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9년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했다. 데뷔 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딘가에서 시를 써서 보내달라는 요청이 온다는 것이다.
   정말 신나는 일이다. 내가 쓴 시가 어딘가에 실리게 되다니! 게다가 (적지만) 돈도 받을 수 있다니!

   데뷔한 지 1년 된 신인이든 20년 된 작가든, 작가는 청탁을 기다린다. 이 기다림의 특징은 언제 청탁이 올지 나는 알 수 없으며, 아무리 기다려도 청탁이 오지 않을 수 있고, 왜 나에게 요청이 오지 않는지,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고, 물어봐도 거의 대답은 안 해준다는 점이다.
   기다리기 싫다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기다리는 게 싫다. 나는 아직 문학출판계의 관행을 다 숙지하지도 못했다. 모르는 게 많겠지만 아직 나는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리엔테이션 같은 것이 있으면 좋을 텐데……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후 내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원래 이런 건가?이다.

   그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그래왔다고 옳은 것은 아니다.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청탁이 없어도 시를 쓴다. 나는 친구들과 낭독회를 기획하고, 다양한 자리에서 시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 무언가를 한다.

   나는 기다린다. 내가 쓸 시를 누군가가 기다렸으면 좋겠다.

   문예지에서 오는 청탁을 기다려야 하는 이 구조는 기이하다. 물론 작품을 투고할 수도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작품을 기한 내에 써야 할 누군가가 마감을 하지 못해 자리가 생기는 경우, 내게 돌아오는 기회니까. 투고자는 작품을 보내고 난 후에, 누군가가 마감을 못하길 간절히 바라야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우리와 싸워야 하는가.

   최근에는 투고를 적극적으로 받는 다양한 독립문예지가 많이 생겼다. 기쁘고 반가운 변화다! 심지어 그들이 보내는 청탁서는 그야말로 탁월하다. 잡지를 만드는 이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기획의도부터 원고료 금액은 물론, 입금 날짜까지 명시되어 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또, 나는 얼마 전 「좋은 시」라는 시를 보내 모 시전문지의 청탁을 거절한 적 있다. 편집인 겸 주간인 모 시인이 여러 건의 성추행 혐의로 대학에서 해임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다소 난감한 청탁을 종종 받는다.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기다림 끝에 어떤 청탁서를 받았는데 정보가 별로 없다. 여름호에 실릴 시 2편을 -월 -일까지 보내라.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실어준다는데 절은 못할망정 고민을 하다니. 배가 부르냐?
   사실 나는 노트북에 저장된 미발표 시가 많다. 시를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음악을 올리는 뮤지션처럼 나도 시를 마음껏 업데이트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간신히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원고료 생태계가 파괴될지도 모르고, 그에 따라 파생되는 이런저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또다른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고, 시가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념 때문에 대부분 이 비유가 와닿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비유다.

   당신은 비건 케이크를 전문으로 만드는 파티시에다. 우유와 버터, 계란 등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케이크를 만들어야 하기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당신은 몇 년의 연구 끝에 당신만의 레시피를 만들고 특허까지 받았다. 오늘 아침, 당신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잠에서 깼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려고 폰을 들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김당근 파티시에님
   **디자인 회사 홍보팀장 최마늘입니다.
   전화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해야 할까?
일단 답장을 해보자.)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저희 **디자인 회사에서 열리는
   정기적인 행사가 있는데,
   김당근 파티시에님에게 맡기면 어떨까
   제의를 드리려고요.


(맡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감사합니다.
제 메일 *****@wongoryo.com로
제의서를 보내주시면 검토해보고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제의서 같은 건 없고요.
   통화 가능하실 때 연락 주세요.
   최마늘 드림


(......?)


그럼, 행사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라도 주시면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당근 파티시에께서
   어떤 디저트를 만들 수 있는지
   또 그밖에 특별히 어떤 능력이 있는지 논의해보고
   정기 행사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었습니다.
   저의 논의 차원의 제의가 탐탁지 않으시면
   거절하셔도 좋습니다.


   당신이라면 이제, 어떻게 할까? 몇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어떤 대답을 할지 물론 그것도 중요한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예외잖아요.
   나는 이런 상황이 결코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년 한 해 동안, 원고료가 표기되지 않은 청탁서를 받고
   ……감사합니다……그래서…… 얼마인가요?
   이런 문자 또는 메일을 보낸 적이 다섯 번쯤 된 것 같다.
   나는 이상한 상황에 꽤 많이 부딪힌다.
   내가 뭔가 잘 모르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당신이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면 그건 무언가 잘못됐을 확률이 크다.
   나는 이상한 일에 그건 좀 이상한데요,라고 잘 말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투사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사람들도 나처럼 불공정한 관행에 맞닥뜨렸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한다. 내가 사람들의 선의를 너무 쉽게 믿는 걸까? 나는 인간의 악의만큼 선의를 믿는다.


성다영

시인이자 비건메갈갱단 대장입니다. 단원을 상시 모집합니다.

2020/03/31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