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몇 칸은 벌써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어떤 아이들은 창가에 붙어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해리는 빈자리를 찾기 위해 손수레를 밀면서 승강장 아래로 내려갔다. 얼굴이 둥근 아이 옆을 지나쳤을 때, 그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 두꺼비를 또 잃어버렸어요.” “어떡하니, 네빌.” 할머니의 한숨짓는 소리가 들렸다.1)

   입학 첫날부터 자신의 두꺼비를 잃어버려 기차 안을 뒤지고 다니는 아이. ‘네빌 롱바텀’의 등장은 초라하다. 부모님을 비롯한 온 가족이 ‘순수 혈통’ 마법사이지만, 소년은 마법에 재능이 거의 없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스스로가 마법사인지도 모른 채 머글 틈바구니에서 자란 해리보다도 한참 모자랄 정도다. 그가 어렸을 땐 ‘스큅’(마법을 쓸 수 없는 마법사)이 아닌지 오해를 받을 정도로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 호그와트 입학 허가도 번번이 거부당했다. 그렇기에 네빌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호그와트 입학 허가를 받았을 때 가족들은 기뻐하다 못해 눈물까지 보였다.
   엄한 할머니 밑에서 자란 네빌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중반까지 흘러갈 동안에도 내내 할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학교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어리숙하고, 놀림받는 ‘아웃사이더’였다. ‘해리포터’ 시리즈 제4권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론이 “헤르미온느가 네빌의 무도회 신청을 거절한 것은 당연하지. 누가 네빌과 가고 싶어하겠어?”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네빌을 향한 주변의 시선은 딱 그 정도였다. 네빌의 존재는 서사에서 그렇게 물러서는 것 같았다. 해리의 영특함과 용맹함을 돋보이게 하는, 멍청하고 나약한 조연 캐릭터로.

   하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네빌은 성장한다. 네빌이 처음 호그와트 학교에서 기숙사를 배정받을 때, ‘마법의 분류 모자’는 겁 많고 어리숙한 이 소년을 그리핀도르로 보낸다.(그리핀도르는 용감한 이들이 모이는 기숙사로, 용기, 대담성, 기사도 정신이 특징이다!) 분류 모자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그 의문은 시리즈의 마지막, 제7권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 말끔히 풀린다. 진정 용기 있는 자만이 들 수 있다는 ‘그리핀도르의 검’을 뽑아들고서 볼드모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인 뱀을 단칼에 베어버린 사람이 바로 네빌이므로.
   ‘해리 포터’ 시리즈는 네빌의 성장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네빌은 해리 다음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인다. 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괴롭힘을 당했던 우울하고 나약한 소년은 어떻게 성장하여 호그와트의 교장이 되었을까.
   이는 네빌에게 견고한 자기 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스토리다. 어둠의 마법사에 대항하다 저주에 걸리는 바람에 아들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미쳐버린 부모님, 그 부모님의 원수, 벨라트릭스의 탈옥을 계기로 각성한 네빌의 마법 실력은 그가 언제 어리바리했냐는 듯 일취월장한다. 마침내 네빌은 호그와트를 떠난 해리를 대신해 덤블도어의 군대를 이끌며 볼드모트 세력과 끝까지 싸운다. 그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네빌에게는 그를 키워준 할머니와 언제나 그를 걱정하고 격려하는 친척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볼드모트에 맞서 싸운 훌륭한 마법사들인 부모님이 있다. 부모님을 그렇게 만든 원수의 탈옥 소식, 다가올 위험과 맞서 싸우려는 친구들까지. 네빌의 주변은 그가 성장해야만 하는 이유들로 넘친다. 네빌은 그만을 위한 ‘전사’를 확실히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에 비중이 적은 조연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진 채, 누구보다 확연히 성장할 수 있었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죽음을 먹는 자들을 피해 호크룩스를 찾는 동안, 네빌은 덤블도어의 군대를 이끌며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맞섰다. ‘갑자기’ 돌변한 네빌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사실 네빌의 성장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제1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 일행을 막아서며 ‘더이상 그리핀도르에게 해가 되는 일을 방관할 순 없다.’고 하는 둥,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두려워하면서도 맞서는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제5권 『해리포터와 불사조의 기사단』에서는 해리와 함께 행동하며, 자신이 가진 불우한 가정사와 두려움을 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네빌의 성장 서사가 소설 전반에 걸쳐 만연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네빌의 이야기는 ‘조연’이라는 위치에 걸맞게 주인공 해리의 반경에서만 서술되는 경우가 많으며, 비중 또한 다른 조연에 비해 특별히 더 많진 않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네빌의 성장은 해리를 비롯, 독자들의 초점이 빗겨난 곳에서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보면, 오랜만에 네빌을 만난 해리는 너무나도 단단해진 네빌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네빌은 숱한 고문을 당하느라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도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에 대해 해리는 ‘저주를 걸려고 했던 캐로우 남매에게 경악해야 할지, 순수 혈통의 피를 흘리기 싫다 운운하는 네빌에게 경악해야 할지 알 수 없다.’라고 독백하기도 한다.
   조연으로서 스스로의 성장을 이룬 네빌 롱바텀은 조연이 가지는 서사와 성장의 한계를 넓혀주었다. 한때는 덜떨어지고 실패의 좌절만을 맛보았던 사람도, 궁극적으로는 자신만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네빌 롱바텀을 통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역시 기쁘다.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 네빌 롱바텀에게 도착한 학부모의 편지. 비하인드 랩 연구소가 어렵사리 복구했다.

비하인드랩연구소

김수현, 김원지, 장은진. 창작과 관련된 일을 하는 세 사람이 모여 이야기 속 ‘조연’을 마주한다. 조연을 표현하는 문장과 단어를 아카이빙하고, 조연에게 전사와 후사를 덧입히는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문학이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을 깊이 성찰해나갈 예정이다.

2018/09/25
10호

1
조앤 K. 롤링,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2, 김혜원 옮김, 문학수첩, 2014, 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