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음악 페스티벌 ‘서울인기’에서 시를 나눠주기로 했다. 우리는 종종 함께 공연을 보러 다니니까 거기 가면 공연도 볼 수 있고 시도 나눠줄 수 있다. 또한 공연장에 온 관람객들은 길에서 만나는 완벽한 타인들보다 더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마침 우리가 좋아하는 밴드들이 ‘서울인기’에서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정말 좋다. 정말 좋은 생각이야. 승일이는 호주에 가고 이번에는 미옥언니와 내가 둘이 활동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한강난지공원에 도착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낮고 조각난 거울 같은 구름들이 투명하게 빛났다. 산책하기 좋은 날이야. 그치. 저번 주였다면 정말 더웠을 거야. 다행이야. 그런 얘기들을 하며 우리는 걸었다. 나무를 보고 거미줄을 보고 수십 마리의 매미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흙을 밟으며 물을 보며. 걷고 또 걸었다. 즐거운 산책이 힘겨운 산책으로 느껴질 무렵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사방이 조용하고 머리 위로는 고가도로가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가양대교’라는 녹색 푯말과 함께 화살표가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꺼내 지도 어플을 켰다. 이런, 우리 반대 방향으로 와버렸어. 온 만큼 다시 걸어 출발한 곳에 도착한 다음 다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한참을 걸어 우리는 돌아왔다. 원래 있었던 자리로. 저 사람들 봐. 공연장 가는 거 같지? 응. 따라가자. 그렇게 사람들을 따라가니 공연장이 나왔다. 겨우 5분 거리에 있었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1시간이나 허비해버렸어. 벌써 지친다. 빨리 들어가서 맥주 마시자. 그래 그러자.

   공연장 앞엔 푸드트럭이 즐비하고 힙한 젊은이들(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근사하고 생기 넘치고 너무 예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걸 단순히 ‘힙’하다는 말로 수렴할 수 있을지!)이 공연장 주변에 잔뜩 포진해 있었다. 언니 프린트 해온 거 줘봐. 한 뭉치의 종이를 손에 들고. 어쩐지 금방 풀이 죽었다. 이 사람들한테 시를 줄 수 있을까? 표지 부분을 몸 쪽으로 돌려 감추기에 급급하면서. 나눠주기 어려운 마음이 드니까, 여기저기 붙이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나무에 붙일까? 저 벤치에 붙일까? 있지 근데 여기저기 붙어 있는 거 보면서 견딜 수 있어? 아니 못할 거 같아. 어쩌지. 우리는 수줍음이 많았다. 나눠주는 것도 창피하고 붙어 있는 걸 하루종일(공연은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까지였다. 아주 긴 시간이었다. 페스티벌이니까.) 보고 있을 자신도 없다. 어쩌면 좋죠. 고민하다가 일단 돗자리를 깔고 푯말을 만들었다. 집에서 가져온 스케치북과 사인펜으로 앞에는 ‘선물하는 시’ 뒤에는 ‘시 가져가세요.’라고 적고 우리가 가져온 시들을 늘어놨다.



   어쩐지 초라한 기분이 들었어. 내가 만든 푯말은 너무 조악해보이고 이 긴 시를(그나마 제일 짧은 걸로 고른 거지만.) 누가 시간을 들여 읽겠어? 앞에서 멋진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고 있는 와중에 말이야. 그래 그건 내가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마음인 거 같기도 하다. 그럴 때면 나의 내면이 얼마나 많이 뒤틀려 있는지 느껴지고 그런 마음을 온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 마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나도 뭔가 만드는데! 나도 창작잔데! 하는 유치한 마음. 누군가 봐줬으면 읽어줬으면, 하는 사랑 받고 싶은 애 같은 마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뮤지션이었던 남편의 무대를 10년 동안 따라 다니면서 무대 아래서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느끼곤 했던 어떤 황홀과 절망 같은 것이었다. 이건 사실 두 가지 측면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 같은 것. 그런 나를 고백하기도 인정하기도 싫었기 때문에 그 마음은 속에서 점점 꼬여버렸던 거 같다. 이제는 조금은 의연해졌으니까 이렇게 적을 수 있다.

   용기를 갖자. 용기를 가지려면 좀더 대담해져야 한다. 너무 많이 걷고 지치기도 했으니까, 맥주를 한 잔 마시자. 그럼 더위도 가시고 대담함도 생길 거야. 그런 마음으로 맥주를 두 캔 사와서 자리에 앉았다. 벌써 6시네. 도착한지 2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 한 장도 나눠주지 못했다. 헤매느라, 수줍어하느라. 이럴 땐 에라 모르겠다! 하는 태도를 가져야 돼. 맥주를 반 정도 마시니까 할 수 있다는, 해야 한다는, 뻔뻔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를 네 장씩 들고 가서 흡연실 앞에 붙였다.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는 동안 대부분 핸드폰을 보거나 멀뚱히 서 있기 마련이니까, 뭔가 붙어 있으면 자연스레 눈길을 줄 것 같아서. 조금 힘이 생기는데? 빨리 나눠주자. 빨리 나눠주고 공연 보자! 우리 앞 돗자리에 한 커플이 책을 읽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공연장까지 와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어쩐지 시도 받아줄지 몰라. 그분들께 조심스럽게 다가가 “시 선물이에요.”하고 시를 건넸다. 그리고 우리가 시를 나눠주는 체험을 통해 겪고 느끼는 것을 웹진에 연재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설명을 드렸다. 진지하게 듣고 받아주셨다. 다정함에 대한 감사,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작은 빛처럼 일렁였다.



   우리는 오늘 ‘서울인기’에 은정언니(장은정 평론가, 웹진 비유 관계자이기도 한.)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은정언니에게 주자. 아는 사람이 받아주면 한결 쉬워질 것 같아서. 우리는 은정언니를 찾아다녔다. 수많은 돗자리와 인파들 속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 은정언니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언니에게 시를 주고 나니 탄력이 붙었다. 언니는 우리를 따라다니며 촬영도 도와주었다.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더 좋은 법이지. 여기저기 쏘다니며 시를 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시를 주었다. 신기했던 것은 이전의 활동 때와는 달리 단 한 사람도 시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웬 전단지?’ 하는 눈으로 빠르게 지나가버리거나 ‘됐어요.’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서울인기’에서 관람객들은 정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시를 받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신나게 춤추며 사람들에게 시를 주기도 했다. 어떤 분은 ‘가능세계’를 누구의 이론에서 가져온 거냐는 질문으로 기습하여 나를 얼어붙게 만들기도 했다. 흥미롭다는 말을 덧붙이며. “라이프니츠요.” 어쩐지 부끄럽게 대답했다. 정말 내가 라이프니츠의 이론에서 가능세계라는 단어를 가져온 건가? 사실 나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뭐라도 대답해야 할 것 같아서. 가능세계는 만약의 세계이고 내가 살고 있고 끝없이 태어나는 동시에 계속해서 죽고 있는 그런 세계인데, 하나의 이론으로 다 할 수 없는 거대한 이야긴데, 잘못 대답한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누군가 관심을 갖고 물어봐준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우리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공연장까지 시집을 가져오셔서 우리에게 사인을 받아 가신 분도 있었다. 그리고 흔쾌히 우리 시를 부스에 붙이는 걸 허락해주신 ‘재미공작소’ 관계자님들께도 꼭 감사를 전해요! 아직도 해주신 타투스티커가 내 어깨에 남아 있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는 예쁜 그림이.


   그렇게 우리는 금방 준비해온 시를 전부 소진해버렸다. 아직 해가 채지지 않은 시각이었다. 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받아줄 줄은 몰랐어. 더 많이 뽑아올 걸 그랬어. 결국엔 거의 처음 은정언니에게 줬던 시도 도로 뺏어 다른 관객분들께 드렸다. 시를 드리면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시를 받아주고 읽어줘서. 그런 내 말에 웃으며 한 여자분이 대답했다. “서울인기잖아요!” 서울인기 최고. 고마워, 서울인기.

   중력의 바깥에서 중력을 상상하는 일처럼. 달에서 보는 지구처럼. 아름답고 쓸쓸하고 황홀한 시간들. 펄럭이는 종이들은 꼭 깜박이는 눈 같고. 강바람을 맞으며, 춤을 추고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모든 게 좋아서. 오늘 하루가 시트콤 같아서. 시 같아서. 웃음이 났고, 돌아올 때는 꼭 여행에서 돌아올 때의 공허함 같은 것을 느꼈어. 어디선가 쫓겨난 기분. 뜯겨져나온 것 같은 슬픔.

   사람들이 시를 읽었을지, 집에 가져갔을지, 읽고 좋아했을지는 모른다. 저번 화에도 이런 이야기를 썼던 것 같은데. 나눠주고 나면 자꾸 시들의 내가 모르는 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모르지만 모르니까 상상하게 된다. 우리의 시를 처음 본 누군가가 ‘선물하는 시’를 계기로 시에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시집을 찾아봤다면 혹은 《비유》를 찾아보고 읽어준다면, 어떨까? 작은 두근거림과 떨림.


   이번에는 프린트 아래 ‘안녕하세요? 저희는 시인 세 사람이 모여 함께하는 [만나서 시 쓰기] 팀입니다. 웹진 《비유》에서 ’선물하는 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받으신 저희 시 선물에 대한 피드백을 인스타나 트위터에 자유롭게 올려주세요! 보내주신 피드백 중 선정하여 저희 세 사람의 사인 시집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인스타그램은 @gift_poem을 태그해주세요)’라는 문구를 적어 시를 나눠줬는데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태그해서 게시물을 올려주신 분도 있었다. 이렇게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니 기쁘다. 우리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의도했던 것이 조금쯤은 현실이 된다.

   우리는 모두 어둠을 알고 빛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그리고 시를 통해 거기 가까워지는 순간도 있다고.
   그건 또다른 기쁨이다.


* 시를 드리는 영상과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초상권 문제가 우려되어 최대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은 사진을 첨부하였습니다. 「서울인기에서 시 선물하기」는 다음 화에서 안미옥 시인의 글로 이어집니다.


만나서 시 쓰기, 백은선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우리는 세 사람이다. 우리는 시인이고 친구들이다. 종종 만나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누가 만나서 밥만 먹지 말고 시도 쓰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만나서 시 쓰기’가 되었다. 밥 먹는 거랑 시 쓰는 거 말고 재밌는 거 뭐 없나. 고민하다가 이걸 하게 되었다. 이건 ‘선물하는 시’다. 시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2018/09/25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