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2014년 9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한 ‘304 낭독회’가 2022년 12월에 100회째를 맞습니다. 작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304 낭독회는 떠난 이와 떠난 이를 잇고, 떠난 이와 남은 이를 잇고, 남은 이와 남은 이를 잇는 ‘연결’이 되고자 합니다. 《비유》에서는 문학으로 잇는 이 연결이 더 멀리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304 낭독회 100회 특집 기획에 함께하는 지면을 제공합니다. 304 낭독회에서 마련한 이 기획은, 304 낭독회의 매회 제목으로 사용된 96개의 문장을 토대로 한 시와 304 낭독회의 그때와 지금 그리고 내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특별 원고 4]
  사람의 시1)
  한연희

사람의 시





  4월의 이름들, 10월의 이름들
  신해욱

   어느덧 8년이 지났다, 라고 쓰려 했다. 그런데 겨우 8년이 지났다.
   벌써 100회가 되었다, 라고 쓰려 했다. 그런데 아직 100회밖에 되지 않았다.
   아흔여덟번째 304 낭독회는 2022년 10월 29일 노원 더숲 갤러리에서 열렸다. 나는 그 낭독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4시 16분에 시작했을 테니 5시를 조금 넘겨 끝났을 것이다. 내가 참석하지 않은 낭독회, 불과 두 달 전의 낭독회로 이 글을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 밤 다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4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14년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이태원의 그 골목까지 걸어서 10여 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었다. ‘전원 구조’ 자막이 뜨던 속보가 거실의 풍경과 함께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속보를 내보내던 TV의 위치와 비스듬한 각도, 건조대의 빨래, 사과 껍질과 초파리, 들떠 있던 마룻널 같은 것.
   텀블러 계정에 올라온 10월 29일 낭독회의 원고들을 뒤늦게 훑어본다. 마지막 원고엔 304명의 이름이 들어 있다. “304명의 이름을 잘 부르는 일.” 이 이름들을 또박또박 빠짐없이 부르는 목소리를 나는 2019년 7월 예순번째 낭독회에서 들은 적 있다. 늘 사회를 맡던 양경언 님이 처음 낭독자로 나선 자리였다.
   친숙해진 이름들이 있었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앉아 있던 유가족의 자녀들. 순범 엄마의 아들 권순범. 영석 엄마의 아들 오영석. 성호 아빠의 아들 최성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첫번째 낭독회에 앞서 우리는 유가족들을 찾아갔고 그분들이 가슴에 단 이름표를 보았다. 그리고 진도에서 만난 경주 엄마의 딸 이경주. 단식을 오래 이어갔던 김영호 님의 딸 김유민. 내가 생일시를 써주었던 김호연.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권재근. 권혁규.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또 몇몇의 책자에서, 낭독회 자리에서, 언론 보도에서 접했던 이름들.
   하지만 생소한 이름들이 더 많았다. 호명의 힘이 새삼스러웠다. 명단의 형태로 눈에 닿는 이름과 목소리에 얹혀 귀에 닿는 이름은 달랐다. 친숙해진 이름은 친숙해진 대로, 생소한 이름은 생소한 대로, 호명은 304라는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많은 유가족 중엔 조용히 아이를 가슴에 묻고 싶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부재의 자리를 홀로 감내하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또 이 많은 이름 중에는 챙겨줄 가족이 없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가 없는 외로운 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호명이 이어지는 동안 공기에는 숙연함이 배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 5년, 그즈음으로서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낭독회 초기의 침통하고 무거웠던 분위기가 떠오른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쉽게 건너가지 못하던 낭독자의 숨소리. 어렵게 삼킨 침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리. 시끄러운 광화문 광장에 애도의 결계를 치던 기타 소리. 모이고, 읽고, 떠올리고,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는 사이 낭독회는 차분해졌고 때로 명랑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낭독회는 기억의 끈을 만드는 장소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결이 다르고 농도도 다르고 표현 방법도 다른 제각각의 기억이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넘어가고 이번 달에서 다음 달로 넘어가며 잇닿고 엮인다. 그 끈은 가늘게 이어지다가 느슨하게 엮이다가…… 문득 굵어지고 팽팽해지는 순간을 만난다.
   304명의 이름에 귀를 기울이던 순간이 내게는 그랬다. 그리고 10월의 참사로 숨진 160명의 이름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되는’ 지금 또한 그렇다. 겨우 8년이 지났다. 그때는 안산의 분향소에 사진과 이름이 있었다. 이번엔 이름마저도 정쟁의 도구가 되었다. ‘명단 공개’ 여부가 논란이 되고 한 시민단체가 무리하게 공개를 강행하고 그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명단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불순한 행위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11월 30일에는 2명의 사망이 더 확인되어 목숨을 잃은 희생자 수가 160명이 되었다는데 이 사실은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되지도 않았다. “이름을 잘 부르는 일”의 소중함을 경험한 바 있어 이런 상황이 착잡하기 그지없다. 명단의 목록이 있기 전에 이름으로서의 이름이 있어야 했다. 이름 앞에서 추모하는 것은 자연스러워야 했다. 단순하고 당연해야 했다. 이름은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이 304명 중의 하나, 160명 중의 하나가 아닌 바로 그 사람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바로 그 사람이 우리와 함께 이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걸, 서로를 몰랐지만 모르는 채로 우리가 함께했다는 걸 깨닫게 한다. 304명의 이름을 부른 것처럼 언젠가의 낭독회에서 우리는 160명의 이름도 잘 부를 수 있을까.
   2015년 7월 25일 열한번째 낭독회에 참여했던 이만영 님의 말과 글이 떠오른다. 그가 낭독한 원고의 제목은 「두 개의 시간」, 부제는 ‘1993년 10월과 2014년 4월’이었다. 1993년 10월 그는 서해훼리호 침몰로 부모님을 잃었다고 했다. 22년 전 어린 유가족이어야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정을 공유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아니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기억인 것 같다고 했다. “우리의 눈물은 메마를 것이고 우리의 감정은 소실될 테지만” 기억을 공유한다면 애도를 지속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4월이 소환했던 10월의 기억, 그리고 10월은 다시 4월의 기억을 소환한다. 10월에 대한 ‘사람의 말’을 더듬기 위해 4월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얼마 전 내가 맡고 있는 수업의 한 수강생은 ?4월의 벚꽃과 10월의 낙엽?이라는 시를 써왔다. 그해 4월 15일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제주에 수학여행을 갔고 옆 수련원에는 단원고 학생들이 들 예정이었다고 했다. 말로 제대로 꺼내지 못했던 그때의 심정, 그때의 상황을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써보려 한다고 했다. 기억의 끈이 다시 굵어지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이 글을 쓰기로 한 것은 가을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나는 304 낭독회에 대한 소박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령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님이 두번째 낭독회에서 낭독을 마친 후 사석에서 했던 말, “늙은 사람도 이런 자리에 끼워줘서 고맙다” 같은 거. 또 서른일곱번째 낭독회가 열렸던 경의선 공유지의 장터에서 사온 선인장이 다섯 살이 되었다는 거. 키우다보면 팔이 돋을 거라는 말에 솔깃해서 사왔는데 팔은 돋지 않고 키만 싱겁게 자라 그때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였던 것이 지금은 70센티미터에 가까워졌다는 거. 가늘게 길게 이어지며 그저 끊어지지 않는 것으로 족한 기억의 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2014년의 참사, 참사 후의 대처, 고인과 유가족을 조롱하고 힐난하는 말들이 똑같이 반복되고 심지어 더 악화되는 듯이 보여 8년 전의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10월 29일의 참사가 일어난 골목 앞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지난달 이태원을 찾았을 때 그 나무는 노란 잎들을 잔뜩 매달고 있었다. 도열한 다른 가로수들은 다 잎을 떨궜는데 그 나무만 잎사귀들을 붙들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추모객들이 두고 간 국화꽃 더미에 몇 장의 잎사귀가 떨어졌다. 그중 하나를 주워 책갈피에 넣었다. 다시 노란색이다. 노란 리본. 그리고 노란 은행잎.


한연희, 신해욱

한연희: 아흔여섯 개의 문장 중 딱 한 글자만 바꾸었다. 그렇게 딱 한 글자만으로도 삶은 아주 많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그저 무심히 길을 걷는 일에도 딱 한순간이 중요한 것처럼. 부디 모두에게 평온이 깃들기를.
신해욱: 주머니가 깊은 옷을 좋아합니다. 기이하고 수상한 계절을 지날 때는 깊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야 합니다.

2022/12/27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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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와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304 낭독회’의 제목으로 사용된 문장들을 토대로 하여 쓴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