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2040년 작가의 미래
5화 지우의 미래
‘팬데믹 이후, 2040년 작가의 미래’에서 우리는 지난 4화까지의 연구를 통해 네 가지의 미래사회를 도출해냈다. 그것은 ‘엄격한 첨단기술 사회, 아바타를 활용하는 다양성 사회, 돌봄 공동체 사회, 세계시민 사회’였다. 보통 미래연구에서는 사회상 시나리오를 쓰지만 우리는 그 네 가지 사회를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를 통째로 보여주기보다 세밀한 개인의 고백이 담긴 소설이 사회 연구에서 담지 못하는 진실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우’라는 인물을 통해 20년 이후의 미래를 그려내고자 했고, 여기, 그렇게 탄생한 지우의 미래가 있다.
1.
아침에 눈을 뜨면서 지우는 그날이 2040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지우의 기상을 감지한 센서가 작동하면서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다정한 목소리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축하한 후에 생체정보를 읊기 시작했다. 심전도와 폐의 산소포화도, 각종 장기 근육의 활성도부터 시작해서 체내 염증 수치와 37차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여부가 차례대로 보고되었다. 전날과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자궁경부암으로 발전 가능한 세포를 조기 발견하여 치료한 이후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만 특별 관리 정보로 분리되는 난소의 위치와 품질, 자궁의 상태만이 조금 달랐다. 가임기로 들어선 것이다.
오늘부터 가임기가 지속되는 3일 동안 특수 데이-루틴이 부여되고, 제공되는 음식과 화면 기록이 요구되는 운동이 달라진다. 지우는 더이상 견딜 수 없다고 되뇌었다. 지우의 팔목에 심긴 센서에서 세르토닌 분비량의 이상 변화가 감지된다는 알림이 울렸고, 자동 연결된 스피커에서 쇼팽의 야상곡이 흘러나왔다. 언제나 지우의 기분을 바꿔주었던 노래였지만 오늘은 세르토닌 분비량을 정상 수치로 올려주지 못했고, 스피커는 여러 음악을 계속 바꿔나갔다.
“우리 이혼하자.”
지우는 현서를 깨워서 그렇게 말했다. 지우의 세르토닌 수치가 안정화된 건 그때였다.
현서의 생체정보 보고가 끝난 후에 둘은 침대 위에 마주 앉았다. 현서의 일간 브리핑에서도 파트너로 등록된 지우가 가임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며 즉각적인 부부관계를 권유하였으므로 현서 역시 지우가 기분이 좋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나 이렇게는 못 살아.”
현서는 그냥 무시하자고 말하려고 했다. 지난달에도, 그 지난달에도 같은 말을 했었다.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현서의 주변에는 이미 같은 문제로 이혼 상담을 받고 있는 부부가 있었다. 이혼 상담의 결론 역시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임신 기계가 아니야.”
지우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현서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그리고 지우를 안았다. 현서는 지우를 사랑했다. 그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는 건 감정 센서에 정확히 기록되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현서는 몹시 마음이 아팠고, 지우의 센서와 같은 색의 경고 알람이 떴다. 이제 스피커에서는 지우와 현서가 신혼여행을 가던 날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해외여행 자체가 오래된 기억이 되어버린 지금, 국제선 비행기에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들었던 아델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 이혼하자.”
현서의 말에 지우는 몸을 숙이고 큰 소리로 울었다. 둘의 센서의 색이 다시 바뀌었고, 스피커의 노래도 따라 바뀌었다. 지우와 현서는 붉은색이 떠 있는 팔로 서로를 안고 오랫동안 함께 울었다.
2.
지우의 열두 개의 아바타들은 2040년 12월 31일 밤 11시에 열리는 송년 파티 준비로 아침부터 바빴다. 각기 최대 두 명까지 초대할 수 있었고, 어젯밤에 대부분의 아바타가 초대장 발송과 파티 참석 예약자 등록을 마친 상태였다. 클럽 디제이로 일하고 있는 이십대 독일/여자 아바타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는 삼십대 한국/여자 아바타만이 아직 초대장을 발송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독일/여자 아바타는 네 명까지 허용해줄 수 없느냐고 계속해서 요청하고 있었다. 친구 그룹을 나눠서 초대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그 친구 그룹이란 그녀의 네 명의 연인―한 명의 남자 아바타와 세 명의 여자 아바타―을 말하는 거였다. 파티를 주최하는 칠레의 최연소 여성 대통령 아바타는 한 명의 아바타에게만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독일/여자 아바타가 술에 취하면 집단 성교를 벌이는 것을 알아서였다. 베를린 클럽 뒷골목에서야 상관없지만, 다 같이 모이는 파티에서 그런다면 다소 보수적인 성향의 오십대 중국/남자 소설가 아바타가 매우 언짢아할 것이 분명했다.
한국/여자 아바타는 올해 초에 아들 아바타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몹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아들 아바타는 엄마 아바타가 밤낮없이 광산 채굴을 해서 번 코인으로 사준 명품 브랜드 가방을 뺏긴 것도 모자라 성폭력을 당할 뻔하기도 했는데, 그 사실을 알리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엄마 아바타는 속을 끓였다. 파티를 할 기분이 아니라며 한국/여자 아바타는 파티 참석 불가를 통보했었다. 그때 ‘딸 바보’로 유명한 사십대 필리핀/남자 재벌 아바타가 나서서 그럴수록 더더욱 파티에 참석해서 기분을 북돋아야 한다고 설득했고, 한국/여자 아바타는 아들과 함께 참가하겠다고 마음을 바꾼 바 있었다.
지금 한국/여자 아바타가 고민하고 있는 건 배우자 아바타를 파티에 부를 것이냐의 문제였다. 그녀는 아들 아바타의 문제에 방관한 배우자 아바타와 이혼을 결심한 지 오래되었는데, 언제 어떻게 이혼서류를 보낼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배우자 아바타는 현서라는 이름의 이십대 한국계 미국/여자 아바타로 한국/여자 아바타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체위의 섹스에 능하고 독립적인 성격이 매력적이었지만, 자녀 양육에서는 없느니만 못했다.
아직 공식적인 결혼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송년 파티에 초대하지 않으면 여러 말이 돌 게 틀림없었다. 지난밤에 가상 이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린 후에 한국/여자 아바타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이혼 절차를 밟기로 결심했다. 제일 먼저 아들 아바타의 남아프리카 유학을 신청했다. 아들 아바타의 양육권을 가지고 다투기 싫었다. 남아프리카의 백신 연구소에서 일하는 아바타에게 디엠을 보냈고, 과학자 아바타는 선뜻 아들을 맡아주었다. 과학자 아바타는 37차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마쳤고, 이후의 백신 개발에서는 빠지겠다고 말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들 아바타를 돌볼 시간이 충분하다고 했다.
“나, 더는 안 되겠어.”
한국/여자 아바타가 가상 이혼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려 본 것이 무색하게끔 한국계 미국/여자 아바타는 이혼 신청 디엠을 확인하자마자 승인 버튼을 눌렀다. 아마도 불륜을 해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한국/여자 아바타는 잠시 씁쓸해했지만, 이내 아들과 파티 참석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파티 시작까지 고작 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고, 파티복을 맞추고 음식을 준비해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한국/여자 아바타는 맞춤 정장 집에 들러 가장 파격적인 디자인을 의뢰했다. 오늘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혼을 발표하고 연애 가능 상태 메시지를 걸 계획이었다.
3.
2040년 12월 31일 만조 시각은 오전 6시 10분과 오후 6시 50분이었다. 지우와 현서는 5시에 일어나 채비를 마치고 항구로 나섰다. 지우는 들어오는 여객선이 있는지 감시하고, 현서는 어선을 타고 나가 마을 사람들이 먹을 해산물을 채취했다.
현서와 그의 형부 둘을 실은 배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 지우는 한 시간 정도 더 바다 건너를 멍하니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현서의 어머니는 지우에게 오늘 들어오는 배는 없었느냐고 물었다.
“있을 리가 없잖아요.”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하고 7년이 지났을 때 발생한 19차 바이러스는 30퍼센트가 넘는 치사율을 보였고, 바이러스 최초 발견 이후 2개월을 넘기지 않아 전 세계적인 봉쇄령이 내렸다. 국경이 봉쇄됨은 물론이고, 지름 5∼10킬로미터로 구획을 지은 지역을 벗어날 경우 지역 이동 패스가 필요했다. 그때 현서는 지우에게 섬으로 가자고 했다. 지역 이동 패스에 시스템적인 문제가 자주 발생했고, 감시가 소홀한 곳에 터널 따위가 발견되기도 했다. 한 번 뚫리고 나면 19차 코로나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지역 전체가 공동묘지화 되었다.
현서의 가족들과 통통배를 타고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섬에는 이미 19차 바이러스가 한 차례 휩쓸고 간 이후라 다섯 가구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현서와 지우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배에서 내리는 즉시 쏘겠다며 엽총을 장전하기까지 했다. 현서와 지우는 육지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2주를 보낼 테니 감시해도 좋다고 하면서 통조림 수십 박스를 보여주었고, 며칠간의 실랑이 끝에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13년이 지났다. 첫 3년간은 현서와 지우처럼 몇 가족이 배를 타고 드문드문 들어왔는데 마지막에 들어온 가족이 바이러스 증상을 보이자 현서는 직접 엽총을 들었다. 그 이후 그러한 방문조차 끊긴 지 10년이었다.
“37차로 난리야. 우리처럼 안전한 곳이 많이 없어.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처럼 편하게 사는 곳도 없지. 진짜 감사해야 돼.”
시어머니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옆에서 현서의 막내 조카가 맞장구를 쳤다. 섬에서 태어난 현서의 조카는 내일이면 여덟 살이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폐교 처리된 학교 건물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 진학하게 될 테고, 그러면 지우가 국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학생은 열두 명이 될 터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어요.”
지우의 말에 현서의 어머니와 두 명의 누나, 다섯 명의 조카가 동시에 지우를 돌아보았다. 지우는 이미 현서와 이혼 합의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내륙으로 갈 거예요.”
현서의 가족은 지우의 말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이 13년간 들어본 적 없던 ‘이혼’이라는 단어인지, 바이러스와 동의어처럼 여겨지던 ‘내륙’이라는 단어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반대야. 저녁에 남자들 들어오면 가족 투표를 해보자.”
현서의 작은 누나가 지우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들은 가족의 대소사를 결정할 일이 있을 때마다 가족 투표를 해왔는데 그걸 이혼에까지 적용할 줄은 몰랐던 지우는 당황해서 양손을 휘저었다.
“아뇨, 이건 현서씨랑 저, 둘의 문제예요.”
“그게 어떻게 둘의 문제야? 네가 가면 애들 수업은 누가 하고? 학교 문을 닫으라는 거야?”
“너를 누가 내륙으로 데려갈 건데? 현서가 배를 끌고? 그 배에 내륙 사람들이 뛰어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작년에 제가 내륙으로 대학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외숙모도 같이 투표했잖아요. 저도 그래서 못 갔는데 왜 외숙모만 예외예요?”
현서의 가족이 모두 한마디씩 지우의 이혼에 의견을 내는 동안 지우는 그들 너머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짙푸른 바다는 하얀 물거품을 만들며 끊임없이 일렁거렸다.
4.
멕시코 칸쿤의 7성급 레스토랑 디아스를 12월 31일에 예약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10년 치 예약이 차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우는 올해 초에 12월 31일 예약 취소 알람을 걸어놓으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12월 31일 7시 예약을 한 가족이 37차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 모두 사망하는 일이 생겼고, 지우는 잽싸게 그 자리를 꿰찼다.
2040년 12월 31일 당일 아침, 지우는 현서에게 짐을 싸라고 말하면서 오후 2시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5시에 칸쿤에 도착하는 비행기표를 내밀었다.
“결혼 1주년 기념일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어.”
현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근래 현서는 부쩍 말이 없고 섹스를 거부하는 일이 잦았다.
“나, 일 그만뒀어.”
지우는 예상치 못했던 현서의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현서는 한국 부동산 25퍼센트를 점유한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현서의 회사 지부가 120개국에 있었으므로 지우와 현서는 매년 국가를 옮겨가며 살 계획을 하고 있던 차였다.
“이직하려고?”
지우는 애써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현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잘 나가는 기업 퇴사보다 더욱 충격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히피 공동체에 들어가겠다는 거였다.
“배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어. 산에서 고개를 넘어 다니면서 텐트를 치고 사는 공동체도 있고.”
지우도 현서가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수명을 단축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로, 사람들은 ‘이러나저러나 죽는다’를 표어를 내걸고 오래전에 유행이 지난 YOLO 운동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스스로 히피라고 지칭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자연을 떠도는 유목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히피의 등장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수소를 이용한 고속 비행기가 발명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히피가 되지 않고도 유목민처럼 지낼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 집을 둔 사람도 흔했고, 지우와 현서 역시 매년 집을 옮길 예정이었다. 그러나 히피들은 여전히 히피로 남았다. 그들은 사실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런 인생을 택한 거였다. 돈이 없었고, 돈을 벌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직장에서 원하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그 모든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과는 태생부터 걸어온 길이 확연히 다른 현서가 왜? 지우는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현서에게 묻지는 않았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현서가 선택하는 인생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지우는 그런 인생을 절대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렇게는 못 살아.”
“그래.”
둘 중 누구도 이혼이라는 단어를 굳이 꺼내지 않았다. 지우는 일곱번째, 현서는 여덟번째 이혼이었다. 2040년 기준 한 사람의 평균 이혼 횟수가 다섯 번인 것을 감안했을 때 둘 다 이미 평균치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지우와 현서는 이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1년이면 살 만큼 살았다고 지우는 생각했다. 1년간 좋은 파트너였던 만큼 마지막으로 칸쿤에 같이 가서 시간을 보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연말의 칸쿤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 붐볐다. 지우의 여덟번째 배우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현서와 잘 지냈던 것만큼 이번에도 아시아 여성 배우자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섹스를 하기 전에 히피 공동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지우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파도의 미래 ―‘팬데믹 이후, 2040년 작가의 미래’를 마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물리적 공간에서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서로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데 집중했다. 호주와 한국이라는 거리, 소설과 미래연구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확신을 추동한 것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파도’는 우리가 코로나19 시대에 던진 호기심 어린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단 하나의 미래에 확신을 가질 때 삶에 대한 압박감은 점점 커진다. ‘2022년 5월까지는 반드시 코로나19가 종식되어야 한다’와 같은 믿음. 여기에 새로운 미래 가설을 추가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2024년까지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보다 안전한 삶을 위해 방역 문화를 발전시켜 나간다’와 같은 미래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둘 수 있을 때 미래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 줄어들지만 다양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란다. 다양한 미래를 즐길 수 있을 때 파도는 온다.
1.
아침에 눈을 뜨면서 지우는 그날이 2040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지우의 기상을 감지한 센서가 작동하면서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다정한 목소리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축하한 후에 생체정보를 읊기 시작했다. 심전도와 폐의 산소포화도, 각종 장기 근육의 활성도부터 시작해서 체내 염증 수치와 37차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여부가 차례대로 보고되었다. 전날과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자궁경부암으로 발전 가능한 세포를 조기 발견하여 치료한 이후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만 특별 관리 정보로 분리되는 난소의 위치와 품질, 자궁의 상태만이 조금 달랐다. 가임기로 들어선 것이다.
오늘부터 가임기가 지속되는 3일 동안 특수 데이-루틴이 부여되고, 제공되는 음식과 화면 기록이 요구되는 운동이 달라진다. 지우는 더이상 견딜 수 없다고 되뇌었다. 지우의 팔목에 심긴 센서에서 세르토닌 분비량의 이상 변화가 감지된다는 알림이 울렸고, 자동 연결된 스피커에서 쇼팽의 야상곡이 흘러나왔다. 언제나 지우의 기분을 바꿔주었던 노래였지만 오늘은 세르토닌 분비량을 정상 수치로 올려주지 못했고, 스피커는 여러 음악을 계속 바꿔나갔다.
“우리 이혼하자.”
지우는 현서를 깨워서 그렇게 말했다. 지우의 세르토닌 수치가 안정화된 건 그때였다.
현서의 생체정보 보고가 끝난 후에 둘은 침대 위에 마주 앉았다. 현서의 일간 브리핑에서도 파트너로 등록된 지우가 가임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며 즉각적인 부부관계를 권유하였으므로 현서 역시 지우가 기분이 좋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나 이렇게는 못 살아.”
현서는 그냥 무시하자고 말하려고 했다. 지난달에도, 그 지난달에도 같은 말을 했었다.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현서의 주변에는 이미 같은 문제로 이혼 상담을 받고 있는 부부가 있었다. 이혼 상담의 결론 역시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임신 기계가 아니야.”
지우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현서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그리고 지우를 안았다. 현서는 지우를 사랑했다. 그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는 건 감정 센서에 정확히 기록되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현서는 몹시 마음이 아팠고, 지우의 센서와 같은 색의 경고 알람이 떴다. 이제 스피커에서는 지우와 현서가 신혼여행을 가던 날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해외여행 자체가 오래된 기억이 되어버린 지금, 국제선 비행기에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들었던 아델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 이혼하자.”
현서의 말에 지우는 몸을 숙이고 큰 소리로 울었다. 둘의 센서의 색이 다시 바뀌었고, 스피커의 노래도 따라 바뀌었다. 지우와 현서는 붉은색이 떠 있는 팔로 서로를 안고 오랫동안 함께 울었다.
2.
지우의 열두 개의 아바타들은 2040년 12월 31일 밤 11시에 열리는 송년 파티 준비로 아침부터 바빴다. 각기 최대 두 명까지 초대할 수 있었고, 어젯밤에 대부분의 아바타가 초대장 발송과 파티 참석 예약자 등록을 마친 상태였다. 클럽 디제이로 일하고 있는 이십대 독일/여자 아바타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는 삼십대 한국/여자 아바타만이 아직 초대장을 발송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독일/여자 아바타는 네 명까지 허용해줄 수 없느냐고 계속해서 요청하고 있었다. 친구 그룹을 나눠서 초대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그 친구 그룹이란 그녀의 네 명의 연인―한 명의 남자 아바타와 세 명의 여자 아바타―을 말하는 거였다. 파티를 주최하는 칠레의 최연소 여성 대통령 아바타는 한 명의 아바타에게만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독일/여자 아바타가 술에 취하면 집단 성교를 벌이는 것을 알아서였다. 베를린 클럽 뒷골목에서야 상관없지만, 다 같이 모이는 파티에서 그런다면 다소 보수적인 성향의 오십대 중국/남자 소설가 아바타가 매우 언짢아할 것이 분명했다.
한국/여자 아바타는 올해 초에 아들 아바타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몹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아들 아바타는 엄마 아바타가 밤낮없이 광산 채굴을 해서 번 코인으로 사준 명품 브랜드 가방을 뺏긴 것도 모자라 성폭력을 당할 뻔하기도 했는데, 그 사실을 알리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엄마 아바타는 속을 끓였다. 파티를 할 기분이 아니라며 한국/여자 아바타는 파티 참석 불가를 통보했었다. 그때 ‘딸 바보’로 유명한 사십대 필리핀/남자 재벌 아바타가 나서서 그럴수록 더더욱 파티에 참석해서 기분을 북돋아야 한다고 설득했고, 한국/여자 아바타는 아들과 함께 참가하겠다고 마음을 바꾼 바 있었다.
지금 한국/여자 아바타가 고민하고 있는 건 배우자 아바타를 파티에 부를 것이냐의 문제였다. 그녀는 아들 아바타의 문제에 방관한 배우자 아바타와 이혼을 결심한 지 오래되었는데, 언제 어떻게 이혼서류를 보낼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배우자 아바타는 현서라는 이름의 이십대 한국계 미국/여자 아바타로 한국/여자 아바타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체위의 섹스에 능하고 독립적인 성격이 매력적이었지만, 자녀 양육에서는 없느니만 못했다.
아직 공식적인 결혼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송년 파티에 초대하지 않으면 여러 말이 돌 게 틀림없었다. 지난밤에 가상 이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린 후에 한국/여자 아바타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이혼 절차를 밟기로 결심했다. 제일 먼저 아들 아바타의 남아프리카 유학을 신청했다. 아들 아바타의 양육권을 가지고 다투기 싫었다. 남아프리카의 백신 연구소에서 일하는 아바타에게 디엠을 보냈고, 과학자 아바타는 선뜻 아들을 맡아주었다. 과학자 아바타는 37차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마쳤고, 이후의 백신 개발에서는 빠지겠다고 말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들 아바타를 돌볼 시간이 충분하다고 했다.
“나, 더는 안 되겠어.”
한국/여자 아바타가 가상 이혼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려 본 것이 무색하게끔 한국계 미국/여자 아바타는 이혼 신청 디엠을 확인하자마자 승인 버튼을 눌렀다. 아마도 불륜을 해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한국/여자 아바타는 잠시 씁쓸해했지만, 이내 아들과 파티 참석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파티 시작까지 고작 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고, 파티복을 맞추고 음식을 준비해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한국/여자 아바타는 맞춤 정장 집에 들러 가장 파격적인 디자인을 의뢰했다. 오늘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혼을 발표하고 연애 가능 상태 메시지를 걸 계획이었다.
3.
2040년 12월 31일 만조 시각은 오전 6시 10분과 오후 6시 50분이었다. 지우와 현서는 5시에 일어나 채비를 마치고 항구로 나섰다. 지우는 들어오는 여객선이 있는지 감시하고, 현서는 어선을 타고 나가 마을 사람들이 먹을 해산물을 채취했다.
현서와 그의 형부 둘을 실은 배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 지우는 한 시간 정도 더 바다 건너를 멍하니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현서의 어머니는 지우에게 오늘 들어오는 배는 없었느냐고 물었다.
“있을 리가 없잖아요.”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하고 7년이 지났을 때 발생한 19차 바이러스는 30퍼센트가 넘는 치사율을 보였고, 바이러스 최초 발견 이후 2개월을 넘기지 않아 전 세계적인 봉쇄령이 내렸다. 국경이 봉쇄됨은 물론이고, 지름 5∼10킬로미터로 구획을 지은 지역을 벗어날 경우 지역 이동 패스가 필요했다. 그때 현서는 지우에게 섬으로 가자고 했다. 지역 이동 패스에 시스템적인 문제가 자주 발생했고, 감시가 소홀한 곳에 터널 따위가 발견되기도 했다. 한 번 뚫리고 나면 19차 코로나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지역 전체가 공동묘지화 되었다.
현서의 가족들과 통통배를 타고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섬에는 이미 19차 바이러스가 한 차례 휩쓸고 간 이후라 다섯 가구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현서와 지우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배에서 내리는 즉시 쏘겠다며 엽총을 장전하기까지 했다. 현서와 지우는 육지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2주를 보낼 테니 감시해도 좋다고 하면서 통조림 수십 박스를 보여주었고, 며칠간의 실랑이 끝에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13년이 지났다. 첫 3년간은 현서와 지우처럼 몇 가족이 배를 타고 드문드문 들어왔는데 마지막에 들어온 가족이 바이러스 증상을 보이자 현서는 직접 엽총을 들었다. 그 이후 그러한 방문조차 끊긴 지 10년이었다.
“37차로 난리야. 우리처럼 안전한 곳이 많이 없어.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처럼 편하게 사는 곳도 없지. 진짜 감사해야 돼.”
시어머니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옆에서 현서의 막내 조카가 맞장구를 쳤다. 섬에서 태어난 현서의 조카는 내일이면 여덟 살이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폐교 처리된 학교 건물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 진학하게 될 테고, 그러면 지우가 국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학생은 열두 명이 될 터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어요.”
지우의 말에 현서의 어머니와 두 명의 누나, 다섯 명의 조카가 동시에 지우를 돌아보았다. 지우는 이미 현서와 이혼 합의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내륙으로 갈 거예요.”
현서의 가족은 지우의 말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이 13년간 들어본 적 없던 ‘이혼’이라는 단어인지, 바이러스와 동의어처럼 여겨지던 ‘내륙’이라는 단어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반대야. 저녁에 남자들 들어오면 가족 투표를 해보자.”
현서의 작은 누나가 지우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들은 가족의 대소사를 결정할 일이 있을 때마다 가족 투표를 해왔는데 그걸 이혼에까지 적용할 줄은 몰랐던 지우는 당황해서 양손을 휘저었다.
“아뇨, 이건 현서씨랑 저, 둘의 문제예요.”
“그게 어떻게 둘의 문제야? 네가 가면 애들 수업은 누가 하고? 학교 문을 닫으라는 거야?”
“너를 누가 내륙으로 데려갈 건데? 현서가 배를 끌고? 그 배에 내륙 사람들이 뛰어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작년에 제가 내륙으로 대학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외숙모도 같이 투표했잖아요. 저도 그래서 못 갔는데 왜 외숙모만 예외예요?”
현서의 가족이 모두 한마디씩 지우의 이혼에 의견을 내는 동안 지우는 그들 너머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짙푸른 바다는 하얀 물거품을 만들며 끊임없이 일렁거렸다.
4.
멕시코 칸쿤의 7성급 레스토랑 디아스를 12월 31일에 예약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10년 치 예약이 차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우는 올해 초에 12월 31일 예약 취소 알람을 걸어놓으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12월 31일 7시 예약을 한 가족이 37차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 모두 사망하는 일이 생겼고, 지우는 잽싸게 그 자리를 꿰찼다.
2040년 12월 31일 당일 아침, 지우는 현서에게 짐을 싸라고 말하면서 오후 2시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5시에 칸쿤에 도착하는 비행기표를 내밀었다.
“결혼 1주년 기념일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어.”
현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근래 현서는 부쩍 말이 없고 섹스를 거부하는 일이 잦았다.
“나, 일 그만뒀어.”
지우는 예상치 못했던 현서의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현서는 한국 부동산 25퍼센트를 점유한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현서의 회사 지부가 120개국에 있었으므로 지우와 현서는 매년 국가를 옮겨가며 살 계획을 하고 있던 차였다.
“이직하려고?”
지우는 애써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현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잘 나가는 기업 퇴사보다 더욱 충격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히피 공동체에 들어가겠다는 거였다.
“배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어. 산에서 고개를 넘어 다니면서 텐트를 치고 사는 공동체도 있고.”
지우도 현서가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수명을 단축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로, 사람들은 ‘이러나저러나 죽는다’를 표어를 내걸고 오래전에 유행이 지난 YOLO 운동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스스로 히피라고 지칭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자연을 떠도는 유목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히피의 등장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수소를 이용한 고속 비행기가 발명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히피가 되지 않고도 유목민처럼 지낼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 집을 둔 사람도 흔했고, 지우와 현서 역시 매년 집을 옮길 예정이었다. 그러나 히피들은 여전히 히피로 남았다. 그들은 사실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런 인생을 택한 거였다. 돈이 없었고, 돈을 벌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직장에서 원하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그 모든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과는 태생부터 걸어온 길이 확연히 다른 현서가 왜? 지우는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현서에게 묻지는 않았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현서가 선택하는 인생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지우는 그런 인생을 절대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렇게는 못 살아.”
“그래.”
둘 중 누구도 이혼이라는 단어를 굳이 꺼내지 않았다. 지우는 일곱번째, 현서는 여덟번째 이혼이었다. 2040년 기준 한 사람의 평균 이혼 횟수가 다섯 번인 것을 감안했을 때 둘 다 이미 평균치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지우와 현서는 이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1년이면 살 만큼 살았다고 지우는 생각했다. 1년간 좋은 파트너였던 만큼 마지막으로 칸쿤에 같이 가서 시간을 보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연말의 칸쿤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 붐볐다. 지우의 여덟번째 배우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현서와 잘 지냈던 것만큼 이번에도 아시아 여성 배우자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섹스를 하기 전에 히피 공동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지우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파도의 미래 ―‘팬데믹 이후, 2040년 작가의 미래’를 마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물리적 공간에서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서로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데 집중했다. 호주와 한국이라는 거리, 소설과 미래연구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확신을 추동한 것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파도’는 우리가 코로나19 시대에 던진 호기심 어린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단 하나의 미래에 확신을 가질 때 삶에 대한 압박감은 점점 커진다. ‘2022년 5월까지는 반드시 코로나19가 종식되어야 한다’와 같은 믿음. 여기에 새로운 미래 가설을 추가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2024년까지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보다 안전한 삶을 위해 방역 문화를 발전시켜 나간다’와 같은 미래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둘 수 있을 때 미래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 줄어들지만 다양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란다. 다양한 미래를 즐길 수 있을 때 파도는 온다.
파도
한국미래전략연구소W 대표 황윤하와 호주에 거주하는 소설가 서수진은 팬데믹 이후 미래가 궁금해졌다.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미래연구자와 닫혀 있지 않은 미래로 뻗어나가는 소설을 꿈꾸는 작가가 만나 새로운 미래, 새로운 소설을 상상한다.
2022/03/08
52호
- 1
- ‘팬데믹 이후, 2040년 작가의 미래’에서 우리는 지난 4화까지의 연구를 통해 네 가지의 미래사회를 도출해냈다. 그것은 ‘엄격한 첨단기술 사회, 아바타를 활용하는 다양성 사회, 돌봄 공동체 사회, 세계시민 사회’였다. 보통 미래연구에서는 사회상 시나리오를 쓰지만 우리는 그 네 가지 사회를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를 통째로 보여주기보다 세밀한 개인의 고백이 담긴 소설이 사회 연구에서 담지 못하는 진실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우’라는 인물을 통해 20년 이후의 미래를 그려내고자 했고, 여기, 그렇게 탄생한 지우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