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수집
4화 충북 보은 · 전북 익산
가짜 중학생 수학여행 일기
허희정그 중학교에 가기 전에 우리는 익산 미륵사지를 방문했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과 함께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로 처음인 것만 같은 기분이었고, 중학생은 수학여행을 가지 않지만 우리는 이제 중학생도 아니지만 그래도 중학생 같은 기분으로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기분으로 보은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고, 떠들었고, 졸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시간이 자꾸 흐른다는 게 자꾸자꾸 흐르고 또 흐른다는 게 이상해, 언제나 중학생이 제일 골치 아프지, 우리는 우리가 중학생일 때 들었던 곡들을 연달아 들었는데, 그건 조금 웃기고 조금 신나고 약간은 지친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근황조차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말았고, 그런 얘길 하다가 차 안이 조용해지기도 했다. 보름이 지나면 작아지는 슬픈 빛, 날 대신해서 그의 길을 배웅해줄래.1) 달이 뜨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가짜 중학생, 가짜 수학여행 가는 날. 보은 속리중학교는 산속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과 산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중학교로 올라가는 비탈길은 무척 가팔라서 나는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생각했고, 내가 게임상에서 종종 만들었던,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올 수 없는 롤러코스터 레일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그런데 정말로 그런 걸 만든 적이 있었는지 궁금해질 무렵에 자동차가 중학교 운동장에, 그러니까 중학교 운동장이었던 풀밭에 턱, 하고 덜컹하고 올라앉았다. 왠지 오싹하지 않아, 뭔가 있을 것 같아. 그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자동차에서 내렸는데, 그 직전에 우리는 이적 2집에 실린, 김윤아가 피처링한 <어느 날>을 듣고 있었고, 그건 어둡고 비가 오는 날에나 어울릴법한 오싹하고 무서운 곡이라서, 그런데 사실은 그런 곡을 듣지 않았어도 아무도 없는, 풀로 뒤덮인,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초저녁의 중학교 운동장은 충분히 무서울만한 곳이었다.
민병훈이 그 중학교에 대해서 얘기를 한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에릭 로메르 영화를 보고 난 날 충무로의 포장마차에서, 아니면 호림미술관에서 일본 민화 전시를 보고 난 후 갔었던 을지로의 호프집에서였던 것 같다. 어쩌면 어느 쪽도 아닐 수도 있다. 풀로 뒤덮인, 이제는 폐교가 되어 아무도 다니지 않는 중학교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나는 몇 년 전에 방문했던 캄보디아 씨엠립의 타 프롬 사원을 잠시 생각했고, 웹서핑을 하다 발견한, 이제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후쿠시마의 건물들 사진을 떠올렸다. 모두 그 쓸모를 잃은 장소라는 공통점이 있는 장소들이었다. 더이상 중학생이, 제 몸보다 큰 교복 자켓을 어색하게 걸친 중학생이 입학하지 않는 그래서 졸업하지도 않고 벌점을 떼이지도 않는, 웃자란 풀이 덜 자란 풀이 바스락거리는 자기들끼리 몸을 부비는 그러다가 떨어지고 부러지고 망가지는 시간이 멈춘 정원에서 우리는 부스럭거리며 돌아다녔다. 숙직실 명패가 비뚤게 걸려 있었다. 날이 금방 어두워져, 우리는 산을 내려와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동네 산책을 했다. 달이 무척 밝았다. 광공해가 없어서 월면의 무늬까지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조금의 이지러짐도 없이 동그란 달은 송곳으로 잘 뚫어놓은 구멍 같기도 했고, 그래서 바늘구멍 사진기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둠에 잠긴 나지막한 건물들은 마치 미농지에 비친 상처럼 현실감이 없고, 기분이 이상해, 뭔가 나올 거 같아, 누군가 그렇게 속삭였던 같기도 하다. 모두들 잠든 새벽 세 시, 나는 옥상 위에 올라왔죠.3)
새벽 세 시는 아니었지만 옥상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늦은 저녁의 마을은 정말 조용했다. 우리는 중학생 민병훈이 걸어다닌 길을 걸어서 중학생 민병훈이 살았던 집을 지나서 중학생 민병훈은 아마 묵은 적 없었을 호텔로 돌아왔다. 맥주를 조금 마셨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오전 시간에 법주사를 구경하기로 정했다.
법주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날씨가 청명해서 기분이 좋았다. 곳곳에 비석이 남아 있어 그 위의 글자들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한문 실력이 모자라서 잘 읽을 수 없었다. 낮고 단조로운 불경 읊는 소리도 좋았고 나무에 매달아놓은 종이 등도 좋았고 석조 계단 난간에 널어놓은 빨간색 방석도 좋았다. 하지만 제일 좋았던 건 금동미륵대불 아래 마련된 법당이었는데, 조금씩 다른 부처님들이 대체로 비슷한 자세로 줄지어 앉아 있는 것이 좋았다. 백팔배를 드리는 민병훈을 조금 신기한 마음으로 구경하기도 했다. 사실은 백팔배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도무지 사지를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잘 이해할 수가 없어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낮에 보는 속리중학교는 전날 밤과는 사뭇 달랐다. 여전히 숙직실 명패는 비뚤어져 있었고, 너무 많이 자란 식물들은 계속해서 바스락거렸지만, 한때 고만고만한 머리통을 가진 중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을 운동장 위로 쏟아지는 햇빛은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었다. 스탠드 위로 올라가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차렷, 열중쉬어, 좌향좌, 우향우, 나는 좌우 구분을 좀처럼 제대로 하질 못해서 항상 반대쪽으로 도는 아이였고, 그래서 항상 인원 체크가 늦게 끝나게 만들곤 했는데, 그렇지만 오늘의 수학여행은 가짜 수학여행. 인원 체크도 주의사항도 안내문도 없고 비상연락망도 없는, 설레임과 흥분이 섞인 아이들의 웅성임 대신에 발전기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낮게 나는 잠자리를 피해서 디제잉 장비를 옮기는 가짜 수학여행. 벽돌을 뚫고 비죽비죽 올라온 나뭇잎 사이 어딘가에 돌아보고 서면 언제부턴가 나도 몰래 잊고 있던 나만의 비밀, 같은 게 있을 것 같기도 한 기분이었지만 이제는 진짜 학교가 아니니까. 그래서 그 중학생들 중에 한 명쯤은 나처럼 좌우 구분을 못하는 아이가 있었겠지, 그 아이도 나처럼 면박을 들었을까, 이번에는 이번에는 틀리지 않으려고 한껏 긴장하고 있다가 너무 긴장해서 또 틀리기도 했을까, 그래서 그 아이는 그 아이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가짜 중학생은 정말 가짜 중학생 같은 것들만 궁금해했다.
더위 먹은 탑
양선형그날 익산으로 내려가는 차량에는 다섯 채의 탑이 앉아 있었다. 미륵사지 경내에도 두 채의 탑이 서 있었다. 탑들은 함께 탑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가을인데도 날이 무더웠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했던 까닭에 탑들은 너나할것없이 피로를 호소하며 어긋난 생활 리듬에 관해 고백하기 시작했고, 몇몇 탑은 밤을 꼬박 새워 눈이 풀려 있거나 그만 졸음에 빠져들기도 했다.
휴게소에서 내린 탑들은 식당에 모여앉아 우동과 차가운 메밀국수를 먹었다. 졸음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나는 최영건 탑이 선택한 장소인 미륵사지에 관해 글을 쓸 예정이었다. 한눈을 팔면서 슬쩍 유적지를 구경하고 나오겠지. 나의 글은 피상적이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런 걱정이 들었다. 타인의 기억이 배어 있는 장소를 방문한다는 것은 뭘까. 나는 내가 새로이 마주하게 될 다양한 장소들이 내가 없었던 자리에 또한 오랫동안 존재했던 장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미륵사지에 없었던 시간 동안 최영건 탑이 그곳을 드나들었고, 미륵사지를 배경으로 「물결 벌레」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는 사실도. 당연한 거 아냐? 미륵사지란 뭘까. 선화공주와 서동요와 백제 최대의 사찰은 뭘까. 백제는 뭘까. 먹는 걸까. 한국어에는 먹는다는 말이 많다. 한국인들은 더위도 먹고 마음도 먹고 나이도 먹어버린다.
세상에는 내가 있었던 장소들보다 내가 없었던 장소들이 천의 제곱만큼 많다. 시간의 차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나는 무한을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하지 않는, 혹은 존재하지 못하거나 존재하지 않게 된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장소들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이해한다. 내가 영원히 없었던 어떤 장소는 누군가의 입장에서 그가 평생을 머물렀거나 떠나왔던 장소, 삶의 일부를 내려놓고 보관하며 기념하는 장소일 것이다. 관측되지 못한 장소들, 인간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은 장소들 또한 우주 저편에 얼마든지 실재한다. 내가 없어지고 나서도 세계는 계속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미륵사지 석탑은 허물어진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내가 그곳을 방문하지 않는 동안 단정하고 깨끗하게 복원된 동탑과 서탑이 미륵사지 경내에 세워졌다. 물론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최영건 탑도 마찬가지로 내가 없었던 장소에서 「물결 벌레」를 썼을 것이다. 꼬마 최영건 탑. 그 꼬마는 자신이 미륵사지에 관한 소설을 집필하게 될지 예감하지 못한 채로, 어쩌면 자신이 소설가가 되어 문학의 연옥에서 허우적거리게 될지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황량한 미륵사지 절터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박물관에 들러 소설에 묘사된 귀면와를 보았겠지. 이런 상상들은 아득한 느낌을 환기한다. 언젠가 나처럼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연못 옆의 나무 그늘 아래 들어가 풀숲 사이로 엿보이는 커다란 미륵사지 석탑을 응시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천 년쯤 전에도. 천 년 전에 내가 미륵사지에 관해 글을 쓰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있었나. 천 년 전에 나는 무엇이었나. 그때 내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이 글은 내가 없었던 장소를 지키고 있었던 탑에 관한 이야기다. 탑들은 천 년 전에도 탑을 쌓았다. 가장자리를 맴돌며 탑 꼭대기에서 날렵하게 떨어지는 햇살을 향해 머리를 쳐들었다. 탑들은 걸었다. 책이나 짐이 가득한 가방, 녹색 양산, 삼각대, 카메라와 캠코더를 서로에게 전달하면서. 이거 좀 같이 옮길래? 이거 마셔. 탑이 탑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며 말했다. 탑들은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보았다. 저기 최영건 탑이 흐느적거리며 걸어오고 있잖아. 화장실에 간다던 민병훈 탑은 어디로 증발했는지 오지를 않네. 미륵사지에 입장한 탑들은 가을에 도래한 이글거리는 폭염으로 완전히 지쳐버리고 말았다.
할일이 별로 없던 민병훈 탑은 미륵사지를 산책하며 주변을 기웃거렸다. 나와 최영건 탑은 촬영 장비 앞에 붙들려 있었다. 허희정 탑은 최영건 탑과 나를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다. 김지환 탑은 무거운 촬영 장비를 들고 미륵사지 풍경을 수집했다. 더워서 기절할 지경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뙤약볕을 받으며 건재하게 서 있는 탑의 모습이 신기했다. 만약 내 소설 속에서였다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미륵사지 경내에서 살인적인 강도의 직립 노동으로 힘들어하던 석탑이 균형을 잃고 탈진해 쓰러지는 광경을 장황하게 묘사했을 텐데. 그러나 이 프로젝트 지면을 내 소설적 충동을 위해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경내에는 드넓게 펼쳐진 평지와 함께 무성하고 짙푸른 잔디밭, 석등과 고즈넉한 연못 두엇이 있었다. 시설은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 동탑과 서탑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새하얗게 반짝거렸다. 비현실적으로 새것처럼 여겨져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복원된 탑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그 규모가 제법 되었다. 언젠가 보았던 사진 속 남루하게 붕괴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복원 공사가 완료되어 일반 시민에게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의 카메라 렌즈 속에서 퇴락해 부서진 골조를 내비치던 미륵사지 석탑이 어째서 반듯하고 창백한 건축물로 내 앞에 출현하게 되었을까. 높게 치솟은 환한 탑 앞에 서면 마음이 이상했다. 그 석탑은 진짜 석탑이라기보단 실물 크기로 제작된 커다란 등신대처럼 보였고, 나는 내가 그런 등신대들의 세계에 속한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자주 빠지는 편이었다.
미륵사지는 그곳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막연한 인상이나 「물결 벌레」에서 읽었던 이미지와는 판이한 장소였다. 나는 상상과 현실 사이의 낙차 속에서 약간 상심한 마음으로 풀밭을 가로질러 걸었다. 서탑에서 동탑으로, 동탑에서 서탑으로.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원래의 모습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던 서탑은 시간이 지날수록 축대가 내려앉았고, 보수 공사를 진행했던 일제가 시멘트를 끼얹어 대충 땜질을 하는 바람에 흉측한 외양과 함께 거듭된 붕괴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했다. 현재 서탑은 한쪽이 무너져 있는 비대칭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동탑의 경우 터만 남아 있던 자리에 과거 동탑의 형태를 간직한 새로운 탑을 건설했다.
내내 익산에서 살았던 최영건 탑의 입장에서도 단정하게 복원된 두 탑과 마주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방문한 미륵사지와 최영건 탑이 축적했던 미륵사지에 관한 기억의 교집합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최영건 탑이 기억하는 과거의 미륵사지는 유적지 내부가 정비되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탑 주위에는 공사용 가림판이 설치된 황량한 장소였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추측했다. 탑이 있었던 자리를 지표로 최영건 탑과 나는 물론 수많은 탑이 근처를 배회했다. 누군가는 나처럼 깨끗한 탑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공사용 가림판을, 누군가는 훼손된 탑, 궤멸한 돌덩이들을, 거기 괴여 흐르는 빗물을, 폭설과 꼭대기에 주저앉은 흰 새들을, 흔적 없음을, 누군가는 본래 모습 그대로의 탑을 만져보기도 했을 것이다.
탑이 있었던 자리는 탑이 무너지거나 사라지고, 재차 복원된 다음에도 탑의 실체와 무관한 방식으로 계속 같은 장소를 점유하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의 자리들은 삼차원의 인지적 지옥에서처럼 서로의 자리를 빼앗거나 대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획득하지 않는다. 그 자리들은 다만 포개져 공존할 뿐이다. 최영건 탑은 내가 훔쳐보지 못할 어떤 시간 속에서 내가 경험한 미륵사지와는 다른 미륵사지에 있었다. 미륵사지가 등장하는 소설을 내가 미륵사지를 몰랐던 기간 동안 천천히 써나갔을 것이다. 시간이 마술을 부린다면 그것은 시간이 동시성과 다질성을 향해 개방되어 있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유적지로 지정되기 전 폐사지가 된 미륵사지 절터에 구르던 석재들은 절터 주변의 민가로 나누어졌다고 했다. 사람들은 폐허가 된 미륵사지에 널려 있는 흩어진 옛 석재나 부서진 반석을 주워 집의 주춧돌이나 담장의 받침돌로 사용했다. 미륵사지 안쪽의 부지에는 미륵사지에 발굴된 석탑의 부속물이나 건물 초석, 석등과 당간지주에 놓였던 부재 등등의 석조물이 일렬로 전시되어 있다. 잿빛으로 마모된 바위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이 석조물이라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는데, 마치 어디에나 있는 큼지막한 바위들을 모아놓은 듯했다. 나는 돌덩이와 돌덩이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 촬영을 마치고 미륵사지를 나온 더위 먹은 탑들은 편의점에 들러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샀다. 넋이 나가 그윽하게 변했던 눈빛들에 생기가 되돌아왔다. 탑들은 이제 보은에 있는 속리중학교로 이동해야 했다. 그곳은 폐교이자 민병훈 탑의 고향, 역시 내가 없었던 장소에서 민병훈 탑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속리산 자락에 있었다.
꿈의 수집
음악을 만드는 Goat the funky와 영화를 만드는 김지환, 소설을 만드는 민병훈, 양선형, 최영건, 허희정. 여섯 사람이 모여 일곱 장소를 표류합니다. 먼저 출발한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새로 출발한 사람들이 다시 따라 걷습니다. 이로써 ‘꿈의 수집’은 ‘장소와 장소’ ‘장소와 개인’ ‘개인과 개인’이라는 세 가지 관계의 꿈을 읽어내보려 합니다.
2019/11/26
24호
- 1
- 보아의 〈No.1〉 중에서.
- 2
- 영상 속 음악은 이적의 〈어느 날〉(feat. 김윤아)이다. 인용한 소리는 모두 Youtube에서 찾아 들을 수 있다. Free sound effect pack(Roller coaster sound), 불금 롯데월드 데이트 백색소음 ASMR, ASMR 공부할 때 듣는 메리고라운드-회전목마, 에버랜드 후룸라이드, 올림픽공원 놀이터 아이들 소리 백색소음, 시원하게 비오는 소리 빗소리 등이다.
- 3
- 자우림의 〈낙화〉 중에서.
- 4
- 인용한 소설은 최영건의 「물결벌레」(『수초 수조』, 민음사, 2019)이고, 인용한 영화는 장률 감독의 〈이리〉(200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