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과 정윤은 죽음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텍스트로 풀어냈다. 그 텍스트를 바탕으로 작업한 페인팅, 영상, 시를 구성하여 2018년 겨울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전시회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어요〉를 열었다. 이 전시회는 두 사람의 작업뿐 아니라 관람객 참여 공간인 ‘부고 쓰기’를 마련하였다. 미선과 정윤은 관람객에게 “지금 나에게 가장 떠오르는 죽음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건넸다. 관람객들은 이 질문에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목소리 하나


“그 사람한테 죽음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죽음 자체보다 슬퍼할 엄마 때문에 너무 무섭다.”

정윤
전시회 관람객들이 남긴 부고 중 일곱 편을 골랐어요. 저한테는 이 글이 강하게 와닿았어요.

미선
“그 사람”이 누굴까 상상해봤거든요. 이어지는 문장에 엄마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 사람이) 글쓴이의 아빠일 거라고 추측했어요. 그러면서도 그가 아빠가 아니길 바라기도 했어요.(웃음)

정윤
아빠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요. 저희 아빠가 여든세 살이신데 요즘 귀가 잘 안 들리시고 갑자기 아랫니 몇 개가 한꺼번에 빠지시고 그래요. 아빠는 그런 노화 현상에 덤덤하게 대하세요. “이가 빠졌네.” 허허 웃으면서 이야기하세요. 그래서인지 저는 아빠가 그렇게 늙고 계시다는 생각을 잘 못했어요. 그런데 오늘 새벽 지인의 부친 부고를 받고는 아빠 생각이 덜컥 나면서, 아빠도 언젠가는 돌아가실 거라 생각하니 엄마가 걱정되더라고요.

미선
남아 있는 사람을 자연히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 엄마 돌아가셨을 때도 남아 있는 아빠를 모두 걱정했어요.

정윤
먼저 간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많이 의지하던 사람일테니까요 이 부고 글에서는 자식이 부모 보면서 드는 생각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빠가 아니라 자식이 아파서 그럴 수도 있고요. 떠난 이가 누구든 남아 있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글이 짧지만 가슴을 내리치는 게 있었어요. “너무 무섭다”는 마지막 말이 마음에 많이 와닿더라고요.


목소리 둘


“소중한 사람의 완전한 부재. 이 모든 시간들 찰나에 불과하지만, 공포.”

미선
다음 부고를 살펴볼게요. 이 글의 마지막 단어도 ‘공포’네요.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공포나 무서움을 느끼는데, 그게 여러 차원에서 다가오는 감정 아닐까요. 죽음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지점이 각자 다른 것 같아요. 정윤씨도 프로젝트 초반에 공포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저는 저와 정윤씨가 느끼는 공포가 다른 색의 공포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불안에서 오는 공포였거든요. 정윤씨는 어떤지?

정윤
죽음과 관련해 느끼는 무서움은 어렸을 때 귀신 생각하면 느끼는 무서움과는 또다른 거 같아요. 죽음의 순간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불안,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공포요. 미선씨가 이야기한 불안과 같은 것이죠.내가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어서 공포가 더 큰 것 같아요.

미선
상상이지만 고통스러울 거라는 예측은 되잖아요. 예측과 상상에서 오는 공포. 문희1) 언니가 겪은 테러 사고도 그렇고, 현숙2)의 자살 사고도 그렇고요. 그 상황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웠을지, 혹은 스스로 죽음을 실행하기까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하면 지금도 저는 정말 무섭거든요. 내가 그런 사고를 당할까봐, 내가 나를 죽일까봐.

정윤
저는 제 자신이 몹시 고통스러운 상태에 처하게 된다면 스스로 그 고통스러운 삶을 멈춰버릴 거라고 자주 생각해요.

미선
안락사처럼요?

정윤
네, 사람은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족이나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프면, 그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고통을 지속하다가 죽는 것까지 곁에서는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잖아요.

미선
그리고 당사자도 통증이나 고통이 계속 있는 거잖아요. 나라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거라고, 고통을 그만 느끼고 싶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윤
고통과 연결해서 계속 생각하다보니 죽음이 참 무서운 거 같아요.

미선
저도 요즘 목덜미가 찌릿할 정도로 무서운 순간이 자주와요. 저번에 정윤씨와 며칠 연락이 안 됐을 때 정윤씨 걱정도 했어요.

정윤
진짜요?

미선
이야기 안 했죠. 정윤씨가 신경 쓸까봐…… 연락하면 정윤씨는 보통 바로 연락 오는데, ‘무슨 일이 있나? 어디 아프신가?’ 하고 갑자기 너무 불안했어요.

정윤
아, 제가 바빠서 정신없었을 때였던 것 같아요.

미선
그 일로 ‘정윤씨가 나에게 소중한 관계가 되었구나’ 깨달았어요. 소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무사하길 제가 항상 바라고 있더라고요.

정윤
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미선씨.

미선
걱정 안 할게요.(웃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했어요. 내가 사람들한테 바로 연락을 잘 못해줄 때가 많은데 나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걱정하고 불안할 수도 있겠다고요. 그래서 요즘에 사람들한테 제가 안부를 먼저 잘 물어요.


목소리 셋


“가장 위대한 것은 기억이라 믿기로 한다. 비워둔 만큼의 구멍보다 더 많은 흙을 채울 것. 이름 모를 돌덩이와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거든 누군가의 무덤이라 추정할 것. 아무도 몰랐던 당신의 거대한 마음을 위해 가장 근사한 성전을 지을 것. 그 주인 없는 집을 영원히 지킬 것."

정윤
이 글을 읽으면서 미선씨가 파키스탄에서 돌아와보니 현숙이 사라졌더라고 이야기한 게 생각났어요.(6화 참조) 그리고 “구멍”이라는 말이 가슴이 아팠는데…… 소중한 사람의 부재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해요. 기억으로 채워야 하는 빈자리.

미선
공감이 가네요. 부재를 채우는 다른 어떤 것을 더 생각해볼 수도 있고요. 새로운 관계나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만드는 새로운 기억이 부재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정윤
정말 좋은 이야기인 것 같아요.

미선
같이 채워도 괜찮겠다! 부재한 그와의 기억이랑 새로운 관계에서 생겨나는 기억이랑 둘 다를 가지고 “구멍”을 채우는 거죠. 우리가 ‘두 개의 목소리’ 프로젝트를 통해 하고 있는 거잖아요.

정윤
제대로 된 애도 작업이네요.(웃음) 한편 무덤을 “이름 모를 돌덩이,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표현한 게, 말 그대로 참 아름다웠어요. 사람이 죽고 무덤에 비석을 세우면 그냥 돌덩이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담긴 건축물로 바라본다면……

미선
기념비3)처럼요.

정윤
그렇죠. 이 글의 한 줄 한 줄이 가슴을 콕콕 찌르네요. “아무도 몰랐던 거대한 마음을 위해 가장 근사한 성전을 지을 것. 그 주인 없는 집을 영원히 지킬 것.” 이게 우리가 하고 있는 애도 작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선
다시 정윤씨와 한 줄 한 줄 읽으니까, 글 쓴 분이 우리가 전하려고 했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자기 말로 이렇게 아름답게 말해주었구나 싶어 반갑고 고맙네요.

정윤
이분이 남긴 부고가 세 편인데, 다 아름답더라고요. 글마다 제목에 추모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놨어요.

미선
그중 이 글은 본인의 부고를 쓴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정윤
왜 그런 생각이 드셨어요?

미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쓴 걸로 다가왔어요. “채울 것” “지을 것” “지킬 것”이라는 표현을 보아, 남은 사람들에게 부탁하듯이.


목소리 넷




미선
다음 부고는 그림인데, 여운이 오래 남았어요. 누워 있는 강아지 그림이에요.

정윤
그림 속에 있는 동물이 강아지인가요?

미선
강아지 같아요. 오래 헤맨 강아지. 이 그림 봤을 때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로디(미선의 반려묘)도 저보다 먼저 죽을텐데 그때 난 어떡하나. 또 길에 사는 아파 보이는 고양이들도 누군가가 보살펴주면 좋겠다…… 저는 사람보다 동물에 마음이 더 쓰여요. 가장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 같아요. 보이지 않는, (인간이기에 갖는 시선이겠지만) 이름도 없는 존재들이죠.

정윤
부고는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쓰지, 사람 외에 다른 생명을 생각하면서 쓰진 않잖아요. 전시회에서 부고 쓰기를 한 관람객들 대부분이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 그림이 더 놀라웠던 거 같아요. 부고 글도 아니고 부고 그림이잖아요. 게다가 이 그림을 그리신 분이 다른 분들과 달리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품을 남겨두었어요. 테이블 아래의 벽 모서리에 붙여놨잖아요. 그분이 우리에게 건넨 쪽지 같았어요.

미선
우리가 전시회 마지막 날 철거할 때 발견했죠?

정윤
네. 이 그림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사람들이 외면하는 수많은 유기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살아가는 길고양이의 현실을 보여주듯이, 그림을 구석에 붙여둔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미선
의도적으로 그런 거 같진 않고……

정윤
의도죠.

미선
의돈가?

정윤
의도한 거 같아요.(웃음)

미선
이 그림 보면 동물만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이름 없는 모든 존재들이 연상되네요. 어쩌면 모든 죽음의 모습이요. 그림 속 강아지 옆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발견해서 얘를 잘 묻어서 ‘기념비’를 해주면 좋겠어요.


목소리 다섯


“나의 부고. 갑작스러운 나의 부고 후 남겨질 사람들이 보게 될 나의 방의 모습을 생각하며 집을 깔끔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몸이 안 따라준다. 나의 부고는 멀었나보다.”

“요사이 부쩍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이 나요. 나의 죽음. 사실……”


“나는 산다. 살아 있다. 너 없는 세상에서도 나는 산다. 가끔…… 꿈에서 너를 보지만…… 그런 하루라고 더 특별한 건 아니다. 나는 산다. 점점 더 산다. 점점 더 살고 싶다. 너 없는 세상에서도…… 참 이상하게도……”


정윤

두 편은 ‘나’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마지막 한 편은 남겨진 사람의 목소리네요.

미선
마지막 글은 정윤씨 지인이 남긴 글이었죠? “너 없는 세상에서도 나는 산다”는 말이 슬프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어요. 누군가의 부재를 느끼면서도 그걸 부인하지 않고, ‘나는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요.

정윤
요즘 부쩍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글은 전시를 철거하면서 발견했는데요. 종이를 뒤집어서 테이블 밑에 붙여놓았더라고요.

미선
나중에 발견하고 깜짝 놀랐죠. 그리고 ‘나’의 죽음에 대해서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궁금했어요. 부고를 써보자는 저희의 제안에 자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둘은 떨어질 수가 없다는 걸 다시 느껴요.

정윤
사람들이 남기고 간 글이 보석 같아요.

미선
서로 주고받은 선물이랄까.(웃음)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더 많은 걸 받은 것 같아요.

정윤
관람객과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한 거죠.(웃음)


목소리 여섯


미선
처음에 ‘부고 쓰기’를 계획했을 때 어떨까 걱정했는데, 전시 작업 중에 제일 여운이 남아요.

정윤
관람객들이 우리 주제 안으로 들어온 작업이었죠. 주변 사람들이 우리가 지속해서 죽음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조금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잖아요. 그런데 이 부고 글들 보면서 사람들은 다 죽음에 대해 여러 생각들을 계속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미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저는 누구라도 하고 싶을 거 같아요. 다 자기 문제잖아요. 언젠가는 다 죽을 거니까요.

정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나 적절한 때가 없는 거 같아요.

미선
없죠. 이야기를 꺼내도 끊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거나요.

정윤
분위기 망치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거나.

미선
네. 하지만 우리나 관람객들이 죽음을 이야기한 것이 어두운 이야기 같지 않았어요. 각자 떠올리는 죽음이 있는 거 같고요. 제가 떠올리는 죽음은 뭐였을까 다시 생각하게 했고요. 저는 죽는 순간과 내가 죽어가는 것을 매일 상상했어요. 살아가고 있다는 표현보다는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요. 그게 어둡고 부정적인 말로 쓴 건 아니었거든요.

정윤
미선씨는 본인이 죽는 그 순간을 매일 상상하고 있다는 거예요?

미선
그건 아니에요. 오늘도 죽었고 내일도 죽고 그냥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죽는 게 어느 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안 하기로 한 것 같아요. 정윤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윤
저는 죽음이 점점 다가온다고 생각해요.

미선
정윤씨에게?

정윤
네. 죽음에 관한 주제로 작업하기 전,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저는 가족이 크게 아픈 적도 없었고 큰 병이나 사고로 돌아가신 분도 없어서 그런지 죽음과 나는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장례식장에 데려간 적도 없고, 죽음과 관련된 것들을 안 보이게 하고 멀리 두셨어요. 저희 아빠가 상갓집 갔다 오시면 엄마가 아빠 등에 소금을 막 뿌렸어요. 뭔가 죽음이라고 하면 부정을 많이 탄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문희가 죽고 난 다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미선
정윤씨 말처럼 죽음이 가까이 간 거네요.

정윤
그렇죠. 저보다 네 살 어린 친구가 먼저 불의의 사고로 가니까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죠. 죽음이 누구한테나 있을 수 있고 멀리 있지 않구나. 어떻게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고.

미선
그렇겠어요. 구체적인 것들이 정윤씨 안에 기억이 있는 거잖아요?

정윤
지금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미선씨랑 편하게 이야기하다 보니까 죽음은 계속 다가오는 거고 죽기 전에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정리하고 떠나야 하나 이런 생각 많이 해요. 오늘 아침에 눈떠보니 마리(정윤의 반려묘)가 제 옆에 누워 있었어요. 마리 심장이 뛰는 걸 가까이서 자세히 본 게 처음이었는데, 매우 빨리 움직이는 거예요.

미선
달리기 마친 사람처럼요?

정윤
네. 우리가 달리기하고 와서 헉헉 숨을 들이키듯이 얘는 평상시에 이렇게 숨을 빨리 쉬는구나 했어요. 고양이는 심장 박동수가 빨라서 인간보다 명이 되게 짧대요. 제가 마리 가슴에 손을 대고 말했어요. “마리야, 숨 빨리 쉬지 마.”

미선
천천히 쉬라고……

정윤
그때 미선씨 그림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울컥했어요. 붙잡고 싶구나. 이렇게 사라지고 있는 걸.(울음)

미선
손으로 빨리 뛰는 가슴을 막았다고 하니까 눈물이 나려고 해요. “구멍”에 흙 채우듯이 그 흙이 죽음을 지연시키는 거일 수도 있겠네요. 솔직히 소중한 관계의 존재들에게는 죽음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정윤
우리 대화를 글로 기록하고 그 글을 《비유》 때문에 여러 번 보면서 다듬고 있잖아요. 미선씨가 한 말들을 반복해서 읽어도 미선씨가 그때 충격이 어땠을까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상상을 못하겠더라고요. 사랑하는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게……(울음)

미선
그때 짐승처럼 울부짖었어요. 그리고 다시는 그런 울음 갖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나의 죽음과 함께 소중한 관계들의 죽음도 다가오고 혹은 다가가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 거 같아요. 그들도 소멸하고 있구나 하고. 그 다가오는 걸 잘 대비를 해주면 될까요? 대비한다는 게 뭘까요? 더 함께 보내면 될까요?

정윤
사실 대비를 하고 산다는 말이 우스운 거 같아요. 이런 세상에서 뭔가를 대비한다는 게. 어쨌든 애를 써서 마리한테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미선
순간순간에. 그게 대비라면 대비겠네요. 그러니까 대비한다고 해서 수의를 준비하고 그런 거 말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와) 순간순간 더 많이 관계 맺고 더 많이 말해주고 더 많이 들어주고요.

정윤
그런 거 같아요.

미선
안 그러면 되게 후회할 거 같아요. 이별을 잘 못 할 거 같고요. 지금 보니 정윤씨도 문희 언니와 이별을 잘 못 한 거고, 저도 현숙과 이별을 잘 못 한 거 같아요. 정윤씨가 꿈속에서 문희 언니에게 “제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평소에 그런 말 하지도 않았는데.”라고 말했던 게 떠오르네요.

정윤
죽음을 맞닥뜨렸다고 표현을 많이 하잖아요.

미선
맞닥뜨렸다. 당했다.

정윤
대면한다. 죽음은 그런 거라고 계속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죽음이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다가오고 있는데 죽음이 일어나는 그 순간이 언제인지를 예측을 못 하는 거죠.

미선
당하는 거랑 다가오는 걸 지켜보는 건 다른 거 같아요.

정윤
순간이 아니라…… 죽음이 일상에 있네요. 케테 콜비츠의 그림 <죽음의 부름>처럼, 죽음이 가만히 다가와 내 어깨를 살포시 두드리지 않을까요.

미선
따뜻하게요. 제가 보여드렸던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볼프 에를브루흐, 김경연 옮김, 웅진주니어, 2008) 생각나세요? 해골(죽음을 의인화)이 오리한테 다가온 건데 얘랑 관계를 맺어버린 거예요. 왜냐면 오리가 해골한테 뭔가를 줘요. 해골이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을요. 죽음은 얘를 데려가려고 온 건데…… 죽음은 알잖아요. 얘가 언젠가 죽을 거라는 걸. 그래서 해골은 가슴이 너무 아픈 거예요. 어느 날 둘이 놀다가 잠들었는데 오리가 깨어나지 않는 거예요.(울음) 그러니까 해골이 걔를 안아서 강에다 보내주더라고요. 해주는데……

정윤
죽음이 친구처럼 함께 다니다가…… 오리를 안아서 강에 보내줬다고 하니까 가슴이 매우 아프네요.

미선
죽음이 케테 콜비츠 그림처럼, 그림책 속 해골처럼 그렇게 나한테 와주면 좋겠어요. 갑자기 덮치지 말고 따뜻하게 안아주듯이.



두 개의 목소리

안미선은 그림을 그리고, 안정윤은 영상을 만듭니다. 미선과 정윤은 죽음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기록합니다. 마치 산책길을 거니는 사람들처럼, 예쁜 돌을 주우면 보여주고 낯선 소리를 들으면 멈춰 서서 같이 귀 기울였다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2019/05/28
18호

1
정윤의 친구 강문희는 1975년 5월 14일 태어나 2013년 9월 21일 생을 마쳤다.
2
미선의 동생 안현숙은 1981년 10월 28일 태어나 2007년 10월 15일 스스로 생을 마쳤다.
3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김진영 옮김, 이순(웅진), 2012, 244쪽. “1979. 3. 29. 죽은 뒤의 일에 대해서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내 글들이 나의 사후에도 계속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다(M.을 위해서라면 경제적인 면을 고려해야겠지만).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각오가 되어 있고, “기념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그러나 마망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견딜 수가 없다(그건 아마도 그녀가 글을 쓴 적이 없고, 그래서 내가 없으면 그녀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