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프로젝트
3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
드라마를 즐겨 보는 복순씨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자 배우들을 좋아합니다. 대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훤칠한 남자들입니다. 배우 이민호를 여전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로 이승기를 〈찬란한 유산〉의 손자로 기억했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면 반갑게 가리키곤 했습니다.
키스신이 나오면 “저게 남부끄럽게 무슨 짓이다냐!” 하면서 볼을 붉히던, 그렇지만 시선을 떼지 못하던 복순씨의 모습을 보면서 복순씨의 연애와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복순씨는 어른들의 중신으로 스물두 살에 시집을 갔습니다. 그 당시 다른 사람들처럼 혼인 전에 서너 번 얼굴을 보고 어른들이 정한 날짜에 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전, 데이트라곤 시장 우동집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은 기억이 전부지만, 그래도 복순씨는 신랑감의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키가 작고 말랐지만 인물은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고 훤칠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봉숭아꽃처럼 보얗게 살이 오른 복순씨를 예뻐하고, 마음에 들어한다는 말을 듣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일만 하며 고생했던 친정을 떠나 남편의 그늘 아래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복순씨의 기대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깨져버렸습니다.
1960년 초 어느 날 나는 살겠다고 젊은 마음에 시장에서 장사를 했는데 우리 애들 아빠는 집에서 친구들하고 놀면서 (지냈습니다). 내가 (신랑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다섯 되씩 항상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장사하러 갔더니 신랑이 친구들하고 그 술을 다 먹고 놀다 술이 취해서 있었습니다. (신랑 말로는) 돼지가 배가 고파서 꿀꿀댔다는군요. 그러니까 (신랑이) 몽둥이를 가지고 쫓아가서 (돼지를) 막 두들겨 때려죽였습니다. 그렇게 (잡은 돼지를) 친구들하고 집에 다 노나 갔습니다.
내가 집에 왔는데 (신랑은) 세상모르고 잤습니다. 나중에 일어나서 하는 소리가 돼지가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곧이듣고 (돼지를 찾으러) 산으로 헤매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웃사람이 날 보더니 그런 게 아니라 신랑이 때려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변해서 나가려고 했는데 차마 못 갔습니다.
한복순 박규화 신랑.
어느 날 22세에 시집을 갔는데, 어연간 몇 개월이 되어 친정을 갔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장에 가신다고 하셔서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집에 찾아왔습니다. (신랑에게) 집에 가라고 하고 나는 엄마하고 친정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느 사람이 뒤에서 덥석덥석 소리가 나서 보니, 간다는 신랑이 안 가고 돌아와서 (나를) 뒤따라오더군요. 그런데 술이 많이 취해가지고 막 쓰러지고 넘어지고 걷지를 못하더군요. 그래서 입었던 옷을 벗어서 엄마에게 드리고 내가 (신랑을) 업고서 십리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집에 거의) 다다라서 처남이 마중 오니까 (신랑이) 웃으며 내가 업혀올 사람이냐고 하고 내렸습니다. 그래서 엄마 보고 못 살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셔서 다시 생각하고 (다음 날) 아침에 시댁으로 갔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후, 한쪽 다리가 불편하게 된 규화씨는 술독에 빠져 지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복순씨는 속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내가 그때 돼지 잡으러 가지 말고, 집을 나갔어야 했는데 말이야.”
복순씨는 아쉬운 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힘든데 왜 참고 살았어?”
분명 기회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순씨는 아이가 늦게 들어서서 규화씨와 둘이 지낸 시간이 7년 정도 됐습니다.
“엄마가 그랬어. 불쌍한 사람 두고 나갔다가는 죄받을 거라고 했어. 어릴 때는 내가 아주 착했어. 어른들 말씀에 너희들처럼 싫다고 하는 법이 없었지. 아버지는 나를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려고 했는데. 다 엄마 때문이야. 내가 고생하고 산 데는 엄마 공이 제일 크지. 근데 싫은 거는 싫다고 해야 돼. 너희들은 나중에 시집가서 힘들면 참지 말고 같이 살지 마.”
“진짜?”
이별하려고 생각하였는데 막상 생각하니 차마 혼자 두고는 갈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다시 생각해가지고 마음을 잡았지(요). 그래서 계란바구니를 가지고 시장으로 가서, 계란을 사가지고 도매집에다 넘겼어요. 그리하다보니 내 마음이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 착실히 마음을 잡았지요. 그래서 논도 매고 밭도 매고 장사도 시작했어요. 그럭저럭 하다보니 터득이 되더군요. 그래서 잠도 안 자고 밤이나 낮이나 노력했지(요). 그러니까 돈이 많이 벌리더군요. 그래서 논도 사고 밭도 샀지요. 그런데 시댁 어른들이 너희는 (집에 큰일이 생기면 돈을 많이 내야 한다고, 아주버님이) 동생(신랑)보고 그렇게 말하더군요. 듣고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더군요.
세번째 일기에 유독 많이 사용된 단어는 ‘생각’입니다. 어떤 생각인지 궁금해서 복순씨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했어?”
“생각이 그냥 생각이지.”
복순씨는 더이상 묻지 못하게 그림공책을 열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키스신이 나오면 “저게 남부끄럽게 무슨 짓이다냐!” 하면서 볼을 붉히던, 그렇지만 시선을 떼지 못하던 복순씨의 모습을 보면서 복순씨의 연애와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복순씨는 어른들의 중신으로 스물두 살에 시집을 갔습니다. 그 당시 다른 사람들처럼 혼인 전에 서너 번 얼굴을 보고 어른들이 정한 날짜에 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전, 데이트라곤 시장 우동집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은 기억이 전부지만, 그래도 복순씨는 신랑감의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키가 작고 말랐지만 인물은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고 훤칠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봉숭아꽃처럼 보얗게 살이 오른 복순씨를 예뻐하고, 마음에 들어한다는 말을 듣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일만 하며 고생했던 친정을 떠나 남편의 그늘 아래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복순씨의 기대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깨져버렸습니다.
막걸리와 돼지
1960년 초 어느 날 나는 살겠다고 젊은 마음에 시장에서 장사를 했는데 우리 애들 아빠는 집에서 친구들하고 놀면서 (지냈습니다). 내가 (신랑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다섯 되씩 항상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장사하러 갔더니 신랑이 친구들하고 그 술을 다 먹고 놀다 술이 취해서 있었습니다. (신랑 말로는) 돼지가 배가 고파서 꿀꿀댔다는군요. 그러니까 (신랑이) 몽둥이를 가지고 쫓아가서 (돼지를) 막 두들겨 때려죽였습니다. 그렇게 (잡은 돼지를) 친구들하고 집에 다 노나 갔습니다.
내가 집에 왔는데 (신랑은) 세상모르고 잤습니다. 나중에 일어나서 하는 소리가 돼지가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곧이듣고 (돼지를 찾으러) 산으로 헤매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웃사람이 날 보더니 그런 게 아니라 신랑이 때려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변해서 나가려고 했는데 차마 못 갔습니다.
하담하고, 동행
한복순 박규화 신랑.
어느 날 22세에 시집을 갔는데, 어연간 몇 개월이 되어 친정을 갔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장에 가신다고 하셔서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집에 찾아왔습니다. (신랑에게) 집에 가라고 하고 나는 엄마하고 친정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느 사람이 뒤에서 덥석덥석 소리가 나서 보니, 간다는 신랑이 안 가고 돌아와서 (나를) 뒤따라오더군요. 그런데 술이 많이 취해가지고 막 쓰러지고 넘어지고 걷지를 못하더군요. 그래서 입었던 옷을 벗어서 엄마에게 드리고 내가 (신랑을) 업고서 십리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집에 거의) 다다라서 처남이 마중 오니까 (신랑이) 웃으며 내가 업혀올 사람이냐고 하고 내렸습니다. 그래서 엄마 보고 못 살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셔서 다시 생각하고 (다음 날) 아침에 시댁으로 갔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후, 한쪽 다리가 불편하게 된 규화씨는 술독에 빠져 지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복순씨는 속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내가 그때 돼지 잡으러 가지 말고, 집을 나갔어야 했는데 말이야.”
복순씨는 아쉬운 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힘든데 왜 참고 살았어?”
분명 기회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순씨는 아이가 늦게 들어서서 규화씨와 둘이 지낸 시간이 7년 정도 됐습니다.
“엄마가 그랬어. 불쌍한 사람 두고 나갔다가는 죄받을 거라고 했어. 어릴 때는 내가 아주 착했어. 어른들 말씀에 너희들처럼 싫다고 하는 법이 없었지. 아버지는 나를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려고 했는데. 다 엄마 때문이야. 내가 고생하고 산 데는 엄마 공이 제일 크지. 근데 싫은 거는 싫다고 해야 돼. 너희들은 나중에 시집가서 힘들면 참지 말고 같이 살지 마.”
“진짜?”
복순씨의 생각
이별하려고 생각하였는데 막상 생각하니 차마 혼자 두고는 갈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다시 생각해가지고 마음을 잡았지(요). 그래서 계란바구니를 가지고 시장으로 가서, 계란을 사가지고 도매집에다 넘겼어요. 그리하다보니 내 마음이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 착실히 마음을 잡았지요. 그래서 논도 매고 밭도 매고 장사도 시작했어요. 그럭저럭 하다보니 터득이 되더군요. 그래서 잠도 안 자고 밤이나 낮이나 노력했지(요). 그러니까 돈이 많이 벌리더군요. 그래서 논도 사고 밭도 샀지요. 그런데 시댁 어른들이 너희는 (집에 큰일이 생기면 돈을 많이 내야 한다고, 아주버님이) 동생(신랑)보고 그렇게 말하더군요. 듣고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더군요.
세번째 일기에 유독 많이 사용된 단어는 ‘생각’입니다. 어떤 생각인지 궁금해서 복순씨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했어?”
“생각이 그냥 생각이지.”
복순씨는 더이상 묻지 못하게 그림공책을 열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순도순 고슴도치
할머니와 손녀가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할머니 한복순씨는 농부, 상인, 엄마, 할머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손녀 박경서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복순씨의 기록을 기록하기 위해 구성된 팀입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마주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그림일기를 통해 삶을 기록합니다.
2018/12/25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