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있는데 동생이 말했어요.
   “제가요, 중요한 결심을 했는데요, 지금 말해도 돼요?”
   식구들이 동시에 동생을 쳐다보았어요.
   “제가 오늘, 우리 집을 잠시 떠나기로 했어요.”
   삼촌 입에서 밥알들이 튀어나왔어요. 엄마는 젓가락질을 멈췄다가 다시 음식을 씹기 시작했지요. 이모는 피식 웃더니 깻잎 한 장을 떼어내는 데 집중했어요.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셨고, 할머니는 볶은 멸치 세 개를 동생 숟가락 위에 올려줬어요. 동생의 눈썹이 꿈틀거렸어요. 할아버지는 동생에게 인자한 눈길을 보내며 물었어요.
   “어딜 가는데?”
   “네. 남극에요.”
   동생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알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며칠 전 “나의 꿈 그리기” 숙제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우리 집 어른들은 아무도 꿈이 없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나한테만 살짝 말해준 건데, 갑자기 식구들 앞에서 이렇게 발표할 줄은 몰랐어요.
   “제 꿈은 펭귄들을 구하는 거예요. 꿈을 이루러 가려고요.”
   이모는 동생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펭귄은 왜?”
   “지금 펭귄들이 진짜로 위험하대요. 그런데요, 우리 집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요, 펭귄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나서려고요.”
   동생의 눈이 반짝였어요.
   “펭귄이 위험한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묻자 동생이 눈썹을 치키며 말했어요.
   “왜 상관이 없어? 내가 펭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아.”
   “알지. 만날 그림 그리고. 근데 너 펭귄 꼭 두더지 같아!”
   “아니야. 누나, 두더지 봤어?”
   “저번에 동물원 가서 봤지. 지윤 이모네 집 책에서도 봤잖아.”
   “아니야. 그건 오소리였어.”
   동생과 나는 서로 우기다가 말다툼을 할 뻔했어요. 할머니가 엄한 표정을 짓지 않았으면요. 할머니는 빈 그릇 몇 개를 들고 일어나며 할아버지에게 말했어요.
   “오늘 볕 좋으니까 빨래 잘 널어놔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떠났다 언제 돌아올 거야? 저녁에?”
   삼촌이 식탁 위로 튄 밥풀을 한 알 한 알 떼어내며 물었어요. 할머니는 “어디, 돌아올 놈이 떠나든?”이라고 중얼거리며 싱크대에서 물을 틀었어요. 할아버지는 갑자기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어요.
   “그거는요, 가 봐야 알아요.”
   동생은 진지하면 갑자기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요. 진심인 게 분명했어요.
   “근데, 유치원은 어떡할 거야?”
   내가 묻자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대답했어요.
   “응, 실은 그게 좀 고민이야. 남극이라는 곳은 아주아주 멀어서, 유치원에 매일 다니기는 힘들 것 같아.”
   “너, 돈은 있어? 집 떠나면 문 앞에서부터 돈 들어. 이모가 좀 줄까?”
   이모의 말에 동생의 눈동자가 흔들렸어요. 동생은 괜히 쑥스러워하며 말없이 미역국을 떠먹었어요. 삼촌은 이모에게 알바비 남은 게 있으면 하나뿐인 오빠나 좀 도와달라고 했다가 바로 거절당했어요. 엄마는 왔다 갔다 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말했어요.
   “참, 치과! 아빠 이름으로 예약해놨으니까 열한 시까지 꼭 가셔야 해요. 너, 모시고 가라.”
   엄마는 삼촌을 손으로 가리키고는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아침마다 엄마는 출근 준비로 바빠서 정신이 없어요. 이모는 학교 아니면 햄버거 가게에 나가요. 내 머리를 묶거나 땋아주는 건 할머니예요. 삼촌은 늦잠을 자다가 할아버지한테 혼날 때가 많아요. 할머니가 싱크대 앞에서 양치질을 하는데 이모가 말했어요.
   “엄마도 저녁때나 오시겠네. 난 뭐 하지. 오늘 알바도 없는데.”
   이모는 밥을 먹다 갑자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해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어요. 삼촌은 “연애하는 거 다 아는데 웬 연기!”라며 혀를 끌끌 찼어요. 할아버지가 삼촌에게 말했어요.
   “그러는 너는, 오늘 계획이 뭐냐?”
   삼촌은 갑자기 입을 한 일(一) 자로 만들었어요. 할아버지의 오른쪽 팔꿈치쯤을 보면서요. 나는 삼촌이 그런 표정을 지을 때 조금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도 용민이처럼 뭔가 결심이라도 해 봐라. 복학할 때까지 뭐라도 해야지.”
   삼촌은 대답 대신 갑자기 양팔과 다리로 동생을 감싸며 말했어요.
   “용민아아, 그냥 오늘은 삼촌하고 놀자아.”
   “안됩니다. 저는 짐도 싸야 하고, 진짜로 바빠요.”
   동생은 삼촌을 뿌리치고 방으로 향했어요. 나는 슬슬 불안해졌어요. 얼른 일어나 동생에게 가 봤어요.
   “너, 진짜로 떠날 거야? 어떻게 가려고!”
   “쉿! 누나. 들리겠어. 어른들 나가고 나면 다 말해줄게.”
   동생은 자신의 물건들을 담아놓은 통 여러 개를 한데 모아 하나씩 열기 시작했어요. 나는 양치질도 하고, 앞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도 주고, 어항에 있는 물고기들에게 밥도 주고, 어른들이 어서 집을 비우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동안 동생은 방에서 한참 동안 무언가를 그리고, 쓰고, 찾고, 꺼내는 것 같았어요. 그러는 사이 엄마는 가게에 나가고, 할머니도 일하러 나가고, 이모는 놀러 나갔어요. 할아버지는 치과에 다녀와서 점심을 먹은 뒤, 겉절이를 담가야겠다며 삼촌과 함께 장을 보러 나갔어요. 마침내 집에는 나와 동생만 남았어요. 마음이 자꾸만 조마조마했어요. 나는 코코아를 두 잔 타서 동생과 식탁에 마주 앉았어요.
   “이제 얘기해 봐.”
   “누나. 코코아에 마시멜로 넣으면 더 맛있는데. 내가 갖다줄까?”
   동생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찬장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있었어요. 나는 동생과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가끔 저 혼자서만 느긋할 때는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해요. 동생은 자기 엄지손톱만한 마시멜로를 컵마다 여섯 개씩 넣었어요.
   “나는 내 나이만큼 넣는 걸 좋아해. 누나가 여덟 개는 너무 달다고 했으니까, 여섯 개만 넣어도 이해해줘.”
   “용민아. 이제 진짜 말해 봐봐. 내가 내내 기다렸잖아.”
   동생은 코코아를 호호 불었어요. 나도 일단 한 모금 들이켰어요.
   “누나. 있지, 내가 계획 다 세워놨어. 오늘 떠나려고.”
   “그럼 나는 어떡해? 나도 펭귄 좋아해. 같이 가면 안 돼?”
   내 말에 동생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목소리를 낮췄어요.
   “누나라도 집을 지켜. 우리 집에 어린이 한 명쯤은 꼭 필요해. 누나 하나면 충분할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동생은 아예 일어나 다가오더니 작은 손을 모아 내 귀에 갖다 댔어요. 그리고 속삭였어요.
   “내 생각에, 우리 집에서 누나가 가장 똑똑해.”
   “우리 둘뿐인데 뭐 하러 귓속말을 해? 저리 가 앉아.”
   “그래도 이런 말을 크게 할 수는 없잖아.”
   동생은 다시 의자에 앉았어요.
   “엄마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똑똑하셔. 이모도 뭐, 그 정도면.”
   “나는 나이에 비해 똑똑한 걸 말하는 거야.”
   동생은 갑자기 나한테 우리 식구들의 나이를 순서대로 말해보라고 했어요. 나는 어리둥절해 하며 차근차근 대답했어요.
   “할아버지는, 응, 육십 팔 살? 할머니는, 육십 살. 엄마는 스물아홉, 삼촌은 스물다섯, 이모는 스무울, 세 살.”
   동생의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말했어요.
   “다 더할 수도 있어. 지난주에 ‘기적의 연산’ 가서 두 자릿수의 덧셈 배웠거든. 원래 이학년 때 배우는 거래.”
   “이것 봐! 누나는 이렇게 똑똑하잖아!”
   동생은 두 손을 활짝 펴더니, 손가락 열 개를 가만히 들여다봤어요. 손가락을 차례대로 꼽다 말고 고개를 저었어요.
   “육십 살은 알 것 같은데 스물아홉은 잘 모르겠어. 근데 할아버지 나이가 엄청 많다는 건 알겠어. 나는 이제 겨우 육 살인데 그 나이가 되려면 얼마나……”
   “그런 생각을 뭐 하러 해. 한참 멀었는데.”
   “누나, 있잖아. 만약에, 내가 펭귄들을 돌보느라 어른이 된 다음에 돌아오면, 할아버지는 더 늙어있겠지? 육십보다 훨씬 많겠지?”
   나는 그건 계산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문득 그때는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 안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얘기까지 꺼내야 하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동생도 알 건 알아야 하니까요.
   “그게 문제가 아냐. 너, 구름이라고, 보라약국 선생님네 강아지 얘기 들었지?”
   “응? 무지개 타러 갔다고 그랬는데.”
   “그게 아니야. 무지개를 어떻게 타, 바보야.”
   “그럼 어떻게 된 거야? 나 바보 아니야! 왜 나쁜 말 해!”
   “그래, 미안. 취소. 그게, 정확히 말하자면,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 하늘나라로 간 거야.”
   내 말에 동생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어요.
   “거기서는 영원히 산다면서?”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한 말투였어요.
   “그렇긴 한데, 선생님 식구들은 구름이를 다시 만나려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해. 선생님이 우리 할아버지만큼 늙어도 못 만나는 거야. 너가 어른이 된 다음에 돌아오면, 할아버지를 못 만날지도 몰라.”
   동생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같았어요. 거의 다 녹은 마시멜로를 잠시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했어요.
   “우리가, 아빠를 만날 수 없는 거랑, 비슷한 거야?”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어요. 그래도 대답을 잘해보고 싶었어요.
   “그거랑은 달라. 내가 알기로 우리의 아빠는, 어딘가에 있어. 만날 수 없는 것뿐이지. 음, 외국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말을 조금 더듬었어요. 동생은 더 이해하기 힘든 것 같았어요. 나는 동생을 안아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아주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꾹 참았어요. 대신 식탁 위로 손을 내밀어 동생의 통통하고 보드라운 손을 잡았어요.
   “삼촌이 그랬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대신 너무 기대하고 있지는 말래. 기대하지 않고 있는데 할머니가 치킨 사 오시면, 우리 모두 어마어마하게 행복하잖아.”
   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머뭇거리며 말했어요.
   “누나, 근데 나는 아빠보다는 치킨이 좋은 것 같은데, 그래도 되나.”
   “당연하지. 너는 아빠를 본 적도 없잖아. 뭔지도 모르는 걸 좋아하기는 어려워. 사람이든, 물건이든 뭐든.”
   내 말을 들은 동생이 시무룩해졌어요.
   “사실 나는 펭귄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좋아하고 보고 싶은 걸까? 근데 누나는, 아빠 본 적 있댔지?”
   나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어요. 동생은 유치원에 들어간 다음부터 자꾸 아빠 얘기를 물어봐요. 실은 나도 잘 모르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 집 어른들이 그러듯이 다른 얘기로 말을 돌렸어요.
   “너는 펭귄 박사잖아. 펭귄 이름도 다섯 개나 댈 수 있잖아!”
   “그렇긴 해. 황제펭귄, 임금펭귄, 아델리펭귄, 젠투펭귄, 또, 아프리카펭귄!”
   나는 박수를 쳐줬어요. 동생은 기억력이 정말 좋아요. 동생은 나에게 몇 시냐고 물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는 떠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른들한테는 뭐라고 하지? 남극에 갔다면 안 믿을 텐데. 언제 돌아올 거야? 어떻게 가는지 알아?”
   “나한테 아주 좋은 생각이 있어. 지난번 내 생일 날부터 계획했거든.”
   동생은 방에 가서 자기가 그린 지도를 가져왔어요. 동생은 아직 한글을 다 모르는데, 뭔가를 써놓고 그려놨어요. 첫 번째 목적지는 왠지 알 것 같았어요. 동생은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어요.
   “내가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절대 말하면 안 돼. 엄마한테 하트도 그려놓고, 편지 써 놨어. 이제 짐을 싸야 해.”
   나는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봤어요.
   “돌아올 거지?”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내 새끼손가락에 걸었어요. 나는 결심을 하고 동생 손을 잡아끌었어요. 안방으로 가 옷장 안에 있는 내 여행 가방을 꺼냈어요. 바퀴와 손잡이가 달려 있고,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가방이에요. 동생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어요.
   “네 생일날, 꼭 갖고 싶은 물건 하나 주기로 약속했잖아.”
   “아직 내 생일까지 되게 많이 남았는데!”
   “미리 주는 거야. ‘땡겨서’ 준다는 말 들어봤지? 삼촌이 만날 용돈 ‘땡겨’ 달라 그러잖아.”
   “응. 알아.”
   “네가 이거 엄청 갖고 싶어 했잖아. 지금 이게 꼭 필요할 것 같아. 너 가져.”
   동생의 눈이 커지고 콧구멍도 커지고 입도 벌어졌어요.
   “내 누나는 이 세상에서, 아니 우주 전체에서 정말 최고야. 내가 나중에 커서 누나한테 꽃밭 사줄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밭!”
   “응! 그럼 기대할게.”
   동생은 약속을 잘 지키는 아이라서, 그 말을 들으니 가방이 정말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요. 나는 한참 걸려서 동생이 짐을 싸는 걸 거들어줬어요. 동생이 가져가면 번거로울 물건들을 골라 빼주기도 했어요.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건 베개였어요. 고민 끝에 동생이 아기였을 때 베던 작은 걸로 챙겨줬어요.
   나는 동생과 함께 집을 나섰어요. 긴 복도가 더 길게 느껴졌어요. 아파트 입구 건널목까지 가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리고 목이 말랐어요. 나는 동생에게 빵을 사주기로 했어요. 배가 든든해야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요.
   빵집에서 동생이 한참 만에 고른 모닝빵 한 봉지와 꽈배기 두 개를 계산한 다음 가방에 넣어줬어요. 사장님이 우리에게 사탕을 하나씩 챙겨줬어요. 동생은 자기 사탕을 뚫어져라 보다가 나에게 내밀었어요.
   “누나가 아끼는 가방도 줬는데. 이건 내 선물이야.”
   나는 가슴이 찌르르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어요. 왠지 사탕을 받으면 동생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겁이 났어요. 동생은 주머니에서 지도 종이를 꺼내 다시 들여다보았어요.
   “버스는 있지, 저기 보라약국 앞에서 일단 체육센터 차 타면 돼. 할아버지랑 열 번도 더 타봤잖아, 수영 갈 때. 그리고 공짜야. 그다음 가는 길도 다 외우고 있어.”
   “엄마랑 할아버지 전화번호는 적어뒀지?”
   “물론이지. 외우는데 뭐. 공일공……”
   나는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동생은 이제 정말 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어요. 나는 약국 앞까지 함께 가서 기다리다가, 동생이 셔틀버스 타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동생은 버스에 자리를 잡아 앉고도 창밖에 서 있는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어요. 괜히 커튼을 만지작거리고 앞에 있는 손잡이를 쓰다듬는 모습이 보였어요. 나는 멀찌감치 뒤로 가서 까치발을 들고 콩콩 뛰어서 동생을 지켜봤어요. 마침내 버스가 출발하자 동생은 창문에 얼굴과 손바닥을 바싹 대고, 멀어질 때까지 나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그 모습에 그만 눈물이 났지만 꾹 참았어요.
   집이 발칵 뒤집힌 건, 동생이 떠나고 몇 시간쯤 흐른 뒤, 저녁 식사 무렵이었어요. 식탁에 모두 둘러앉아 있는데 동생 자리만 의자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겉절이를 그릇에 담으며 소리쳤어요.
   “용민아!”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했어요.
   “얘 잠들었니?”
   할아버지는 천천히 일어나 이 방 저 방 기웃댔어요.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달걀말이 한 조각을 집어 먹던 이모가 내 얼굴을 보더니 왜 그러냐고 물었어요. 나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자초지종을 들은 식구들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할머니는 퇴근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어서 나오라고 욕실 문을 두드리고,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어요. 삼촌은 체육센터에 가보겠다고 외치며 뛰어나갔어요. 이모는 “미아, 미아, 아니 실종.”이라고 중얼거리며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휴대폰 자판을 누르고 있었어요. 식구들은 해가 지도록 동네방네 돌아다니고, 놀이터, 상가, 내 친구네, 동생 친구네, 문 닫힌 유치원까지 가 봤어요. 아파트에서는 동생을 찾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어요.
   나는 거실에 앉아 울기만 했어요. 모두가 미친 사람 같았는데, 특히 엄마가 그러는 모습은 처음 봤어요. 너무 무서워서 말을 붙일 수도 없었어요. 나는 방에 들어가 동생의 스케치북을 들여다보았어요. 내가 아끼는 색연필로 이것저것 그린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스케치북을 넘기다 보니 한 면에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어요. 황제펭귄이 아기 펭귄을 품고 있는 사진이었어요. 그걸 따라 그린 그림 밑에 비뚤배뚤한 글씨로 “아빠 펭귄, 아기 펭귄”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나는 그 면을 한참을 들여다보았어요.
   어른들은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안내 방송을 듣고 이 소란을 알게 된 오백 육호 아저씨는, 복도에서 엄마 옆에 서 있는 나에게 왜 동생을 제대로 안 봤냐며 혀를 찼어요. 그러자 엄마가 싸늘한 얼굴로 쏘아붙였어요.
   “애가 무슨 잘못이에요.”
   그러자 옆집 할머니가 거들었어요. 복도에 눈사람 만들어놨다고 야단친 분이에요.
   “그 집에 어른이 몇인데, 아휴, 원래 사람이 많으면 더 놓칠 수 있지. 얘가 놀랬겠네.”
   옆집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엄마가 나를 엄마 쪽으로 잡아끌었어요. 옆집 할머니는 머뭇거리더니 나지막이 물었어요.
   “애 아빠가 데려간 건 아니우? 알아봤어요?”
   순간 엄마가 양손으로 내 귀를 덮어 꾹 눌렀어요. 엄마는 뭐라고 말했는데, 잘 들리지 않았어요. 엄마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문을 쾅 닫았어요.
   나는 엄마를 올려다봤어요. 엄마는 정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어요.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동생한테 비밀을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도착을 못했다면 정말 큰일이니까요.
   “엄마. 용민이, 지윤 이모네 간 것 같아요.”
   엄마의 눈이 커졌어요. 엄마가 무릎을 굽히고 내 어깨를 감쌌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울먹이며 말했어요.
   “사육사 이모가, 지난번에 펭귄 만난 적 있다고 했잖아요. 이모 다니는 동물원에도 있다고.”
   엄마의 입이 벌어졌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가 내 쪽으로 다가왔어요.
   “수민아. 너 왜 그걸 지금!”
   엄마는 말하다 말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한참을 기다려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 같았어요. 엄마는 뒷목에 손을 짚고 왔다갔다 움직였어요. 이모는 내 손을 잡아끌고 거실로 데려가 가만히 앉혔어요. 식구들은 나를 둘러싸고 앉아, 다그치지 않고 어떻게 자백을 받아낼까 고민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 엄마의 휴대폰 벨이 울렸어요. 엄마는 받자마자 울부짖었어요.
   “언니! 혹시 우리 용민이!”
   휴대폰에 잠시 귀를 대고 있던 엄마는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어요. 할머니도 주저앉고, 할아버지는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내뱉고는, 삼촌에게 헤매지 말고 들어오라고 전화를 했어요. 이모는 경찰에 다시 연락을 했어요. 엄마는 택시를 타고 지윤 이모네로 가기로 했어요. 지윤 이모가 퇴근하고 돌아왔더니, 동생이 집 앞 계단에 앉아 있었대요. 그 집에서는 하루 재우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데리러 당장 간다고 했어요.
   할머니는 이모와 삼촌더러 이제 소란 떨지 말고 나를 데리고 안방에 들어가라고 했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무슨 약을 드셨어요. 마음이 진정되는 약이랬어요.
   우리는 안방에 다 함께 누웠어요. 천장에서 야광 스티커별이 반짝였어요. 이모가 훌쩍이며 말했어요.
   “용민이가 거기까지 어떻게 갔을까? 아무리 여러 번 가본 집이라도, 중간에 버스도 한참 타야 하고, 거리가 얼만데. 누가 보고 경찰에 신고도 안 했네. 뉴스에 날 일이야.”
   삼촌이 침착하게 말했어요.
   “아기 때부터 기억력이 비상했잖아. 이 외삼촌을 닮았나.”
   “뭔 헛소리야.”
   이모는 짜증을 냈어요. 나는 돌아누워 눈을 감았어요. 이모는 내 등을 쓸어주고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줬어요.
   깜빡 잠이 들었다 깨었나 봐요. 문틈으로 거실 불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어요. 잠결에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애가 완전 녹초가 돼서 뻗었더라고. 내일 오후에 다시 가기로 했어요. 자기 좀 남극에 데려가 달라고 했대. 어휴, 참. 진짜일 줄은 상상도 못했네.”
   나는 일어나 거실로 나갔어요.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이 모두 둘러앉아 있었어요.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있는데, 엄마가 팔을 내밀고 있는 것 같아서 얼른 가 안겼어요. 엄마는 내 머리에 입을 맞추고 품에 꼭 안은 채 마저 자라며 아기처럼 얼러줬어요.
   “그 언니가 내일 수족관이라도 데려간다는 걸 말렸어. 거기 펭귄들도 다 탈출시킬 기세잖아.”
   엄마의 말에 이모와 삼촌이 번갈아 대꾸했어요.
   “적당히 둘러대. 남극에 가면 꼬마 인간은 다 얼어 죽는다고.”
   “특수 요원들이 힘을 합쳐서, 펭귄을 몽땅 다 구해줬다고 해.”
   나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엄마 품에 고개를 파묻은 채 말했어요.
   “적당히 꾸며내면요, 우리가 다 믿을 것 같아요?”
   “뭐?”
   엄마는 고개를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봤어요.
   “그냥 남극에 보내주면 안 돼요? 그러고 기다려주면 안 되나?”
   흘긋 보니 엄마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어요. 어른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면서요. 나는 고개를 들고 한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떠났다가 꼭 돌아오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용민이는.”
   아무도 말이 없었어요. 나는 나중에 기회를 봐서, 직접 동생을 데리고 남극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류재향

다정한 거짓말을 하고 싶어요. 동시에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야기 안팎에서 어린이 독자들을 정중하게 환대하는 작가이고 싶어요. 첫 동화책으로 『욕 좀 하는 이유나』를 썼어요.

2020/03/31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