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카나리아 / 봄비
카나리아
여자가 창틀 위에 앉아 카나리아처럼 노랗게 울고 있다
카나리아는 사백 년 넘게 애완으로 길러졌고 카나리아 제도는 저 멀리, 아프리카 북서부에 있다
언젠가 무른 무릎에 당신을 뉘고 그렁거리는 당신의 털을 쓰다듬은 적이 있다
우리가 먼 아프리카로부터 걸어오는 동안 우리는 야생의 딸기였고 흑백의 사람들이었고 암벽을 따라 도망치던 산양이었고
바람에 흩날리던 낱알이었고 지루한 정글과 사막과 대평원을 거쳐 서로에게 다정한 가축이 되기도 했던
수백만 년 풍화의 시간이 더는 쪼개질 수 없는 찰나가 되어 이제 막 영원이 되려는 순간이 있다
여자가 울던 시간을 통째로 떼어와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두었다
저 멀리 오랜 소실점으로부터 한 남자가 걸어와 형광등 아래서 여자를 꼭 끌어안는다
카나리아 제도는 아프리카 북서부에 있고 저기 창틀 위엔 노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날아가렴, 가서
부디 오래 살아남아라
봄비
꿈속에선 한창 봄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몇 송이 목련이 피어 있었다
너의 방안에서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이불속에서
회색빛의 새끼 물오리가 잠들어 있었다
너의 한쪽 날개는 축축이 젖어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너를
나는 찐빵, 찐빵이라 부르며
쪽쪽 입을 맞추고 심장 가까이 품으며
일어나봐, 일어나봐, 봄꽃이 피었어, 봄꽃이 활짝 피었다구!
흔들어 깨우다
먼저
나의 잠이 달아나버리고 말았지
창밖엔 비가 오려는 듯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있었다
노란 물갈퀴가 몇 번 자맥질을 하더니
봄 간 자리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영락
체불된 임금을 받았다.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다. ……사는 게 쉽지 않다.
2018/08/28
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