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더미 탐미’는 무수한 단어 더미 속 빛나는 단어를 찾는 프로젝트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여는 첫번째 낱말로 ‘이름’을 골랐다. 한 사람의 이름이야말로 수많은 단어 속에서 발견된 가장 반짝이는 단어니까. 우리는 그 많은 단어 더미 속에서 어떻게 지금의 이름을 만났을까.

은영의 명함

    어릴 때는 너무 흔하고 평범한 내 이름을 싫어했다. 흔한 나의 이름처럼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기억에 남을 만한 특이한 이름으로 특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태어나 살면서 불릴 나의 이름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게 이상했다. 그런데 정작 이름을 바꿀 수 있는 어른이 되고,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 예명을 쓰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내 이름을 바꿀 수 없었다. 익숙해진 이름과 내가 어느새 많이 닮아 있었다.

    백은영. ‘희다, 깨끗하다, 분명하다, 명백하다, 진솔하다, 밝다, 밝아지다, 빛나다’라는 뜻을 가진 백(白), ‘은, 은빛, 돈, 화폐, 지경(땅의 가장자리, 경계), 예리한 날붙이, 날카롭다’라는 뜻을 가진 은(銀), ‘영화, 영예, 영광, 명예, 피, 혈액, 꽃’이라는 뜻을 가진 영(榮).

    엄마는 ‘은은하게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내 이름 속 숨겨진 한자 뜻 중에서 좋아하는 낱말들을 다시 조합해본다.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밝게 피어나는 하얀 꽃’. 평범한 이름 속에 숨겨진 특별한 의미.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샛별의 명함

   샛별.
   1. ‘금성’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2. 장래에 큰 발전을 이룩할 만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첫딸의 이름을 짓기 위해 아버지는 밤새도록 국어사전을 찾았다. 샛별은 ‘하늘의 등대’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샛별을 이정표 삼아 길을 찾았다고 한다. 샛별은 초저녁 먼저 떠서 새벽 늦게까지 떠 있는 별이다. ‘사람들의 길을 밝혀주는 사람’이 되라고 첫딸의 이름을 샛별이라고 붙였다. 이름대로 살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름이 특이해서 착하게 살고 있다.




휘리의 명함

   휘리, Wheelee. 엄마는 나를 가진 어느 날, 연못에서 아름다운 잉어를 낚는 꿈을 꾸었다. 태몽은 ‘아름다울 휘(徽)’ ‘잉어 리(鯉)’라는 두 글자로, 독특한 뜻과 음을 품은 내 이름이 되었다. 휘리. 나는 눈에 띄는 이름과 소극적인 성격 사이에서 때때로 어려워했다.

   이제는 휘리라는 이름을 더 닮고 싶어졌다. 휘리처럼 자신의 세계에서만큼은 자유로이 유영하고 싶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반갑게 불러주었으면 한다.



단어 더미 탐미

은영. 일러스트레이터. 마음에 깊이 남아 잊혀지지 않는 것을 담아 기록하고 그립니다.
샛별. 그림책 작가. 건강히 오랜 호흡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휘리. 일러스트레이터. 살아 있는 것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2018/11/27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