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은 형근과 대학교 친구다. 현재 수진은 건축 회사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인터뷰 장소를 선택할 때, 인터뷰이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에서 하길 바랐다. 수진이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공간을 물었고, 수진은 오랜만에 학교 캠퍼스에서 하면 좋겠다고 했다. 주말 오전 캠퍼스에는 여유롭게 산책하는 가족들과 예쁜 풍경을 사진에 담으러 온 커플들로 붐볐다. 캠퍼스가 주는 생경함과 수진이 느낄 편안함을 생각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번 인터뷰는 형근과 다영이 묻고 수진이 답을 했다.

*

   윤형근(이하 ‘윤’) : 요즘 어떤 책 읽으시는지?

   김수진(이하 ‘김’) : 저는 주로 일과 관련된 건축 책을 읽는데,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은 『파사드 서울』(권태훈 글·황효철 사진, 아키트윈스, 2017)이에요.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저자가 서울이 갖고 있는 건물들의 입면1)을 소개한 책이에요. 서울의 건물들 사이에서 발견한 규칙성과 불규칙성을 사진과 도면을 통해 보여줘요. 건물 사진을 확대하기도 하고 도면화한 것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어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저 건물들에도 ‘차이’가 있어요


   윤 : 책 내용 중에 좋았던 부분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김 : 저자가 프롤로그에 썼던 부분인데요. 그대로 인용해보면, “나의 처가 형제는 8남매이다. 부모님 세대에서야 종종 볼 수 있지만, 둘 많아야 셋이 평균인 우리 세대에 이런 대가족이 있는 것은 내게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처음엔 형제, 자매들의 얼굴과 이름, 나이 순서를 기억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여덟이라는 숫자에서 오는 부담감은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각자의 이름에는 돌림자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외울 수 있었고, 나이는 일정한 터울로 이어져 금세 머릿속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말 흥미롭게 다가온 점은 생김새였다. 처음에는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 자매의 얼굴이 너무나 다르게 보여서 신기했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 사이의 닮은 모습이 순간적으로 포착될 때, ‘아 이래서 한 가족이구나’를 느끼게 됐다.” 2) 이런 식으로 가족들의 외모를 분석하는 과정을 써놨다가, 그 다음에 이렇게 말해요.
   “우리 도시에도 이런 대가족들을 이룬 건물들이 있다. 주로 60년대를 전후하여 지어진 이 건물들은 3~4개 층의 작은 상가 건물이 촘촘하게 맞붙어 거대한 블록을 형성하며, 개별 건축물보다는 거대한 집합체로 인식되게 됐다. 주로 세종로, 종로, 을지로, 남대문로, 태평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것은 50년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주요 가변로부터 우선적으로 복구됐음을 보여준다. 이런 형태의 건물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열되기보다는 건폐율을 꽉 채워 빈틈없이 붙어져 있다. 이웃 건물들과 맞붙은 파사드, 여기에 흥미로운 점이 존재한다.” 3)라고 하는데요.

   윤 : 사람의 얼굴이랑 건물을 연결 지어 말하는 부분이 흥미롭게 들리네요. 수진님은 이 연결 지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네요.

   김 :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에서 개성을 찾기가 힘들잖아요. 높이도 다 비슷하니까 똑같은 건물들 같고. 근데 그 사이에서도 건물의 색깔이라든지 건물에 쓰인 재료들에서 차이가 분명 존재하고,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거죠. 이를 저자가 자신의 처가 8남매를 분석하는 것과 비슷했다며 일상에 빗대어 말해주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쉬웠어요. 그러면서도 너무 얕게만 가지 않고 건축하는 사람이 봤을 때도 뭔가 얻어내는 것이 있게, 이를테면 건물들의 차이(창대를 좀더 뒤로 밀었다든가, 창의 크기를 바꿨다든가, 기둥의 두께를 바꿨다든가 등등)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과정을 통해 미학적으로도 깊이 들어가요. 전체적으로 가벼움과 무거움을 잘 조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학생 시절, 건축가가 되고 싶어 경복궁에 매주 가서 한옥 사진을 찍었다는 수진. 그때 찍은 사진이 천장이 넘는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천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이 사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김 : 이 책을 재밌게 읽었던 이유를 좀더 생각해보면, 제 개인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데 영감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인데요. 제가 찍은 사진들을 모아 포트폴리오 사이트4)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사진들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그러는 중에 이 책을 읽다보니 어떤 규칙성이라든지 패턴 같은 것들로 카테고리화해 분류·정리하는 행위를 통해서, 기존에 다른 포토그래퍼가 찍는 사진과는 다른 형태의 기록을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윤 : 이 책에 영향을 받아 재구성된 수진님의 포트폴리오 분류 기준이 궁금해지네요.

   김 : 현상(Phenomenon), 인상(Personality), 감상(Pespective)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요. 현상은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모양과 상태를 말하고, 주로 제가 여행한 도시들의 사진을 모아놨어요. 세부 분류로 ‘건강하고 푸르른’ ‘크로아티아 산책’ ‘바닷마을 다이어리’ ‘하노이의 아침’ 등으로 이름 붙여뒀어요.
   다음으로 인상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마음속에 새겨지는 느낌을 말하는데, 인상적이었던 사람들의 사진을 모아놨어요. 어르신들이 무언가에 골똘히 집중하고 있는 사진이나 일본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한 사람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남겨둔 주인의 사진도 여기에 들어 있어요. 마지막으로 감상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는데, 남들은 감동하지 않았을 순간이지만, 제겐 꽤나 큰 감동을 주었던 사진들을 모아뒀어요. 여기에는 특히 디테일하게 확대된 사진들이 많이 들어 있어요.

“이 사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라는 수진의 질문에, “소녀가 백조한테 프로포즈하는 거 같아.”라고 답을 해준 친구. 그 이후로 <white propose>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진.(사진 김수진)


   내가 그만큼 그 사람을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윤 : 이 책을 보고 개인 포트폴리오 작업에 영감을 얻었다고 하셨는데, 혹시 남들의 작업을 참고할 때 지나치게 영향을 받아서, ‘이 작업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나요?

   김 : 저도 그 고민 진짜 많이 하거든요.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다보면, 베끼고 싶을 만큼 훌륭하고 매력적인 것들이 너무 많아요.(웃음) 건축학과 수업에서도 교수님들이 ‘어차피 너네가 새로 만드는 건 없다.’는 얘기를 진짜 많이 해요. 또 ‘모방을 하긴 하는데 그걸 어떻게 자기화해서 풀어갈 것인가가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항상 말씀해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레퍼런스를 갖고 내가 배우고 싶거나 나와 약간 비슷한 사람이 많은 건 나쁘지 않다고 해요. 하지만 완전히 똑같아지지 않도록 더 많은 것을 읽고 더 많은 것을 연습하다보면 조금씩 교정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윤 : 창작자로서 기억할 만한 가르침이네요.

   김 : 『건축가가 사는 집』(나카무라 요시후미, 정영희 옮김, 디자인하우스, 2014)이라는 책이 있는데, 내용 중에 창작과 모방에 관해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가 있어서 잠깐 들려드릴게요. 이 책은 건축가인 저자가 다른 건축가들이 사는 집을 방문해서 집 공간 사진과 건축가에 대한 인터뷰를 엮어낸 책이에요. 저자가 한 건축가의 집을 방문했는데 집이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물과 너무 닮아 있었대요. 그래서 저자가 “이 집은 르 코르뷔지에의 오마주로 지어진 것 같다.”고 말하니, 그 건축가가 자신의 건축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다시 재현화 했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답했대요. ‘르 코르뷔지에를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는 건물을 만들었다면, 난 반쯤은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으로 작업을 계속해나간다고요.

   윤 : 수진씨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떻게 답했을까요?

   김 : 제가 만약에 어떤 사람의 색깔을 너무 많이 가져와서 다른 건축가를 모방하는 거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해도, 그건 어떤 한 시기나 과도기 같은 게 아닐까 생각을 해요. 그러니 “그래도 그게 나인데? 김수진인데?”라고 답할 거예요. 일을 계속해서 하다보면, 할머니쯤 되면 내 것이 생겨 있지 않을까요. 그 할머니의 어딘가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색채도 묻어 있고 누구의 시선도 묻어 있고 누구의 말투도 묻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사람은 만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받잖아요.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매체로부터 영향을 받는 건 그렇게 두려워할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오히려 내가 그만큼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식으로 생각해본다면 말이죠. 베끼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면.(웃음)

“요즘 약령시장 근처를 자주 돌아다녀요. 거기에 오래된 집들이 많은데, 나중에 돈이 많이 생기면 그 집들 중 한 채를 사서 리노베이션해보고 싶어서요.”


    내 공간에 대해 고민할 때 중요한 것은


    김다영(이하 ‘다영’) : 수진씨가 살 집을 직접 짓는다면, 어떤 요소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지 궁금하네요.

   김 : 저는 건축의 꽃은 건축물이 놓이는 장소, 즉 사이트(현장)라고 생각해요. 건물이 놓인 장소가 좋으면 자연스럽게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인 차경이 좋거든요.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이 보는 모습이 결국 창속에 담긴 풍경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선택한 이유도 창이 커서였어요. 누워서 책을 보고 있으면 달이 움직이는 게 창을 통해 다 보여요. 7시에는 저기 있었고 10시에는 저기 있었고…… 달이 움직이는 걸 추적할 수 있어요.(웃음) 다음으로 중요한 건, 환기에요. 제가 지금 사는 곳이 오피스텔이고 중복도(中複道, Double-loaded corridor)5)라서 한쪽 창을 통해서만 공기가 들어오고, 안의 공기가 밖으로 나가는 게 잘 안돼요.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서 맞통풍 환기가 가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있어요. 직접 시공을 할까도 했지만, 너무 비싸서 그만뒀어요.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데, 실제로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으면 건강에 엄청 안 좋아요. 환기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새벽에 깨거나 아무리 추워도 바로 창문을 열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다영 : 보통 건축하면 미학적인 외관이나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건축과 연결된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네요.

   김 : 제가 원래 건강에 관심이 많았어요. 환경이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친환경팀에서 일하다보니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아토피 문제 등)를 자주 접하게 됐죠. 공부해보니 이런 문제들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들이고 단순히 한두 아파트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우리 생활과 밀집한 모든 건물들(카페, 음식점, 도서관 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도시에 있는 모든 건물들에 대해서 제가 실제적으로 무얼 할 순 없어도, 적어도 내가 있는 공간에서만큼은 친환경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윤 : 친환경이 좋다는 건 알지만 공간의 모든 요소를 바꿔나가려면 부담이 따르는 것 같아요.

   김 : 실제로 집에 식물을 놓고 환기를 잘 시키는 게 알게 모르게 평소 나의 컨디션이나, 감정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결국 친환경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나한테 적합한, 최적의 건강한 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차피 인생은 찌들어가는데 내가 사는 공간, 내가 영위하는 환경만큼이라도 나에게 좀 안락감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내 공간에 대해 고민할 때, 넓은 창과 햇빛이 잘 드는 남향, 환기가 잘 되는 곳 등 실제 나한테 닿아 있는 요인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거 같아요.

   윤 : ‘나한테 닿아 있는 것들’이라는 표현이 좋네요.

   김 :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이거 말해도 될까요?(웃음) 아까 말하면서 물리적인 환경 이외에 나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비물리적인 환경은 뭘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는데, 친구 같은 인간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집은 물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게 되게 크잖아요?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나를 심리적으로 보호해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사람에 따라 간격이 얼마나 촘촘한지는 다르겠지만, 뭔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환경’이라는 단어와 ‘관계’라는 단어가 닿아 있는 부분들이 꽤 넓은 것 같아요.(웃음)

   다영 : 마지막으로 못한 이야기가 있나요?

   김 : 제 공간을 만들면, 두 분 꼭 초대할게요.(웃음)



B&M friend

윤형근, 김다영, 황정한. 전혀 다른 세 삶을 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잠시 비슷한 삶을 살았다. 각자 먹고 사는 문제로 다시 세 갈래의 삶을 살고 있으나, 이 프로젝트를 빌미로 또다른 삶의 접점 하나가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2019/04/30
17호

1
정면, 측면 따위에서 수평으로 본 모양. (출처 네이버 사전)
2
『파사드 서울』 프롤로그 부분.
3
『파사드 서울』 프롤로그 부분.
4
http://sujinsajin.creatorlink.net/
5
양쪽 방 사이에 있는 복도. 면적 효율은 좋지만, 어둡고 음울한 공간이 되기 쉬우며, 통풍이나 프라이버시의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출처 네이버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