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책지 선릉에서


   정릉을 거쳐 선릉을 빙 둘러 걸었다. 선릉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가팔랐다. 마스크를 쓰고 산책하는 이들이 많았고, 맨발로 흙길을 거니는 이도 있었다.
   임금이 걷는 길인 ‘어로’도 지나보고, 제향을 올리는 곳이라는 ‘정자각’도 지나며 「선릉 산책」의 한두운과 ‘나’가 산책한 길목을 따라 걸었다.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그의 비 정현왕후, 11대 왕 중종의 능묘가 있는 선릉과 정릉의 전경. 선·정릉은 도심 안에 있는 숲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넓었다.

   정용준의 「선릉 산책」(『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6) 속 한두운과 ‘나’의 하루는 산책으로 시작해 산책으로 끝맺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는 우진 형의 부탁으로 자폐를 가진 한두운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사람 없는 한적한 곳으로 다녔”으면 좋겠다는 우진 형의 당부에 따라 나와 한두운은 선릉을 산책한다. 한두운과의 산책은 녹록치 않다. 그는 신도 위에 침을 뱉고, 식탐을 부리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고, 사람들을 피해 몸을 피하고 움츠리기 일쑤다. 이 난감하고 어정쩡한 산책을 나는 무난히 이끌어간다. 한두운의 헤드기어를 벗겨 세수도 시켜주고, 제멋대로인 그에게 화를 내지도 않으며, 대학 체육대회에서 프랑스어과 대표 권투선수로 나갔던 과거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호자/피보호자, 비장애인/장애인으로 나뉘어졌던 나와 한두운 사이의 펜스는 서서히 스러지고, 보폭도 점차 나란해진다. 9시부터 6시까지 예정된 산책이 느닷없이 연장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해나 : 「선릉 산책」은 ‘나’가 한두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끝나는 이야기다. 아르바이트 막바지에 ‘나’는 한두운의 이모로부터 한두운을 3시간만 더 봐달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그때부터 나와 한두운 간의 관계는 미묘하게 틀어지고, 이제까지 돌봄노동의 대상이었던 한두운을 ‘나’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된다. 작품 뒤로 갈수록 점점 좋았다.

    정아 : 이와 비슷한 소설 혹은 이야기는 대개 낯선 이에 대한 선입견이 깨진다는 교훈적인 마무리를 하는데, 이 소설은 ‘모르겠다’라거나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라고 말하며 끝낸다. 매일을 봐도 모르는 게 사람이고, 심지어 소통이 어려운 자폐증을 가진 이는 더욱 그렇지 않나. ‘나’의 경우처럼 하루 돌봄노동을 했다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거나 깊어질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한두운을 이해를 하려 했지만 도리어 모르겠다고 마무리한 것이 소설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해나 : ‘나’와 한두운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가 점점 발걸음이 나란해지는 순간들도 좋았다. 본디 산책이란 여유를 가지고 하는 것인데, 이 소설의 산책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인상 깊었고.

    정아 : 시선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하고 싶다. 이들의 산책은 일회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둘러싸여 있다. 한두운의 행동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한번씩 시선을 주거나 관심을 가진다. 이 역시 비장애인의 산책 광경과는 다른 편이다.

    해나 : 그렇다. 정용준은 장애나 육체성에 대해 깊이있게 다루는 작가라 생각한다. 「떠떠떠, 떠」(『가나』, 문학과지성사, 2011)나 근작인 『내가 말하고 있잖아』(민음사, 2020)도 그렇고. 다른 형태와 질감으로 자신이 가진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것 같다.

선릉은 왕릉이 오른쪽, 왕비릉이 왼쪽 언덕에 각각 자리잡은 동원이강식(同原異岡式) 쌍릉이다. 현재 40기의 왕릉이 서울 시내와 근교에 위치해 있으며, 모두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동서양을 통틀어 한 왕조의 무덤이 전체적으로 보존, 관리되는 경우는 없기에 조선 왕릉의 가치는 높다. 유교 사상이 왕릉의 건축적 요소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우리는 돌길을 걸었다. 이것은 참도입니다. 죽은 왕이 이용하는 신도와 살아 있는 왕이 이용하는 어도로 나뉘죠. 나는 팸플릿을 펼쳐 안내문을 읽고 가이드를 하기 시작했다. 왼편은 혼령이 걸어가는 신성한 곳이라 올라가면 안 되고 우리는 오른편으로 걸어야 해요. 아니, 아니 거기가 아니라 여기라고요. 한두운은 신도 위를 걸었다. 내려와요 두운씨, 내려와, 내려오라고. 그는 걸음을 멈추고 삐딱하게 서 있다가 신도 위에 침을 뱉었다.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1)

    해나 : 선릉을 한 바퀴 도는 데에는 대략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나’와 한두운은 선릉의 한 지점도 빠짐없이 샅샅이 돌아다녔을 것 같더라.

    정아 : 산책이라기엔 9시간은 너무 길지 않나. 한 가지 이해가 안 갔던 건 한두운의 이모가 한여름에 헤드기어를 쓴 조카를 맡기면서 더위에 신경을 써달라는 부탁 정도를 안 한 것이었다. 한두운은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입장이라 9시간이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해나 : 한두운의 이모 역시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본래는 더 살뜰히 한두운을 챙기고 보살폈을 것이다. 그러다 지쳤겠지. 돌봄에는 어쩔 수 없이 희생이 수반된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모되는 것들은 늘어나고, 존엄이니 에고(Ego)니 하는 것들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 또다른 불완전한 인간을 돌보는 시스템이지 않나.

    정아 : 맞다.

    해나 : 마지막 장면에 ‘왜 내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냐’며 그녀가 소리치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그 장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지쳐 있구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아 : 초반에 ‘한두운 지침서’ 같은 쪽지가 나온다. 정작 한두운은 사회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거나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인데 한두운의 주변인은 한두운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대한다.

    해나 : 사실 그 가이드라인이 정말 한두운이 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비장애인의 범주에 맞춘 규칙이지.

    정아 : 돌봄이라는 개념도 그래서 생겨난 것 같다. 비장애인이 보기에 케어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지 않았다면 굳이 한두운을 돌볼 필요가 있었을까.

선릉 입구. 간만에 숲길을 걸었다.

우리가 선릉에 갔던 11월 초에는 단풍이 끝물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고갤 돌려도 노랗고 붉은 단풍이 보였고 가을을 머금은 나뭇잎 틈으로 빛이 쏟아졌다.

선릉은 유독 수난을 많이 겪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 26년에는 왜적이 선릉과 정릉을 파헤쳤으며, 인조 3년에는 정자각에 불이 나고, 그 이듬해에는 능침에도 화재가 일어났다. 조선왕조에서 꾸준히 복구와 관리에 임해 현재는 그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제례 공간과 능침 공간을 잇는 신로. 이곳을 지날 때는 왜인지 모르게 숙연해졌다.

    정아 : 선릉에서의 산책은 어땠나?

    해나 : 좋았다. 강남 복판에 이런 곳이 있구나, 신기하기도 했고.

    정아 : 묘지에는 사람이 드나드는 문도, 비를 막아줄 지붕도, 바람으로부터 지켜줄 벽도 없다. 그럼에도 묘지가 건축의 일부분인 건 망자를 기리고자 하는 마음이 묘지에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죽은 이의 육체가 함부로 버려지기보다 누구보다 좋은 곳에 묻어주고자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어느 건축보다도 기념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이번 산책 글을 읽고 묘지공원이나 추모공원 같은 곳에 관심을 가지고 한번 나들이 가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해나 : 예전에 선릉 근처 호텔에서 머문 적이 있다. 빌딩 사이로 봉분이 보였다. 왕의 무덤이지만, ‘무덤’ 하면 느껴지는 엄숙함과 두려움은 배재되어 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쌓아올려진 장소가 누군가에는 생활의 공간이 된다는 것이 기묘하고도 이채롭다.

    정아 : 선릉과 주변 빌딩들의 분위기가 매우 대조적이다. 선릉은 문화유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점점 더 경계가 뚜렷해질 것이고 사람들의 공원으로 남겠지.

어느 호텔에서 보았던 선릉 풍경.

    정아 : 원래 산책을 자주 하나?

    해나 : 날이 좋을 때만. 추위에도 더위에도 민감하기에.

    정아 : 나 역시 그렇다. 그래도 ‘서울 산: 책’을 엮으며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이곳저곳 잘 다닌 것 같다.

    해나 : 맞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절감하며 함께 산책했던 기억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이때쯤 코로나19가 끝나길 바랐는데 그 점은 못내 아쉽다.

    정아 : 맞다. 어딜 가든 그 여파가 느껴졌고 그 때문에 안타깝기도 했다.

    해나 : 나는 건축을 배우는 만학도의 기분으로 ‘서울 산: 책’을 엮었던 것 같다. 공간과 그 역사에 대해 새로이 알아간 것들이 많다.

    정아 : 나 역시 그렇다. 우리가 다룬 소설 외에도 자주 언급한 소설이 있지 않았나. 이기호의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2)이나 배수아의 「영국식 뒷마당」3) 등 그 소설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또 서울이 넓고 더 가볼 만한 곳이 많다는 걸 느꼈다.

    해나 : 서울을 단순히 ‘배경’이 아닌, 애증의 공간, 생과 사가 얽히는 공간으로 둔 소설이 많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정아 : 길고 길었던 산책도 어느덧 마지막이다.

    해나 : 그렇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같은 쪽을 향해 걸어왔다.

    정아 : 이제는 또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가겠지. 그 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나 : 그러기를 바란다.


   *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서울 산: 책’에 동행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함께 걷던 봄과 여름, 가을이 그러했듯 우리의 겨울도 건강하고 다정하기를.



경계 없는 작업실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소설가 성해나와 건축학도 원정아. 문학 안에는 사람이, 사람 안에는 건축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 안에 있는 건축을 본다.

2020/12/29
37호

1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6, 103쪽.
2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문학동네, 2018.
3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테오리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