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가자는 엄마의 말에 잠에서 깼다. 좀더 자고 싶었지만 백수인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는 엄마와 함께 운동하는 것뿐이다 생각하며 결국 이불 밖을 나왔다. 십 년 전부터 허리가 많이 안 좋아진 엄마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 코스는 산업 단지에서 마을까지 한 바퀴다. 산업 단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논과 밭이었다. 개발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그 변화가 아직도 낯설다. 그래도 덕분에 인도가 생겨 운동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산업 단지에서 내려와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산밑에 허물어져가는 빈집이 보인다. 봄을 기다리는 초목과 달리 그 집은 계절을 잊은 지 오래다. 슬레이트지붕 한쪽은 푹 꺼져 있고 벽은 대각선으로 갈라져 손바닥이 들어가고도 남을 틈이 보였다. 나는 굳이 시선을 주려 한 적은 없지만 걷다보면 어느새 내 시선은 그곳에 가 있었다. 그 틈이 낯설지 않았다. 그 집을 바라보며 부서질 것 같다는 나의 혼잣말에 엄마는 아무도 살지 않아서 그래, 한다. 아무도 살지 않아서. 그 말이 내 마음에 공명처럼 울렸다.

   작년 4월, 우리집은 살던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갑작스러운 이사였다. 우리 가족에게 예정된 이사라는 게 몇 번이나 될까. 살던 집은 비닐하우스로 만든 집이었다. 젖소를 키웠던 우리집은 가세가 기울면서 모든 것이 경매에 넘어갔다. 새로운 집주인은 며칠 안에 집을 비워달라 통보했고 우리는 급하게 집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안타까웠을지 몰라도 비닐하우스 집은 우리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우리는 그 집에서 십이 년이나 살았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 그 집에서도 나와야 했다.
   어떻게 그해 4월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한 달 동안 부모님과 나, 셋은 외삼촌이 백방으로 알아봐준 터에 새로 살 집을 포함해 하우스만 네 동을 지었다. 이삿짐도 며칠 동안 쌌는데 내 방은 책이 많아 이사가 정해진 날부터 정리했는데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책을 묶다보면 추억에 빠지고 그러다가 하루가 가고 다시 정신 차리기를 반복했다. 읽지 않는 책들, 잡지, 모아놓기만 하고 읽어보지 않은 자료들, 한두 장 쓰다만 노트도 아깝다 생각하지 않고 버렸다. 그러다보니 두 평 안 되는 작은 방인데도 쓰레기만 세 자루 이상이 나왔다.
   이사 첫날은 가전제품이나 장롱 같은 큰 짐부터 옮겼다. 마지막으로 내 방 책장을 옮기는데 우리는 깜짝 놀랐다. 벽 한 면이 대각선으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갈라진 틈은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산책길에 만난 빈집의 갈라진 벽과 내 방의 벽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사람의 온기가 더한 것뿐인데 내 방의 벽은 기특하게 무너지지 않고 버텨주었다.

   비닐하우스 집에서의 십이 년 동안 행복했던 일보다 힘든 일이 더 많았다. 내 방이 내 세계의 전부였을 때, 많이 울기도 하고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밖에서 경운기 소리만 들려도 밭일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고 싫었다. 내가 할일은 그게 아니라고, 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쓰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빠가 일을 시키면 했고 안 시키면 안 했다. 늘 어두컴컴했던 내 방처럼 내 마음도 그랬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너 참 힘들었겠다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내 방에 꼼짝 않고 있으면 엄마는 맛있는 거 했다며 나를 불렀고, 아빠에게 미움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는 반찬 한 조각이 늘 남아 있었다. 떨어져 사는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린 손끝처럼 내 마음이 시릴 때 가족들은 내게 언제나 따뜻한 입김이 되어주었다. 평상시 보이지 않는 입김은 오로지 추울 때만 보인다. 그 흐물흐물하고 잡히지 않는 온기가 문득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단단함이 내 방을, 우리 가족을 지탱해주었다.
   이사를 하던 날, 온기를 잃은 비닐하우스 집은 굴착기 삽질 몇 번에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부서졌다. 십이 년 추억이 참 쉽게 무너졌다. 나는 집터와 그 주변에 막걸리를 뿌렸다. 미신이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고마웠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새집에서 새롭게 출발하자 생각했지만 각오는 쉽게 사그라들었다. 일 년이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 제대로 짐을 풀지 않았다. 책장이 모자라 정리되지 못한 책들, 마음에 든 글귀를 적어놓은 쪽지는 아직 책상 서랍 속에 그대로 있다. 집은 새집이지만 내 마음은 온기를 잃어가는 빈집 같다.
   올겨울 나는 동면하는 곰처럼 잠만 잤다. 아까운 청춘이라는 생각과 이제 그 청춘도 저무는 중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런 의욕이 없다. 요즘은 아무 감흥이 없다. 차라리 말랑했을 때가 그립다. 많이 아파하고 슬퍼했을 때가. 지금은 그런 감정들마저 무뎌지고 있다. 감정은 무뎌졌지만 사고방식은 학창시절 그때와 비슷해 발전이 없다. 그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무서울 뿐이다.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다. 그저 집에서 먹고 자는 데도 조금만 먹으면 금방 체하고 두통도 심해졌다. 감기도 심하게 앓았다. 평소 건강엔 관심이 없었는데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보니 괜히 겁부터 났다. 무직에 돈도 없는데 큰 병에 걸리면 정말 죽어야 하는 건가 암울한 생각만 들었다.
   얼마 전엔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면역력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면역력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내 증상과 비슷한 게 많았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자주 입술에 포진이 생기곤 했는데 그 증상 역시 면역력 때문이라고 한다.
   몸은 집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도 집처럼 온기를 잃으면 서서히 무너져간다. 생각해보면 간절하게 작가가 되고 싶어 열정을 태운 적도 없었다. 애초에 문예창작과에 들어간 것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내 꿈은 고고학자였다. 그렇다고 내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꿈만 꾸면 그것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그건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에도 여전했다. 해마다 자책은 늘어갔고, 그렇게 내 안은 점점 텅 비어가기 시작했던 거다.
   엄마와 걷기 운동을 하는 동안 나는 친구에게 들은 면역력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다. 몸의 온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온기가 떨어지면 암에 걸리기 쉽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 동네 암에 걸린 아주머니 이야기를 하고, 과일을 데워먹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가, 방송에서 본 산에 사는 남자들 이야기를 하며…… 걷고 또 걸었다.

   그날 저녁은 얼큰한 버섯찌개였다. 면역력에 좋은 음식이었다. 보글보글 끓는 따뜻한 국물을 한입 먹자마자 그동안 시렸던 내 가슴이 단번에 녹아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빠도 엄마 음식 솜씨는 장모님을 닮아 최고라고 부추긴다.
   우물우물 버섯을 먹으며 문득 나는 이분들의 온기 속에서 태어났구나 생각했다. 두 분의 온기 덕분에 나의 온기는 아직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건지 모른다. 그들의 온기가 내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신기하다. 그저 마음이 따뜻한 것뿐인데 어째서 용기가 생겨나고 희망이 생겨나는 걸까. 언제나 나를 하숙생이라 놀리는 엄마에게 내일은 내가 먼저 운동 가자 말해야겠다.

남설희

수필은 제게 작은 것에도 배울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작은 것을 보며 늘 크게 배우고 반성합니다. 저의 반성이 녹아든 그림자가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그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