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같은 인물이 설 자리


   나1)는 태도가 조심스럽고, 말투는 조곤조곤하고, 목소리가 새된 사람이다. 가끔 격앙되면 말이 많아지고, 그럴 땐 말이 더 빨라지고, 어조가 다양해지면서 훨씬 극적이고 활력을 띠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어렸을 때 ‘너 게이냐?’라고 많이 놀림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나 스스로를 퀴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놀랐었다. 내가 너무 티를 냈나 자기검열도 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 공부도 하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서 스스로의 이런 특징들을 더 사랑하게 됐다. 친구들이 애정을 담아 나를 ‘걸어다니는 커밍아웃’의 줄임말인 ‘걸커’로 부르기도 했는데, 그게 꽤 정감가게 들렸다. 나는 나의 이런 면모를 닮은 캐릭터를 극에 쓰고 싶었다. 퀴어의 재현이 꼭 사랑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내 경우는 퀴어인 인물이 스스로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 그래서 보다 사랑스럽고 당당하게 느껴지도록 그린 극을 쓰리라 계획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그런 작품이 별로 없었지 않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한 희극을 쓰면서 그 안의 남성 퀴어 인물을 ‘걸커’ 캐릭터로 설정했다. 내 극본을 동료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날, 그 캐릭터에 대해 논의가 오갔다. 내가 ‘걸커’ 캐릭터를 설정한 까닭과 의미를 설명하자, 해당 역할을 맡은 배우 A가 그런 방식의 인물 표현은 좀 혐오적인 표현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했다. 다른 동료도 예컨대, 게이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굳이 목소리를 다르게 내는 등 ‘과장된’ 모사를 하는 시도가 자칫 혐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듣다보니 납득이 가기도 했다. 희극은 사람들이 웃을 준비를 하고 보러 오곤 한다. 내 본의와는 다르게 관객들이 그가 나올 때마다 웃을 수 있고, 그것은 퀴어 관객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결국 그 인물은 점잖은 말투를 구사하는 것으로 수정되어 무대에 올랐다. 내 초고가 수정됐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애정을 담아 만든(실제 나의 면을 닮은) 인물의 말투가 ‘과장된’ 말투라고 지칭된 일이 더 오래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2. 그래서 당신은 어떤 인물을 원하시나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 좀더 자세히 의견을 나눠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동료들과 내가 생각하는 ‘걸커’의 상(想)이 달랐을 수도 있는데, 내가 쓴 표현이 ‘혐오적’이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논의를 멈췄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거 나 아냐’ 프로젝트를 기회로 당시 남성 퀴어 인물을 맡았던 배우 A와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창작집단 담은 배우 A를 2020년 6월 4일, 연희문학창작촌의 공유회의실에서 다시 만났다. 그에게 ‘맡고 싶은 퀴어 역할’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이 배우에겐 딱히 ‘퀴어 인물이라서 더 연기하고 싶은 욕망’ 자체가 없었다. 애초에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퀴어 인물을 꼭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이 있을 거라고 전제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인터뷰 내내 내가 ‘퀴어 인물을 표현하는 데 이런 지점은 좋을 것 같나요, 불편하신가요?’ 물어보면 배우가 ‘특별한 선호나 편견은 없다’고 대답해주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다행히 인터뷰 과정 중 내 눈에 들어온 독특한 지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우리 모두가 남성 퀴어의 재현을 ‘자연스러운 것’과 ‘과장된 것’으로 이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배우 A
퀴어를 소재로 한 연극들을 몇 편 본 적이 있어요. 〈거미 여인의 키스〉 〈까사 발렌티나〉 〈프라이드〉 등을 봤어요.
   담
〈쓰릴 미〉도 보셨을까요?
   배우 A
아, 〈쓰릴 미〉는 연기해보고 싶어요. ‘이건 문제야, 너희 정신 차려!’ 하는 식으로 강하거나 과장하여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뭐 어때, 자연스러운 거야.’ 하고 관객에게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서요. 아무튼 그런 공연들을 보고 나서, 드라마가 있는, 즉 이야기가 있는 극 속의 역할을 맡는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담
인물의 퀴어성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 A
그렇죠.
   담
인물이 퀴어성을 가지고 있지만……
   배우 A
퀴어성이 엄청나게 부각이 되지 않는 쪽이요.
   담
인물의 드라마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시는군요.
   배우 A
네, 말하자면 인물이 자연스럽게 ‘내 애인이야. 인사 해.’ 하고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이 드는 쪽이요.

   우리는 다양한 맥락의 ‘자연스러움’을 함께 이야기했다. 문제의식을 전면적으로 부각하는 연극보다는 당연한 광경이라는 듯 장면을 제시하는 연극이 ‘자연스럽다’는 의견이 있었다. 후자의 경우가 “드라마가 있는” 연극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드라마가 있는’ 연극은 다시 “퀴어성이 가장 중요한” 연극과는 반대편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가 흘렀다. 배우 A 역시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극과 “퀴어성이 엄청나게 부각”되는 연극을 구분하여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인터뷰 말미에 나는 연극 〈거미 여인의 키스〉를 예로 이런 분류 기준에 의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내 생각에 이 연극은 퀴어 서사를 다룰 때 당연한 광경이라는 듯 장면을 제시하는 연극이지만, 딱히 덤덤한 말투로 사랑하는 대상을 밝히는 연극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 잘라 어느 쪽이라고 구분하기 힘든 면을 가진 작품이라는 생각이었다. 각자의 입장이 달라서 더 질문을 이어가며 논의해보면 좋았겠지만, 인터뷰 시간을 무한정 가질 수 없어 자리를 마무리하였다.


   3. 다시 무대에 설 ‘나’를 그리며


   인터뷰가 끝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걸커’ 캐릭터가 무대에 오르지 못한 까닭은, ‘자연스러움’에 대한 기준이 저마다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애초에 ‘자연스러움’이란 어떤 분야에서건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결정되는 가치다.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보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이 있을 때, 그 대상은 곧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자연스럽거나 과도한 존재란 없지 않은가.
   젠더를 쉽게 이분해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이 사회에서 작가는 어떤 인물을 무대에 세울 것인가. 나는 결국 누군가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과장이 아닌 캐릭터를 밀고 나가보기로 했다. 이왕이면 애정 서사와는 별개로,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뤄보리라. 또 말투의 문제를 피해가고서는 의미가 닿지 않는 이야기를 쓸 것이다. 모놀로그를 놓고 서로의 해석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배우와의 대화를 다시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




창작집단 담

구하나, 박주영, 서동민. 세 명의 극작가가 담에 모였습니다. 담담하게 다음을 도모합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담.

2020/07/28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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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창작집단 담의 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