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교실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에는 커다란 나무와 열매, 새, 별, 나비 등이 어우러져 있다. 교실 안은 무채색에 차분한 느낌이고, 창밖 풍경은 형형색색으로 생동감이 느껴진다.

시작은 점심시간이었다.
  “윽, 맛없어.”
  양파 샐러드를 한 입 먹다가 나도 모르게 툭 말이 나왔다. 눈썹을 찌푸린 내게 옆자리 도유가 말했다.
  “‘맛없다’는 말은 감정 언어지. ‘맵고 알싸한 맛이 난다’가 좀더 정확한 표현이야.”
  말을 마친 도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양파 샐러드를 먹었다. 한 입 또 한 입. 예전의 나라면 그 말을 수긍하며 샐러드를 다시 먹었을 거다. 그래, 양파는 맵고 알싸한 ‘맛’이 난다.
  하지만 내 말은 그 말이 아니다. 눈과 코를 찌르는 양파 맛이 숨을 턱 막히게 하는데, 어떻게 ‘맛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양념 하나 되어 있지 않는 양파 샐러드라니! 좋아할 사람이 있나?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 너어무 맛없어!”

아무리 그래도 ‘맛없다’는 표현을 쓸 수는 없는 거였다. 도유가 차분하게 지적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설마 ‘감정 구독 서비스’가 중단됐을 줄이야.
  ‘오늘은 뭔가 다르구나’하고 생각한 건 5교시가 시작되고서였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데 태블릿의 그림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남자애가 들고 있는 사과. 평소 보던 것과는 어딘가 달랐다. 나는 그것을 골똘히 바라보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교과서가 좀…… 이상해요.”
  “이상하다고? 뭐가?”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사과를 보고 있는데, 눈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가까이 다가온 선생님이 내 태블릿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아무리 보아도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는지 내 앞에 도로 내려놓으며 “차근차근 풀어보자.” 하고 말했다. 예의 다정하고 따뜻한 표정을 지으면서. 감정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표정이었다. 나 또한 감정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학생이라면 으레 그렇듯 “네, 알겠습니다.” 고분고분 대답했어야 했고. 그게 아니라면 감정 구독 서비스를 쓸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가 너무 어려워요. 이걸 어떻게 풀라고……”
  애초에 그림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러니까……
  “하아, 짜증 나.”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아무리 풀고 또 풀어도 정답을 모르겠을 때, 그 왜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것.
  ‘짜증’을 내고 싶었다.
  연필 소리만 겨우 들리던 교실에 그 한마디가 일으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다들 나를 돌아봤다. 선생님도 나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혹시 너, 지금 짜증 난다고 했니?”

짜증이라는 단어. 정말이지 오랜만에 듣는다. 6학년이 된 지금까지 그 단어를 몇 번이나 들어봤던가. 두 번? 세 번?
  “아, 정말 짜증 난다고요!”
  “니가 뭔데 짜증 나게 참견이야?”
  이런 식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던 아이들이 있었다. “너 때문에 졌잖아!” 식의 남 탓하는 아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아이들, 지금은 다 어디 갔을까? 적어도 현재 우리 반에는 그런 아이들이 없다. 그렇기에 내 입에서 짜증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때, 선생님이나 아이들만큼이나 나도 놀랐다.
  설마 내가 그런 ‘나쁜 감정’ 언어를 쓸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지금 ‘감정 구독 서비스 센터’에 와 있다. 얼핏 보면 병원처럼 생겼다. 커다란 검사 장비가 있고, 고객들을 상대하는 직원들은 흰 가운을 입었다. 그들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피를 뽑았다. 머리에 뽁뽁이처럼 생긴 무언가를 붙여 뇌파를 측정했다. 마지막으로 내 손목의 ‘감정 관리 밴드’를 점검하고는, 엄마와 나를 상담실로 불렀다.
  “수업 시간에 ‘색깔’을 봤단 말이지?”
  상담 직원이 물었다. 나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순순히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엄마가 물었다.
  “색깔이요?”
  “네. 아마도 환희는 ‘빨간색’을 봤을 겁니다. 교과서 사과는 그 색깔을 하고 있으니까요. 애석하게도, 환희는 그 색깔을 보면 안 되는 거였어요. 그러나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감정 구독 서비스가 있으니까요.”
  그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감정 구독 서비스 사용자는 색깔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감정을 적절히 다루기 위해서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빨간색’을 봐버린 것이다. 눈에 불이 나는 듯한 그 색깔.
  “감정 구독 서비스가 일시적으로 오류를 일으켰나봐요.”
  상담 직원이 말을 이었다. 나는 충격으로 어안이 벙벙한데, 엄마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떡해야 하죠?”
  직원이 이런저런 숫자가 적힌 그래프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환희 생체 데이터수집 결과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급격한 호르몬 변화가 생겼어요. 그 결과, 감정을 조절하는 두뇌 영역이 뒤죽박죽되었습니다.”
  엄마가 작은 미소를 입에 걸며 대답했다.
  “‘사춘기’라는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말씀이세요?”
  “정확합니다. 아시다시피 감정 구독 서비스가 시행된 이후, 사춘기는 옛 시대의 추억으로 사라졌어요. 아드님에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만……”
  직원은 웃고 넘길 작은 소란을 대하듯 코를 찡긋하며 말을 이었다.
  “환희의 호르몬 수치가 높은 편이라서 감정 관리 밴드를 조금 손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략 열흘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불편하더라도 참아줄 수 있을까요?”
  엄마가 ‘당연히 그럴 수 있지?’ 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주름 하나 없는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더니 내게서 감정 관리 밴드를 가져갔다.

‘감정 패키지를 구독하세요! 연간 회원권을 구입하시면 10퍼센트 할인된 금액에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로비 벽면 가득 홀로그램 광고가 흘렀다. 연령에 따른 ‘맞춤 감정 패키지’를 선전하고 있었다. 6학년은 행복감 70퍼센트에 평온 30퍼센트의 감정을 섞으면 효과가 좋다. 불안이나 슬픔 같은 ‘나쁜 감정’은 0퍼센트로 낮추고, 학령기 특화 설정으로 집중력과 창의력을 각각 50퍼센트씩 추가 구입해도 괜찮다.
  “엄마는 회사에 돌아가봐야 해. 넌 혼자 학원으로 갈 수 있지?”
  “응.”
  나는 엄마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왠지 엄마가 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듯했다. 그게 다 감정 구독 시스템 때문이라는 걸 안다. 아무리 불안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21세기 최고의 발명품. 감정이 요동치는 시기에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피스 메이커.
  아무리 그래도 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아니, 엄마가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보다는 나을까?
  ……모르겠다. 뭐가 맞는지. ‘평안’ 감정이 구독되지 않으니 가슴이 조여 오는 것 같다.
  과거에는 감정 조절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서로 욕하고, 눈을 흘겼다. 심지어 주먹다짐까지 하는 일이 잦았다. 그때의 교실은 ‘야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의 교실은 다르다. 생후 삼 개월이 되면 모든 아이는 브레인 나노로봇, 즉 ‘BNR(Brain Nano Robot)’을 접종한다. 나노봇은 뇌신경과 결합한다. 감정 관리 밴드를 착용하면 원하는 감정을 데이터 센터에서 나노봇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이 위대한 발명으로 사람들은 더이상 나쁜 감정을 경험하지 않는다. 불안도, 슬픔도, 분노도 없는 천국 같은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나쁜 감정 때문에 생기는 모든 문제가 사라진 평화로운 시대!
  하지만 인생에 딱 두 번 감정 관리 밴드가 먹통이 될 때가 있으니, 그 한 번이 바로 ‘사춘기’이다. 물론 곧바로 조치하면 감정 관리 밴드는 무탈하게 감정을 관리할 수 있다.
  나는 조금 늦고 말았다. 전조 증상이 있긴 했으나, 눈치채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나는 감정 구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타고난 감정이 평온했으니까. 덕분에 엄마는 구독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다른 애들은 행복감을 매일 다운로드 받아야 하는데, 나는 한번 받으면 일주일은 받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래서 엄마도 나도 내 감정 관리 밴드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나는 허전한 손목을 어루만졌다. 감정 구독 서비스가 없으니 많이 불편하다. 지금 이 찝찝한 감정 또한 좋은 감정을 구독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어서 밴드를 차고 다시금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 짜증이니, 불안감이니, 이런 감정들은 느끼고 싶지 않다.
  이때만 해도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이었으니까.

체육 시간, 흰 눈처럼 하얀 체육복을 입은 선생님이 우리 반을 두 편으로 나누었다.
  “자, 오늘은 축구 경기를 할 거예요. A팀과 B팀은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하도록 하세요.”
  침착한 표정의 아이들이 양쪽으로 갈라섰다. 나는 A팀이었다.
  옛날에는 축구 경기를 하면 꼭 흥분하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축구를 잘하는 아이들이 그랬다.
  “너 왜 공을 그쪽으로 차!”
  “야, 야! 패스 패스! 아, 뭐하는 거야, 패스 안 하고!”
  “똥 볼 차지 말라고! 똥발이야, 뭐야. 공을 어따 차는 거야?”
  이제 축구 경기 중 그런 소리를 들을 일은 없다. 대신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간다.
  “공 뺏기면 어때. 괜찮아, 잘했어.”
  “다시 해보자. 끝날 때까지 끝난 거 아니야.”
  “비록 공보다 네 신발이 더 멀리 날아갔지만, 아까운 슛이었어.”
  페어플레이, 협동, 격려, 응원과 같은 좋은 감정이 듬뿍 담긴 말들. 이기기 위해 공을 차는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진정한 협력이 무엇인지 배우기 위해 공을 찬다. 오늘 모인 스무 명의 학생 또한 운동장을 뛰며 함께하는 즐거움을 배워나갈 것이다.
  나는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구독할 땐 열심히 참여했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감정을 0퍼센트로 만들었으니까.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생각해보라. 수학이나 영어, 과학, 사회는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으면 엉덩이가 근질거린다. 머리에 쥐가 난다. 그런데 감정 구독 서비스만 받으면 집중력이 최대치로 올라가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공에 대한 집념, 끈기, 노력 등의 감정을 추가하면 실력과는 무관하게 열심히 뛰게 된다. 누구나 바라던 바가 아닌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어린이!
  그런데 감정 구독 서비스가 중지되고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그 모든 좋은 감정들이 봄날 눈 녹듯 증발했다.
  ‘승부.’
  그 단어가 이토록이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지 처음 알았다. 이기고 싶어서 두근거리는 게 아니었다. 그 반대다. 질까봐 두근거렸다. 혹시 나 때문에 지면 어쩌나 하는, 처음 맛보는 두려움이 온몸 구석구석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타고난 똥발인 나는 공이 떼구루루 굴러오면 얼른 자리를 옮겼다. 수비를 해야 할 상황에서 공격을 나갔고, 공격해야 할 상황에 수비로 빠졌다. 한 마디로 공을 열심히 피해 다녔다는 소리다.
  누가 보면 ‘우리 팀이 아니라 상대 팀인가?’ 의심할 상황에서도, 우리 팀 아이들은 나를 격려했다.
  “환희야, 조금만 더 집중해줄 수 있겠니?”
  “환희야, 공이 무섭겠지만 피하지만 말고 부딪혀봐!”
  아이들의 응원과 격려에 나는 “으응.” 하고 대답했지만, 어쩌겠는가. 빠르게 날아오는 공이 무서운걸. 그리고 내가 혹시라도 실수하는 걸 다른 아이들이 볼까봐 가슴이 철렁거렸다. 이놈의 나쁜 감정들! 며칠 전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축구를 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굴러오는 공 앞에서 슬쩍 발을 빼고 있을 때였다.
  “야, 너 똑바로 안 해? 보자 보자 하니까!”
  씩씩대며 소리치는 녀석은, 공하준이었다.
  “너 때문에 지금 몇 골 째냐? 암만 좋게 봐주려고 해도 도무지 봐 줄 수가 없네! 공 못 차면 하질 말든가! 이 똥발아!”
  잔뜩 일그러진 눈썹, 이글거리는 눈빛, 코는 흥분으로 벌렁거리고, 쫙 벌어진 입에선 침방울이 튀었다. 목에 굵게 선 핏대까지.
  공하준은 ‘화’가 났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 순간, 내 안에 굳건히 서 있던 둑 같은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은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나 때문에 질까봐 걱정이 됐던 것도 자존심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환희는 축구를 못하나봐.’ 하고 평가하는 게 싫었으니까.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공하준이 그런 나를 평가한 것이다. 그것도 ‘똥발’이라는 비하 표현까지 써가며.
  하필 이럴 때 감정 구독 서비스가 먹통이라니. 만약 ‘침착함’ 감정을 구독하고 있었다면, 그 상황에서 차분히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감정은 사춘기라는 놈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널뛰고 있었다.
  “아이고, 미안해. 나 때문에 지게 생겼네. 내가 더 열심히 해볼게.”
  전혀 미안하지 않은 말투로 비아냥거리고 말았다. 내 딴에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나를 창피 준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였다.
  “뭐? 그게 사과하는 태도냐?”
  공하준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윽박질렀다.
  “뭐 어쩌라고. 내가 못 하고 싶어서 못 하냐? 그럼 잘하는 네가 다 해 먹든가. 지도 잘 못하면서.”
  “뭐? 지? 너 방금 나한테 지라고 그랬냐?”
  “했다. 뭐! 어쩔 건데? 지! 지!”
  “이잇!”
  퍽.
  공하준이 냅다 내 엉덩이를 걷어찼다.
  “이 자식이 진짜─!”
  퍽.
  나도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공하준이 또 한 대. 내가 또 한 대. 그러다 서로의 머리채를 붙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선생님이 다가와 우리를 말렸다.
  “두 사람 그만두세요.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옳지 않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참고, 대화로 풀어요. 어서 떨어지세요.”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공하준과 내가 뒤엉킨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목소리 톤도 평소와 똑같았다. 역시 감정 구독 서비스의 위대함이란!
  하지만 나는 다르다. 감정 구독 서비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공하준 또한 나와 같은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공하준도 손목에 밴드가 없다.
  우리는 눈이 뒤집힌 채 서로에게 주먹질을 해댔다. 들끓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리는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학교는 이번 사태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공하준과 나는 특별 상담 및 감정 교육을 이수해야 했다.
  AI 상담 로봇과의 상담에서 공하준은 ‘답답한 소리 좀 그만하라’며 로봇에게 강펀치를 먹였다. 하준이 부모님은 값비싼 로봇값을 물어줘야 했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그냥 축구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이야. 그리고 먼저 시비 건 사람은 공하준이지, 내가 아니라고. 난 잘못 없어!”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AI 상담 로봇은 내가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진단만 내릴 뿐이었다.
  결국 나는 ‘나쁜 감정 과잉 장애’(Hyper-Bad Emotion Disorder) 판정을 받게 됐다.
  “우리 아이가 H-BED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실로 충격적일지도 모를 말이었지만, 엄마는 그 와중에도 차분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태도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엄마, 내가 무슨 H-BED야. 나 그런 거 아니야! 화가 나서 화를 냈고, 억울해서 억울해했어. 그 자식이 먼저 때려서 나도 때린 거고. 그런데 왜 내가 과잉 장애니 뭐니, 그런 이상한 장애여야 해?”
  엄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알아듣기 좋게 말했다.
  “아들, 너 지금 이러는 것도 H-BED 증상이래. 센터에서 그러더라. 아무래도 서비스가 끊기면서 ‘감정 폭주’ 상태에 빠진 것 같다고.”
  엄마의 말은 이랬다. 감정 구독 서비스를 장기간 이용하다가 갑자기 끊게 될 경우, 나쁜 감정들이 해일처럼 몰려든다고. 그게 감정 폭주 상태라고.
  감정 폭주가 하루 이상 지속될 경우, H-BED 판정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 말이 뭐겠어? 감정 구독 서비스만 정상 작동하면 넌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반으로 돌아갈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왜 문제아 취급 받아야 해?”
  학교는 감정 관리 밴드가 업그레이드될 때까지 나를 분리 조치시키겠다고 했다. 감정 관리가 안 되는 아이들만 따로 모아 수업을 하는 특별반이 있다고 하는데…… 학교를 육 년이나 다녔지만, 그런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긴, 선생님들이 굳이 그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겠지. 아이들 대부분은 특별반에 가지 않으니까.

특별반으로 향하는 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른 아이들은 교실에 모여 선생님과 공부하고 있을 텐데, 나만 이게 뭔가. 영원히 고칠 수 없는 큰 병에 걸린 사람 같잖아.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특별반 뒷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엔 책걸상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중 오른쪽 의자에 앉아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오늘 학습할 내용은 선생님이 태블릿으로 전송해준다고 했다. 헤드셋을 쓰고 수업을 들으면 된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뒷문이 또 열렸다.
  “어?”
  나는 뒷문에 선 하준이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애도 혀를 쯧 찼다.
  “뭐야.”
  인상을 잔뜩 쓴 채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의 책걸상을 끌고 교실 벽으로 붙었다. 기가 막혀서. 누군 좋은 줄 아나?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공하준 반대편 끝까지 밀었다.
  공하준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헤드셋을 낀 채 ‘뭐?’ 하고 눈에 힘을 주었다. 공하준도 지지 않고 ‘왜?’ 하고 입술을 씰룩거렸다. 우리는 동시에 “흥!” 하며 태블릿으로 눈길을 돌렸다.
  소리 없는 수업 시간이 시작됐다. 너무너무 ‘불편’했다. 싫은 아이와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싫었지만, 수업은 또 왜 이리 재미없는지. 내 집중력이 약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단 말인가? 세상에, 감정 구독 서비스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꼴찌를 했을 거다.
  자꾸만 딴생각을 하게 된다. 괜히 창밖으로 눈길이 간다. 창밖은 온갖 색깔로 가득하다. 감정 구독 서비스를 끊고서 처음 본 색깔이 사과의 빨간색이었다. 그런데 점점 다른 색깔들로 세상이 채워졌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구름은 ‘흰색’, 하늘은 ‘파란색’, 나뭇잎은 ‘초록색’, 지저귀는 참새는 ‘갈색’, 그리고……”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았다. 공하준을 힐긋 보았다.
  “……나랑 똑같은 색깔 옷 입었네.”
  이 색깔이 무슨 색깔인지 궁금했다. 공하준이 눈치를 챘는지 코웃음을 흘렸다.
  “노란색도 모르나보네.”
  “노란……색?”
  “그래, 노란색. 내가 감정 구독 서비스를 끊게 되고 처음으로 보게 된 색이지. 바나나를 먹고 있었거든.”
  “바나나가 노란색이야?”
  “참 나. 그것도 모르다니. 개나리도 노란색이다.”
  계속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말하자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야, 나 무시하지 마.”
  “누가 무시했다고.”
  공하준은 혼잣말처럼 꿍얼거리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아우, 정말. 공부 더럽게 재미없네.”
  그 말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더럽게’라는 말이 좀 웃겼다. 공하준이 그런 말 쓰는 거 처음 들었다. 그래도 나는 얼른 입꼬리를 내렸다. 웃은 게 아니라는 듯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나만 재미없는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 난 아까부터 지겨워 죽을 것 같다고.”
  “주, 죽어? 어우, 너 그 나쁜 감정 언어 좀 그만 쓸 수 없냐? 귀가 썩겠다.”
  “귀가 썩어? 너야말로 말 좀 가려서 하지?”
  AI 상담 로봇이 보면 싸우는 줄 알고 우리를 또 다른 곳으로 격리시킬지도 모르겠다.
  한바탕 주고받은 우리는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그래, 더 싸워서 뭐하냐. 가뜩이나 분리 조치 중인데 얌전히 있어야지. 나는 한숨을 푹 쉬고 헤드셋을 꼈다. 그런다고 공부가 될 리는 없었지만.
  “너도 H-BED 판정 받았냐?”
  공하준이 물었다.
  “……응. 너도?”
  “그렇지 뭐.”
  그리고 또다시 침묵.
  “야, 심심한데 우리 끝말잇기나 할래?”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웬 끝말잇기?”
  “노란색.”
  “뭐야 시작한 거야? 색깔.”
  “깔때기.”
  기차, 차도, 도시, 시골, 골목길, 길동무…… 끝말잇기는 꽤 길게 이어졌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특별반에서 공부하는 동안, 우리는 끝말잇기뿐 아니라 색깔 맞추기 놀이도 했다. 알고 보니 공하준은 공부를 꽤 했다. 감정 구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말이다. 덕분에 나는 녀석의 도움으로 주어진 과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가방을 둘러맨 채 공하준에게 물었다.
  “야, 너 내일도 여기로 오냐?”
  “응. 좀 짜증나지만.”
  그렇게 말하며 공하준이 책상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알았다.”
  나도 책상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아무래도 그편이 같이 공부하는 데 편할 것 같아서.
  “근데 너, 원래 그렇게 욱하고 그래? 그날 축구할 때 말이야.”
  내 말에 공하준이 뭘 또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듯 인상을 썼다.
  “아, 그땐 내가 감정 폭주 중이라.”
  “엇, 나도 그건데.”
  우리는 잠시 멀뚱히 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웃고 나니, 어쩐지 공하준이 생각보다 나쁜 녀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했다.
  “야, 우리 빨리 감정 구독 서비스 받아야 할 텐데.”
  “난 한 일주일 더 걸릴 것 같아.”
  “진짜? 그럼 그때까지 여기서 보면 되겠네.”
  “내일은 보드게임이나 몰래 가져올까.”
  “그것도 괜찮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공하준과 교문으로 향했다. 지금 이 순간이 조금 황당하기도 하다. 공하준 이 자식과 죽일 듯 싸웠으면서,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평스레 대화를 나누다니.
  그런데 왜 이렇게 심장이 올랑거릴까? 나쁜 감정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 보글거림.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이 기분. 감정 구독 서비스의 어떤 감정도 이 같은 느낌을 주진 못했는데.
  ‘싸우고 나서 화해하는 기분인가?’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이재문

어린이와 청소년이 훨씬 많은 ‘학교’라는 나라에서 ‘어른’이라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이들을 유심히 살피고, 이해하고,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로 쓰기를 좋아해요. 한편, 나다운 이야기가 무엇인지 발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화 『몬스터 차일드』 『언니는 외계인』 『히든: 꼴까닥 섬의 비밀』 『마이 가디언』, ‘드래곤 히어로’ 시리즈를 썼습니다.

예전에는 ‘렌탈’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구독’이라고 하더라고요. 책,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세탁기, 냉장고, 자동차 등등. ‘이러다 감정도 구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감정을 구독하면 진정 평화의 시대가 올까요?
우리는 종종 아이들에게 요구합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침착히 대화로 해결하기를.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기를. 그러나 감정은 ‘폭주족’ 같습니다. 불쑥 화가 날 때도 있고,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하고요.
넘어져봐야 잘 탈 수 있는 것처럼, 그 모든 감정을 경험해봐야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싹둑 싹을 잘라버릴 게 아니라, 안전하게 겪어볼 수 있도록 울타리를 쳐주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아, 이야기 중에 감정 관리가 안 되는 두 시기가 있다고 썼는데, 한 번은 사춘기 또 한 번은 언제일까요? 퀴즈입니다.(하하하)

2025/07/16
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