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뭐예요?


   시를 처음 배울 때, ‘도대체 시가 뭐지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수학 선생님께 ‘수학이 뭐지요?’라고 질문했다면 수업 시간에 엉뚱한 소리를 한다며 혼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시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시처럼 생겼으면 시다.’라고 답해주었다. 그런데 시처럼 생긴 건 또 뭐지?
   이것도 시예요?

예비군편성및훈련기피자일제자진신고기간자: 83. 4. 1.~ 지: 83. 5. 31.1)


   이것도?

   ―엥? 어디서 파냐 이러다 작두도 사겠어, 나
   ―http://shopping.naver.com/search/all_search.nhn?query=%EC%9A%94%EB%A0%B9&cat_id=&frm=NVSHATC&nlu=true
   ―쥐마켓과 11번가에서 요령 파는 세상
   ―나 이 구절 시로 써도 되냐2)


   도무지 ‘시처럼 생긴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시가 무엇인지 답해보려 할수록 질문만 늘어갔다. 시집에 있으면 시인가? 문예지에 실리면 시인가? 시인이 쓰면 시인가? 그럼 시인은 어떤 사람이지?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인가? 시인이 아니면 시를 쓰는 게 아닌가? 그럼 시인이 아니었던 내가 시 수업 시간에 썼던 건 시가 아니잖아? 그런데 왜 시를 쓴다고 하지? 내가 쓴 것도 시라고 한다면, 그럼 누구나 쓸 수 있는 것 아니야? 그런데 왜 어떤 것은 시고 어떤 것은 시가 아니지?
   물론 시에 대한 또다른 말도 들었다. 내가 이해한 바로 그 말은 시란 자아와 세계의 상호작용 비슷한 것이라는 거였다. 그렇다면 “지윤아, 피자 먹으러 가자.”라는 말처럼, 누가 나를 부르고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피자집으로 향하는 것도 시인가?
   대부분의 시간을 시에 대해 생각하며 보낸 때가 있었다.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럼에도 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없다면, 시가 아닌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시집 속 시만 읽고 시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시가 아닌 것들을 읽고 시가 아닌 것에 대해 탐구해보자. 시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그럼 내가 생각하는 시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길을 가다 보게 되는 전단지, 버스를 기다리며 무심코 보게 되는 광고물, 에스컬레이터 앞 경고문, 거리의 간판 등 무수히 존재하는 텍스트들을 좀더 눈여겨볼 순 없을까. 시시각각 접하는 비시(非詩) 텍스트 속에서 이것이 정말 시가 아닌가 혹은 시인가 질문하는 것. 비시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비시(非詩) 제보 받습니다


   비시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으니, 지인들에게 비시 제보를 부탁했다. 많은 기대를 하진 않았다. 바쁜 일상을 사는 친구들이 문득 어떤 텍스트를 보고,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또 그걸 나에게 보낼 시간이 있을까? 차근차근 혼자 텍스트를 수집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비시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는 공지를 하자마자 꽤 많은 연락이 왔다.
   “비시를 제보합니다.”

   그중 몇몇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국수를 먹고 난 후기다. 국수 하나에 할아버지와 겸상하던 추억 하나, 아니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글이다. “입맛에 웃음 주름”은 할아버지 주름과 비슷할까. 여행 갔다 봉평 메밀마을에 들른 현호님의 글자 사이사이로 이수아, 이태연 등이 있다. 신승우와 이광수도 왔다 갔다. 마치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에 끼어들어서 뭔가를 구시렁대는 것 같다.

시범아파트에 무단 주차를 한 자동차는 빨간 자동차다. 왜냐하면 빨간 페인트를 칠했을 테니까. 여기서 빨간 페인트는 어떤 상징 같다. 무서운 무언가에 가까운. 이미 몇몇 글자도 빨갛다.

혹 영어 읽기가 힘든 분들을 위해 발음해보자면 ‘이ㅌ 투데이 다이어ㅌ 투모로우’. 오늘 먹고 내일 다이어트하자. ‘ㅌ(t)’로 각운과 두운을 맞춘 텍스트. 리듬감이 느껴지는가.

잘 본 게 맞다면 주꾸미가 ‘퐁’뒤에 ‘풍’덩 빠졌다. ‘나를 담가 먹어요.’라는 말에서 의인화된 주꾸미가 희생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여러분에게 묻는다. 이것은 시인가? 시가 아닌가?

양지윤

비시(非詩)에 대해 탐구합니다. 시가 아니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텍스트를 다룹니다. 직접 목격한 비시 텍스트를 상시 제보 받습니다.
메일 jiyangyoon@gmail.com, 인스타그램 @bisi_write

2018/01/30
2호

1
황지우, 「벽 1」,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69쪽.
2
김민정, 「수단과 방법으로 배워갑니다」 중 편집자 황예인과의 채팅 일부,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2016, 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