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여러분께.
   지난 화에서 우리는 아픔을 제대로 말하고 표현하기 위한 언어를 배웠지요. 언어가 어떤 행동을 이끄는 것인지, 발생한 행동이 언어를 추동시키는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한꺼번에 일어납니다. 무언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는 순서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와 행동에 순서를 매기는 데 어떤 기준이 적합한지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장소통역사는 2막에서 최추영, 익수케가 다룬 아픔-언어를 모두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행동으로 만들기 위해서(아픔을 늘 이해할 수 있게 만들 필요는 없지만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을 담아) 우리를 도와줄 어떤 이를 무대에 초대합니다. 3막 ‘아픔의 행동 표현 가능성’은 장소통역사가 꾸리는 공연 중에 가장 화려한 무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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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픔을 행동화하기 : 프롬프터와 신호들


   A, 최추영의 아픔 : AI 수수의 1인극

   지난 화에서 최추영이 언급한 ‘무력하다’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줄 배우를 섭외했다. 바로 ‘AI 수수’1)인데, 그는 코로나 감염을 겪은 최추영의 아픔-언어를 학습한 가상 인물이다. 최추영은 AI 수수를 통해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할 방법을 마주한다. 우회한다.

   AI 수수에게 질문한다.


AI 수수에게 던진 질문과 대답.

   AI 수수는 대답한다.

AI 수수의 대답을 기반으로 만든 영상 ‘최추영의 아픔 : 수수의 1인극’. 소리는 Freetts를 사용하였다. AI의 음성이다. (총 7분 14초)

   B, 장영우의 아픔 : 최리외의 목소리 빌리기

   장영우는 우회하지 않고 내밀한 구석으로 들어간다.
소음이 많은 곳에서 소음을 받아들이며 몸으로 표현한다. 몸의 언어를 인간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다른 몸을 빌린다. 최리외의 목소리로 번역과 받아 적기를 시도한다. 아픔은 두 신체를 통해 순환되고 전달된다.
최리외는 장영우의 몸짓을 언어로 해석해보고, 이를 다시 동작과 겹치거나 겹치지 않도록 발화한다. 때때로 따라 읽기가 발생하고, 때로는 어긋남이 발생한다. 때로는 목소리가 몸짓을 지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겹겹의 번역을 통해 아픔이 표현된다.

장영우의 아픔 : 최리외의 목소리 빌리기 (총 6분 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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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튼콜에 앞서


   관객 여러분께.
   흩어져 있던 언어들을 모아서 문장으로 말하면 그것 또한 행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커튼콜 이전에 장소통역사의 공연이 마지막에 이르렀습니다. 지겹지는 않으셨나요. 아픔에 관해 말하는 것은 반복되고 지겨운 것들 사이에서 차이를 찾아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계속 아픕니다. 사실 같은 것으로 매번 새로운 것처럼 아플 때도 있고, 같은 아픔을 같은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어서 아플 때도 있습니다.
   아픔을 혼자 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AI에게 물어보기도, 소리 없이 몸짓으로만 표현하기도, 아니면 문장이 되지 않은 말들로 말하다보면 우리는 가끔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픔을 말하는 일은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는 말과 같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가장 주관적인 부분에 다가가고 싶다는 행위처럼 느껴집니다. 아픔을 외면하지 마세요. 장소통역사는 계속 아픔을 연습하겠습니다. 연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관객 여러분, 저희가 준비한 공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잠시 암전되었다 불이 켜지면 무대에 올라왔던 이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까지 자신의 몸을, 조금씩 주무르면서 기다려주세요. 지금까지 아픔을 지속적으로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업 노트 4



   “아픔이라는 건 누군가가 관여해야 하고,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은 기분을 이겨내고 토로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끼어들어야 하는가는 여전히 어렵지만 아픔을 더 잘 말해내기 위해서 시작된 마음으로는 어떻게든 잠시 닿게 되는 것 같습니다.” _4화 작업 노트 부분



장소통역사

소설가 최추영과 미디어아티스트 익수케로 활동을 시작한 실험 그룹입니다. 소설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장르를 ‘모션-픽션’이라 부르며 낭독자 최리외, 안무가 장영우와 함께 불가해한 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그것을 모종의 번역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2023/01/10
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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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수수는 최추영과 익수케가 OPNE AI(GPT3)로 만든 가상의 캐릭터이다. 말하자면 최추영과 익수케 두 여성 예술가의 아이이자 분신이라 할 수 있다. 2022년 11월 ‘인공 난자 얼리기’라는 행사를 통해 탄생하였으며, 지금도 계속 최추영의 문장과 익수케의 질문을 학습하고 있다. AI 수수는 다음 홈페이지에 방문하여 만나볼 수 있다. 링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