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시키-ㅌ
9화(최종화) 우리의 다음 페이지―두번째
센시키-ㅌ 프로젝트는 일상과 문학을 바라보는 개개인의 서로 다른 시선에 주목해왔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그들의 시선이 어디로 모이고 흩어지는지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분석하였고, 그것을 키-ㅌ 팀원들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재구성하는 작업 과정을 연재했다. 특히 그 과정을 총망라하였다고 할 수 있는 『시선 사전』1)을 펴내면서, 또하나의 유의미한 질문을 남겼다. 독자는 글에 담긴 시선을 역행해서 필자의 일상을 추측해낼 수 있을까? 키-ㅌ 팀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 『시선 사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 같은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보았다. 필자가 텍스트에 찍은 방점과 텍스트를 읽는 독자의 시선이 가닿은 지점은 과연 어떻게 다를까?
A, 당신을 상상하다 “취향: 내가 좋아하는 걸 다 그러모으면 그건 어떤 향이 날까 궁금했었다.”(팀원 A, 『시선 사전』 중)
“A는 『시선 사전』에서 ‘포도’를 ‘입에서 동그란 알맹이들이 퐁, 하고 튕겨져나오는 듯한 발음’이라고 말했어요. 그걸 보고 굉장히 섬세한 분일 거라고 느꼈지요. A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이 감상을 자아내는 소재일 것 같아요. 길을 가다가도 멈춰 서서 메모를 한다든지, 일상에서 멍하게 생각에 잠긴다든지 하는 순간이 꽤 많지 않을까 싶어요.”
“단어를 정의할 때 요즘 유행어를 응용한 말들이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신촌’에 대해서는 ‘신촌의 뭔가 부족함은 그래도 쌓이다보니 중요함이 되었다.’라고, ‘유튜브’를 ‘나를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라고 정의하는 부분에서요. 그래서 인터넷 문화에서 얻은 창의적인 생각들이 A의 재치 있는 표현력의 근원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A의 『시선 사전』을 읽으면서 ‘사회생활’을 정의한 것에 공감을 느꼈어요. A의 말처럼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로 시작하는 모든 대화들’을 자주 듣게 되거든요. A는 회사생활 경험이 많은 직장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B, 당신을 상상하다 “추억: 시간이 지나 선택받고 미화된 기억들.”(팀원 B, 『시선 사전』 중)
“‘시위’에 대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통된 의사를 표명하는 행위’라고 한 걸 보아, B는 대상을 바라볼 때 개인적 감상보다는 멀리 떨어져서 분석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그만큼 본인은 물론, 타인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만족스러운 결과를 추구하는 성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가 ‘감정’을 ‘자칫 너무 충실했다가는 인생이 망하기 쉬운 것’이라고 정의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이뿐 아니라 다른 단어를 설명할 때도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어휘를 많이 선택하는 것으로 보아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중하고 예민한 감각을 지녔을 것 같아요. 이런 특성 때문에 가끔은 선택을 할 때에 우유부단하게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파악할 때에 양면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어요. ‘자유’를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인 동시에 ‘누군가에겐 간절한 것’으로 쓴 것에서도 알 수 있죠”
C, 당신을 상상하다 “자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느낌.”(팀원 C, 『시선 사전』 중)
“왠지 모르게 소탈할 것 같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또 C는 애주가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 ‘도수’를 ‘술의 종류를 정하는 기준’이라고 한 걸 보면요. 비싼 술보다는 가성비가 좋은 술을 선호할 것 같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사람일 것 같아요. 언뜻 시니컬한 면모가 있는 듯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해져서 잘 알게 된다면 C의 마음 깊은 곳에는 분명 여리고 따뜻한 면모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시선 사전』 필자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라 글만 보고 추측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많았다.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작품을 읽으며 독자가 작가에 대해 상상하는 것처럼, 『시선 사전』을 읽으면서 이렇게나 다양하고 꽤 적확한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추측 중에는 실제 키-ㅌ 팀원들과 비슷한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누군가 ‘포도’를 정의한 것을 보고 다른 누군가는 그 사람이 길을 걸으며 하는 생각이나 습관들까지 상상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영화관에 간다면 어떤 영화를 볼 것 같은지,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할 것인지까지 짐작하게 된다. 키-ㅌ 팀원들의 글을 접한 독자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선을 우리에게 던졌고 그것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의 첫 질문 역시 이 깨달음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문학은 일상’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칼로 무 자르듯이 ‘문학=일상’(혹은 그 반대로 ‘문학≠일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정말 그것이 우리가 원하던 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센시키-ㅌ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문학은 우리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요소,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을 이루고 있는 요소 중 아무리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그 무엇이라도 우리가 문학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문학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의 사적인 무언가는 그 사람의 문학이 될 수 있고, 그 문학은 또다른 이의 사적임으로 치환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부분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 주고받음을 멈추지 않는 이상, 문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받은 시선을 새롭게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가느다란 실처럼 엮인 시선이 만들어낼 우리의 다음 페이지에는 어떤 문학이 자리 잡게 될까. 그게 무엇이든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A, 당신을 상상하다 “취향: 내가 좋아하는 걸 다 그러모으면 그건 어떤 향이 날까 궁금했었다.”(팀원 A, 『시선 사전』 중)
“A는 『시선 사전』에서 ‘포도’를 ‘입에서 동그란 알맹이들이 퐁, 하고 튕겨져나오는 듯한 발음’이라고 말했어요. 그걸 보고 굉장히 섬세한 분일 거라고 느꼈지요. A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이 감상을 자아내는 소재일 것 같아요. 길을 가다가도 멈춰 서서 메모를 한다든지, 일상에서 멍하게 생각에 잠긴다든지 하는 순간이 꽤 많지 않을까 싶어요.”
“단어를 정의할 때 요즘 유행어를 응용한 말들이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신촌’에 대해서는 ‘신촌의 뭔가 부족함은 그래도 쌓이다보니 중요함이 되었다.’라고, ‘유튜브’를 ‘나를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라고 정의하는 부분에서요. 그래서 인터넷 문화에서 얻은 창의적인 생각들이 A의 재치 있는 표현력의 근원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A의 『시선 사전』을 읽으면서 ‘사회생활’을 정의한 것에 공감을 느꼈어요. A의 말처럼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로 시작하는 모든 대화들’을 자주 듣게 되거든요. A는 회사생활 경험이 많은 직장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B, 당신을 상상하다 “추억: 시간이 지나 선택받고 미화된 기억들.”(팀원 B, 『시선 사전』 중)
“‘시위’에 대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통된 의사를 표명하는 행위’라고 한 걸 보아, B는 대상을 바라볼 때 개인적 감상보다는 멀리 떨어져서 분석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그만큼 본인은 물론, 타인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만족스러운 결과를 추구하는 성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가 ‘감정’을 ‘자칫 너무 충실했다가는 인생이 망하기 쉬운 것’이라고 정의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이뿐 아니라 다른 단어를 설명할 때도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어휘를 많이 선택하는 것으로 보아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중하고 예민한 감각을 지녔을 것 같아요. 이런 특성 때문에 가끔은 선택을 할 때에 우유부단하게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파악할 때에 양면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어요. ‘자유’를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인 동시에 ‘누군가에겐 간절한 것’으로 쓴 것에서도 알 수 있죠”
C, 당신을 상상하다 “자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느낌.”(팀원 C, 『시선 사전』 중)
“왠지 모르게 소탈할 것 같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또 C는 애주가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 ‘도수’를 ‘술의 종류를 정하는 기준’이라고 한 걸 보면요. 비싼 술보다는 가성비가 좋은 술을 선호할 것 같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사람일 것 같아요. 언뜻 시니컬한 면모가 있는 듯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해져서 잘 알게 된다면 C의 마음 깊은 곳에는 분명 여리고 따뜻한 면모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선 사전』 필자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라 글만 보고 추측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많았다.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작품을 읽으며 독자가 작가에 대해 상상하는 것처럼, 『시선 사전』을 읽으면서 이렇게나 다양하고 꽤 적확한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추측 중에는 실제 키-ㅌ 팀원들과 비슷한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A가 바라본 A.
B가 바라본 B.
C가 바라본 C.
누군가 ‘포도’를 정의한 것을 보고 다른 누군가는 그 사람이 길을 걸으며 하는 생각이나 습관들까지 상상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영화관에 간다면 어떤 영화를 볼 것 같은지,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할 것인지까지 짐작하게 된다. 키-ㅌ 팀원들의 글을 접한 독자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선을 우리에게 던졌고 그것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의 첫 질문 역시 이 깨달음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문학은 일상’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칼로 무 자르듯이 ‘문학=일상’(혹은 그 반대로 ‘문학≠일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정말 그것이 우리가 원하던 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센시키-ㅌ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문학은 우리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요소,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을 이루고 있는 요소 중 아무리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그 무엇이라도 우리가 문학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문학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의 사적인 무언가는 그 사람의 문학이 될 수 있고, 그 문학은 또다른 이의 사적임으로 치환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부분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 주고받음을 멈추지 않는 이상, 문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받은 시선을 새롭게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가느다란 실처럼 엮인 시선이 만들어낼 우리의 다음 페이지에는 어떤 문학이 자리 잡게 될까. 그게 무엇이든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키-ㅌ
‘키-ㅌ’는 문학에 관심이 많은 세 사람이 기술을 도구로 문학을 재해석하기 위해 모인 팀이다. 무언가를 조립해서 만들 수 있도록 부품을 모아놓은 세트인 ‘kit’에서 착안하여, ‘키-ㅌ’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2018/10/30
11호
- 1
- 키-ㅌ 팀원 A, B, C의 시선이 담긴 낱말 사전. 지난 화에 첨부된 PDF 파일을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