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의 온도
7화(최종화) 2도, 참회록
‘막말의 온도’ 마지막 화는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대담 형태로 진행되었다. 집필자 두 사람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의 〈강박²〉전을 관람하고 나온 참이었다. 평소 다양한 강박증에 시달려온 터라 둘 다 전시 주제에 꽂혔으나, 막상 관람하면서는 공간의 시각화와 음성화, 물성화를 사차원적으로 제시한 첨단의 전시 형태에 감탄하게 되었다. 기대와 실제를 논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의 미흡함과 헛발질이 투영되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과 목표가 글화(化)하면서 휘발되고 타협된 지점들에 대한 아쉬움이 터져나왔다.
고라 : 애초에 카테고리나 바운더리에 대한 고민을 더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아. 막말이라는 대명제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소용돌이쳤잖아. 혐오 표현, 사실 왜곡, 욕설, 비속어, 차별, 비하, 통념, 심지어 침묵까지…… 그 결이나 발화 양상, 특성이 제각각 고유한데 ‘막말’이라는 대명제와 ‘온도’라는 컨셉추얼한 척도 안에 넣고 한정된 지면 안에서 완성도 있게 쓰려다보니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 되었지. 한 편 한 편 쓰는 게 너무 어렵고 무거웠어.
재영 : 어렵더라도 취재하면 닿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어. 픽션을 동원하지 않으면 막말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랄까. 막말이 발생하는 현장에 진입하기도 힘들었고. 그러다보니 ‘취재형’보다는 ‘픽션형’ 글쓰기가 된 거 같아. 야생동물을 허술한 케이지 안에 억지로 집어넣은 것 같아서 불안했어.
고라 : 처음에는 단순히 주변에서 막말을 수집하고 전시하려는 의도였잖아. 그 의도를 글로 쓰기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생겼지. 맥락을 보여주지 않고는 막말을 그냥 제시할 수 없었던 거야.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깔려 있어야만 막말이 기능했으니까. 막말의 발화 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서사가 개입된 거지.
재영 : 확실히 ‘쓰기’라는 건 어떤 종류의 규정을 전제하는 부분이 있어서 더 헤맸어. 고민 과정을 보여주더라도 반복이나 답습, 단순한 거울상이 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심했지.
고라 : 카테고리를 ‘공간’으로 나누어 막말을 제시하면서 또 한 번 벽에 부딪혔던 것 같아. 내가 중점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걸 임팩트 있게 노출하고 싶었는데, 동시에 언어의 초월성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 거지.
재영 : (공기청정기를 바라보며) 그 장벽에 필터를 단 셈이랄까. 언어 필터가 지면 위에서는 또 맹렬히 돌아가더라.
고라 : 나는 두 가지 작업을 못 해본 게 아쉬워. 하나는 사회적 통념이나 인식과 맞닿아서 신조어가 된 막말들을 아카이빙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어. ‘빻다’ 같은 표현이 젊은 세대의 일상이나 웹 공간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데, 실은 비하 언어잖아. 용어 자체는 사투리에서 왔지만 비하어로 쓰이다가 미러링되면서 전복된 흐름도 있고. 말이라는 게 계속 생겨나고 변화하고 활용되면서 사회상을 반영하고 사용자들의 인식에 남기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지점을 살피지 못한 게 아쉬워. 말의 현장성이라는 측면에서 발생 지점과 시점, 활용 형태 등 쓰임과 용법에 대해서만 다루어도 충분한 작업이 되었을 텐데.
두번째로는 ‘대항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해보지 못한 게 아쉬워. 가령 막말하는 남성을 보면, 남성 권력이나 가부장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과 겹쳐 보일 때가 많아. 화가 차오르면서 바로 깔아뭉개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지. 그럴 때 발화되는 언어에 주목하고 싶었어. 얼마 전에 마마무의 〈HIP〉을 들었는데 ‘세상에 넌 하나뿐인걸 근데 왜 이래 네 얼굴에 침 뱉니 칵 퉤’라고 침 뱉는 구절이 인상적이었거든. 그런 식으로 특히 여성이나 소수자 집단에서 발화되는 ‘대항의 언어’도 막말의 영역에는 들어가니까. 하지만 그런 언어는 더 발화되고 분화되어야 할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나도 가끔 다 뱉어버리고 싶거든.
재영 : 맞아. 막말은 묵인과 방관에 의해서도 고착화되니까. 막말에 대항하는 언어는 장려해야 하는데 말이야.
고라 : 말의 주체성을 뺏어오는 거지. 가해의 말을 전복하고 지우는 방식이라고 생각해. 공동체에서 혐오 표현의 가해자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아 피해자에게 더 대주는 거지. 그게 정서적·체력적으로도 힘들어. 말이란 게 할수록 어렵잖아. 후폭풍이 밀려오기도 하고.
재영 :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공부도 해야 하고. 대항 언어가 다른 소수자 집단에 대한 막말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사실 이걸 분별하는 건 조금 나중의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해. 물론 조심은 해야겠지. 그렇지만 일상에서 라디오처럼 흘러나오는 막말의 주파수가 너무 방대하잖아. 그 주파수를 차단하는 게 시급한 일 같아.
고라 : ‘막말의 온도’를 쓸 때 온갖 방식으로 막말을 수집했잖아. 수집해놓은 말을 며칠 지나서 보면 어지간한 말은 막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 잠깐 사이에도 둔감해지더라고. 말이 넘쳐나는 일상에서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나만 힘들어지니까. 그러다보니 고작 그런 막말 한 구절을 보여준다고 해서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는 거야.
재영 : 반대되는 경우도 있잖아. 너무 험하고 더러워서 여기서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여기서 떠들 필요가 있을까 싶을 때.
고라 : 읽는 사람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고.
재영 : 그러다보니 맥락을 만들고.
고라 : 서사를 마련했지.
재영 : 소설 쓸 때와 비슷했던 거 같아.
고라 : 일종의 윤리가 아닌가 싶어. 이 세계가 개인을 납작하게 만드는 것처럼, 막말이 생성되고 살아 있게 되는 과정을 담아야겠다는 의무가 생겼달까. 그 지점이 앞서 말한 작업을 가로막은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해. 너무 기의에 집중한 게 아닌가 싶어서. 이제는 기표로서의 막말을 들여다보고 싶어.
재영 : 위키의 형식을 차용해서 다뤘으면 어땠을까. 웹 사이트별로 쓰는 언어들도 다양하잖아. ‘존버’처럼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용어들이 수용된 사례가 점차 많아지기도 하고.
고라 : 말이란 건 변화가 빠르잖아. 지금 90년대 드라마를 다시 보면 어색하게 들리는 대사들이 많더라고. 현장에서 말을 길어올릴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문자와는 다른 측면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둘 다 문자를 다루는 사람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빠져버린 거지. 그래서 발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을 뱉게 된 사고 체계를 따라가다가 사로잡힌 느낌이야. 처음 우리가 기획한 건 그 지점만은 아니었잖아. 발화되는 순간 자체였는데 말이야. 이 실패를 가져가서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재영 : 흔히 말은 고칠 수 없다고 하잖아. ‘막말의 온도’에서 고칠 수 없음에 도전했어야 하는데 그 고칠 수 없음이 무서웠던 거 같아. 그런 관점에서 이 글의 제목은 참회록으로 하고, 이제 서로에게 내뱉었던 막말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녹음을 종료한다.)
일단공작단
유재영은 소설을 쓰고, 최고라는 책을 만듭니다. 서로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는 상대입니다. 대개는 다정한 말로 서로에게 온기를 전달하지만, 이따금 차갑거나 뜨거운 말을 던져 파문을 일으킵니다.
2020/02/25
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