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히든 클리프 518호 / 바람은 슬픔 쪽으로 기운다
히든 클리프 518호
머리가 체했어요 간밤 침대에서 그녀가 구겨 넣은 나비 때문인가 봐요
전체적으로 쉬웠는데, 다 틀렸어요
마음이 많이 졸려요 한데, 많이 흔들립니다
맘 감아도 어른거리던 나비 한 마리, 얼마큼의 시간을 거꾸로 날아갔을까요?
흔들리는 것들은 어떤 모형 속에선 높은음자리로 자랍니다
마주 누운 자세로 나비를 바라보면 그림자들 포개지고, 그때
흔들리는 모빌을 본 것도 같아, 머리를 기울이면
나비, 날개의 감정을 벗어납니다 자세를 흩트리며
물비늘처럼 졸며
(언제쯤 내 머리엔 체기가 가실까요?)
(구겨진 나비 털어낼 수 있을까요?) 까칠한 지문을 핥습니다
오늘 기분, 어느 요일의 구름이니? 겨드랑이에서 모빌을 꺼내지만
머릿속, 쏟아지길 기다려도 보지만
구겨진 나비 다시 펴질 수 있을지……, 자꾸만 손톱은 휘어지고
오늘은 구름이 참 날카롭구나, 새벽잠 찢어지고
바람 분다, 생각만으로도 언저리를 비켜 나는 나비
웃는 거니? 머릿속을 저어보는데, 뭉글
난 왜 자꾸 흔들리지, 날개도 없으면서? 구름 한 마리, 날 가장자리 쪽으로 밀어냅니다
……
(눈뜨지 마! 보이는 것들, 뭐든 흔들릴 수 있어
알레르기 묻은 꿈 따윈 가렵기만 해) 높은음자리의
하긴, 세상이 꿈처럼 접히기도 하지, 나비가 눈을 감습니다 흔들리는 머릿속을 더듬으며
바람 건들거리고
바람은 슬픔 쪽으로 기운다
눈을 마주쳤어요 까치발 선 표정, 통째로 삼킵니다 딱딱하게 접힌 눈빛
어쩌죠? 삼킨 말 몇 마디 뱉으면 바람은 맞은편에서 불까요
돌 한 마리 버둥거립니다 서귀포 앞바다
파도에게 던져주었어요 파도란 놈, 돌을 문지릅니다. 표정 몇 벗겨질까요? 돌에게서
파도가 벗겨집니다 돌이 등을 굼실대며 엉덩이를 들썩입니다
바다 속을 찰방거리던 이름 하나 떠오를까요?
그미, 폭포를 눈물이라 말했어요 무언가 두 줄기로 흘러내렸던 풍경 하나 제 속에 있었을지 모르죠
늘 먼 데를 바라보는 버릇이……
소라 껍데기 하나 집어들었더니 파도 소리가 들립니다
천천히,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숨을 가득 채우고 물속을 헤집습니다 돌이 떨어뜨린 비듬, 발가락들 거품을 물고 소용돌이칩니다
안쪽으로 손을 디밀면 눈물 몇 방울 만져집니다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데, 어제보다 길게 자란 손금에 가시랭이가 돋았어요 감정선, 끊어질 듯 가늘게 뻗었고 손목 쪽으로 삐져나간 운명선 하며
(내 말은 늘 척척했었고 물속보다 어두웠다는 걸……)
마음 몇 켜, 미끄러집니다
거꾸로 처박히는 돌대가리가 있고 그미, 가시랭이 거품처럼 부풉니다
왜 저렇게, 폭포는 두 줄기로 흘러내릴까요? 표정, 점점 까칠해집니다
거품, 파도,
거품, 거품 (( 돌 ))) 거품, 거품
파도, 거품,
돌 한 마리, 여태 버둥거립니다 검은 등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은 말들은 왜 거품처럼 흩어지죠?
바람은 늘 아픈 쪽에서 부는가봐요
이선락
2022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글을 쓰면서 어떤 것들을 고민하는가?
1. 스토리가 있는가
2. 관념의 물상화가 되어있는가
3. 소재가 일상생활 속에 흔한 것인가
4. 수식어를 최대한 줄였는가
5. 새로운 인식(사유)이 있는가
2022/06/28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