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C 인터뷰(6화를 참조할 것. 바로가기)와 창작집단 담의 고민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인물을 소개합니다. 강은재라는 인물의 프로필과 그의 가방 속 물건을 살펴보시고 그의 독백도 들어봐주세요. 은재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의 머릿속에 생생한 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랍니다.


   1. 인물 프로필


인물 프로필 표: 이름, 나이, 가족관계, 취미, 성별, 성적지향, MBTI, 특기로 구성
이름 강은재 성별 여성
나이 28 성적지향 최근 콰이로맨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본인이 어쩌면 콰이로맨틱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가족관계 엄마, 여동생 MBTI INFP
취미 신기한 모양의 돌멩이 찾기 특기 그래픽 디자이너


   2. 은재의 가방 속




   ① 스케줄러
   원래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스케줄러를 쓰지 않았다. 계획이란 건 늘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일을 시작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스케줄러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살아남으려면 일정을 정리해야 한다. 한번은 일정을 잡아두고 스케줄러에 적어놓는 걸 깜빡해 이중 약속을 잡아 진땀을 뺀 적이 있다. 왜 이러고 사나 싶었다.

   ② 젤리
   가방에 하나씩 넣고 다니며 당 떨어질 때마다 꺼내 먹는다. 당 떨어질 때는 다음과 같다. 클라이언트가 작업물을 보고 “왼쪽으로 2픽셀만요, 아니다 오른쪽으로 2픽셀만요, 다시 왼쪽으로 2픽셀만요, 아니다, 오른쪽이 나은가?” 할 때.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 그럼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보신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할 때. 차가 막히는지 버스가 안 와서 20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은근슬쩍 새치기 할 때 등. 그들을 씹을 수 없으니 젤리를 씹는다.

   ③ 반짇고리
   때는 바야흐로 은재가 대학 3학년이었을 때. 입고 나온 슬랙스 바지의 단추가 떨어져나갔다. 그놈의 단추. 샀을 때부터 힘이 없더니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임시방편으로 옷핀을 꽂고 하루를 보냈다. 수업이 하나뿐이라 다행이었다. 그날 이후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반짇고리를 챙겨 다닌다.

   ④ 양말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하는 식당에 갔는데 양말에 구멍이 나 있으면 곤란하니까. 화장실에서 반짇고리를 꺼내 양말 구멍을 메울 수는 없으니 여분의 양말을 꼭 가방 안에 넣어둔다.

   ⑤ 노트북, 아이패드
   일을 많이 할 것 같아서 바리바리 챙겨 나가면, 일은 하나도 안 하고 놀다 들어오고, 일을 안 할 것 같아서 안 가져가면 꼭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

   ⑥ 편지
   할머니 집 다락에서 발견했다. 푸른빛을 내는 돌멩이가 굴러다니더라는 편지의 내용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그 돌멩이를 꼭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은재의 독백


은재의 독백. 총 4분 48초.
은재
가끔 꿈을 꿔요.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꿈. 한번은 책상 위에 올려놨던 도넛이 사라진 거예요. 슈거 파우더 솔솔 뿌려진 도넛에 커피 한잔하려고 했는데, 잠깐 커피 가지러 간 사이에 없어진 거 있죠. 바닥에 떨어트린 것도 아니고 옆 사람이 가져간 것도 아니고. 혹시 내가 도넛을 안 꺼냈는데 꺼냈다고 착각한 건가 싶어서, 도넛 상자를 열었는데도 슈거 파우더 뿌려진 도넛은 없는 거예요. 초콜릿이 코팅된 도넛만 있고. ‘맞아, 내가 확실히 꺼냈었어.’ 다시 바닥을 보고 다른 사람들 자리를 보고, 커피 탔던 곳까지 가봤는데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손에 들고 있던 실내화 가방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어요. 까만색 실내화 가방. 어느 날은 잃어버린 게 서류가 되었다가, 또 사람이 되었다가…… 나는 그걸 찾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늘 찾지 못하고 끝이 나요.

   
사이.


은재
아까는 내가 또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었어요. 그 사람, 그러니까 수현 씨가 나한테 연애에 관심 없다고 말했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보통은 연애하냐, 왜 연애에 관심이 없냐는 말로 문을 여니까요. 10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도 만날 때마다 ‘누구 만나는 사람 없어?’부터 물어보거든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 속에서 그러면 안 되냐고 따지기도 했다가, 가끔은 누가 있는 척 거짓말을 했다가, 또 가끔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 사람이 ‘나는 연애할 마음이 없다’라고 또렷하게 말했을 때,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도넛을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초콜릿이 코팅된 도넛이 아닌 슈거 파우더가 뿌려진 도넛이요. 기쁜 마음에 도넛을 크게 한입 베어 먹었는데 딸기잼이 아니라 블루베리잼이 들어 있는 거예요. 제가 찾던 도넛이 아니었어요.
저는요, 누군가에게 끌리는 감정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인간적인 호감인 거고 어디서부터가 연애 감정인 건지 구분을 잘 못하겠어요. 가까워지고 싶고 자꾸 신경 쓰이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친구들은 그런 제 마음을 연애 감정으로 일축하는데 저는 아닌 것 같거든요.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게 아닌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현씨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대요.
나는 우리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이 마음을 그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요. 아니더라구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니구나.’ 나는 딸기잼이었고, 그 사람은 블루베리잼이었던 거예요. 머릿속에서 그리는 맛이랑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이 달라서 그런가. 도넛을 먹어도 먹어도 배 속이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라, 씹을 때마다 말을 함께 삼켰어요.

   
사이.


은재
왜 그렇게 보세요? 10년을 봐온 친구도 이해 못하는 마음을 그날 처음 본 사람에게 이해받으려 했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그런데 이런 만남은 누구나 꿈꾸잖아요. 무도회장에서 서로를 알아본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수많은 사람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는 관계. 그건 꼭 연인들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도 상상해보는 거예요. 비록, 제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연애 감정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아닐지라도요.


   4. 1cm 리뷰단


담A
오늘도 나는 혼란스럽다. 주변의 시선은 내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게 하고, 주변의 목소리는 내가 나의 존재를 의심하게 한다. ‘이거 나 아냐’를 연재하면서는 의식적으로 혼란스럽지 않은 척하려 했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나도 정답이야. 숨기려고만 했던 나의 어떤 부분을 당당하게 꺼내놓던 날들이었다.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또 너무 느리게 변해서, 원고를 끝내자마자 나는 다시 움츠러들고 말았지만 언제나 경험이 주는 힘을 믿는다.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혼란스럽겠지만, 이번 경험을 무기 삼아 작게나마 외쳐볼 것이다. 이게 나야.

담B
정체성의 문제를 토핑과 필링의 문제에 비유한 독백을 함께 재미있게 즐겼다. 익숙한 ‘내 맛’에 질려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모든 작업이 새로이 ‘내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나 싶기도 하다. 나는 어떤 도넛일까? 나에게도, 필링이 들어 있을까?

담C
다양한 삶의 샘플이 부족해서 다들 비슷하게 산다. ‘연애를 하는 것’이 기본값이 아닌 세상이길, 오늘의 은재가 연애를 하지 않는 자신을 세상에 설득하지 않아도 되길, 정상이고 싶어 안달 난 세상에 ‘이거 나 아냐’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창작집단 담

구하나, 박주영, 서동민. 세 명의 극작가가 담에 모였습니다. 담담하게 다음을 도모합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담.

2020/12/29
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