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피가 따라 입는 움파

   _계피

계피가 그린 움파 크로키. 움파는 종종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 웃는다. 그렇다고 그가 꼭 비웃는 것은 아니다. 곤란할 때, 아주 진지할 때, 조금 당황할 때도 이 표정을 보였던 것 같다. 그가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내가 이걸 그리느라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볼 때 움파는 속으로 당황했을까?

   움파가 나와 내 옷을 관찰해 쓴 원고를 읽으며 무척 즐거웠다. 자기 얘기는 늘 재미있다. 그렇지만 사실 적지 않게 당황하기도 했다는 점을 고백해야겠다(입꼬리를 한쪽만 올리고 있지는 않다). 움파의 유머 감각에 피식피식 웃으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움파에게 이상한 여자로 보였는지 실감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이상했다! 움파의 글에 묘사된 나는 문명화된 인간사회에서는 연애할 때를 제외하곤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문장을 천연덕스럽게 읊어대고 있었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해?”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했으면 좋겠어?”라니.

   움파의 글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움파에게 그 말을 한 맥락이 따로 있다. 나와 이응과 움파는 요 밑 콩 프로젝트의 연재를 축하하며 가평 펜션으로 여름 여행을 떠났었다. 수영하고 술 마시고 춤춘 뒤 맞이하는 밤에 으레 그렇듯, 속 깊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움파는 자기의 아픈 경험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안타까워하며 공감했지만 움파가 상처를 말하는 방식이 석연치 않았다. 분명히 너무나 괴로운 이야기인데 남의 이야기를 하듯 건조했다. 최대한 객관화시켜 감정을 제외하고 정보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움파의 행동력과 그뒤 숨어 있을 노력에 늘 감탄해왔다. 움파는 골똘히 생각하고 화르륵 분노한다. 상처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 자신의 오류를 찾아내고, 날카로운 칼로 잘라버린다. 수정 사항은 즉시 행동으로 반영된다. 그간의 급격한 외모 변화는 엄격한 통찰에서 비롯한다. 일시적인 취향의 변덕이 아니다. 이 탈코르셋 파이터는 뒤돌아보지 않고 되돌아가지 않으며 변화는 뼛속 깊이 유지된다. 하지만 나는 역시 그가 불안해 보였다. 슬퍼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슬픔을 드러내기에는 그가 나를 충분히 편안히 여기지 않아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간 그가 한 말에서, 그가 쓴 글에서 그가 잘라내버린 과거가 어디엔가 웅크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움파에게 말했다. 너는 홀로 너의 상처를 글로 쓰는 중이 아니고, 나라는 인간 존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나에게 상처를 말함으로써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여기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말해달라. 왜냐하면 내가 너를 같은 종류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수만 명 중 한 명이 아니라 독특하고 유일한 너로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질문은 그런 의도에서 나왔었다. 나는 움파가 당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흔들어놓았다. 흔들린 만큼 얼음이 녹아 언젠가 물이 되어 자유롭게 흐르기를 바라면서. 당시의 의도를 설명하긴 했지만, 나는 역시 내 직구가 과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너무 급했고 타인이 타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근본적으로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움파는 다른 사람과 좀 달랐다. 움파는 파이터이기도 했지만 잘 흡수하는 스펀지이기도 했다. 요 밑 콩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올봄, 우리 중 가장 양가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은 움파였다. 깊게 파고 들어가는 작업에 신나하면서도 한번 정리했던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했다. 당연히 독자에게 드러내기도 꺼렸다. 그랬던 그가 자기 외양의 역사와 그 의미를 철저히도 분석한 원고를 완성해왔을 때 나는 많이 놀라고 반가웠다.

   그날, 가평에서의 밤이 움파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점은 움파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미뤄둔 슬픔이 채무자처럼 아직 움파를 따라다닐지라도. 그렇지만 누구는 안 그런가? 내가 이리도 타인의 불안에 민감한 이유는 내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인생이란 기나긴 애도의 과정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움파를 따라 입는 옷으로 변화를 상징하는 옷을 골랐다. 하나는 토끼 얼굴 무늬가 있는 긴팔 티셔츠다. 아기를 가지겠다고 결심하던 무렵 샀다. 홍대 거리를 걷다 엄마와 아이 커플룩으로 진열된 옷에 반했다. 아이 가지기를 오래 주저했었다. 두려웠다. 한번 마음먹자 나는 우리 엄마와 다르고, 내 아이는 나와 다르리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려움이 곧 기쁨으로 가는 길이라는 윗세대의 말도 가슴 깊이 긍정하게 되었다. 나는 내년 봄 부모가 된다. 태동을 느끼면 설렌다. 나도 모르게 ‘너를 지켜줄게’라고 속삭이다가 깜짝 놀랐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하나는 평상복으로만 입던 청바지다. 요 밑 콩 원고를 막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공연 때 치마만 입는 자신이 새삼 겸연쩍게 느껴졌다. 마치 개화기의 제일 끝에서 검정 월남치마에 흰색 저고리만 고집하는 구여성으로 사는 기분이었다. 이 바지가 공연할 때 입은 내 첫 바지다. 그전엔 바지를 입어도 늘 위에 치마를 받쳐 입었다. 실제로 바지를 입어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막상 변화하고 나면 도대체 왜 이전의 것만 그리도 고집했는지 아리송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움파도 그 화려했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이런 기분이었을지 모르겠다.

따라입기를 준비하며 : 영상 <계피와 움파의 탐구생활>(총 7분 45초). 계피와 움파가 서로의 인상과 옷에 대해 탐구했다.



   이응이 따라 입는 계피

   _이응

이응이 그린 계피. 그림 그리는 것을 오랫동안 하지 않다가 처음으로 그린 탓인지 기가 막히게 선이 거칠다. 귀는 뺨에 가서 붙고, 입술은 네 겹이 되는 아수라장에서도 단정한 칼라만이 살아남았다.

   수진 언니와 나는 한 공연에서 뮤지션과 촬영자로 처음 만났다. 그 때문에 내가 그날 기억하는 언니의 옷은, 글쎄,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언니의 옷과는 조금 다른 ‘뮤지션 계피’의 옷이다. 기억하고 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겠다. 왜냐면 그날의 기억은 사실 내가 사진으로 기록해두었던 것을 다시 들여다보며 재구성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날 언니는 무릎을 덮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뒤로 다른 공연장에서 몇 번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주로 조금 길고 허리 아래로 넓게 퍼지는 치마를 많이 입었는데 공연장 한가운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키가 크고 멋진 언니에게 그런 의상은 퍽 잘 어울렸다.

   사실 나는 언니를 처음 만나기 전에 이미 언니의 목소리를 거의 10년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노래를 들을 때 목소리 뒤의 사람을 상상해보는 일은 자주 있지 않지만 처음으로 언니를 만났을 때에 상상보다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라 생각했던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어떤 것을 상상하긴 했었는가보다.
   이 의외의 인상은 둘이서만 이야기하는 날들이 생기고 늘어난 이후에도 이어졌다. 언니는 다정한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결코 다정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웃는 얼굴보단 차가운 얼굴을 많이 보여주었고 때론 담담한 얼굴로 비수 같은 말을 꽂아넣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많이 다쳤을 때, 나는 신기하게도 어느 누구 앞에서보다 그땐 그렇게 가깝지도 않았던 언니 앞에서 가장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사실 언니가 다정한 목소리만큼이나 다정하기도 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랬던 줄 알았던 게 아닌 줄 알았더니 사실 그랬던 게 맞더라, 라고 이 문장을 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언니를 만났던 많은 날들 중 며칠은 일기 속에 글자로 남아 있는데, 그중 어떤 날에 언니의 웃음을 들꽃 핀 풀밭 같은 웃음이라 적었던 기억이 난다.

   평상시의 언니는 평소에 밑위가 길지 않은 바지에, 그다지 길지 않은 상의를 자주 함께 입는다. 나는 언니와 가까워진 이후로 몸을 숙일 때면 드러나는 등을 자주 보게 되었다. 언니는 늘 그걸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해서, 그 모습이 참 좋았다.
   몸보다 훨씬 큰 티셔츠나 넉넉한 스웨터를 좋아하는 나도 꼭 맞는 옷을 몇 개 가지고 있고, 언니와는 반대로 나는 일할 때에 그런 옷을 주로 입는다. 하지만 내가 그 옷을 일할 때 입는 이유는 어쩌면 언니가 일상에서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과 같을 수도 있겠다. ‘편안해서’. 몸에 딱 맞는 옷은 몸을 어떻게 움직여도 몸의 바깥으로 뻗쳐나가는 옷자락이 없어 오히려 자유롭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니가 나에게 훤히 보여주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그 등짝이 좋다.

   그래서 나는 언니와 닮게 보일 수 있는 옷을 고민한다. 취향의 펑퍼짐한 니트를 꺼내어 입느라 최근에는 특히 자주 입지 않았던 딱 붙는 옷을 하나둘 꺼내다 체크무늬가 있는 빨간 셔츠를 고른다. 이 셔츠는 사실 옷을 독특하게 입는 친구 하나가 사이즈가 잘 맞지 않는다며 넘겨준 특이한 옷 중 하나여서, 언니를 떠올리면서 고르기엔 앞은 너무 짧고 뒤는 너무 길다. 하지만 어쩐지 빨간 체크무늬가 눈을 끌었다. 언니에게 비슷한 무늬이지만 색이 다른 체크 셔츠가 있었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밑단이 짧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든다.
   하의는 그전에 입었던 비슷한 청바지의 무릎이 너무 늘어나서 버린 후에 새로 장만한 청바지이다. 키가 작은 탓에 길이가 조금 긴 것 빼고는 몸에 정확하게 딱 맞는 옷이다. 옷에 하나하나 애착을 많이 두는 탓에 몇 년 전에 이전의 청바지를 샀던 쇼핑몰에 들어가 허리와 밑위와 길이를 체크하고, 그와 사이즈도 색도 비슷한 것을 찾아다니다 간신히 장만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입은 단순한 검정색 패딩까지 꺼내어 겹쳐두니, 제법 언니와 비슷한 모양새가 된 것 같다. 우리는 많이 다른 듯했지만 내 옷장 속에서도 언니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반묶음이 잘 어울리는 언니를 생각하며 언니보다 훨씬 짧은 단발머리도 반만 묶어 올렸다. 언니의 약간 긴 듯한 단발머리는 끝이 늘 단정하게 안쪽으로 말려 있다. 고데기로 그걸 따라해 보려다가 실패했지만 앞쪽이 살짝 말린 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서 거울 속에서 슬며시 웃어버렸다.

   내가 언니를 알기도 전 언니의 목소리를 먼저 알았던 것처럼, 언니는 나를 알기도 전에 나의 허물부터 먼저 알게 된 듯하다. 그런데도 언니는 나의 허물보다는 나의 더 많은 걸 보고 있는 것 같다. 언니와 나는 내가 발끝을 아무리 세워도 닿을 수 없을 만큼의 키 차이가 나지만,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우리가 좋은 동네 친구가 되면서 우리의 표정은 조금 닮게 변했을까. 내가 언니처럼 들꽃 핀 풀밭 같은 웃음을 짓는다면 참 좋겠다.

따라입기를 준비하며 : 영상 <이응과 계피의 탐구생활>(총 5분 59초). 이응과 계피가 서로의 인상과 옷에 대해 탐구했다.



   움파가 따라 입는 이응

   _움파

움파가 그린 이응. 안경을 쓰고 손을 깍지 낀 동거인의 초상이다. 그가 애용하는 일상 후드와 가끔 하는 당고 머리 스타일이 1분이라는 시간에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역시 이응의 일필휘지 드로잉에는 못 미치는 존재감이라 살짝 아쉽다.

   최근 ‘요’를 새로 고르는 일이 있었다. 고양이가 요와 이불에 계속 실례를 해서 빨래할 방법을 찾다가 ‘솜틀기’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목화솜, 명주솜이 들어간 요는 가격이 상당한데, 세탁기에 돌리면 망가지고 ‘솜틀집’에 맡겨 깨끗이 한다고 한다. 오염되거나 납작해진 요에서 솜을 빼 솜틀기계에 넣는다. 작게 분쇄된 솜에 고압의 바람을 불어넣어 오염 물질을 제거하고 솜 입자의 결을 살린다. 공정이 끝나면 사람의 손으로 솜통을 다시 만들고 커버를 씌운다. 과연 보통 일이 아니었기에 솜틀기 가격도 상당했고, 업체도 까다롭게 골라야 했다.

   곧 집에 손님이 여럿 묵기로 해서 솜틀기를 포기하고 급히 인터넷 주문을 하려고 보니, 요의 세계는 광대했다. 요통, 요커버, 요매트, 매트리스 토퍼, 보호 커버, 누빔 패드, 7중 구조 엠보싱, 9중 구조…… 일주일 내내 퇴근 후 끙끙대며 검색하다 결국 못 사고, 여분의 이불로 모면했다. 그 사이 고양이는 마지막 남은 요에 쉬를 했고, 조만간 이응이 차를 몰고 부모님이 항상 맡기신다는 솜틀집에 가져가주기로 했다.

   ‘요 밑 콩’ 이름을 제안했었지만 사실 요와 이불의 차이도 최근까지 몰랐다. 일상을 챙긴다는 건 집요할 정도로 사물과 환경에 관심이 필요한 일이구나. 나는 오늘도 요 대신 은은한 오줌 냄새 묻은 이불을 깔고 잔다.

*

   이응은 멋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감각과 욕구에 솔직하다. 친구들과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한다. 음식도 작업도 대화도 쇼핑도 관리도 기록도 정성껏 한다. 게다가 요즘 같은 세상에 여전히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1순위로 둔다. 그 점이 아주 호기롭다. 좋아하는 것들에 좋아함을 잘 표현하기. 소소하고 커다랗게 일상 속에 선물을 준비해두기. 모두 넉넉한 마음을 가진 이응의 방식이다.

   집들이를 오면 친구들이 놀라며 감탄한다. 원목 가구와 식기와 조명과 소품 인테리어 모두 이응의 지휘 아래 모여든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조화롭다. 물건에 대한 애정과 확신이 깃든 집에 함께 산 지 이제 곧 1년, 지난날 취향은 사치였고 내 방조차 없던 본가에서 구겨졌던 심신이 조금씩 아물고 있다. 가끔 이렇게 좋은 집에 머무는 행운이 켕길 때가 있다. 나 혼자 살아남겠다며 혈연가족과 결별하고 이 동네로 와서 돈을 벌고 일을 한다. 그래도 남는 건 가족이라는 말을 뒤로하고 친구와 살며 홀로 서는 연습을 한다.

   이응 덕분에 경제적, 정서적, 물질적 독립(+고양이)의 초입에 들어올 수 있어서 고맙다. 다만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기에, 선의에 과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나 또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요즘엔 일상을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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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은 내가 우상화와 사랑을 헷갈려하며 배회하던 시절, 자신의 공간에서 날 맞이하며 맛있는 걸 내어주고 난로를 데워주고 노래를 들려준 이다. 이응이 운영하던 공간의 낮은 테이블에서 처음으로 단편을 써보니, 난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독립적인 공간은 내게 중요했다. 어릴 때, 내 방이 아직 있던 시절의 나는 내 옷장 서랍에 다른 가족의 옷이 함께 들어가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영역 침범으로 느꼈다. 하지만 여기, 거실 식탁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이 집에서는 고양이를 위해 모든 방문을 열어두는 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함께 쓰는 큰 옷장이 내 방에 있어서 이응이 옷을 가지러 올 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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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고른 이응을 닮은 옷은, 이응이 내게 준 옷이다. 무려 WOOL 100%(맨살에 닿으면 까슬함이 예상되는 따뜻함이다) 그리고 MADE IN HONGKONG(이응은 알리 익스프레스, 당근마켓, 빈티지숍 단골이다). 얼마 전, 그가 안 입는 옷을 대량으로 당근마켓에 내놓을 거라며 내게 작은 산처럼 쌓인 옷을 한 장씩 들어 보여주었다. 엄청난 무늬와 질감의 향연에 낄낄거리던 중, 이응이 눈을 빛내며 덥썩 맨투맨 스웨터를 내게 안겨주었다. 검정과 회색과 빨강이 섞인 규칙적인 무늬를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 조연에 어울릴 듯한 큐티 어글리 스웨터라고 나 혼자 이름 붙였다.

   그에 걸맞은 바지는 내가 아름다운 가게에 내놓으려고 예전에 정리해둔 옷짐 중에서 골랐다. 깨끗한데 안 입는 옷을 맡기면 저렴한 가격으로 필요한 이들이 이용하도록 하는 가게가 있다는 걸 이응이 알려주었다. 어둡고 흐린 밤 구름 같은 무늬의 스판 폴리 겉감에 기모 안감 바지. 위아래 옷의 언밸런스한 조합을 예상해본다. 물론 이응이라면, 무늬는 많을수록 좋다며 용기를 북돋아 줄지도 모른다.

따라입기를 준비하며 : 영상 <움파와 이응의 탐구생활>(총 5분 12초). 움파와 이응이 서로의 인상과 옷에 대해 탐구했다.


모임도토리

무대에 서는 직업 때문에 옷에 대해 꽤 생각해본 보컬리스트 계피, 빈티지 샵에서 촛대를 고르듯 옷을 사면서 한편으로는 밴드 굿즈 티셔츠를 모으는 이응, 풍선 가슴뽕을 넣고 유치원 수영복 콘테스트에 섰던 움파.

2021/01/26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