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a sentence’의 시작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껏 나누고 난 날이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꼭 하는 것이 있다. ‘기록’과 ‘복기’라는 행위다. 친구와 나눈 대화를 다시 되새겨보며, 대화 속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친구의 문장, 평소 생각지 못했지만 대화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오롯이 잘 정돈된 문장 등을 부지런히 적고 기록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책의 좋은 구절, 영화 속 명대사 등 다른 사람의 창작물에 대해서는 기록을 하고 다시금 되새김질하는 행위를 하지만 정작 내가 뱉는 말들, 주변 사람에게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들이 쉽게 휘발되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고 문장으로 기록하고 수집해서 모으면, 평소 나누는 대화 속에서 얻어진 문장들이 좀더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깊이 알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가설을 검증해보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본인 스스로의 예술성이나 남과 다른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고 귀 기울여 듣고 마음 속 깊은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상 속 예술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당신이 평소 하는 말의 기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책이 될 수 있고, 당신의 말은 그 책의 중요한 한 문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문장은 있다.



    인터뷰의 첫 질문 :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you,a sentence’는 앞으로 총 일곱 명의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 이야기를 연재할 계획이다. 우리가 인터뷰할 사람들은 주변 지인들도 있고, 처음 만나는 지인의 지인들도 있다. 다만, 정해진 시간 내에 깊은 대화로 들어가, 인터뷰하는 사람만의 언어로 된 한 문장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고민이 들었다.
   그러던 중 프로젝트 멤버인 형근이 인터뷰할 사람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인터뷰의 소재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 형근은 2년 동안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운영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모임을 시작했지만,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의 새로운 쓰임새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정보를 습득하거나 위안을 얻는 목적 이외에도, 평소의 대화에서는 잘 이야기되지 않던 서로의 가치관이나 생각들을 꺼내주면서, 서로 간의 대화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여는 첫 질문으로 “요즘 무슨 책을 읽으세요?”라는 질문을 던지기로 정했다. 이 질문이 평소 잘 알고 지낸다고 생각했던 주변 지인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좀더 자연스럽게 깊은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매개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당신은 요즘 무슨 책을 읽나요?”



    인터뷰 기록의 방법 : 필름 카메라, 카세트테이프


   우리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편한 언어는 영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영상 이외의 것들을 도구로 자유롭게 우리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영상에는 필수 요소인 ‘편집’이라는 단계에 의구심을 가졌기에 다른 도구를 더 고민해보게 되었다.
   누군가와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편집할 때, 우리는 나도 모르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들, 내가 들어서 좋았던 이야기들을 잘라내고 붙여서 결과물로 만들어낸다. 날것에서 느껴질 수 있는 풍부한 진실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미디어들은 편리함을 기본으로 한다. 다들 너무 바쁘기에, 누군가는 복잡한 것들을 그리고 내가 생각할 시간을 줄여주는 콘텐츠에 대한 욕구가 많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전문가를 통해 깔끔하게 정리되고 나면, 별 노력 없이 아주 짧은 시간만 투자하고도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을 위해 삭제되는 작은 대사, 이야기들 속에 오히려 진실이나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인터뷰 프로젝트 기록의 도구로, 편집되지 않으며, 또 편집하고 싶어도 편집이 어려운(어려움을 넘어 할 수 없는 것을 찾고자 했지만, 예전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다른 도구를 찾는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혹시나 나중에 편집이나 수정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조금이라도 할 수 없다면 아마도 크게 좌절해 이 인터뷰 프로젝트를 더 해나가는 데 회의를 느낄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들어서 고민을 멈췄다.) 필름 카메라와 카세트를 선택했다.
   편리함이 당연한 세상에서 날것이 주는 불편함을 꽤 오랫동안 잊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남들과 대화하기 더 어려워진다. 그들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에너지,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날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날것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마주할 수 있다.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좀더 노력해서 상대에게 다가가 그들의 언어, 문장,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생기길 바란다. 불편함을 뛰어넘은 경험들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날것에서만 느끼고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기록할 도구들



    인터뷰의 결과물 : 전시 및 독립출판


   프로젝트 결과물들은 1차적으로 《비유》에 일곱 편의 글로 연재하고, 이후에 스물세 편을 추가하여 전시와 독립출판을 할 예정이다. 서른 권의 책, 서른 장의 필름사진, 서른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활용한 전시와 독립출판을 구상하고 있다.



    ‘you,a sentence’를 시작하는 세 사람


you,a sentence 팀원 황정한, 김다영, 윤형근.(왼쪽부터)

   황정한은 세상 삶의 평균에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발버둥치는 인간이다. 허나, 타고난 게으름으로 평균에서 멀어지고 있는 인간이기도 하다. 어떠한 것이든 정물화처럼 오래 보는 것을 좋아하고, 나름을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업으로 삼기 위해 스스로 설득 중인 인간이다.
   김다영은 말이 많은 편이다. 평소에 오지랖 넓고, 말은 더 많다. 이 프로젝트를 할 때는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말을 많이 안 하는데 끝나고 나면 여기서 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 말이 좔좔 흐른다. 《비유》를 통해 말할 창구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너무 설렌다. 아, 맞다.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서울에서 독립영화 공공 상영회를 진행하고 공연을 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도 찍는다.
   윤형근은 이것저것을 생각하며, 생각난 것들을 여기저기에 늘어놓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해 늘어놓은 생각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는 사람이다. 좀더 안전하게 계속해서 생각을 늘어놓기 위해, 친구들과 나눈 대화나 이야기들을 메모하고 다시 읽는 것을 자주 한다. 이런 행위들을 반복하며, 여러 생각들을 기준에 맞춰 정리하며 각각의 생각들에 무게추를 달아둔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또다른 생각들을 할 여유 공간을 얻었다는 생각에 행복해하며, 또다시 다른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B&M friend

윤형근, 김다영, 황정한. 전혀 다른 세 삶을 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잠시 비슷한 삶을 살았다. 각자 먹고 사는 문제로 다시 세 갈래의 삶을 살고 있으나, 이 프로젝트를 빌미로 또다른 삶의 접점 하나가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2018/10/30
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