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13회 대구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면 1
대구에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견됐다. 2020년 2월 19일 아침 10시. 주요 병원 응급실을 폐쇄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대구시 브리핑이 끝나고 서둘러 극작가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미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구로 향하고 있다는 작가님은 아직 대구 상황을 모르는 상태였다. 이날은 책방에서 한 달 전에 기획한 희곡낭독회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한 달 전에 극작가와 작품을 낭독할 배우들을 섭외했고, 참석 신청도 받았다. 마이크와 음향기기를 대여해서 설치했다. 미리 신청자 수에 맞춰 희곡집도 주문했다. 희곡낭독회를 취소할 수 없었다. 신청자 대부분은 당일 참석 취소를 했다. 희곡낭독회에 참석한 손님은 총 3명이었다.
장면2
1년 전부터 벼르고 있던 6인용 원목 테이블을 2월 5일에 주문했다. 때마침 단골손님이 독서모임 하나를 만들었고, 단체 손님들이 이용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테이블은―코로나로 인해 화물택배사가 대구 배송을 거부해서 예상보다 늦어진―3월 초에 도착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책방에서 오프라인 독서모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4월에는 독서모임 대신 책 소개 라이브방송을 시도했다. 혼자 휴대폰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장면3
3월에는 책방이층이 기획한 ‘그책패키지’에 함께 참여했다. ‘그래도 책은 팔아야 하니까’라는 부제 아래 대구에서 운영 중인 세 책방(차방책방, 책방이층, 커피는 책이랑)이 고른 세 권의 책을 보내는 프로젝트다. 대구라는 지역과 코로나바이러스가 합쳐져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우리의 예상 주문 수량은 20개 정도였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게 주문해주신 덕분에 수익금 일부를 취약층 아동을 위한 기부금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장면4
정기 휴일을 제외하고 계속 문을 열었지만, 책방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3월 매출은―패키지 수익을 제외하고―거의 없었다. 남편에게 책방을 처음 시작했던 날이 떠오른다며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뜻인가 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손님이 없어도 주문해야 할 책은 생겼다. 우리 책방은 현금으로만 책 매입이 가능하다. 대출을 알아봤다. 하지만 대출하는 것보다 갚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다.
장면5
4월에는 서점 지원사업을 준비했다. 서점 지원사업은 북토크나 낭독회, 워크숍 운영을 지원하는 데 대부분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에는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사업 계획과 온라인 사업 계획 두 가지 모두 작성해야 했다. 사업 계획을 작성하면서도 대구에 오려는 작가님이 계실지, 처음 하는 온라인 사업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지, 이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걱정됐다. 다른 책방에서는 서울에 있는 작가가 대구로 올 수 없어서 온라인 북토크를 진행해야 한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남 일 같지 않았다.
지금까지 적은 다섯 개의 장면은 대구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생기고 난 이후 ‘커피는 책이랑’이 겪은 일이다. 찬찬히 되돌아보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위험이 증가했다뿐이지 책방 매출은 전이나 후나 여전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넷플릭스 같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와 택배 배송은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책방으로 책 배송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없다. 이미 무료로 배송해주는 인터넷 서점들이 있고, 책을 추천하는 SNS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그렇다면 책방은 왜 있어야 하는 걸까.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장면 1의 희곡낭독회를 진행한 이유 중 하나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작가와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와 희곡집을 읽는 독자 간의 연결 기회를 포기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대구에는 소극단이 모여 있는 ‘대명공연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많은 배우가 활동을 한다. 대구 배우들에게 극작가와의 만남은 자극이 될 거로 생각했다. 더불어 텍스트를 시각에서 청각으로 옮겼을 때의 쾌감을 많은 사람과 느끼고 싶었다.
장면 2에서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언급한 이유는 독서모임은 책방에 책 유동성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독서모임 지정도서를 모임하는 책방에서 구입하기도 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지정도서와 함께 다른 책을 구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서모임은 사람이 좀 모이려나 싶다가도 진학, 결혼, 이직과 이사 등으로 쉽게 흩어진다. 자주 오는 손님들에게 독서모임을 직접 만들어보라고 권유했지만 다들 부담스러워했다. 그렇다고 혼자 매일 독서모임을 진행할 수 없었다. 잠시 책방 운영자가 SNS 인플루언서가 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방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건 너무 어렵다. 장면 5처럼 서점 지원사업을 통해 정말 뵙고 싶은 작가를 섭외했지만, 신청자가 없어서 북토크를 취소하기도 했고, 작가의 일정이 맞지 않거나 교통비를 고려하지 않은 지원사업 강연비로 인해 작가를 섭외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대구에 있는 작가를 섭외하면 될 텐데 왜 서울에 있는 작가를 부르냐고 묻는다면 활동하고 있는 대다수의 작가가 서울(혹은 그 주변)을 기반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구에는 서울처럼 창작 관련 워크숍을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공간이 거의 없다.
가끔은 책방을 운영하는 게 작은 호미를 들고서 끝없이 펼쳐진 돌밭을 고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러다가 코로나라는 큰 돌덩이를 만났지만, 이것도 수많은 돌 중 하나일 뿐이다. 다행히 아직은 돌 고르는 일이 버겁진 않다. 만약 이 일이 버거워지면 호미를 바닥에 놓고 일어나 먼지를 탈탈 털고 떠날 것이다. 언제든 호미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마음이 아직까진 이 일을 더 버티게 해준다. 그전에 함께 돌밭을 고를 사람이 많이 생기거나 서포트해줄 커다란 농기계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김인숙
2015년부터 대구에서 카페책방 ‘커피는 책이랑’을 운영하고 있다.
‘커피는 책이랑’에서 책방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책만 팔아서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는 사람이다.
2020/06/30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