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작은 신의 존재처럼

하재연

새로 올 해의 이름을 찾아보았습니다.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 아무래도 2023이라는 숫자보다는 검은 토끼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그 모양을 상상해보는 것이 더 재미있으니까요. 궁금해져서 조금 더 검은 토끼의 의미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계수(癸水). 즉 검은 물은 생명체를 살리는 근원의 물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계묘, 검은 토끼는 생명을 살리는 식신(食神)이자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움을 주는 조력자를 의미한다고요. 2023년 계묘년은 윤달이 있어 입춘이 두 번 돌아오기도 한다는데요.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름과 자연의 순환에 기대어 새로 맞을 한 해가 지나간 한 해보다는 더 살리고, 더 먹이고, 더 도움을 줄 해이기를 바라는 것은 어떤 간절함 때문일 것입니다. 산업과 시스템과 그 무엇보다 인간이 만들어낸 재해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을 기억하며,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의 조력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까만 눈과 털을 부지런히 빛내며 입을 오물거리는 작은 신, 검은 토끼의 존재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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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는 고유한 한 존재의 이름을 알아차리는 일, 그 이름으로 불리는 일, 이름을 기억하는 일, 다른 사람이 이름을 불러주는 일에 화답하는 일, 하나의 이름이 잇달아 다른 이름을 불러들이는 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쓰다)에는 변은경의 동시, 이지음의 동화, 김뉘연, 이훤, 최정의 시, 편혜영의 소설을 싣습니다.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가 서로를 부르고 불리는 행위의 의미와, 숨고 찾고 궁금해하고 얽매이다가 이해하거나 이해할 수 없음에 봉착하는 우리 삶의 지극한 세부에 마주치게 됩니다. 이원석, 이현석, 김화진의 소설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속해 있는 “감정 실패의 구조”를 논한 이은지의 평론 또한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묻다)의 좌담 코너인 ‘담談’의 기획, ‘비유-뷰view’에서는 지난 《비유》에 실렸던 어린이문학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준현, 송미경 작가가 함께해준 이 좌담을 통해 어린이문학의 오늘과 미래를 들여다보고 상상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책+방’ 코너에서는 유튜브 채널 ‘그림책왓’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우리의 삶을 닮아 있는 그림책 세계로의 초대”에 여러분도 응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공동(체)’ 특별 원고인 304 낭독회 100회 기념 연재로 싣는 한연희의 시, 신해욱의 에세이가 부르는 이름과 건네는 약속에 귀기울여주세요. 
‘!’(하다)에 연재 중인 ‘안경’ 팀의 ‘뜻-밖의 오늘’에서는 영화 <안경>의 요론 섬을 방문한 세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읽고 나면 따뜻하고 달콤한 팥죽이 먹고 싶어지는 이 작품을 읽으며 이 겨울밤을 보내시는 건 어떨까요. 길고 춥고 까만 겨울의 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