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밑 콩
4화 노래 부르는 나와 노래 부르지 않는 나
#1.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어
내가 5년 전 냈던 에세이집의 제목은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이다. 여러 상황 탓에 그 제목으로 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제목에 나타난 나는 관심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면서도 수동적인 성격처럼 보였다. “너한테 그 말이 듣고 싶어.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어보는 대신 ‘듣고 싶지만 굳이 물어보고 싶진 않고 언젠가 네가 말해준다면 좋겠어. 말 안 해주면 몹시 서운할거야’ 하고 속으로 웅얼거리는 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난 책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금 돌아보면 내 성격에는 제목에 나타난 면이 사실 있었고, 자연히 에세이 내용에도 그런 면이 여실히 드러나 있지 않았나 싶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아보지 못한 그림자는 공연 의상이라는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었다.
#2. 책 읽는 소녀
나는 2007년에 ep를 내며 데뷔해 2020년인 지금까지 가수로 활동해왔다. 공연 및 인터뷰 사진 속 나는 보통 A라인 치마 위에 소박한 셔츠나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색상을 제외하면 교복 같기도 하다. A라인 원피스도 꽤 많다. A라인은 H라인보다 몸매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섹스어필이 덜하다. 나풀나풀해서인지 더 비격식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긴다. 무엇보다 ‘어린 소녀’ 하면 쉽게 떠오르는 의상이기도 하다. 가느다란 목소리, 바이브레이션 없이 조곤조곤 말하는 듯한 창법, 문학적이되 어딘가 모호한 가사, 에두른 표현 속 미묘한 감정과 같은 음악의 특질이 의상과 잘 매치되었다. 당시 나는 나이와 상관없이 ‘책 읽는 소녀’의 이미지를 구현하려 하지 않았나 싶다. 말하기에 민망한 감은 있지만, 인터뷰 기사 제목이 ‘국민 첫사랑 목소리’였으니 내가 구현한 이미지가 아주 실패했던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그 모든 것을 의식해 철저하게 계산했던 것은 아니다. 음악을 하기 전부터도 해당 스타일을 입었기에 이미지 관리를 위한 콘셉트만은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침착한 성격이었고 책을 좋아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점점 내 스타일이 어딘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공연 의상은 점점 옷장 한편으로 밀려나 평상복과 구분되고는 했다. 큰 공연을 할 때 입은 옷을 다시 무대에서 입기는 곤란하다며 공연 의상을 버렸지만 사실 그런 현실적인 이유로만 버리지는 않았다. 답답했지만 왜 불편한지 명확하게 언어화할 수는 없었다.
#3. “있는 힘을 다해 가만히 느끼기만 하세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한 선생님이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우연히 참여한 뒤부터 나는 내 마음을 더 알아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직접 정신분석을 받았던 경험을 계기로 정신분석을 대중화하기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모임에서는 구성원이 깊이 억압하고 있는 감정을 의식으로 끌어내는 일을 도와주셨다. 나는 모임에서 오래 지지부진한 시간을 보냈지만 점차 회피하고 있던 불안을 조금씩 의식해갔다. 불안이라는 장벽이 녹은 틈으로 그간 눌러둔 줄도 몰랐던 강한 감정이 표출되었다. 나는 선생님 책에 나오는 불안, 분노, 사랑 등의 감정과 의존, 반동형성 같은 방어기제의 정신분석적 정의를 반복해 읽고 외웠다. 눌러두었던 감정이 터져서 허우적댈 때 그 감정의 정의를 떠올리며 엉뚱한 데 풀어버리지 않도록 제어하고는 했다. “감정을 피하지 말고, 아무 행동도 하지 말고, 있는 힘을 다해 가만히 느끼기만 하세요.”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적어 책상 앞에 붙여두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억제된 감정이 의식 위로 올라올 즈음 하는 행동은 감정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 쓰는 방어기제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감정을 직면하기 쉬운 적은 거의 없었고 나는 자주 실패했다. 아버지가 사준 부츠를 버린 것이 그 경우다. 부츠를 보기만 해도 아버지에게 느끼는 온갖 상반되는 감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부츠를 버리면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도 버리는 것만 같아 수십 번 고민했었다. 결국 양가감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일단 부츠와 함께 복잡한 감정도 치워버렸다. ‘아무 행동도 하지 말고 가만히 느끼기만 하세요’의 조언이 여기서는 실패한 셈이다. 아직도 그 부츠가 떠오를 때가 있다. 딸이 추우면 안 된다며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도 백화점에 가서 비싼 돈을 내고 부츠를 사주었던 아버지와, 해묵은 분노 때문에 있는 그대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해 애꿎은 부츠를 들고 우왕좌왕하던 내 쓸쓸한 모습도 함께.
그 즈음 공연 의상이 의미하는 바도 보이기 시작했다. 관심받고 싶지만 수동적인 채 머무르는 소녀, 바로 그것이었다.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던 내가 무의식에서는 순진하고 무력한 소녀가 됨으로서 사랑받기를 원했다는 점이 겸연쩍고 부끄러웠다. 자기주장을 해야 할 때 그야말로 어린 소녀처럼 위축된다는 점도, 화를 내려고 하면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게 나를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함부로 침범하는 상대를 참아주는 일이 성숙한 인내심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도 받아들였다. ‘절대 돈 때문에 남자랑 결혼하지 않겠어’라고 초등학생 때 결심했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며 열심히 공부했으며, 대학생이 되어 처음 쓴 소논문 주제가 ‘왜 여성만 화장을 하는가―외모주의와 페미니즘’이었던 내 속에 그런 소녀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의식과 의식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실감했다. 프로이트는 옳았다.
그 시기에는 자신을 ‘노래 부르는 나’와 ‘노래 부르지 않는 나’로 나누고 후자가 나의 실제에 가깝다고 규정했다. 대중 앞에 서는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간극을 해결하는 방식인 것도 같다. 스스로를 수용하지 않는 모습이 타인의 눈에 감지될 때는 가슴이 찔리기도 했다. “왜 너는 공연할 때만 평소랑 다른 옷을 입어? 나는 공연 때나 평소에나 같은 옷을 입는데.”라는 동료의 말에 열등감을 느꼈다. 동료는 언제나 진정한 자신이고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노래 부르지 않는 나’의 옷도 많이 버리고 새로 구입했다. 어떤 옷이 ‘진정한 나’를 대변한다면 그 옷이 얼마나 완벽히 나다워야만 하겠는가.
#4. 옷으로 표현할 필요 없는
지금도 나는 공연할 때 기존 스타일과 비슷한 옷을 입는다. 이제는 실용적인 이유에서다. 옷을 통해 ‘진정한 나’와 ‘진정하지 않은 나’가 구분된다는 생각이 덜하기에 하던 대로 하는 게 편하다. 옷으로 표현되든 표현되지 않든 나는 그대로이며 꼭 원하지 않는다면 옷으로 나를 표현해야만 할 이유가 없다. 소통을 방해하던 불안이 줄어 사람들과 전보다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기에 이렇게 여길 수 있는 점도 크다. 단점도 포함해 수용해주는 현실적이고 끈끈한 관계는 내가 ‘노래 부르는 나’를 더 관대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관심받기 좋아하고 그렇기에 의존적이며 스스로의 감정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중심적인 자신말이다. 어찌 보면 바로 무대에 서는 사람 자체의 특질이기도 하다. 그런 특질이 없다면 뮤지션이라는 불안정 직업에 종사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노래 부르는 나’와 ‘노래 부르지 않는 나’는 이제 어느 정도 한 명으로 합쳐진 것 같다. 의존적이면서도 독립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면서도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고, 관심받기 좋아하면서도 어지간하면 가까이 지내기는 싫어한다.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그렇다.
#5. 여전한 것들
지금 내게 옷은 정체성의 표현을 지나 그저 내가 쓰는 물건이다. 그래도 싫은 옷은 싫고 좋은 옷은 좋다. 비판에 민감한 성격답게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고 관심을 받으려고 한다. 원하는 대로 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관심을 받는다. 고급 모니터 장비를 통해 들리는 내 목소리를 나는 무척 좋아하며, 남에게도 나는 내 목소리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전에 비해 무대가 편안해졌다고는 하지만 모든 고삐를 풀어버린 채로 관객과 함께 뛰어노는 퍼포먼스는 하고 싶지 않다. 그 정도까지 적극적인 건 싫다. 관객과 나는 거리를 유지한 채 같이 울고 웃는다. 많은 것을 바꿔왔고 여전히 많은 것이 그대로다.
모임도토리(계피)
무대에 서는 직업 때문에 옷에 대해 꽤 생각해본 보컬리스트 계피, 빈티지 샵에서 촛대를 고르듯 옷을 사면서 한편으로는 밴드 굿즈 티셔츠를 모으는 이응, 풍선 가슴뽕을 넣고 유치원 수영복 콘테스트에 섰던 움파.
2020/10/27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