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여러분께.
   이제 2막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착석해주세요. 2막은 ‘아픔의 언어 표현 가능성’입니다. 언어 표현 가능성은 아픔을 소유하기 위한 연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픔을 소유한다는 말은 어렵게 느껴집니다. 조금씩 점진시켜볼까요? 소유는 현존하는 것입니다. ‘현존한다’는 건 무언가 항상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쓴다면 아픔이 지나가고 있는 순간을 소유 또는 현존하게 만들려면, 우리는 항상 ‘지금(the now)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새로운 문자가 필요합니다. 아픔의 순간에 제대로 머물고 말하기 위해 먼저 문자를 획득해야 합니다. 떠올려보세요. 말을 배울 때 우리는 문자의 발음이 적힌 표를 공부합니다. 히라가나 표, 중국어 병음 표 같은 것을요. 그리고 사전에서 단어를 익히기 위해 사용 예시와 유사어를 익히는 과정을 거치지요. 외국어를 익히고 배우는 그 과정처럼, 여기서는 아픔의 언어 표현을 하나하나 발음하고 연습해보려고 합니다.

   최추영과 장영우는 자신들이 느꼈거나 느끼고 있는 아픔과 관련된 문자를 수집했습니다. 왜 우리는 문자를 수집하게 된 걸까요? 아픔을 통째로 서술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가 부족하기에, 몸의 기관을 하나하나 돌아보듯 언어의 가장 작은 단위, 문자의 차원으로 돌아가 다시 습득하고 번역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문장을 만들기 전에 단어부터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게 흔들리는 몸짓은 하나의 문자가 되었습니다. 최추영의 아픔 문자는 장노출 사진으로, 장영우의 아픔 문자는 선으로 표현된 몸짓 드로잉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공연을 보면서 여러분도 주어지는 문자를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이 공연은 관객 참여형 공연입니다. 번역 과정에서 생략되고 탈락된 지점들, 변화하게 된 지점들을 여러분이 함께 연습하며 발견해보시면 어떨까요? 자, 공연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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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픔을 소유하는 연습 : 단어 수집


   A, 최추영의 사전

   코로나 감염 증상 중 가장 흔한 것은 무력감이다.
   ‘무력하다’의 발음과 뜻을 보면 다음과 같다.

   무력하다│無力하다│발음 [무려카다]

이 녹음 소리를 따라 읽으면서 ‘무력하다’를 학습해보세요. 최리외의 ‘무력하다’ 낭독.(총 1분)


   뜻과 예시1)

   1. 힘이 없다.

[예시] 무력하다 ; (아파트 옥상 계단에서) 힘이 없다.

   2.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예시] 무력하다 ; (방바닥에서)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3. 몽롱하다.

[예시] 무력하다 ; (창문 앞에서) 몽롱하다.

   4. 지겹다

[예시] 무력하다 ; (옥상 입구에서) 지겹다.

   B, 장영우의 사전

   장영우에게 ‘아프다’는 ‘듣기’이다. 보청기를 끼면 소리가 들리고 소리는 귀를 아프게 만든다. 듣기-아픔과 소리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장영우에게 소리란 들려오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장영우의 아픔 단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 또한 표기한다. ‘듣기-아픔’과 관련된 증상을 참고하여 그 뜻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듣는 것이 아프다


이 녹음 소리를 따라 읽으면서 ‘듣는 것이 아프다’를 학습해보세요. 최리외의 낭독.(총 33초)


   

뜻과 예시
2)

   1. 구토

[예시] 듣는 것이 아프다 ; 구토 (아파트 옥상과 강변북로, 동작대교 방향)


   2. 듣기 통증

[예시] 듣는 것이 아프다 ; 듣기 통증 (아파트 옥상과 강변북로, 여의도 방향)


   3. 이명

[예시] 듣는 것이 아프다 ; 이명 (아파트 옥상과 강변북로, 여의도 방향)


   4. 어지럼증

[예시] 듣는 것이 아프다 ; 이명 (아파트 옥상과 강변북로, 여의도 방향)


듣는 것이 아프다’의 유의어, 인접어를 학습해보세요. 최리외의 낭독.(총 1분 1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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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막으로 가기 위한 인터미션


   관객 여러분께.
   오늘 배운 단어를 잘 습득하셔야 합니다. 이어지는 공연, 3막 ‘언어의 행동 표현 가능성’에서는 이 단어들이 섞이고 움직입니다.
   복습 시간을 가지면서 이번 공연의 막을 내리겠습니다. 자, 음성을 따라 읽어보겠습니다.

익수케의 장영우 몸짓 드로잉


최리외의 낭독(총 43초)



   작업 노트 3



   “비언어를 언어로 만들기, 그리고 언어를 다시 비언어의 영역과 맞닿게 하기, 혹은 다른 언어 찾아보기. 결국은 저희가 하고 있는 작업이 언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 같아서 무척 재미있어요.” _3화 작업 노트 부분




장소통역사

소설가 최추영과 미디어아티스트 익수케로 활동을 시작한 실험 그룹입니다. 소설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장르를 ‘모션-픽션’이라 부르며 낭독자 최리외, 안무가 장영우와 함께 불가해한 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그것을 모종의 번역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2022/11/08
60호

1
예시의 모든 이미지는 장영우의 몸짓을 장노출한 사진으로, 최추영의 아파트 건물에서 촬영했다.
2
예시의 모든 이미지는 익수케가 장영우의 몸짓을 드로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