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겨를 줍다


   장소 : 개와 사람이 사는 집
   시간 :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오후

‘하크’ 소리의 주인공, 개의 눈.

   개는 크다. 개는 부드럽다. 개는 까분다. 개는 아름답고 개는 사람을 웃게 해준다.
   사람과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이리저리 집 안을 돌아다니며
   물을 마시고
   사료를 먹고
   벨소리가 들리면 현관으로 뛰어가는
   우리의 개. 개의 소리.

소리를 채집하는 손.

   소리의 겨를 살피다


채집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 ‘흐어흐어’ . 잘 짖지도, 물지도 않은 우리의 개는 숨소리만 가득 냈다. 흐어, 흐어흐어. 우리는 그 숨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바꾸어보았다.



구글 번역기와 네이버 어학 사전. 영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갈라시아어, 네팔어, 라트비아어, 마케도니아어와 스와힐리어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백여 개의 인간의 언어 중에서 ‘흐어흐어’와 가장 비슷한 소리와 뜻을 찾아보았다. 독일어가 가장 비슷했다. 구글의 번역기 알고리즘은 ‘흐어흐어’라는 한국어 소리를 독일어 ‘Hach’와 매치시켰고, 그 ‘Hach’의 뜻은 위와 같다.

   우리의 개는 ‘흐어흐어’ 숨을 쉬고
   발톱이 난 네 개의 발로 사람의 집 안을 오가며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신다.
   흙빛 털 속의 까만 눈으로
   사람을 본다.
   물을 좋아하고, 물속에서 첨벙거리는 것을 좋아하며
   탄산수를 싫어하고, 배변 패드에 싼 자기의 오줌 냄새를 싫어한다.
   ‘흐어흐어’ 숨을 쉰다.
   ‘하크하크’ 기침한다.


‘하크’ 소리의 주인공, 언제나 축축한 개의 코.


   겨로 만든 미니 픽션 : 「하크」


   닭 뼈가 목에 걸렸다.
   하크.
   닭 뼈가 칠복이의 목구멍에 걸렸다.
   하크, 하크.
   칠복아!
   아버지가 외쳤다.
   하크. 하크 하크 하크.
   칠복이가 기침했다. 아버지가 칠복이 등에 올라탔다. 칠복이의 목을 젖히고 칠복이의 입을 벌렸다.
   하크.
   칠복이는 괴로운 듯 땅에 엎드렸고 아버지는 칠복이의 목을 끌어안았다.
   누가 닭 뼈를 칠복이에게 준 것일까.
   아버지는 땀을 흘렸다. 손등에서는 피가 났다. 옆구리 사이에 칠복이의 머리통을 끼고 칠복이의 입 안에 손을 넣었다.
   야 이놈아 가만히 좀 있어.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가 칠복이를 더 못살게 굴었다. 아버지가 칠복이를 더 죽게 만드는 것 같았다. 칠복이는 몸을 뒤틀며 저항했고 아버지는 땀을 줄줄 흘리며 한쪽 팔꿈치로 칠복이의 머리통을 짓누르고 칠복이의 뒷발을 다리 사이에 끼고서 칠복이의 입 안에 손을 넣었다.
   어으, 이거 어디까지 들어간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어으, 이거, 어으.
   아버지와 칠복이는 마치 좋아서 그러는 것처럼, 눈밭에서 눈을 묻히고 노는 것처럼, 흙바닥을 뒹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내 나이 열 살. 밤이면 귀신을 무서워했고 피터 팬이 되는 꿈을 꿨으며 언젠가 나도 동화 속 피터 팬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영웅이 깨어나 귀신도, 피터 팬도, 아버지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라고 부추긴 것도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칠복이에게 다가갔다.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내가 할게요.
   나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칠복이의 머리를 한 번 쓸어내린 다음, 칠복이의 입 안에 손을 넣었다. 나는 침착했고 의연했으며 피터 팬 같았다. 아, 나는 더이상 피터 팬 꿈은 못 꾸겠구나, 칠복이의 목구멍으로 손을 넣으며 생각했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실패했고 내 작은 손도 칠복이의 목구멍에서 닭 뼈를 뽑아내지 못했다. 칠복이는 개가 아닌 개의 유령이 된 듯 우리에게 등을 돌려 집 밖으로 나갔다. 다음 날 새벽, 칠복이의 시체가 논두렁에서 발견되었다. 이웃집 아저씨가 빈 자루와 번개탄을 챙겨 아버지를 데리러왔다.
   거길 뭐하러 가. 그거 한 점 얻어먹으러 가?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는 대꾸 없이 아저씨를 따라갔다.
   어제 너 무슨 생각으로 칠복이 목구멍에 손 넣었냐.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어린애가 그런 짓을 하면 못 쓴다며 살면서 쓸데없는 용기나 객기는 부리는 게 아니라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칠복이의 목구멍에 손을 넣었을 때의 느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동화 속 피터 팬은 웬디의 집 개에게 그림자를 물어뜯겨 울고 있었다. 웬디는 피터 팬의 그림자를 실로 꿰매주었고 피터 팬과 함께 피터 팬이 사는 세상으로 갔다. 나는 더이상 피터 팬처럼 하늘을 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멜라겨해나

소설가 김멜라와 배우이면서 영상을 만드는 이해나.
둘 다 ‘겨’울에 태어났으며 냉면을 좋아합니다.

2018/12/25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