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20회 리스너의 독서
고대하던 책과 시간이 준비됐다면 이것저것 더 곁들여본다. 따뜻한 차와 간식, 완벽한 조명, 노트와 연필을 마련하고 마지막으로 책과 함께 들을 음악만 고르면 되는데…… 늘 이게 문제다. 적절한 음악을 찾기가 어렵다. 음악은 너무 짧거나 길고 가끔은 아주 수다스럽다. 게다가 바깥 소리나 음악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은 책도 많다. 만남은 쉽게 성사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음악을 함께 내놓는 책들이 있다. 음악의 한복판에서 쓰인 것 같은 책, 읽기만 해도 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은 책, 읽다가 잠깐 샛길로 빠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책 등등.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어떤 이들은 글 안에 음악과 소리의 자리를 마련해둔다. 그럴 때 나는 합의된 음악을 따라 들으며 읽다가도, 종종 차고 넘치는 애정으로 살짝 엇나간 페어링을 시도해보곤 한다.
집요하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천희란의 『자동 피아노』에는 스물 한 곡의 피아노 음악이 등장한다. 건반악기의 황금기와 자동 피아노의 몰락기를 지나 동시대까지 넓게 아우르는 이 리스트에는 스카를라티, 슈베르트, 버르토크, 우스트볼스카야, 라벨, 쇼팽, 릴리 불랑제, 박창수의 음악이 있었고, 이들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와 결코 분리되지 않은 채 한데 뒤엉켜 있었다. 각 장의 부제처럼 쓰인 이 음악들을 나는 글의 첫 문단처럼 읽고 들었다. 해설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자동 피아노』를 읽는 동안 나 역시 피아노 음악 속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워지곤 했다. 이곳엔 음악과 말이 가득했지만 사람 입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를 상상할 수는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잃고 피아노에 갇힌 누군가가 건반으로 어떤 부호를 송출하는 광경을 떠올렸다. 내가 목소리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싶어질 때쯤 잠시 멈추어 노랫말이 없는 노래 ‘구음(口音)’을 들었다. 『자동 피아노』에서의 목소리 없는 말과 구음에서의 말 없는 목소리를 나란히 놓아보았다. 브람스로 시작해 메시앙으로 끝맺는 『자동 피아노』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지만, 잠시 피아노 밖에서 환기할 수 있는 위상 반전 플레이리스트를 괜히 만들어본다면 나의 첫 곡은 아무래도 만정의 구음이 될 것 같다.
이 콜라주는 소설가 이상우의 글과 시각예술가 송민정의 〈야생종〉 사이를 잇는 가상의 가교였다고는 하지만…… 그 위치는 조금 묘했다. 부산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던 이 사운드는 「배와 버스가 지나가고」에서 작은 틈을 발견해 샛길로 빠져나간 것에 가까웠다. 도시의 픽션을 만들어낼 이야기와 아주 작은 한 점에서 교차하는 사운드 픽션.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에도 언급되지 않은 그 믹스를 들으며 도록을 읽었다. 거기엔 그런 크고 작은 교차점들이 산재했다. 하여간 부산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야기가 다른 장면으로 이어지고 소리로 이어지고 다시 이야기로 옮겨가는 그 점들이 잠시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좌표를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음악을 함께 내놓는 책들이 있다. 음악의 한복판에서 쓰인 것 같은 책, 읽기만 해도 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은 책, 읽다가 잠깐 샛길로 빠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책 등등.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어떤 이들은 글 안에 음악과 소리의 자리를 마련해둔다. 그럴 때 나는 합의된 음악을 따라 들으며 읽다가도, 종종 차고 넘치는 애정으로 살짝 엇나간 페어링을 시도해보곤 한다.
천희란의 『자동 피아노』(창비, 2019)
집요하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천희란의 『자동 피아노』에는 스물 한 곡의 피아노 음악이 등장한다. 건반악기의 황금기와 자동 피아노의 몰락기를 지나 동시대까지 넓게 아우르는 이 리스트에는 스카를라티, 슈베르트, 버르토크, 우스트볼스카야, 라벨, 쇼팽, 릴리 불랑제, 박창수의 음악이 있었고, 이들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와 결코 분리되지 않은 채 한데 뒤엉켜 있었다. 각 장의 부제처럼 쓰인 이 음악들을 나는 글의 첫 문단처럼 읽고 들었다. 해설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자동 피아노』를 읽는 동안 나 역시 피아노 음악 속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워지곤 했다. 이곳엔 음악과 말이 가득했지만 사람 입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를 상상할 수는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잃고 피아노에 갇힌 누군가가 건반으로 어떤 부호를 송출하는 광경을 떠올렸다. 내가 목소리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싶어질 때쯤 잠시 멈추어 노랫말이 없는 노래 ‘구음(口音)’을 들었다. 『자동 피아노』에서의 목소리 없는 말과 구음에서의 말 없는 목소리를 나란히 놓아보았다. 브람스로 시작해 메시앙으로 끝맺는 『자동 피아노』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지만, 잠시 피아노 밖에서 환기할 수 있는 위상 반전 플레이리스트를 괜히 만들어본다면 나의 첫 곡은 아무래도 만정의 구음이 될 것 같다.
여객선 라디오에선 가벼운 재즈가 자주 흘러나왔는데 베이 에리어 사운드라고 어느 곳이든 항구도시에서는 언제나 퓨전재즈를 위시로 한 음악 채널이 있어왔다고 승객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이 콜라주는 소설가 이상우의 글과 시각예술가 송민정의 〈야생종〉 사이를 잇는 가상의 가교였다고는 하지만…… 그 위치는 조금 묘했다. 부산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던 이 사운드는 「배와 버스가 지나가고」에서 작은 틈을 발견해 샛길로 빠져나간 것에 가까웠다. 도시의 픽션을 만들어낼 이야기와 아주 작은 한 점에서 교차하는 사운드 픽션.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에도 언급되지 않은 그 믹스를 들으며 도록을 읽었다. 거기엔 그런 크고 작은 교차점들이 산재했다. 하여간 부산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야기가 다른 장면으로 이어지고 소리로 이어지고 다시 이야기로 옮겨가는 그 점들이 잠시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좌표를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신예슬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2020/12/29
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