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랩
7화 불쌍한 레스트레이드 경감
명탐정 이야기 속의 경관들
그런데 이러한 명탐정들에게는 그들이 아주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점 말고도 모두 비슷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곁에는 항상 ‘멍청한 경관(혹은 경찰)’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셜록 홈즈를 먼저 예로 들어보자. 셜록 홈즈 시리즈에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등장한다. 셜록 홈즈 1권 『주홍색 연구』에서, 홈즈는 처음으로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만나게 된다. 홈즈와 왓슨은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함께 현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 먼저 와 있었던 런던 경시청의 그렉슨 경감과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만나게 된다.
존 왓슨이 의사이자, 홈즈의 오른팔 역할을 할 때,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런던이라는 커다란 도시의 경감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무능한 경찰’로 그려진다. 셜록 홈즈는 물론이고 존 왓슨 또한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멸시하며, 그를 ‘회색 눈의 쥐새끼 같은 남자’라고 묘사한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경찰을 불러야 하는 장면에서 항상 등장하지만, 늘 홈즈의 수사를 방해하다가 범인이 짜놓은 트릭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범인이라고 지칭한 사람은 100퍼센트 범인이 아니라고 보면 된다. 그는 탐정물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경찰 캐릭터로, 어리석고 아둔한 모습을 보여주며 탐정 주인공의 능력을 대비하여 극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감당한다.
그래도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나은 편이다. 만화 『명탐정 코난』에서 전직 경찰이자, 탐정으로 등장하는 ‘모리 코고로’는 아예 현장에서 ‘목소리를 빼앗기고’ 잠들어버린다. 코난이 쏘는 마취 바늘을 맞고 잠드는 이 무능한 사람은, 그저 코난의 활약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코난은 그의 입을 빌려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잠에서 깨어난 그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 기뻐하면서 머리를 긁적인다. 상황에 대한 아무런 의구심도 품지 않는다. 정확한 실마리와 현실적이면서도 치밀한 트릭을 풀어나가는 탐정물에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당연하다. 그것은 탐정물에서 그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역할’이 되어버렸으니까.
사실 탐정물에서 이러한 경찰들의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탐정 주인공의 추리를 더욱 빛내주기 위해서. 또 하나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들은 사건을 탐정에게 전달해주는 ‘비둘기 통신원’ 역할을 감당하고, 탐정들의 추리에 혼선을 더하며 사건 해결의 속도를 늦추다가 무대 뒤로 홀연히 사라진다. 물론 셜록 홈즈 시리즈를 지은 아서 코난 도일은, 이것이 마음에 조금 걸렸는지 후에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체포의 달인’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로 남을 수는 없었다.
혹자는 이러한 경감의 모습이 단순히 명탐정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뿐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력한 관료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또한 하나의 클리셰로, 편견으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추리물과 재난물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관료들은 대부분 무능하고, 하나같이 속물적이며, 무기력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비판을 위한 모습이라고 하기엔 그 빈도수가 너무나 잦다. 재난물이나 추리물에서 그렇지 않은 관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정도이니 말이다.(벌레들이 등장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만화인 웹툰 <하이브>에서, 시민들을 지키겠다는 정의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군인의 모습을 담았을 때, 실제 직업군인이 감사하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창작물 속에 나오는 관료, 군인들의 모습은 항상 부정적이었는데, 그들도 신념이 있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인물로 다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추리소설 속 무능한 경관의 모습은 작가가 어떠한 의도를 가졌든 입체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짚고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명탐정의 규칙』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짜여진 한 편의 연극놀이를 하면서 서로의 ‘역할’만을 감당하는 두 사람의 탐정과 경찰관의 이야기를 썼다. 마치 추리소설에 대한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읽는 느낌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오가와라 경감과 탐정 덴카이치는 자신들이 소설 속 인물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며, 스스로가 독자들이 바라는 점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그들만의 능력과 생각은 이곳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방 경찰 본부 수사1과 경감 오가와라 반조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는 보는 사람의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범인을 알고 있어도, 탐정 시리즈의 완벽한 조연으로 남기 위하여 절대 범인을 잡아서는 안 된다. 해결의 핵심이 되는 열쇠를 밝혀서도 안 된다. 그는 오히려 사건 전말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꾸만 수사 방향을 몰고 간다. 이유는 없다. 단지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탐정 덴카이치는 그저 좋기만 할까? 소설에서 덴카이치는 ‘탐정물’에 대해 엄청난 회의감과 더불어 이 모든 것에 대한 지겨움을 느낀다. 그는 사건의 전말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도, 오가와라 반조가 헛다리를 짚는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기다린다.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알고 있어도 입을 다문다. 사람들이 실컷 ‘삽질’을 할 때까지 기다린 후, 입을 열어야만 한다. 왜? 명탐정의 규칙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는 멍청함 뒤에 등장해야 자신이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자들이 더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언제나 기다린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누군가가 만들어 낸 ‘클리셰’일 뿐, 명탐정 소설 속에서 경찰들의 모습이 꼭 이래야만 한다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탐정을 빛내기 위해 곁에 있는 모두가 ‘멍청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는 명탐정 푸아로와 함께 제프 경감이 등장한다. 그는 꽤 현실적인 캐릭터로, 처음에는 푸아로의 능력을 의심하지만, 곧 그와 함께 진지하게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물론 이 소설에서도 제프 경감은 조연으로만 등장하지만, 독자들은 푸아로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현장 안에 당연히 ‘제프 경감’의 몫도 있었던 것을 책을 덮고 나서도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도구적인 캐릭터로 그려짐을 떠나, 제프 경감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함으로 서사의 스릴성과 재미를 북돋아주고 있는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 등장하는 ‘제프 경감’은 명탐정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멍청하지 않아도 추리소설이 충분히 재미를 가질 수 있으며, 오히려 이러한 지점들이 관객들에게 더욱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명탐정 속 경감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명탐정의 규칙』으로 돌아와보자.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그런데도 밀실은 반성도 없이 나오고 또 나온다. 도대체 왜 그럴까.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 정말로 밀실 살인 사건이 재미있습니까?” 비록 독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아마도 다들 “재미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등장인물인 우리들조차 질리는데, 돈 내고 소설책을 사보는 사람들이 만족할리 없다. 이런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란 말인가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다.1)
“정말로 재미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사실 굉장히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편견과 클리셰로 점철된 명탐정의 이야기들에 한 번도 ‘불편한 지점’을 느낀 적은 없는지, 오롯이 누군가를 빛내주기 위해 장치로서 마련된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궁금증을 느껴본 적은 없는지, 한 편의 소설 안에는 그야말로 캐릭터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데, 그 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는 없는 건지 우리에게 물어오는 듯하다. 이제는 너무나 고착되어버린 플롯과 인물들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질문해보고 있는 듯하다. “정말로 재미있습니까?”
우리의 곁에는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같이 ‘당연히 그래야지.’라는 것으로만 치부되어 묘사되는 조연은 수도 없이 많다. 그들의 능력과 성격은 단번에 무시된다. 오로지 누군가를 빛내기 위해 존재하는, 그림자 같은 사람들. 세간의 주목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명탐정 이야기에 가려진 수많은 경감들의 모습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지워가고 있지는 않을까. 이제는 당연한 것, 어떠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경감들의 모습들을 보고 싶다. 배가 나오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아예 잠들어 있는 사람들보다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헛다리를 짚었다가도 사건의 실마리와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비하인드랩연구소
김수현, 김원지, 장은진. 창작과 관련된 일을 하는 세 사람이 모여 이야기 속 ‘조연’을 마주한다. 조연을 표현하는 문장과 단어를 아카이빙하고, 조연에게 전사와 후사를 덧입히는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문학이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을 깊이 성찰해나갈 예정이다.
2018/12/25
13호
- 1
- 히가시노 게이고, 『명탐정의 규칙』, 이혁재 옮김, 재인, 2010, 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