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지.
   다 내가 가져온 것이다.

   아아니 저건 아니지.
   저건 여기 붙어 있었다.

   떼어내고 싶으면 어떡하지.

   요 앞 공사장은 이제 벽만 남아 있다.
   벽이 아직 남아 천장과 바닥을 수직으로 연결하고 있다.

   도와줄 사람이 필요할까?
   그러나 여기에 아무도 불러서는 안 된다……

   부를 만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공사장에는 기계들만 움직이고 있다.
   나는 가장 커다란 포크레인에 올라탄다.

   운전에 미숙한 나는 벽을 향해 돌진하고 말았다.

   먼지가 자욱하다. 벽이 무너지고 천장이 내려앉아 있다. 천장은 어느 방의 바닥이고 바닥은 벽을 무너뜨리고 벽은 또다른 천장을 무너뜨렸겠지. 무너지는 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겠지. 걱정하지 말자. 여기는 아무도 없다.

   아, 저기 의자가 있다.

   나는 지금 몹시 떨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의자에 앉아야지. 내가 앉자 의자는 다리 하나가 부서지고 나는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이 의자를 어디서 샀었지.

   부서진 의자 위에 다시 앉아 본다. 의자는 왼쪽으로 쓰러져 있다. 몸이 왼쪽으로 눕는다. 머리카락이 천장에 닿아 있다. 먼지가 가라앉으면 새 의자를 사 올 것이다.

   손톱을 물어뜯는다.
   이건 지나치게 깨끗하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대화



   우리는 서로 마주 앉아 있다. 나는 고개 숙인 너의 표정을 볼 수 없다. 손을 들어 직원을 부른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직원이 묻고 나는 차가운 커피를 한 잔 달라고 한다. 너는 커피를 마시지 않을 것이다. 직원은 고개를 숙인 자세로 뒤를 돌아 천천히 걸어 사라진다. 침묵이 흐른다. 나는 침묵을 견딜 수 있다. 직원의 발소리가 들리고 직원의 손이 테이블 위에 커피를 내려놓는다. 나는 그 손의 생김, 두께, 손톱 아래 거스름 같은 것을 일부러 보지 않는다. 너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째서 굳이 두 개의 의자가 필요했느냐고. 나의 맞은편에 벽이 있었더라면, 테이블이 벽에 붙어 있었다면, 너는 오지 않아도 괜찮았을까? 테이블이 회전한다. 회전하는 원형 테이블이 벽에 바짝 붙는다. 그동안 유리잔이 흔들리고 얼음이 유리잔에 부딪히는 소리를 너는 흉내 낸다. 벽을 향해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다. 대화를 해야 해. 나는 벽을 보며 말한다. 나는 벽에 있는 낙서에 대해 말하고 싶다. 뜯겨나간 스티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벽에는 아무도 없다. 다시 테이블이 회전한다. 나는 의자를 끌어 원래 자리로 돌아간 테이블 앞에 앉는다. 유리잔은 테이블 위에 모로 누워있다. 유리잔을 똑바로 세우자 빠져나가지 못한 얼음 하나가 남아 소리를 낸다. 다른 얼음은 테이블 위에서 녹고 있다. 너는 고개를 숙여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커피를 보고 있다. 저기요. 저기요. 나는 직원을 부른다. 나는 직원에게 냅킨을 받고 싶다. 엎질러진 것을 닦고 싶다. 너는 의자를 뒤로 죽 뺀다. 직원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직원을 부르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나는 컵을 집어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파열음! 컵이 깨졌다. 나는 직원이 오기 전에 유리를 치울 것이다. 나는 무릎을 꿇고 깨진 유리 조각을 손에 옮겨 담는다. 직원이 오면 테이블을 깨끗이 정리하고 너와 다시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너는 멀리서 직원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나는 냅킨이 필요하다. 너는 그것을 줄 수 없다. 직원은 어디에 있나? 너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옆 테이블에서 냅킨을 집는다. 테이블 위를 닦기 시작한다.

차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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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0
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