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하게 하기



   출판사에서 시집 홍보의 일환으로 사람들의 사연으로 시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사연자들에게 본명을 사용해서 신청해도 좋고, 익명을 사용해도 좋다고 그랬다는데. 열네 명의 사연을 받았습니다. 시에 꼭 들어갔으면 좋겠는 단어나 문장도 받았습니다. 주제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하고 싶은 말도 받았습니다. 사연자들의 사연으로 시를 쓰기 전에, 사연자들의 사연으로 쓰고 난 후에 쓰게 될 시를 써보고 싶습니다. 그 시를 쓸 때 나는 아마도 뿌듯할 것입니다. 사연자들의 사연으로 시를 쓰는 일은 전에도 많이 해봤습니다. 고민 상담도 많이 해봤고요.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겠지요. 이번에도 칭찬을 많이 들었다. 잘했다고. 비사연자가 내게 사연자들이 잊지 못할 것을 쓰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내게서 시 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이고, 나는 사연으로 시를 쓰는 비결을 알려주었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서, 이상하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사연으로 시 쓰기의 비결을. 이번에 사연자들에게 줄 시를 쓰기 전에 잠깐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이번엔 칭찬을 듣지 말아볼까. 이번엔 기억되지 말아볼까. 이런 생각도 했죠. 사연으로 시를 쓰기 전에 사연자들의 사연으로 시를 쓰고 나서 쓰게 될 시를 먼저 써볼까? 내가 들을 칭찬을 미리 상상해볼까? 이번엔 그저 그랬어요. 실망했다는 사람의 후기를 상상해볼까? 언제나 상상은 현실을 초과할 수 없고. 내가 쓴 시가 안 좋은 평을 듣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서. 그러니까 일단은 여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연자들의 사연으로 시를 쓰고 나서 후기 삼아 쓰게 될 시를 미리 써보는 일 말입니다.

   정말로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비결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한 사연자가 자기는 사연을 보내지 않았다며, 누군가가 자신이 쓰지도 않은 사연으로 시를 써서 자신에게 보냈다는 사연을 어딘가에 게시하였습니다. 사연을 쓰지 않은 사연자가 한 무더기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연을 쓰지 않았다는 사연으로, 우편으로 시를 선물 받았다는 사연으로 한데 뭉쳤습니다. 시를 보낸 사람이 누굴까? 누가 나의 사연으로 시를 썼을까? 내가 사연을 쓰지는 않았지만, 내 사연이 맞는데… 사연을 쓰지 않았다는 사연자들을 안심시키고 싶군요.

   그 시는 제 시집에 실리지 않을 겁니다. 그 시는 당신의 것. 모든 것이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보내지 않은 사연으로 쓴 시를 내가 내 시집에 싣기를 바랄지도요. 당신에게 우편을 보낸 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그걸 알면 마음이 좀 편해질까요.

   나는 최원석입니다. 현재 프랑스 몽펠리에 거주. 전화번호는 +33 6 44 62 80 49

   끝





   녀석



   불쌍하기는 쉽고 불쌍한 사람들도 많지만.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보면서 불쌍한 녀석… 이라고 중얼거리기는 쉽지 않다. 불쌍한 녀석이라고 중얼거리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불쌍해야 하고, 니가 나보다 불쌍해야 하고, 네가 느끼고 있는 것이 고통이 아니어야 한다. 네가 느껴야 하는 것은 고통이어야 한다. 아닐 수가 없다. 너는 극도로 불쌍하다. 하지만 네가 미친 고통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너의 옆에서 너를 불쌍한 녀석이라고 부르기가. 속으로도 중얼거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너는 너무나도 순박해서. 뭔가 단단히 착각해서 잠시 고통을 잊고. 씁쓸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 순간, 그런 사람의 옆에서만 중얼거릴 수 있는 것이다. 불쌍한 녀석. 우는 사람은 순진한 사람이고, 씁쓸히 미소 짓는 사람인가? 우는 사람의 옆에서 나는 중얼거린다. 우는 녀석.

김승일

『항상 조금 추운 극장』이라는 시집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시를 쓰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겨울이라 추워서 마음도 얼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을 편하게 하는 시를 썼다. 종종 마음을 편하게 하는 시를 쓴다. 나는 김승일 시인이다.

2023/02/28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