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당에서 주문한 김밥에 시금치가 들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아도 따지지 않고 먹는 사람이다. 토마토소스를 시켰는데 데미글라스 소스가 뿌려져 나와도 그냥 넘긴다. 조금 바쁘셨겠거니, 생각한다.
   사실 시금치 없는 김밥을 먹고 토마토소스 대신 데미글라스 소스를 먹을 땐 좀 서럽지만 이미 만든 음식인 걸, 별로 따지고 싶지가 않다. 배려심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다. 피곤해서 그렇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사소한 일이어도 체력이 무척 많이 든다. 그렇지만 만약 그 집 김밥 속이 매번 제멋대로 바뀐다면…… 토마토소스보다 데미글라스 소스가 많이 남아서 실수를 가장하고 일부러 그렇게 내놓는다면…… 나는 친구들한테 그 식당은 가지 말라고 말할 거다. 그러나 이때도 “사장님, 이러시면 안 되죠.”라고 말하는 건 힘들다. 익명으로 남기는 리뷰라면 덜할지 모르겠지만 식당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뭐라 할 용기는 없다. 그런 식당은 그냥 가지 말고, 주변인한테도 가지 말라 그래, 뭐하러 서로 얼굴 붉혀, 차도하의 골목식당이 아니잖아. 그런 충고를 받아들이는 게 최선 같다.

   하지만 그건 식당에서 한 끼 때울 때 이야기다. 기획을 하고 청탁을 받고 내가 쓴 원고를 드리는 일이 그것과 같을 순 없다. 더구나 그것이 문학계 전반에 지뢰처럼1) 심겨 있는 문제라면 내가 한 번 피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어디에다가 비유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비유 없이 말하자. 내가 겪은 일은 이러하다. 나는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여러 출판사에서 ‘신춘문예 신인 특집’ 기획에 원고를 실을 것을 청탁받았다. 그중 내가 거절한 세 가지 제안이 있다.


   1. 『신춘문예 당선시집』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매년 문학세계사에서 발행되고 있다. 문학세계사 대표의 아들이자 전 기획이사 김요일은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이다. 나는 이 사실을, 201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을 찾다가 성다영 시인의 트위터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당선되면 나도 싣지 않겠다고 다짐했다.2)
   그러나 이 다짐이 처음부터 단단한 것은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글을 실을지 말지 계속 고민하던 상태로 담당자님께 청탁 전화를 받았다. 고민하고 메일로 답장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내 다짐을 단단하게 만든 것은 그 이후에 또 걸려온 청탁 전화였다. 이번엔 담당자님이 아니고 대표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나는 『신춘문예 당선시집』이 가지고 있는 권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각 대학 문창과에서 수업 교재로 사용되며 몇십 년째 발행을 하고 있고 주요 일간지에서 당선된 신인들의 시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네. 네. 생각해보고 메일로 말씀드릴게요. 대표는 청탁서에 적힌 내용을 읊으며 마감 기한이 촉박하니 빨리 작품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전화를 받고 내가 한 생각은, ‘어, 이거 나만 거절한 게 아닌가본데?’였다. 나만 거절했으면 대표까지 전화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내내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대표에게 직접 들으니, 그런 이유로 당선시집에 시를 싣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네가 중요하게 생각한 게 있잖아?
   무엇보다 네가 쓴 시가 있잖아? 권위를 등에 업고 행사하는 폭력에 대한 시로 당선되어놓고 이 설명을 듣고 청탁을 수락하는 건, 네 자존심보다 큰 문제잖아?
   그래서 나는 거절 메일을 썼다. 담당자님은 친절하게 답신을 해주셨다. 무슨 이유로 거절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쉽다고, 앞으로 좋은 작품을 기대한다고.


   2. 원고료를 밝히지 않은 청탁


   어떤 문예지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신춘 당선 축하와 함께, 문예지에서 기획하는 신춘 특집 지면에 신작시를 싣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메일 주소를 알려드렸고, 청탁서가 메일로 도착했다.
   그런데 청탁서에 원고료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원고료를 여쭈었다. 고료는 3만원이었다. 예전에 써놓은 시를 아무거나 골라 보낼까 싶었는데 이 모든 과정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청탁서에 고료가 적혀 있지 않고, 건방지다고 생각할까봐 계속 고민하다가 고료를 물어보고, 그게 낮은 금액인 것을 알게 되고, 낮은 가격에 맞추어 정성을 덜 들인 시를 보내려는 이 상황이.
   나는 또 고민했다. 그냥 거절하자.
   그리고 또 고민했다. 이유를 말해야 하나?
   이유를 구구절절 적으며 또 고민했다. 이거면 될까?
   아니. 이건 좀…… 아닌데? 매번 이렇게 해왔단 말이야?
   그렇게 메일을 보내고 트위터에도 글을 게시했다.3) 메일을 보낸 후 담당자님께 장문의 답변이 도착했다. 거절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셨다. 나는 어쩐지 무람해졌다. 고료를 밝히지 않은 것도, 고료를 낮게 책정한 것도 담당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담당자님께 내가 사과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3. 시 2편 5만원


   또다른 문예지에서 청탁 메일이 왔다. 내 메일 주소는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 조금 궁금했지만 어쨌든 청탁이 들어오다니, 나 정말 ‘시단’이란 것에 나온 건가! 두근대며 청탁서를 열었다.
   분량 2편(편당 18행 이내), 고료 5만원.
   편당 5만원이 아니고 2편을 다 합하여 5만원이었다. 나는 이건 좀 편한 마음으로 깔끔히 거절했다. 미발표 시 중에선 18행 이내가 없고, 새로 쓰면 마감 기한을 맞추기 어려울 듯하며, 고료가 너무 적은 청탁은 거절하기로 했다고.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답메일 고맙습니다. 《○○》은 해마다 신춘문예 출신 시인들을 특집으로 다루는데 다른 신문사는 다 있는데 한국일보만 빠지게 되어 아쉽지만 잘 알겠습니다. 열심히 작품활동 하십시오.”

   나는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로지 작품만 쓰지는 않을 것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작가들이 자신도 모르게 부조리에 얽혀버리는 일을 사라지게 하고 싶다. 그런데 내가 부조리하다고 느껴서 나간 자리는 공석으로 남는 게 아니고 다른 작가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널리 알려서 모두가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든 될 것이다. 청탁을 여러 번 거절하고 그것을 알리며 나는 그런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자포자기가 아니고, 정말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마음으로.
   나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되길 바란다.


차도하

거절 잘 못하는 사람. 자기 전에 내가 했던 말과 남이 했던 말을 되짚어보다가 괴로워합니다. 드림캐처 같은 사람을 가지고 싶다가도 사람에게 무엇도 기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에게도 무엇도 기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를 씁니다.

2020/04/28
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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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일을 해오면서 저는 문학계에 지뢰처럼 깔려 있는 이와 같은 수많은 문제와 부패와 부조리들을 한 명의 작가가 제대로 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계속 부조리에 얽히게 됩니다.” 윤이형 트위터. 링크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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