉아라.” 책상 아래 접혀 있던 보조의자를 꺼내 편 뒤 밀어주었다. P가 말을 시작한 순간, P가 던진 문제가 내 교직생활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냥,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을 마친 P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일어나 교실로 향했다. 나는 P의 이름을 부르려다 말고 교무실을 한번 훑었다. 교무부장이 마침 자리에 있었다. 슬쩍 손을 코에 가져다 대보니 아직 담배 냄새가 빠지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그냥 찌들어 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인가. 손을 한번 바지에 쓱 문질러 닦고 교무부장의 자리로 향했다. 아무래도 ‘알아서 잘’에서 중요한 건 ‘알아서 할 것 또는 잘할 것’이 아니고 ‘알아서 그리고 잘할 것’일지도 모르겠다. 피곤하다, 피곤해. 이래서 담임은 싫다니까. 교무부장의 굽은 어깨가 보였다. 드릴 말씀이 있다던 무신경한 표정의 P가 쉴새없이 치맛자락에 손을 문질러 닦던 게 생각이 났다.

B의 시선 지도. 학교라는 이름은 누군가에게는 짙은 향수를, 다른 누군가에게는 끄집어내기 힘든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학교는 마치 버려진 광산과도 같다. 곡괭이질을 할 때마다 온갖 잡다한 것들이 부스러져나오는, 그러한 광산.
   오랜만에 찾아간 K선생은 여전히 특이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교사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동안 그는 옥상에 올라가 10분이고 1시간이고 하염없이 담배를 태우곤 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담배에 찌든 내와 함께 등장해 수업이랍시고 몇 마디 던지고 사라져버릴 때면 뒤에서는 지방 유지가 학교에 사정해서 이 학교 선생으로 꽂아넣은 외동아들이라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기 일쑤였다.
   당시 나는 시위라도 하듯 방구석에 꼼짝 않고 틀어박혀 등교는커녕 집에서 나오기조차 거부하는 고교 2년생이었다. 담임이었던 K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몇 주에 걸친 싸움에서 지쳐 떨어져나갈 기색 없던 부모님이 갑자기 잠잠해졌다는 것, 그 점 하나가 신기했을 뿐이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나와 회장 Y를 포함한 몇몇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희롱을 일삼던 O선생은 어디론가 가버렸는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홀든 콜필드처럼 사니?” 돌아가려는 찰나, 좀처럼 무언가 묻는 일이 없는 K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득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너무 문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홀든 콜필드는 돈이라도 많죠.” 몇 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삐딱하게 대꾸한다. 건조한 목소리를 애써 무마하려는 듯 책상 위 가습기에선 수증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C의 시선 지도. 학창시절 썼던 노트들을 찢어 단어를 적어넣었다. 삐뚤빼뚤.


   졸업 후 학교를 찾아가본 적이 없다.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별로 좋았던 기억도 없고, 보고 싶은 선생님도 없었다. 다만 추억이 깃든 장소들은 기억이 난다. 운동장 스탠드 옆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벚꽃나무라든지, 창고 옆 동아리실이라든지, 급식실 앞 잔디밭의 벤치라든지. 문득 그 장소들이 그리웠다. 학교는 교내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기에 외부인이 자유롭게 출입 가능한 날은 입학식, 졸업식, 스승의날 정도였다. 지금쯤 학교 벚꽃나무에 꽃은 다 지고 푸른 잎들만 가득하겠지. 나는 스승의날을 핑계 삼아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정문 경비실에서 받은 출입증을 목에 걸고 언덕을 올랐다. 예상대로 나무들은 푸르렀고 운동장의 벚꽃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빨간 고무 트랙 위의 흰색 줄이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스탠드에 앉아 학교를 바라보았다. 기억 속의 학교는 거대했는데 눈앞의 학교는 조그맣다. 고등학교 때와 키는 비슷한데 참 이상한 일이다. 교무실은 전혀 갈 생각이 없었고 학교 산책이나 하고 돌아갈 참이었다. 학교 3층 출입구 쪽에서 두 사람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문예부 후배였던 A와 K선생이었다.
   아는 체를 하려다 그만뒀다. 인사 말고는 더 할말도 없었다. 두 사람은 현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내가 고3 때 교사 O의 학생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 반 아이들이 가해자인 O선생 퇴출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돌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A는 몇 주 동안 동아리활동에 나오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도 똑바로 마주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과거의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다. A와 K는 서로 목례를 하더니 악수를 나누고 돌아섰다. A의 뒷모습을 보며 새삼스레 이제 정말 어른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나는 학교의 풍경을 조금 더 즐기다 돌아가기로 했다. 아름다운 5월의 낮이다.

*

   “잔인한 말이지만, 확실히 학교가 사회를 배우는 공간인 건 맞는 거 같아요.” 순간 모두가 침묵했다. 시계가 6시 정각을 가리켰다. 여전히 거리를 가득 메운 학생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카페를 나섰다. 어둑해진 저녁 하늘 아래 신촌 거리는 전구로 환했다. 상기된 얼굴의 우리는 인파 가득한 거리로 흩어졌다. 어쩐지 뒷모습도 들떠 보였다.

    “근데 돌이켜보면 학교라는 말 자체가 그래도 아직은 뭉클한 단어인 거 같아요.” _드림

   그날 집으로 돌아가 옷장 깊은 곳에 걸려 있던 교복을 간만에 꺼내보았다가 그만두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교복이나 급식, 운동장 이런 것들이 아니라 지나가버린 그 시간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ㅌ

‘키-ㅌ’는 문학에 관심이 많은 세 사람이 기술을 도구로 문학을 재해석하기 위해 모인 팀이다. 무언가를 조립해서 만들 수 있도록 부품을 모아놓은 세트인 ‘kit’에서 착안하여, ‘키-ㅌ’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2018/07/31
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