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당이 사라진 용산에서


   용산역에서 내려 신용산까지 천천히 걸었다. 주변이 싹 정비되어 있어 옛 남일당 터를 찾기 어려웠다. 지도를 보며 이쪽이 맞는지, 저쪽이 맞는지 한참을 헤매다 겨우 남일당 터를 찾았다. 남일당 빈터에 세워진 센트럴파크 헤링턴스퀘어는 준공을 거의 끝마친 상태였고, 단지 내 예술품 인양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양 작업을 지켜보다 근처 카페로 들어가 김연수의 「동욱」을 펼쳤다.

센트럴파크 헤링턴스퀘어에 한창 설치 중인 예술품.

   김연수의 「동욱」 속 ‘동욱’은 청소년 방화범으로 구치소에 수감된다. 매체에서는 중학생이 밖에서 자물쇠를 걸어 잠근 뒤, 부랑자 세 사람이 자는 빈집에 불은 지른 사건’이라며 동욱을 ‘방화광’으로 단정짓지만, 동욱의 담임교사인 ‘나’는 이 사건이 석연치 않고, 그 이면을 계속해 파고 든다.
   불길, 속죄, 뉴타운 같은 단어 때문에 여지없이 2009년 1월 20일 일어난 ‘용산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불이 처음 타오르기 시작한 건 경찰서로 가서 그 아이를 만났을 때였다. 동욱은 너무나 태평한 얼굴로, 마치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난 일요일 아침의 소년처럼, 만사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경찰서 면회실로 들어왔다.1)

   
해나 : ‘용산참사’를 기저에 깔고 진행되는 소설인지라 작가의 전작 「당신들 모두가 서른이 됐을 때」
2)
의 연장선처럼 여겨졌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작가가 쓴 소설에 드러나 있듯 김연수는 용산에 큰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동욱」은 감정의 지층이 겹겹이 쌓인 소설이다. 남편, 나, 민희, 동욱까지. 네 사람의 이야기가 맞물리고 이어지기에 단편으로 맺기엔 너무 짧은 듯하다.

   정아 : 건축이 좋아서 이쪽으로 진로를 정했지만, 소설 속 상황과 같이 원주민과 개발자들 사이의 갈등 끝에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볼 때면 마음이 무겁다. 소설 역시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동욱의 담임이지만 동욱의 사정은 몰랐던, 어찌 보면 순진한 주인공의 모습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이입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시선에서 본 타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잘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남일당 건물은 7년간 주차장으로 방치되어 있다가 2016년 4월, ‘용산4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이 통과되면서, 주거 및 공원지구로 재건축되었다.
   용산역 야외 광장에서 서면 남일당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이곳을 수없이 지나오며 한 번도 남일당 빈터를 주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못내 죄스럽고 안타까웠다.

공사가 한창인 남일당 터에 남아 있던 벽화들.

   
해나 : 죽음과 관련된 사건은 누군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은 항상 약자가 지게 되는 것 같다. 정부와 언론은 그것을 주도하고. 실제로 용산참사가 일어난 직후, 당시 정부에서는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을 적극 보도하도록 해 참사를 무마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정아 :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인해 사상자가 여럿 발생하였음에도,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정부도 언론도 비껴가기 바빴다고 볼 수 있다.

   해나 : 「동욱」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떠한가.

   정아 : 소설에서도 경찰은 동욱이 범죄 현장 근처에서 자꾸 발견됐다고 하지만, 정말 동욱이 무슨 의도로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모르지 않나. 세 명의 부랑자가 죽은 것에 대해서도 경찰의 사실관계 발표만 있었고, 동욱은 범죄에 대해 입장을 밝힌 적이 없었다.

   해나 : 맞다.

   정아 : 만약 동욱이 범인이었을 경우, 동욱이 지었던 태연한 표정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복수를 끝내서 다 내려놓은 태도인지, 또다른 감정인지 알 수 없다. 동욱의 감정에 대한 묘사를 의도적으로 생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허가 된 그 동네 앞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나의 이런 무기력 위에 뉴타운은, 신도시는, 새로운 세상은 건설된 터였다.3)

2020년 8월 완공을 앞두고 있는 용산 재개발 4구역. 현재 남일당이 있던 자리에 고층업무시설이 자리잡았다. 그 뒤로 10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정아 : 도시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해나 : 처음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 몇 살이었나.

   정아 : 2009년 1월 20일이니까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이었다. 사실 그 당시의 기억은 별로 없다. 나중에서야 좀 자세하게 알게 됐다.

   해나 : 나는 그 당시 속보가 기억난다. 신문에 불탄 남일당 건물이 실렸고, 그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 아무래도 나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던 청소년이어서 충격이 배가되었던 것 같다.

   정아 : 어떤 면에서?

   해나 : 아무래도 지방에 사는 이들은 재개발이란 시스템에 익숙하진 않다.

   정아 : 동의한다. 나도 지방에서 살 때는 재개발의 어두운 면을 잘 몰랐다. 사실 재개발을 하면 원주민에 대한 보상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 심각성을 느꼈다. 이게 사람이 죽을만한 일인가.

   해나 : 나 역시 언니와 같은 입장이었다. 지방 사람들은 보통 그 한 지역에 터를 내리고 정주한다. 나 또한 기숙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한 집에서 17년간 살았다. 그렇기에 왜 재개발 지역 거주민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정아 : 맞다. 서울에 살기 시작한 후에는 어땠나?

   해나 : 서울에 살면서부터는 주기적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고,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삶을 영위하기 어려웠다. 살던 집이 계약 종료 후 삽시간에 재건축된 경우도, 재건축 반대 시위 현장을 지난 적도 왕왕 있었다. 지방에선 좀처럼 겪지 못한 위협과 갈등을 도시에 살며 몸소 느낀 것 같다.

2009년 1월 20일, 참사가 일어난 용산 남일당의 당시 모습. 이 참사로 인해 철거민 2명, 전철연회원 3명,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출처: 경향신문)

   
정아 : 도시재생에 대해 찾아봤다. 도시재생법에 따르면 그 안에 재건축, 뉴타운 사업,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4구역의 도시환경 정비사업이 포함돼 있더라. 도시재생이라는 게 원래는 도시를 좀더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한 취지의 사업이지 않나.

   해나 : 누가 살기 좋은 것인가. 과연 누구의 편의를 헤아리고 있느냐는 의심이 든다.

   정아 : 나는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재생과 개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다만 구체적인 기준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고 개발에서 수익을 많이 얻다보니 그 균형이 쉽게 깨진다. 이번 정부에서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재건축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도 미미하고, 주민들의 참여가 있어야 하고,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해서 더 까다롭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부작용도 있고.

   해나 : 나는 지금의 도시는 재생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는 이익과 권력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다.

   정아 : 사실 재생사업조차도 권력을 쥔 몇몇 특정인들이 보이지 않게 주도한다는 생각이 든다.

   해나 : 용산참사가 그 반증인 거 같다. 우리는 살면서 이면을 의심만 할 뿐인데, 참사를 계기로 바깥으로 튕겨나온 진실을 알게 되는 거다.

   정아 :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겠지만, 이제는 이런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나 : 우리 세대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게 서글프다. 이런 사건이 반복됐을 때, 그 이후 대처가 중요한 것 같다. 용산참사는 아직도 미해결된 부분이 너무 많다.

   정아 : 맞다. 잘 치료를 하는 게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방안이 될 것이다.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어쩌면 속죄와 정화의 연소일지도 모를, 외로운 불. 이제 그 불은 내 안에서, 관계의 불이 되어,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그 불은 꺼지지 않으리라.4)

   
해나 : 용산참사 당시 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작년 기자회견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같은 결정을 할 것’
5)
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과잉진압을 불법행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책임을 질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고통 받는 사람은 늘 희생자여야 하는지, 괴로워진다. 희생자 중에는 남일당 세입자가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전철연 회원도 있고.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이 아닌데 그분들이 여전히 고통은 받는 이유는 당시 대처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대에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정아 :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 일어난 과잉진압이었다. 다른 사례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하려 했는지 드러난다. 그럼에도 당시 정부는 대처랄 것도 없었고 사과하지 않았다.

   해나 : 잃을 게 많으니 인정을 안 하는 거지. 용산참사를 다룬 소설 중 이기호 작가의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6)
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동욱」과는 결이 다르다. 남일당 현장에는 원래 두 대의 크레인이 투입됐어야 하는데, 그날 투입되지 않았던 한 대의 크레인 운전사의 얘기다. 왜 그가 가지 않았는지에 대해 조명하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그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나 나나 다 비겁하고 책임 떠넘기기에 바쁜 사람들 아니냐는 것이다. 그게 사실 본질인 거다. 결국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에 대한 싸움이다. 현장에서 나온 화염병을 누가 던졌는가에 대한 공방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대처는 안일하고 비인권적이었다. 다들 인정하기보다는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정아 : 인정 자체보다도 인정을 한 후에 감당해야 할 책임이 어마어마할 테니 두려운 것이다.

   해나 : 어찌되었든 재건축은 현실에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합리적인 보상을 받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거의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정아 : 재건축을 비롯해 도시 정비사업이 소득계층을 배려해 진행된다면 이런 갈등은 없었을까?

   해나 :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엔 이런 갈등이 없었다. 관련 다큐의 분위기는 매우 평화롭다.

   정아 :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새로 지어진 집을 매입할 능력이 있으니.

   해나 : 용산참사 피해자들은 용산을 떠올릴 때 그리움이나 아득함을 가질 수 있을까. 도시 정비사업은 있는 자에게 절호의 찬스고, 없는 자에게는 비극인 거 같다.

   정아 : 명암이 짙다. 우리 사회가 거주에 있어 누구나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9월에는 황정은 작가의 『百의 그림자』를 읽고 세운상가에 갑니다.



경계 없는 작업실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소설가 성해나와 건축학도 원정아. 문학 안에는 사람이, 사람 안에는 건축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 안에 있는 건축을 본다.

2020/08/25
33호

1
김연수, 「동욱」,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문학동네, 2013, 183쪽.
2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 2009)에 수록됨.
3
김연수, 「동욱」, 『사월의 미, 칠월의 솔』, 201쪽.
4
앞의 책, 204쪽.
5
한겨레 2019년 1월 21일자 기사 〈용산참사 10년…김석기 “같은 상황 발생해도 같은 결정”〉
6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문학동네, 2018)에 수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