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a sentence
3화 “그러니까 써야한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지인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이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이 프로젝트를 빌미로 만나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 유인애(현재 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하고 있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행히도 친구는 기분 좋게 인터뷰를 수락했다.
창작을 하려고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윤형근(이하 ‘형’) : 요즘 무슨 책 읽어?
유인애(이하 ‘인’) : 김중혁 작가가 쓴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읽고 있어. 일주일 전에 한 번 읽었는데, 세세한 내용들이 기억이 안 나서 다시 한번 읽는 중이야.
형 : 어떻게 알게 된 책이야?
인 : 무언가 ‘내 것’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거지.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김중혁 작가의 책을 발견한 거야. 평소 글쓰기 관련한 책을 믿지 않기도 하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산 적이 없었어. 그런데 이 책은 제목 자체가 끌렸던 것 같아. 무엇이든 쓰게 된다.
형 : 내용도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해지네.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인 : 방법론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었어. 지속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책.
형 :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은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해도 때로 좌절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힘을 얻을 만한 내용이 있었다면?
인 : 작가도 소설가로 등단해서 오랫동안 글을 쓰고 있지만, 형편없는 글을 썼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대. 그럴 때 잘하려는 부담감이나 욕심을 버리고 뭔가를 시작하면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된대. ‘그러니까 우리는 어쨌든 창작을 계속해보자.’ ‘ 당신도 이 세계에 뛰어들어서 같이 해볼 수 있다.’라는 느낌을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주는 것 같아 좋았어. 글을 쓸 때 듣기 좋은 음악 플레이리스트라든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 공감 가는 내용이나 몰랐던 내용을 정리해가며 읽으면 새로운 게 더 쌓일 거라는 부분이라든지, 글쓰기의 주변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어. 창작을 하려고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연대와 응원을 보내는 에세이라고 느껴져서 더 도움이 됐던 것 같아.
‘그래. 오랜만에 김중혁 작가 읽어보자.’
형 : 김중혁 작가 좋아해?
인 : 응, 좋아해. 원래는 김연수 작가를 좋아했어. 내가 글 외에도 작가에 대한 트리비아1)도 좋아하거든? 김연수, 김중혁 작가 둘 다 김천 출신이면서 중학교 동창이더라고. 지금도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하고. 동향에서 나고 자란 친구끼리 같은 분야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활동한다는 것도 흥미롭고 부러웠어. 그래서 그 둘의 작품들 모두 깊이 읽었어.
그런데 작품을 통해 본 김중혁 작가의 취향이나 사고방식, 영향을 받는 기제들이 나와 너무 비슷하게 느껴졌어. 그때의 나는 방송 PD를 꿈꾸는 대학생이었고, 취향을 나열하는 걸 넘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하는 때라서, 김중혁 작가의 작품은 일부러 멀리하기도 했어.
6년 만에 만난 친구의 사진을 찍는 기분은 꽤나 오묘했다. 사진을 찍어준다는 행위가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위 같다는 생각하게 됐다.
형 :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김중혁 작가의 작품을 다시 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인 : 〈B tv 영화당〉2)이라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김중혁 작가를 봤어. 남편이 문득 지나가면서 김중혁 작가는 영화를 소개할 때 단정짓거나 결론짓지 않는다고, 정석적인 해석보다는 ‘나는 어떠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러이러한 것 같다.’라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서 자기와 잘 맞는다고 말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보니까 김중혁 작가가 얘기하는 것들이 재밌는 거야, 전보다 더. 그래서 다시 한번 김중혁 작가의 작품을 찾게 됐어. ‘그래, 오랜만에 김중혁 작가 읽어보자.’라는 마음이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든 거야.
고3 때 어디 못 가잖아
형 : 바쁜 회사생활 속에서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나 이유가 있을까?
인 : 회사에서 광고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데, 고객사의 요구에 따라 혹은 회사의 방향에 맞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야. 그런데 일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더라고. 그리고 작년에 회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 합병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돈을 벌고 하는 게 한시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그러니까 내 성과는 백퍼센트 내 능력이 아니라 회사의 시스템, 조직적인 힘에 기대서 일을 했던 거지. 길고 긴 100세 시대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어떻게 경제활동을 하지? 어떤 경쟁력이 있을까?’ 생각했을 때, 답이 없더라고.
형 : 돈을 버는 관점에서 그런 생각이 든 거야?
인 : 응.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었을 때, 내가 혼자 오롯이 할 수 있는 게 뭔가 하는 고민도 있어.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서 결혼하고 애 낳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린 것들도 있고.
형 : 친구로서 내 기억 속 유인애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봤어.(웃음) 넌 영화를 참 좋아했던 것 같아.
인 : 맞아. ‘좋아하는 게 뭐예요?’라고 누가 물으면 책, 영화, 공연을 좋아한다고 말했어. 영화는 1년에 50여 편을 볼 정도였어. 대학생 때 아주 작은 규모의 ‘다양성 영화’(그땐 다양성 영화라는 말도 없었지만)를 좋아했는데, 개봉도 별로 없고 나만 보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고민이었어. 그땐 스스로가 소수에 속한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다양성 영화’가 또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시장성도 생겼지. 그 속에서 꾸준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일가를 이루고 자기 분야를 개발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전에 그렇게 애정을 쏟았던 것에 대해 지금 나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단 생각도 들어.
이게 웃긴 게 뭐냐면 작은 규모의 영화든 인디 음악이든 어떤 취향을 향유하려면 일단 시간이 많아야 돼. 자기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자유. 난 자유시간이 하나도 없어. 아침에 일어나면 애들 밥 먹이고 회사 가기 바빠. 다시 집에 오면 애들 씻기고 재우고 그렇게 그날 하루가 끝나. 혼신의 힘을 다해 새벽 1시에 깨서 한두 시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다 자곤 해. 내가 생각했을 때, 나라는 사람은 어떤 분야가 됐든 ‘덕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인데, 그나마 출퇴근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아이돌 콘텐츠를 보는 것으로 ‘덕질’ 욕구를 충족하기도 해. 내가 꼭 어느 장소를 가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만들어주고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니까. 그리고 파고들다가 정보가 없으면 갈증이 들고 덕질에도 흥미가 떨어지거든. 근데 아이돌 콘텐츠는 파고 파도 새로운 콘텐츠가 계속해서 나오기도 하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다보니 아이돌 콘텐츠가 내 취향의 대안이 된 셈이지. 그런 걸 보면 지금이 고3 때랑 비슷한 거 같아. 고3 때 어디 못가잖아.
형 : 육아와 글쓰기를 병행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
인 : 지금 아이들이 대여섯 살이 됐기 때문에 글을 써보자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그전에는 이물감만 가득하고 완전히 나라는 인간을 잊어버린 시간이었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으면 내가 없고 나의 역할만 남는 거 같아.
형 : ‘엄마’랑 ‘아내’라는?
인 : 응.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어도 애들을 돌봐야 하잖아. 내 감정이나 의사와 관계없이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그 일에는 일시정지 버튼이 없어.
형 : 혼자라면 힘들 때 쉬어가면 되는데, 아이들이 있으면 정말……
인 : 무엇보다 역할만 남는다는 게 너무 슬펐어. 그래서 그나마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내 자신을 잃지 않는, 균형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글쓰기라고 생각을 했고. 나중에 아이들이 다 자라면 내가 쓴 글을 같이 보고 얘기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웃음)
긍정적으로 바꿔보자, 억지로
형 : 좋아하는 일하면 돈을 많이 못 번다는 얘기들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인 : 구조가 잘못된 거 같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벌어먹고 살 수 있어야 하고 내가 꿈꾸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하잖아. 근데 내가 어떤 꿈을 꿈으로 인해서 결혼도 아이도 포기하고 경제적으로 혼자 살 수 있을 정도만 벌어서 살기로 마음을 먹어야 한다면 그건 사회의 구조가 잘못된 거지.
요즘에 SNS에 올라오는 글들 보면, 퇴사하고 외국으로 유학이나 이민 가는 사람들도 많잖아. 그런데 거기 가서도 같은 문제에 봉착하고 비슷한 질문을 안는 사람들을 보면 ‘답이 뭘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얘기하다보니까 점점 비관적이야. 긍정적으로 바꿔보자, 억지로. 그래도 어쨌든 살아가야 되니까. 어떻게 하면 거친 환경 속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형 : 우리 중에 살아남는 사람이 나머지 다 끄집어내줘야 돼. (뚝. 인터뷰와 함께 녹음테이프도 끝이 났다.)
B&M friend
윤형근, 김다영, 황정한. 전혀 다른 세 삶을 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잠시 비슷한 삶을 살았다. 각자 먹고 사는 문제로 다시 세 갈래의 삶을 살고 있으나, 이 프로젝트를 빌미로 또다른 삶의 접점 하나가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2018/12/25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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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찮은 것들’ ‘여담’을 의미하는 단어. 원래 라틴어로 ‘삼거리(tri(3) + via(길))’를 의미하는 말로 로마 제국의 도시에서 삼거리가 많았다는 데서 “어디에나 있는 장소” “흔한 장소”를 가리키게 되었고, 여기에서 시시한 것, 사소한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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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브로드밴드에서 제공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 재미없어 보이지만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