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연애


   “왜 연애 안 해?”
   질문에 대한 나1)의 대답은 언제나 명료했다. 연애에 별 관심이 없어. 내 대답은 이게 끝인데 사람들은 항상 뭔가를 더 말해주기를 원했다. 사람들은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져서 연애하지 못할 법한 결점을 찾거나, 나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훑으며 연애를 하지 않게 된 이유를 찾고자 했다. 그런 그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연애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연애의 멋짐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어떤 소명의식이 느껴지기도 했다.

   연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해주고자 하는 욕망은 많은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과거 연인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하는 이유로 처음에는 연애를 거부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거치고 깨달음을 얻으면서 결국에는 모두 연애에 뛰어들게 된다. 연애는 곧 완성이고, 연애하지 않음은 미완의 상태인 것이다.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친구들이 내게 해주던 충고를 떠올리게 된다. ‘네가 겁을 내서 연애를 못 하는 거야.’ 나는 정말 연애에 관심이 없는 걸까. 그게 아니라 용기가 없는 게 아닐까. 한참 동안 스스로를 의심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왜 꼭 용기를 내야 하지? 연애하지 않음이 미완성이라는 건 누구 생각이야?

   어디를 가나 연애 이야기가 발에 치이는 세상에서 이런 고민을 나누기란 쉽지 않았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마음속에서만 되뇔 뿐이었던 고민을 다른 사람과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 인터뷰 주제를 들은 동료 한 명이 딱 맞는 인물이 있다며 배우 C를 소개해 줬다. 배우 C는 최근 몇 년간 의식적으로 연애를 지양하고 있었다.

   창작집단 담과 배우C는 <제멋대로 떨고 있어>(2017)라는 영화를 감상하고 만나기로 했고, 사당역 부근 회의룸에 모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화의 결말에 분노했다. <제멋대로 떨고 있어>의 주인공 ‘요시카’는 연애 경험이 없는 인물로, 평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짝사랑해왔던 ‘이치’와 자신을 좋아해주는 회사 동료 ‘니’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니’를 선택하게 된다.

   담 A : 화가 났어요. 요시카의 선택이 본인을 위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 C : 저도 결말이 개인적으로 별로였어요. 도피처로 다른 사랑을 찾아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담 A : 도피처도 영 별로이지 않아요?

    담 B : ‘이치’와 ‘니’가 다른 종류로 별로예요. 그런데 어린 시절의 저였더라면 두 선택지 중에서 답을 고르려 했을 것 같아요.

    배우 C : 동의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고민했을 것 같아요. “누구를 고르지?” 이러면서. 그런데 이제는 답답한 거죠.


   자리에 있던 네 명 모두 입을 모아 이제는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우리의 선택지는 그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쉽게 깨져버리는 얇은 유리 같은 것이었다.

   배우 C : 친구들이 저의 선택을 존중해주긴 해요. 하지만 100퍼센트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왜냐면 만날 때마다 끊임없이 애인이 있냐고 물어보거든요. 나는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누구 없냐는 식의 대화가 오고 가죠.

    담 C : 연애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사람들이 모이면 그런 이야기밖에 안 하니까. 그래도 본인들의 연애사를 저에게 전시하는 것까진 괜찮아요. 충분히 맞장구치면서 들을 수 있어요. 그런데 연애를 강요하거나 루저 취급을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면 화가 나요.

    배우 C : 맞아요. 나를 루저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지금 이 상태로도 행복하고 충분한데.



   사랑의 모양이 하나뿐인 세상에서


   <제멋대로 떨고 있어>의 주인공 ‘요시카’는 연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니’가 알게 되자,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상사에게 휴가를 요구한다. ‘요시카’의 선택이 조금 극단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회사 사람들이 요시카를 둘러싸고 ‘모태 솔로래!’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요시카’의 상상 장면을 보자, 그녀의 선택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됐다.

   친구들에게 용기 내어 나의 정체성이 ‘에이로맨틱’인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런 거 아닐 거야’였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네가 괜찮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연애에 관심이 없는 거다’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연애를 시작하는 데에 겁을 내는 거다’와 같은 주변의 말들과 뒤섞이며, ‘내가 정말 순수한 에이로맨틱이 맞는가?’라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졌다.

   배우 C : 상대의 어떤 면모를 보고 반해서 연애를 시작한 적도 있지만, 누군가가 나를 좋다고 해서 엉겁결에 연애를 시작한 적도 있어요. 애써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찾곤 했어요. 어떻게든 뇌 회로를 돌리는 거예요. ‘우린 잘 어울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배우 C의 경험을 들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나 스스로가 나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는 것처럼,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 순수한 연애 감정이 맞는지 의심해본 적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조금 억울해졌다.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선 책 한 권의 분량을 써서 보여줘도 믿질 않으면서, 어떻게 누가 누구를 만나는 이유에 대해선 ‘좋아서’라는 단 한 줄만으로 납득하고 넘어가는 걸까? 그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인터뷰를 진행하며, ‘연애 감정이란 무엇인가, 우정 혹은 동경과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누군가가 ‘스킨십의 유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는 자들의 연애는 연애가 될 수 없는 걸까? 그뿐만이 아니다. 남녀 사이엔 친구가 없다는 말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는 너무 이성애 중심적인 생각이 아닐까?

   ‘이성애 연애’라는 틀에 우리가 맺는 관계를 욱여넣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관계가 잘려나가고, 또 억지로 그 모습을 바꾸게 되었을까. 누군가에게 떨리거나 끌리는 감정을 연애라는 그릇에만 올려놓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얄팍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세상이 ‘요시카’로 하여금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연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게 만드는 게 아닐까.


   자만추? 인만추? 난 노만추


   인터뷰를 마치며 나는, 마지막까지 연애를 선택하지 않는 인물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가 그의 선택을 꾸준히 의심할지라도, 연애 경험을 이유로 ‘연애하지 않음(연애에 관심 없음)’에 대한 진정성에 딴지를 걸지라도 꿋꿋하게 연애를 선택하지 않는 인물을 만들 것이다. ‘자만추’2)냐 ‘인만추’3)냐는 물음에 ‘노(NO)만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 것이다.

   이 인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당신의 근처 어딘가에 이런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말하고 싶다. 연애지상주의 세상 속에서 영원히 미완성으로밖에 남을 수 없었던 감정과 관계를,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만든 인물이 연애가 만연한 이 사회에 약간의 균열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창작집단 담

구하나, 박주영, 서동민. 세 명의 극작가가 담에 모였습니다. 담담하게 다음을 도모합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담.

2020/11/24
36호

1
극작가. 창작집단 담의 멤버 중 한 명.
2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
3
‘인위적인 만남 추구’의 줄임말. 소개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