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혜님의 그림일기








   「모래의 이름」


   이미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찾아가고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마실 물이 야트막하게 남아 있는 수통이 가방에 매달려 철거덕거렸다. 그 소리만이 그녀가 움직이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모래바람이 매섭게 그녀의 뺨을 할퀴고 지나갔고 어느 순간부턴가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이미 잘못된 방향으로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신기루에 속아 길을 잃지 않았나. 아니지, 길을 잃었다기엔 길이란 것이 사라진 지 오래지. 어떻게 해서든 이 사막 같은 모래밭의 끝까지만 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을 보면 너무 광활해서 구역질이 날 정도였지만 끝은 있을 것이었다. 설사 끝이 없다고 해도, 그녀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밤이 오기 전에 어디로든 들어가야 했다. 지난 밤 노상에서 잠을 청하다 거의 죽을 뻔했던 그녀는 이제 달과 별이 끔찍하리만치 싫었다.
   아주 먼 곳에서부터 웅, 하고 짐승 소리와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을 때, 소리는 두 번 더 울렸다. 그녀는 소맷자락으로 눈을 비벼 닦고 소리가 들린 쪽을 건너보았다. 바위로 덮인 산머리 하나가 보였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상상했다. 누군가 불을 피워 먹을 만한 것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사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온천수일지도 모른다고. 어느 쪽이든 그녀는 연기가 의미하는 ‘온도’ 그 자체에 크게 흥분하였고 이내 걸음이 빨라졌다. 인간에게 상상력은 거짓말만큼이나 신비로운 능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신은 개뿔. 신은 개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걸었다. 무엇이든 말로 뱉지 않으면 성대가 굳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 자신의 마음도 쉽게 피로해졌다. 그녀는 모래 더미 아래에 파묻혀 있던 철판에 걸려 넘어졌다. 신은 개, 까지 말하다가 넘어진 터였다. 면장갑을 낀 오른손을 모래 안에 집어넣어 발에 걸렸던 철판을 끄집어보았다. ‘양재 3길’라고 적힌 그것은 철이라기 보단 조금 무거운 플라스틱에 가까웠다. 이런 이정표는 흔했다. 그녀도 처음엔 이정표를 보며 자신의 위치를 짐작하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질없다는 걸 알았다. 사람도 날리고 자동차도 날렸던 바람이다. 한낱 판자 따위가 온전히 제자리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다만, 그녀의 발아래에 엄연한 동네 하나가 묻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도시가 묻힌 봉분 위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지난여름의 일이었다. 어째서 자신이 생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골몰하는 일이 얼마나 소모적인 것인지 이제 막 깨달았을 때였다. 어쩌다보니 동행하게 된 늙은 남자, 재길은 이 모래바람이 무려 7천년어치의 양이라고 했었다. 하나의 사막이 고층 빌딩을 뒤덮을 만큼 쌓이기 위해서는 그만큼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재길이 미쳤으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7천년을 살아보지도, 진짜 사막에 가보지도 않은 것이 분명한 그저 운 나쁜 사내였을 뿐이다. 재길은 처음에 자신을 안과 의사였다고 했다. 렌즈 삽입 수술을 해본 그녀가 몇 가지 구체적인 것을 묻자 말을 바꾸었다. 왜 거짓말을 하냐고 따지자 자긴 병원에서 일을 했다고 했지 의사였다고 한 적은 결단코 없었다고 도리어 성을 냈다. 결과적으로 재길은 거듭하여 그녀를 살렸다. 굶어 죽으려고 하면 진공 포장이 된 포 뜬 고기 같은 것을 손가락만큼 뜯어준다거나, 그녀가 온몸이 가려워 닥치는 대로 벅벅 긁어대다 잠이 들면 손에 집히는 아무 판자를 들어 밤새 부채질을 해주었다. 그녀에게 이 수통을 넘겨준 것도 재길이었다. 이름도 어쩜 재길일까. 진짜 이름이긴 한 걸까. 그녀는 그를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게, 어쩌면 이름 탓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 뒤집힌 트럭 안에서 잠이 들었을 때, 등허리로 불쑥 들어온 그의 가칠한 손을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돋았다. 전갈 한 마리가 옷 속에 들어가는 걸 보았노라고, 그걸 꺼내려던 것이라고 재길은 말했지만 그토록 캄캄한 밤에 애당초 흐리멍덩한 눈을 한 그가 전갈이든 무엇이든 발견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재길의 눈은 유독 반짝거렸다. 그 기억이 때로 그녀를 주저하게 만들었으나 역시 다시 혼자가 된 아쉬움이 만들어낸 착각일 뿐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도, 연기는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래 바닥이 발아래에서 점점 단단해지더니 이내 바위 절벽이 나타났다. 바닥으로 발이 푹푹 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겐 더없이 희망적이었다. 바람막이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어 쇠젓가락이 잘 있나 만져보았다. 그녀로선 지금 가진 유일한 호신 도구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눈은 찌르지 말아야지. 눈은 그리우니까. 짐승의 것이든, 사람의 것이든 온전한 한 쌍의 눈을 마주하는 것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그게 뭐라고. 외로움이 뭐라고 저 자신도 가지고 있는 눈을 마주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몸을 정면으로 조금 숙여 걸었다.
   “아……”
   그녀는 주머니 안에서 쇠젓가락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을 서서히 풀었다. 절벽 아래에서 이미 인기척을 느끼고 위를 올려다보고 있던 이는 그저 어린아이였다. 많이 봐야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에 붙은 모래를 털어내고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재길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는 상반된 감정이었다. 그 늙은 남자를 만났을 땐 그가 자신을 해하지는 않을까 긴장하게 되는 반면 그가 생존해온 방식에 막연히 편승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했었다. 그러나 저 여자아이는 아니었다. 부러 매섭게 눈을 치켜뜨긴 했어도, 메마르다 못해 하얗게 버짐이 핀 얼굴과 바들바들 떠는 나뭇가지 같은 팔다리는 오히려 그녀에게 수고스러운 보살핌을 바라고 있는 듯했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녀와 아이, 둘 다 무언가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중 첫번째는 상대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겠다는 생존에의 집착이었다. 죽게 되면 그냥 죽어야겠다. 자주 이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이의 남루한 행색을 보자 어쩐지 더욱 무기력해진 것이다.
   “안녕.”
   먼저 인사를 건넨 건 아이 쪽이었다. 그렇게나 말라비틀어진 와중에도 콧볼이 뭉툭했는데 아마 어딘가에 세게 부딪혀 부어오른 모양이었다. 아이의 등뒤로 그럴싸한 덧문을 세워둔 동굴이 보였다. 바로 거기에서 며칠인가를 살아남았겠지. 절벽은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더욱 장대했다. 크게 소리를 친다면 기분좋게 울려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이의 발치에서 검은 연기를 뱉던 불씨를 들여다보니 제법 많은 장작들이 놓여 있었다.
   “나무가 있어?”
   “나무가 있어?”
   아이는 그녀의 말을 똑같이 따라하곤 웃었다. 그녀는 화가 나기보다는 아이의 되바라짐에 조금 놀랐다. 아이는 그녀를 아직 사람이라고 믿지 않는 것처럼 대했다. 몇 번이나 시달린 환영을 또다시 마주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별달리 그녀가 살아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지 않아도 아이는 금방 그녀의 존재를 실감했지만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이 열여섯 살이고 곧 생일이라고 했다.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으며 웃었다. 아이의 말이 가소로웠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된 지 대략 2년 정도가 흘렀고 그마저도 계절로 어림짐작을 할 뿐이었다. 손목시계를 하나 가지고 있긴 했지만 안에서 부러진 초침이 멋대로 돌아다니며 분침과 시침을 방해한 지 오래였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맞아. 모르니까 그냥 한 달에 한 번씩 생일인 셈 쳐.”
   “엉터리네. 한 달은 어떻게 세는데.”
   “생리 터지면 한 달이지.”
   자기가 생각해도 우스운 이야기였는지 아이는 쩍쩍 갈라진 입술을 늘여 웃다가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그건 아마도 아주 오래된 습관일 거였다. 아이가 생존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을 때, 자신의 웃는 모습이 평소보다 바보처럼 생겼다고 생각해서 들였을 습관. 잘 보이고 싶은 친구나 선생 앞에서 자주 그렇게 웃었을 아이의 모습이 그녀의 머릿속에 쉽게 그려졌다. 그녀 자신도 언젠가 지나왔던 시절이었다. 그녀가 아이보다 앞서 경험한 장면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는 그녀도 아이도 완전히 다른 세상을 함께 마주하게 되었으니.
   그녀는 동굴 쪽을 자꾸 힐끗거리게 되었다. 아이도 그 시선을 느끼곤 말했다.
   “안에서 물이 나와. 볼래?”
   “물이라고?”
   아이의 셈법을 따르자면 그녀가 마지막으로 비를 맞았던 건 세 달 전의 일이었다.
   아이가 일어서며 바지에 붙은 모래를 털었다. 뒷주머니에 리바이스 로고가 그려진 청바지였다.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얻었거나 뺏었을 것이다. 그녀가 입고 있는 티셔츠도 죽은 언니의 것이었다. 아이를 따라 굴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로 작은 샘이 만들어질 만큼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가지고 있던 수통을 열어 물을 따랐다. 아이는 말리지 않았다.
   “너 이렇게 아무한테나 다 보여주고 그러면 위험해.”
   그녀 자신도 허겁지겁 물을 받아 마시면서 괜스레 아이의 신변을 걱정하는 척 말했다. 아이는 뒷짐을 지고 서서 웃으며 답했다.
   “상관없어. 물은 계속 나오니까. 어디 가지만 마.”
   이제야 아이의 조심성 없는 행동의 근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그리웠을 것이다. 설사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해도. 아니 차라리 원할 때 자신을 죽여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녀 역시 같은 마음으로 끝없는 모래사장을 걷고 또 걸었다. 어딘가로 가지만 말아달라는 아이의 말에 그러겠노라 대답해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더이상의 확신과 약속은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아이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거대한 모래 폭풍이 서울을 뒤덮는 광경을 그녀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녀는 120층 빌딩의 전망대 위에 서 있었고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빠르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모래 파도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몸을 덮치리라고는, 이 큰 건물을 무너뜨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넋을 놓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아이의, 연인의, 노모의 손목을 붙잡고 어디로든 도망가려고 비상계단으로 몰려들었다. 그녀는 언니의 티셔츠 자락만 붙잡고 창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언니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리 한 짝이 저 멀리 모래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그녀는 그 앞에서 단 한줌의 모래도 퍼낼 수 없었다. 엉엉 울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 메마른 울음소리의 괴괴함은 아직도 종종 꿈에서 듣는다.

   둘은 각자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공유하는 데에만 하룻밤을 모두 썼다. 통성명을 하긴 했지만 아이는 자신을 은희라고 했다가 지혜라고 했다가 진짜 이름은 혜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수빈이라고 했다가 다정이라고 했다가 유리라고 불렀다. 이름 따위 아무렴 어떠냐는 식의 말들이 둘 사이에선 꽤나 재밌는 농담거리였다. 아이는 아직 서울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 여기는 어디게?”
   “여긴 북한일 거 같아.”
   그녀가 오기 전에 잠시 머물다간 아저씨가 있었는데 북한 말을 썼다는 것이다. 그가 아이에게 불을 피우는 방법도 알려줬다고 했다. 아이의 말을 듣고 그녀는 이곳이 강원도 어디쯤 되겠구나, 생각했다. 습관적으로 아이의 말을 믿지 않는 자신의 태도에 놀라기도 했다. 가끔 동물들이 저 절벽에서 툭툭, 떨어지면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 가죽을 벗겨 고기를 먹는다고. 처음엔 손질이 서툴러서 거듭 설사를 해가며 억지로 입에 넣었는데 이제는 고기를 얇게 펴서 말려먹을 줄도 안다며 아이는 으스대었다. 코를 다친 것도 짐승의 갈비뼈를 열다가 손이 미끄러져 제 주먹에 얻어맞은 것이라고 했다. 그녀에겐 아이만큼의 야만성이 없었다. 살려면 무엇이든 하겠지만, 살려고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엔 그만한 의지도 기력도 없었다. 그녀는 아이에게 네가 먹은 동물들은 다 자살한 동물들일 거라고 이죽거렸다.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눈을 감으며 합장을 하고는 더 많은 동물들이 자살하게 해주세요, 라고 아이는 짙은 밤하늘에 빌었다.
   “넌 나중에 구출되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진짜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아. 자소서에 쓸 말은 진짜 많겠다.”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에 정말로 아이가 구출이 되어서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는 상상을 해보았다. 만원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출근해서 사내 메일을 확인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자 어쩌면 지금 이 재난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끔찍하게 아름다운 환상이 되었다.
   그녀는 아이가 건네준 새끼 여우의 가죽을 아랫배에 덮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며칠째 백야가 이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불 옆에 앉은 아이를 향해 돌아누웠다.
   “너 이소라 알아?”
   “옛날 가수 아냐?”
   “그렇게 옛날 가수도 아니야. 내가 엄청 좋아했어.”
   그럼 옛날 가수네, 라고 말하며 아이는 입술 마찰을 통해 푸, 하고 약간의 침을 튀며 얄궂은 얼굴을 했다. 그거 엄청 못생겼다고 말한 후로 아이는 일부러 더 자주 그 얼굴을 했다. 그녀는 이소라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며칠 전부터 그랬다. 듣고 싶으면 몇 번의 클릭만으로 바로 들을 수 있던 시절이 그리워서인지는 몰라도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에 대한 열망은 의외로 강렬했다. 어떤 순간에는 음식보다 간절하기도 했다. 무엇 하나 만끽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단 3분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녀는 행복할 자신이 있었다.
   하루는 아주 드물게도 먹구름이 낀 날도 있었다. 반가운 신호였다. 따가운 햇볕을 맞지 않아도 되었고 운이 좋으면 비가 올 수도 있었다. 아이는 자기가 만든 기우제라며 우스꽝스런 춤을 춰댔고 헐거운 청바지가 이따금씩 벗겨지는 걸 보면서 그녀는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하늘은 무심했고 끝끝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아이의 염원이 조금 느리게 가닿아 엉뚱한 곳에 비를 뿌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 불완전한 재난은 사람을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하나 죽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로 무서웠다. 동굴 안의 샘물이 바닥이 나기 시작하고 물줄기가 머리카락보다 얇아졌다. 그마저도 벽에 흐르는 동시에 마르는 지경에 다다르자 그녀는 물론 아이도 점점 말수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화가 나서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써버린 날도 있었다. 여기에서 안주하게 만든 게 아이의 탓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탓할 수 있다는 것의 생경한 감사함을 인지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나이의 반도 채 살아보지 못한 아이에게 고함을 질러보았다. 실상 아이를 위해 그녀가 희생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화를 내고 혼을 내보자 아이를 위해 소중한 무언가를 양보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달콤하고 사악한 기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날 그녀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꿈속에서 아이는 동굴의 거친 벽면에 흡수되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의 비명 때문에 함께 아파야 했다. 서서히 아이의 살을 파고드는 돌들이 유독 뾰족했다. 제 몸이 돌에 스며드는 고통은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었지만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 동안을 후유증에 시달렸다. 어제는 내가 미안했다고, 네가 뭘 잘못했겠느냐고 그녀가 멋쩍어 사과했을 때 아이는 어깨를 한번 으쓱 올렸다.

   해가 지는 쪽으로 좀 오래 걷다보면 이런 동굴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그곳에도 물이 있긴 했지만 아이는 가고 싶지 않아 했다. 그 굴 안에는 썩은 시체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서로가 서로를 죽여주고 남은 것 같다고. 거기서 단 한 번 맡았던 악취가 몸에 배어서는 며칠이고 떠나질 않았다고, 아이는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서 말하는 사람처럼 일부러 섬뜩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녀는 또 한번 아무런 맥락도 없이 ‘신은 개뿔’ 하고 읊조리게 되었다.
   “언니, 우리 죽을래?”
   아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녀는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재길은 말했었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 살아야지. 살아 있는 이유가 있겠지. 그건 그의 허세였다. 그는 자신이 잡은 뱀이 독이 없는 뱀인 걸 알고 나서는 그녀에게 양보했다. 그는 그렇게 자꾸 양보했다. 그녀를 연명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리고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이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분명 어떤 순간에는 그가 구세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낯간지러운 애착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허세였다.
   그녀는 아이와 마주보고 앉았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서로를 죽여줄 수 있는지, 고민해보았지만 애초에 그런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이의 노랗게 샌 구레나룻을 보자 왜 재길이 그토록 자신을 살렸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자신을 두고 어딘가로 떠나지만 말아달라고 했던 아이의 별것 아닌 바람이 자꾸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내가 어떻게 널 죽여. 그래도 살아 있으니 살아야지 않겠어? 머리를 이고 있는 것도 너무 힘에 부쳐서 그녀는 그대로 아이의 무릎으로 고꾸라졌다. 아이의 다리 사이에서 올라오는 악취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난 뒤에도 눈꺼풀을 다시 뜨는 게 힘들어졌다. 아이가 그녀의 떡 진 머리카락을 땋아보겠다고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언니가 날 먹어도 될 거 같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푸흐, 하고 웃었다.
   “너 냄새나. 안 먹고 싶어.”
   “언니도 냄새나. 더러워.”
   “비가 오면, 일단 씻자 우리.”
   비누는 없었지만 어디선가 주웠던 셰이빙 크림이 야트막하게 남아 있었다. 조금만 덜어 써도 거품이 제법 잘 나서 그걸 처음 주웠을 때 기뻐 날뛰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재길에게도 조금 나눠준 적이 있었다. 그녀가 첫 월급으로 기꺼이 사다주었던 셔츠를 무심코 내팽개치던 그녀의 아버지처럼 그는 그걸 도무지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다. 비도 오지 않는 메마른 날씨에 냅다 머리에 바르고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곤 어흐, 시원하다, 하고 말았다. 그때 비로소 머리카락으로 가리지 않은 그의 눈을 처음 볼 수 있었는데, 너무 흐리고 살아 있는 이의 것 같지 않아서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몸속에 피가 아닌 시멘트가 흐르고 있을 것만 같던 잿빛의 얼굴은 또 어떻고…… 죽었을까 그는? 내 가방에 녹이 슨 수통을 매달아놓고 돌아서서 가던 그는 몇 걸음 못가서 한 번 더 나를 돌아보았다. 그가 나를 버릴 줄은 몰랐다.

   “7천년 어치의 모래야.”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생명의 불이 점멸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그를 생각하게 됐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가 했던 말을 복기했다. 아이가 답했다.
   “7천원어치?”
   “아니.”
   다행히 아이는 그녀와 달랐고, 그녀 자신도 재길과는 달랐다. 그때,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천둥소리가 울려왔다. 그녀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굵직한 소리였다. 서로를 마주보며 ‘설마’ 하고 외침과 동시에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아프도록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아직 기력을 다 찾지 못한 그녀와 달리 아이는 재빨리 손을 움직여 수통에 물을 받더니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젖혔다.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자 아이는 안간힘을 쓰며 그녀를 일으키더니 옷을 모두 벗겼다. 온몸이 삐거덕거리는 것처럼 아팠다. 저만큼이나 비쩍 곯은 아이가 동굴로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빗줄기 때문에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감았다. 곧 아이가 들고 나온 셰이빙크림을 그녀의 정수리와 자신의 정수리에 나눠 발랐다. 거품은 나지 않았지만 따가운 비눗물이 이들의 몸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아이는 벗어둔 옷들 위에 서서 발을 구르며 세탁까지 꾀하려고 하는 듯했다. 그녀는 거듭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섰다. 몇 모금의 빗방울을 마시다가 그녀가 생각한 것은 ‘사람답다’라는 말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부대끼며 살아야 했을 때는 몰랐다. 오로지 증오심만 들끓을 때도 있었다. 이 아이가 그 사실을 그녀보다 더 이른 나이에 깨달을 것이라는 질투심은 그녀로선 반가운 감정이었다.
   꼬박 하루가 지났을 것이다. 비가 그치지 않은 것은. 서로를 죽이기로 했던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동굴 안으로 들어와 부둥켜안고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다시 샘물이 불기 시작했고 어쩌면 불을 피워놓은 곳까지 넘칠 수도 있었다. 가시지 않는 추위에 이를 달달거리며 부딪던 아이가 말했다.
   “심심하다. 그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와 엇박으로 몸을 떨었다.
   “그럼 새 이름을 알려줘. 지금까지 말했던 이름들이랑 안 겹치는 걸로.”
   아이는 고심하더니
   “모래. 내 이름은 모래야.”
   되는대로 내뱉는 것이겠지만 지금껏 아이의 입에서 나왔던 어떤 이름보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그녀도 만나보지 못했던 이름일 터였다. 그녀의 친언니인 유리도, 아이의 절친한 친구였던 지혜도 아닌 이름. 이제 이 아이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떠오르지 않을 이름. 마음에 들었다. 얼마 안 가 동굴 밖의 어딘가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무언가가 무너진 모양이었다. 별안간 이 폭우는 메마른 땅의 머리채를 잡고 많은 것들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아껴온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전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슬프게 만들 걸 알면서도 한번 묻고 싶었다. 이 많은 모래들이 다 어디에서 온 걸까, 하고.

   작가노트_박몽


   고백하건대, 때때로 나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과분하다.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누군가가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정체모를 살덩이를 한 덩이 턱, 안겨주면서 ‘자 이게 네 몫이니 알아서 해.’라고 말한 뒤 사라진 것처럼 무겁고 버겁다. 그래도 어찌저찌 살고는 있어서 어떨 땐 억울하고 어떨 땐 즐겁다. 이 모든 기분조차 살아 있으니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알 수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인간을 좋아해’ 라고 말하고 있는 이 사랑스러운 그림일기를 보고 마땅히 떠올렸던 최초의 감상. ‘1인분의 삶을 먹어치우는 와중에 타인을 사랑하는 일의 버거움, 어쩌면 벅차오름.’이라는 생각을 꼭 전달하고 싶었다. 어렵지 않게 어느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랑해 마다않는 김이듬 시인의 시 「막」을 끝맺는 문장 “너를 사랑해 이 기막힌 재난과 함께.”라는 문장이었다. 물론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이 시를 오해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하고 망설일 때도 있었지만 그 오해가 내 창작과는 관계하지 않았다. 내가 거듭해서 보아야 했던 것은 다섯 컷짜리의 소중한 일기였다. 일기에서 “한 이불을 덮는다”라는 말을 보고 ‘사람이 사람답게’라는 말을 연상했던 내 머릿속은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걸까. 나도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나. 이런 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조금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살아와 사람. 연명과 영면, 7천년과 7천원 같은 말장난들에 비웃음을 던지기엔 나 역시 일기를 보내주신 분처럼 ‘인간을 좋아’했을 지도.



월과월과월

매주 월요일(月)에 모여,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넘나들며(越), 문장(문장의 최소 단위를 뜻하는 우리말 ‘월’)을 쓴다는 목표 아래 모인 창작 동인이다. 만화 시나리오 작가 강아는 좋아하는 만화와 소설 앞에선 조금 상기되는 편이다. 대학원생 박몽은 동경에 거주중이고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 단 한 해도 학교를 쉰 적 없는 학교 덕후다. 생활체육인 이문경은 책을 만들며 시와 소설을 읽고 쓴다.

2020/12/29
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