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시를 읽고 싶은 사람들만 읽었으면 좋겠는데, 내 시를 읽고 싶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더운 여름이고, 길에서 시를 만나면 잠시 멈춰서 시를 읽기도 매우 힘든 날씨이고. 그렇지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시를 온 세상에 붙이고 다니는 일이다. 누군가에겐 분명히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내 시를 읽고 싶어 할지도 모르니까. 어떤 사람은 시가 너무 싫고, 보면 찢고 싶은데, 어쩌다 골목길에서 내 시를 만나서 갑자기 내 시를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어떤 사람은 내 시가 시인지 아닌지도 모를지도 모른다. 현대시란 조금 그런 거니까. 시같이 생기지 않은 것이니까. 난 내 시가 시같지 않을 때 가장 좋다. 다른 무엇 같지도 않을 때. 처음 보는 이상한 글일 때가 가장 좋다. 그래서 오늘 세상에 붙이고 다닌 시는 「남아공 사람이 한국시를 쓰려고 쓴 시」다.


   고디머는 그날 어떤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내 사진을 찍었으리라. 물론 사진사는 고디머의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다. 만델라가 죽을 것이다. 그가 죽은 뒤 얼마 안 있어 서울에서 남아공 보도사진전이 열릴 것이다. 거기에 그 사진이 걸릴 것이다. 그 사진은 고디머의 독사진이 아니다. 그 사진은 남아공의 문인들이 한데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진으로 소개될 것이다. 존 쿳시와 비슷하게 생긴 네덜란드 사람 하나가 그 사진을 구경할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은 왕년에 꽤 유명한 테니스 선수였다. 한창 존 쿳시에게 빠져 있는 젊은 시인 한명이 그 사진 앞에서 네덜란드 사람을 발견할 것이다. 혹시 당신은 쿳시가 아닌가요? 네덜란드 사람의 이름은 쿳시이다. 이런 우연이. 쿳시가 남아공 특별전을 보러 한국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젊은 시인은 기쁠 것이다. 그는 쿳시에게 묻는다. 이 사진 속에 당신도 계시죠? 내가 왜 이 속에 있어요? 있다고 들었어요. 젊은 시인은 쿳시에게 쿳시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인은 쿳시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진 속에는 이름 모를 아프리카 작가들의 얼굴만 한 가득일 것이다. 쿳시는 젊은 시인에게 다른 사진들을 둘러보다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할 것이다. 저는 사진 속의 당신과 함께 있겠습니다. 젊은 시인은 쿳시를 찾지 못할 것이지만 자신이 쿳시의 사진이라고 믿고 있는 사진 앞에서 쿳시를 기다릴 것이다. 어떤 남자가 젊은 시인의 옆에 설 것이다. 그는 한국 문인들의 술자리마다 어떻게 알고 항상 찾아오는 불청객 아저씨일 것이다. 불청객 아저씨는 유명한 시인만 알아보기 때문에 젊은 시인이 누군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인은 불청객 아저씨를 알아볼 것이다. 이 아저씨는 시인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시인이고 소설가지. 그러나 이 아저씨가 시인이고 소설가라 할지라도 이 아저씨가 불청객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 아저씨를 불편해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불청객은 아주 작고 아주 비밀스러운 문인들의 모임에도 나타났다. 어떤 시인의 부친상에도 나타났다. 술자리에서 여자를 성희롱했다는 소문도 있다. 젊은 시인은 생각할 것이다. 이 아저씨는 왜 다음 사진으로 가지 않고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남아공 문인들의 술자리 사진이다. 불청객은 한국 문인들의 술자리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외국 문인들의 술자리도 좋아하는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이 불청객은 어느 출판사의 술자리에 갔다가 쫓김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는 이 전시회장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남아공 문인들의 술자리 사진 앞에 앉을 것이다. 새벽일 것이다. 겨울이라 추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살이라고 할 것이다. 플랜더스의 개 같은 일이라고 떠들 것이다. 고디머는 여기까지 구상한 다음 자기가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 사진은 엄밀히 말하면 남아공 문인들의 술자리 사진이 아니다. 이들이 마시고 있는 것은 사과 주스다. 그 사진 속엔 내가 없다. 젊은 시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 젊은 시인은 쿳시가 자신을 귀찮아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인은 생각할 것이다. 사진 속의 쿳시는 무엇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백인에 대해? 흑인에 대해? 젊은 시인은 자기가 남아공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청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한 가득일 것이다. 그때 갑자기 사진 앞의 불청객이 눈물을 흘릴 것이다. 불청객은 사진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우는 것이다. 남아공 문인들의 술자리에 가고 싶어서 우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시인은 불청객이 왜 우는지 영문을 모를 것이다. 한국의 젊은 시인은 왜 영문을 모르는 것일까? 나는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 왜 한국의 시인은 단순한 사실조차 추측하지 못하는 것일까.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한국의 시인은 불청객을 몰래 따라다닐 것이다. 불청객은 삼일 후에 사진 앞에서 죽을 것이다. 한국의 시인은 그 여정을 기록할 것이다. 그 기록은 한 편의 한국시가 될 것이다.


   A5 종이에 시를 출력했다. 시에 쓴 사람 이름은 기입하지 않았다. 이걸 읽고 수많은 궁금증이 생기길 바랐다. 누가 쓴 것인지 궁금하다면 찾아볼 수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 찾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남아공 사람이 한국시를 쓰려고 쓴 시」는 도대체 이런 글이 여기에 왜 붙어 있을까? 집에 가서 샤워를 하면서, 근데 그 글은 대체 거기 왜 붙어 있었던 것일까? 요지가 뭘까? 시였나? 시 아닌 것 같았는데? 시였을지도? 물리적인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보는 이상한 글보다 길에서 만나는 이상한 글이 더 신기하니까. 미친 사람이 붙이고 다닌 건가? 음모론자가 붙이고 다닌 건가? 하얗고 큰 종이에 검은 글씨로 뭐라고 써놨군. 그것도 아주 길게. 뭐라는 건지. 그런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뭐라는 건지.

당신의 집 앞에서 


공원에서 


골목에서 


화단에서 만나는 「남아공 사람이 한국시를 쓰려고 쓴 시」.


   너무 더웠다.

   붙이고 사진을 찍고, 붙이고 사진을 찍는 일이 너무 귀찮았다. 사진만 찍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많이 붙이고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부턴 사진을 찍지 말까? 엄청나게 많이 붙이고, 엄청나게 많이 붙인 다음에, 엄청나게 많이 붙이는 거야. 인터넷에 공지를 하는 거지. 혹시 제가 붙인 시 보셨나요? 보셨으면 사진으로 찍어서 올려주세요. 인증하신 분들께 10만원씩 드립니다. 그리고 10만원은 안 주는 거다. 아니면 부자가 돼서 그때 주든가. 이상한 소리는 그만하자. 박스 테이프는 뜯기가 되게 불편하다. 포스터 붙이는 알바를 하면서 붙이기 기술을 좀더 배워야 하나. 그거 배우는 글로 4화를 채우면 어떨까. 아니야, 그냥 전단지 나눠주기를 더 해보면 좋을 것 같아. 얇은 테이프가 필요한데 문방구가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앞이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붙이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고 갔다. 잠깐 읽다가 가는 사람도 있었고, 소리 내어 읽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들 그렇게 오랜 시간 머물지는 않았다. 원래 천사나 호인은 내가 없을 때만 나타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붙였다. 계속 붙였다. 너무 더웠다. 혹시 돌아다니시다가 제 시를 보신 분이 있으면 인증해주세요. 제가 10만원은 드리지 못하지만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만나서 시 쓰기, 김승일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우리는 세 사람이다. 우리는 시인이고 친구들이다. 종종 만나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누가 만나서 밥만 먹지 말고 시도 쓰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만나서 시 쓰기’가 되었다. 밥 먹는 거랑 시 쓰는 거 말고 재밌는 거 뭐 없나. 고민하다가 이걸 하게 되었다. 이건 ‘선물하는 시’다. 시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2018/08/28
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