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안은 국회에 계류중이다. 지금 열려 있는 임시국회 회기는 2020년 5월 15일까지이고 이때까지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5월 말 20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처리되지 못한 법안은 모두 폐기된다. 본회의 일정이 잡혔다가 취소되는 등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간이다. 이 글이 웹진에 업로드되었을 때는 예술인권리보장법안이 쓰레기통에 있을지, 무사히 본회의가 열리고 통과되어 법이 제정되었을지 결판이 난 후이다.

   1.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는 헌법 제22조 제2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조문은 1948년 제정된 헌법에서부터 존재했지만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에 걸맞은 법률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아이돌 연습생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이 알려지자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2014년 제정)과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졌듯이,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로 안타깝게 사망하자 「예술인복지법」(2012년 제정)이 제정되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졌듯이, 예술인권리보장법 또한 예술인들의 심각한 권리침해가 알려지고 나서야 제정 논의가 시작되었다. 법조문 하나하나가 많은 예술인들이 긴 시간 겪어온 피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윤이형 작가가 트위터에서 “이 법안을 폐기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 많은 분들의 피, 땀, 눈물이 들어가 있어요.”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2. 블랙리스트, 예술계 성폭력, 불공정행위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을 하다보면 겪게 되는 권리침해를 나열해보자. 지난 정권에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국가로부터 지원 차별을 받고 작품 검열을 당하고 작품 발표를 방해받았다. 예술계의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에서 안전하지 못하며, 예술활동을 하는 일상적인 영역에서 수시로 성희롱이 일어난다. 예술활동을 한 보수를 제때 받지 못하거나 떼먹히며 그나마 너무 적은 금액이라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같이 해야 한다. 잘 읽어보지 않고 믿고 사인한 계약서는 저작권을 양도한다는 내용이고, 미리 읽고 수정을 요구해도 거절당한다. 10년 넘게 일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잘려나가도 프리랜서라서 법원에서 근로자 해고로 인정받지 못하며, 공연을 하다가 무대에서 다쳐도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해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며, 다치면서 파손된 무대를 수리하는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이다.

   우리나라의 예술관련 법령은 그간 장르 중심의 지원 근거와 체계를 마련하는 내용으로 집중되어 왔고, 상대적으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에는 부족함이 있었음.
   그러한 상황에서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태’와 ‘예술계 미투 운동’ 등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침해하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여 많은 예술인들이 직·간접적 피해를 본바, 불공정한 예술 환경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의 삶을 구제할 수 있는 법령을 제정해야 한다는 예술계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임.
   따라서, ‘예술표현의 자유’와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 보호’를 법률로 규율하여 예술인에 대한 권리침해 행위를 방지하고, 성평등한 예술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폐쇄적 예술계 환경과 권리구제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에게 실효적인 피해구제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임.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 제안 이유1)


    3. 입법 추진 TF
   예술인권리보장법은 현장 예술인들이 법안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는 의미가 있다. 2016년 #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와 2018년 문화예술계 미투 이후 결성되어 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온 여성문화예술연합,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그리고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해 활동해온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예술인의 노동권 보장과 노동조합 결성을 추진해온 문화예술노동연대, 저작권법 개정과 저작권 침해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노동조합을 지향하며 결성된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가 예술인권리보장법 입법 추진 TF에 참여했다. 여기에 변호사, 새문화정책준비단, 문체부가 참여해 예술계 장르마다 다른 특성을 서로 조율하며 법안에 최대한 예술계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 유은혜 의원, 우상호 의원, 김영주 의원으로 발의할 의원이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2019년 4월 19일 예술인권리보장법안이 김영주 의원을 대표로 의원발의되었다.

   4. 무엇이 달라지나

   프리랜서가 70%인 예술인은 현행법상 성희롱, 노동권, 사회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처해 있다. 현행 법제도는 사업장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조직, 학교,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예술인들은 현행 법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인의 성희롱과 성폭력을 법에서 금지함으로써 징계성 조치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불공정행위는 예술인복지법에 조문이 몇 개 있지만 실효성이 적어 예술인복지재단에 접수된 사건의 해결이 미미한 상황인데 더 강력한 조항으로 대체된다. 또한 예술도 직업으로서 예술인은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와 안전이 보장된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데, 특정 예술지원기관이나 예술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거나 계약 체결을 준비중인 2인 이상의 예술인은 예술인조합을 결성하여 계약 조건에 대해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이때 예술지원기관과 예술사업자는 협의에 응해야 한다.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는 문체부에 신고하고, 신설된 직제인 ‘예술인 보호관’의 조사를 거쳐, 위원회에서 시정 명령, 재정 지원 중단, 수사 의뢰 등의 조치를 결정하여, 문체부장관이 이를 실행하게 되어 있다.

   지금 트위터에서는 20대 국회 회기 종료를 앞두고 #예술인권리보장법_제정하라 해시태그가 돌면서 예술인뿐 아니라 비예술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자신이 감상한 예술작품을 적거나, 예술인으로서 더이상 불공정과 불합리한 처우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는 희망을 적고 있다. 창작자를 함부로 대하는 씬에는 미래가 없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이번에 꼭 제정되어 우리가 예술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기초가 되기를 바란다.


이성미

시인. 2016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이후 여성문화예술연합(WACA)에서 예술계 성폭력 해결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활동을 해왔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미술, 사진, 디자인, 영화, 문학, 출판계와 부산 지역 여성예술인들이 예술계 성폭력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2017년 2월에 결성한 단체로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회를 대상으로 정책활동을 하고 있다.

2020/05/26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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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검색일 2020. 5. 6.) 링크 바로 가기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이트에서 법률 이름을 넣으면 검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