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to X
5화(최종화) 4인용 테이블
A와 세 명의 독자가 4인용의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그 모습은 너무 선명해서 정말로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Z 언니를 소개하고, 웃거나 울며 오랜 시간을 보낸 것만 같다. 「큰 개」로 만난 우리는, ‘Z 언니’라는 고유명사를 만들고,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로에게 곁을 내주는 데 서슴없었다.
우리가 만들었던 둥근 공동체가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궁금했다. 한 사람의 글에 수많은 얼굴이 따라오고, 그렇게 과거의 상실을 직면하고, 다시 그것을 발화하며 위로하는 일이란, 어떤 마음을 동원해야 하는 걸까. A는 글쓰기를 투쟁이라 불렀고, 독자들은 투쟁에 동참했다. 정성 들여 A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끝까지 내보냈다. 상실과 그리움, 사랑과 미움이 복잡하게 얽힌 큰 개가 우리의 투쟁을, 우리가 마주 앉은 테이블을 지켰던 거 같다. 한 독자는, 이 만남이 시간이 지나 반드시 선물처럼 기억될 것이라고, 힘이 될 것이라고, 미래를 내다본 듯 힘주어 확신했다. 그들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는 감각으로, 쭉, 읽어주시길.
X1, “애도의 에너지를 믿고, 애도가 저를 살게 한다고 생각해요.”
A의 「큰 개」는 어떤 결기가 느껴지는 시예요. ‘큰 개’는 그 두 사람을 ‘잃어버린 뒤에 남겨진 막막한 감정’ 같기도 하고 또 그 ‘잃음’ 자체 같기도 해요. 큰 개만큼이나 선명하고, “서로를 평생 미워할” 만큼 끈질긴 잃음. 그 잃음에 대해 화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인 Z 언니는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다른 곳에 있어서 화자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요. 그 때문에 화자는 내내 앓죠. 하지만 큰 개와 “서로를 평생 미워”한다는 말은 한편으론 그 잃음을 내 곁에 두겠다는 다짐으로 읽히기도 해요. 큰 개를 끌어안겠다, 나의 평안과 불화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 큰 개를 내 몫을 다해 곁에 두겠다는 다짐 말이죠. 비애와 결기를 함께 감각한 이유에요.
―Z 언니에게 시를 보내는 게 좋을까요?
받고 싶을 거 같아요. Z 언니의 꿈에도 화자에게서 받은 어떤 물건이나 인상이 변형되어서 나올 거 같아요. ‘너도 아직 나를 놓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고마운 감정. 아니면 ‘나는 다 기억하고 있는데, 너는 왜 나를 무심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니?’ 하는 항변의 심정. 그리고 “내가 큰 개라도 나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거”라는 부분에 대해, ‘그렇지 않아.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너는 누군가를 곁에 있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야.’라고 할 거 같아요.
―A에게 어떤 시간이나 장면을 선물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이나 장면을 구체적이고 상상 가능한 것으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관계를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시가 하나의 편지로 가 닿길 바라는 A의 마음을 응원하고 싶어요. A에게 제가 술 한 잔 사면 좋겠어요.
X2, “제가 늙으면 ‘내가 떠나보낸 사람들’이라는 긴 목록을 가지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어요.”
저도 「큰 개」에서처럼 이런 꿈을 많이 꿔요. 떠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꿈에서 과거의 저와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노는데, 현실의 시간은 몇 년이나 흘러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현실이 꿈같다는 생각도 해요. 영혼을 나눴다고 생각한 그 사람이 언젠가 제게 실망해서 떠날 거 같아요. 자신이 없어요. 그런 감각이 저와 화자의 비슷한 감각인 거 같아요.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그 사람이 저를 마음에 안 들어 할 때, 자괴감이 들고, 자신이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개를 맡긴 사람을 찾아가지만, 기억도 안 나고, 나는 나를 싫어하는 큰 개랑 계속 살아야 하죠. 큰 개도 나도 서로로 인해 돌아갈 곳을 잃은 거 같아요.
저에게 주기별로 시집을 선물하던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허수경의 시집도 줬죠. 저는 소설만 읽고 소설만 썼는데, 그 친구를 만난 이후로 시를 읽고 시를 썼죠. 어쩌면 저의 시 선생님인 거 같아요. 그 친구는 가끔 마음이 아주 힘들어질 때가 있는데요, 그렇다고 그걸 표현하거나,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아서 저는 다가가지 못했어요. 관계가 확 밀착되지 않고 적정한 선에서 유지되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새롭고 좋으면서도, 가끔 이 친구가 말없이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해요. 그러면 친구가 준 시집들만 큰 개처럼 남겠죠. 우리 오래 같이 살자고 말하지만 저는 아직 의심을 놓을 수가 없어요.
―Z 언니에게 시를 보내는 게 좋을까요?
좋을 거 같아요. 시를 보내면 혼자만의 그리움으로 남지는 않을 테니까요. 제가 이 시를 받는다면, 다시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을 거 같아요. 아니면 저도 시를 쓰겠죠. 괜찮다면 만나서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을 거 같아요. 어떻게 지냈는지도 물어보고 싶고요.
―A에게 어떤 시간이나 장면을 선물할 수 있다면?
퀸 사이즈 침대와 따뜻한 이불이 떠오르네요. 저는 누군가를 잃어서 슬플 때, 큰 침대에서 하루 종일 잠을 자고 나면 좀 괜찮았던 거 같아요. 꿈을 실컷 꾸고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서 언젠가 Z 언니를 만나러 갔으면 좋겠어요.
X3, “언젠가 Z 언니가 Z 언니가 아니게 될 거에요.”
너무나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제 마음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줬어요. 분노인 줄 몰랐던 걸 분노라는 걸 알게 해주고, 대신 화를 내주기도 했어요. 나보다 나를 더 잘 언어화해준 사람. 하지만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힘들까봐 자기의 힘듦은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다른 사람의 힘든 상황을 항상 함께 겪어야 했지만,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말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아픔이기도 했다는 걸 알고 나서, 자신이 아팠던 것과 이해할 수 없던 걸 글로 남기고 떠났어요. 떠난다는 건 떠나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고통이고, 이별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도망가는 게 아니에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테고, 그래서 아프지만, 한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인 거 같아요.
제가 Z 언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Z 언니가 저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담이 되고 싶지 않고, 그러나 곁에 있다는 느낌은 받고 싶고, 그래서 말을 삼키고, 조절하고.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지 않았을까요. 화자도 Z 언니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 좋겠어요. 그걸 몰라서 Z 언니가 더 Z 언니처럼 느껴지는 거죠.
―Z 언니에게 시를 보내는 게 좋을까요?
절대 말릴 거예요. Z 언니가 너무 힘들 거예요. 언젠가 떠나온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때를 떠올리는 게 쉬워지겠지만요. 사실 괜찮아지지도 않고 그냥 묻어두면 좋겠어요. 안 보내고 계속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큰 개를 데리고 사는 게 원동력이 되니까요. 더 안 쓰고 싶을 때까지 써보라고 하고 싶죠.
―A에게 어떤 시간이나 장면을 선물할 수 있다면?
또다른 Z언니를 만나게 하고 싶어요. 그 경험을 하지 못하면 누군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결핍이 계속될 거 같아요. 제가 Z 언니에 이입할 수 있는 건 제가 동경하는 사람의 세계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세계에 들어오면 좋아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멀리서, 어디서든 평안하길 바랄 거 같은데, 화자는 첫사랑을 붙들고 있는 느낌이에요. 근데 모든 첫사랑이 그렇듯 그 안에는 같은 아픔, 좋음이 있잖아요. 언젠가 두 사람이 만나는 때가 오겠죠? 그래서 우리는 같은 세계에 살았다는 걸, 비슷한 힘듦이 있었다는 걸 알면 덜 힘들지 않을까요.
and A
A에게 두꺼운 답장을 전했다. 답장을 읽는 A를 지켜보며 그 마음을 상상했다. 마음과 마음이 섞이는 장면을 떠올리며 괜히 내 마음이 한껏 부풀어오르는 거 같았다. A가 혹시 울지 않을까 싶었다. 내게 그 장면은 언제나 조마조마했고 결국은 울고 마는 심정이었던 거 같다.
―세 명의 독자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어떠신가요?
X1은 저와 완전히 똑같은 경험 없이도 가까이서 굉장히 마음을 많이 써서 읽어주신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이입하는 마음이 같이 슬퍼지지는 않았을까, 걱정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결기가 느껴진다고 하셨는데, 제 시에는 늘 약간의 결기가 있어요. 그 마음의 복잡함과 그리움이나 상실에 대해 풍요롭게 읽어주셔서 좋았습니다. X1은 저를 많이 걱정하고, 제가 괜찮지 않을 거라 생각하신 거 같아요. 너무 걱정 말라고 답하고 싶어요. 극복한다!
X2는 제 시와 본인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오가며 읽어주셔서 연결된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기뻐요. 마음을 시로 쓰고 나면, ‘이 구절은 이런 뜻이에요’ 하고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쓰고 나서 다시 들여다보면서 왜 이렇게 썼을까 헤아려요. 본인만의 맥락으로 읽어주셔서 고마움이 커요. 누가 그렇게 읽었다고 하면 그렇구나, 해요. 꿈이잖아요. 꿈을 장악할 수는 없으니까요.
X3의 글은 Z 언니가 받아야 할 거 같기도 해요. 저도 Z 언니일 수 있다는 걸 알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알고 있어요. 실은 편지도 보내지 말고 Z 언니를 떠나보내라는 건 제 생각이기도 해요. 어쩌면 X3 하고 제가 제일 비슷한 사람일 것 같기도 해요. ‘절 이해해줘야지, Z 언니 편을 들다니’ 하고 약간 서운하기도 했는데 저의 본체와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에요. 다만, Z 언니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 마시라.
편지는 부치지 않는 게 좋겠네요. X3의 말을 수용할게요. 언젠가 차 마시고 밥 먹으며 편하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는 시는 계속 쓰지 않을까 싶어요. Z 언니한테는 일단은 마음이 풀어졌어요. 언니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고.,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고요. 저도 잘 지내야겠죠.
―선물은 어떤가요?
저를 생각하며 세 분이 함께 얘기한 시간과 장면, 잘 받았어요. “술 한 잔” 사주신다고요? 그럼요. 콜입니다. 상실과 마음이 아픈 과정을 절절하게 알고 계신 거 같아요. 그런 용기를 내는 일은 저에게 두렵고 어려운 일인데요, 저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리고 “퀸사이즈 침대와 따뜻한 이불”도 주셨지요. 실은 저는 꿈자리가 많이 사나워요. 좋은 데서 자도 슬프기는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음이 안 좋은 일들 때문에 마음을 닫거나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열어두는 것. 용기를 내는 것. 그게 제가 더 해야 하는 일 같아요. X2의 꿈에도 그리운 사람이 나온다고 하셨는데, 퀸 사이즈 침대를 X2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X3는 “또다른 z언니”를 말하셨죠. 선물을 받는 형태로 Z 언니와의 관계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아요. Z 언니에 대해 절반은 환상이겠지만, 절반은 현실감 있게 이해하고 있어요. Z 언니는 한편으로는 단순하고 웃긴 사람이에요. 그런 면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다만 조언해주신 것처럼, 같이 시도 쓰며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또다른 친구가 생기면 사이좋게 지내보겠습니다.
X가 이렇게 제 마음을 알아줄 줄은 몰랐어요. 시가 굉장히 좋은 장르라거나, 문학에 어떤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X의 진심 덕분이라고 느껴지고요. 알아봐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진실한 것이 가능한데, 신춘문예가 부질없는 것만 같아요. 그런 제도는 많이 읽힐 기회를 주니까, 그 기회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신춘문예에 시를 보낼 때면 최선을 다해 썼단 말이죠. 그런데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평가받는 자리에 시를 보내는 동안은 나를 다해 쓰기가 불가능하고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모든 과정에서 소진된 거예요. 신춘문예에 보내도, 신문에 실려도, 많은 독자를 만날 기회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나를 알아주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쓸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온 마음을 다하고, 성가신 생각을 지우고, 편지를 쓰듯 써보는 것. ‘사실은 그게 맞구나’ 하고.
A는 단정하고 단순한 해답을 찾았다. 글을 쓰며 마음을 밀고 나가기란 언제나 난처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일 테지만, A는 편지를 쓰듯 그 일을 해나갈 거 같았다. 편지의 문법은 안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해, 수신인의 안녕을 기원하고, 추신으로 애정을 보태는 법이었다. A는 수신인의 마음과 A의 마음을 섞고 부비며 마음을 키울 거처럼 보였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from A to X의 긴 인터뷰가 끝났다. 문학을 ‘하는’ 일은 여러 층위의 슬픔에서 공전하는 일이었다. 글을 읽는 것으로 배반당했고, 글을 쓰는 일로는 죄를 지었다. 문학을 하고 있어요, 라는 말은 주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래서 뭘 어쩐다고?’ 하는 질문이 당연한 장르였다. 사람들은 모두 좋은 이야기를 바라고 있다는데, 내 이야기는 어디에 닿아서 그 좋다는 것을 해낼 것인지 확답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다들 쓰고 있었다. 때로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나의 이야기를 알아차려준다면, 다음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from A to X는 어쩌면 그런 작은 바람에서 시작했던 것일지 모른다. 단 한 사람의 답장이 또다른 단 한 사람을 쓰게 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A와 X는 답해주었다. 문학을 하는 일은 여러 층위의 슬픔에서 ‘공전’하는 일이었다. 나뿐이었던 것이 아니다. 함께 슬픔의 세계를 헤매고 마음껏 침잠하다 말갛게 떠오를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매번 어지러웠다. 엄청난 말들이었다. 한 문장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고 싶었다. 말들이 여전히 내 몸 구석구석을 풍요롭게 떠다닌다. 실은 지워진 문장은 없다. 마음에 새긴 문장만 있다.
-나래의 에필로그
A가 글을 쓴다. 독자를 원한다. 두 문장 사이에는 모호한 선택지가 무수하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 어디쯤을 하염없이 빙글빙글 맴돌던 A가 무심코 툭 부딪친 곳에 우리가 있길 바란다. 작은 들꽃이길 바라지만 돌부리나 개똥일 수도 있겠지.
이름 없는 당신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말하면 A는 믿지 못할 테지만,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며 당신이 여전히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빙글빙글. A는 불확정적인 것들을 의심하거나 이유 없이 기대하며 빙글빙글 글을 쓴다. 그러다 또다시 우리와 만나면, 우리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문법에 기대어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을까.
나는 조금씩 더 선명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발견하는 중이다. 글을 쓰고 읽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이 작고 단단한 공동체 안에서 커지고 선해진다. 자꾸만 그들에게 관여하고 싶다. A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에게 뭐라도 쥐여주고 싶다. X가 궁금해할 것을 나 또한 궁금해한다. A와 X 사이의 비밀스러운 감정의 곡예 또는 시시한 투닥거림 같은 것을 기대한다. 거창한 의제와 이름을 내거는 데에는 자신이 없다. 대신 개인적이고 엷은 이야기들을 듣고 옮기는 것으로, 계속해보겠다.
근사(나래)
나래. 나은. 지원. 같은 학교에서 같은 허기를 느낀 세 사람이 작당 모의합니다. 냉소와 조롱과 뒷담화보다 근사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쓰고 읽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문학 ‘하는’ 우리를 위해 움직입니다.
2020/03/31
28호
- 1
- 나은, 지원과 함께 ‘from A to X’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미처 전하지 못한 인사말을 이번 화 마지막에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