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담임은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원래 꼴찌 반이긴 했지만 반 평균이 지난 학기보다 더 떨어졌다며 이제 어쩔 거냐는 담임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들의 표정도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이번 주 내로 성적표가 집으로 발송될 거라고 하자 아이들은 발을 구르며 야유했다.
   나는 발을 구르지 않았다. 직전 시험보다 성적이 조금 오르기도 했거니와, 나의 부모는 성적이 떨어졌다고 해서 딸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체벌을 가하는 부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경쟁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과 좋은 삶을 사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품위 있게 말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나는 자랐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좋은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는데, 아버지 자신이 하나의 실례(實例)라는 걸 모르는 걸까.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명문대를 나왔고, 노동 운동을 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와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된 후로 오랫동안 백수였다가…… 요즘은 지역에서 환경 운동을 하고 있다. 활동가, 그것이 내 아버지의 직업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활동을 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나는 활동이 직업이 된다는 걸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다른 말로 아버지를 설명하는 건 더 어려웠다.
   “이동민 형은 내가 옛날부터 존경하는 선배님이야. 이 지역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시는지 민주 너도 알아야 한다.”
   학기 초 상담 시간에 담임은 아버지와 잘 아는 사이라고, 반색하며 말했다. 담임이 전교조 소속인 건 알았는데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 지역에서 아버지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더군다나 내 앞에 맨정신으로 나타나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담임이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서 술판이 벌어질 때면 아버지의 동료, 동지라고 소개한 아저씨들이 불콰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용돈을 쥐여주며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지나치게 많은 부끄러움을 가르쳤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시절 놀이동산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조르는 내게 노조를 파괴하는 기업에서 운영하는 테마파크에서 노는 게 즐겁기만 한 일이겠냐고, 어르듯 말했다. 대신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산과 들, 바다로 캠핑을 다녔다. 비싼 옷도, 사교육도 우리 형편에는 언감생심이었다. 아버지는 돈이 없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사줄 수 없다는 것에 미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편에 맞지 않는 비싼 것들을 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불만을 가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뭔가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나는 학교에서도 튀지 않고 지내는 축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듣고, 시험 기간이 되면 시험을 치고, 공부를 안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겨보려고 유난을 떠는 건 왠지 부끄러운 일 같아서, 라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노력과 뒷받침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니라고, 아주 조금만, 욕심을 가져보라고 담임은 말했다. 선생님이 도와주고 신경 써줄 거라고, 그러니 같이해보자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좋았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처음 받아보는 호의와 관심이었다.
   1학년 1학기에 반장이 된 것도 담임의 도움이 작용했다는 걸 안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각기 다른 중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뒤섞여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분위기에서 담임은 나를 자주 호명하곤 했다. 아직 반장이 뽑히기 전에 소소한 공지사항 전달이나 잔심부름 같은 걸 은근슬쩍 내게 맡겼고, 나는 교무실에 자주 오가게 되면서 반 아이들에게 왠지 반장에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이게 됐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처럼 보였던 강예지가 기권을 한 것도 내가 반장에 당선된 결정적 요인이었다. 강예지는 중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아이로 유명했는데, 누군가 강예지를 반장으로 추천하면서 예지가 반장이 되면 면학 분위기가 잘 잡힐 것 같다는 이유를 댔다. 그 순간 반 아이들은 우와, 하면서 손뼉을 쳤다. 강예지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권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담임이 다시 물었다.
   “강예지, 친구들이 네가 반을 위해 봉사를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싫어?”
   “귀찮아요, 저는 빼주세요.”
   아이들은 짐짓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강예지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강예지에게 일을 시키고 싶다는 짓궂은 마음으로 한 표를 주겠다는 아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아마도, 강예지가 반장을 하겠다고 나섰더라면 당선됐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와 같은 중학교에 다녔던 강예지는 인근의 다른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 아이는 늘 전교 1등이었고, 심지어 다른 아이들과 상당한 차이가 나는 독보적인 1등이었다. 아이들은 강예지가 어려서부터 혹독한 선행 학습을 해왔다며 그 아이가 얼마나 비싼 과외를 받는지에 대해서 자주 수군거렸다. 하지만 강예지를 질투하거나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강예지 아버지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2차 병원인 강병원 원장이었고, 이 동네에서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강예지가 과학고가 아닌 우리 지역의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의대에 가기 위해서였고, 큰 변수가 없다면 강예지는 개교 이후 처음으로 의대 진학자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반장이 되고, 교내 경시대회에서 상을 두어 번 받기도 하자 주변 친구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묘하게 달라졌다. “민주, 네가 경시대회에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는데?”라고 대놓고 의아해하는 친구도 있었다. 담임이 해보라고 권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담임은 내게 논리적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교내 서평 대회, 논술 대회를 준비해보라고 귀띔해줬다.
   “대학 가려면 생기부 신경 써야 한다고 하잖아. 교내 대회든 대외 활동이든 할 수 있는 건 해보려고.”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변명을 하는 것처럼 굴었다. 나와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이 더 예민한 반응을 보여서 신경이 쓰였다.
   “너는 좀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노는 삼총사 중 한 명인 선아는 내가 성적에 집착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아서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럼 이제는 내가 싫다는 건가, 나는 선아가 학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수행 평가를 제출하고, 학원에서 따로 경시대회를 준비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 사이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내게서 멀어졌다. 담임이 나를 편애한다고, 그건 공정하지 않다고 친구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따지고 보면, 담임이 내게 특별히 해준 건 없었다. 이미 다른 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교내 경시대회에 대해서, 이야기해줬을 뿐이었다. 아무 의욕도 생각도 없는 내게 참여를 권했던 것이고, 그 말 한마디에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각종 경시대회를 휩쓸다시피 하는 강예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강예지는 늘 그래왔으니까, 예지는 뛰어난 실력을 갖췄으니까, 예지의 수상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그런 반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가, 그리고 이 사회가 조금 무서워졌다.

   강예지가 전국 고교 토론 대회를 같이 준비해 학교 대표로 나가보자는 말을 했을 때 처음에 나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반이었지만 2학기가 될 때까지 말 몇 마디 나눠보지 않은 사이에 같이 팀을 이뤄서 토론 대회에 나간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괜히 아이들 눈에 안 좋게 비춰지진 않을지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왜, 나야? 나보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애랑 팀 짜는 게 더 유리하지 않아?”
   “민주 너 지난번에 조별 토론 시간에 잘하더라고. 어차피 혼자는 못 나가.”
   “혹시 담임이 사주했어? 나랑 같이 팀 짜서 대회 나가라고?”
   “아니, 그리고 내가 담임이 시킨다고 해서 하기 싫은 일 할 사람으로 보이니?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쓰지는 않는 사람이야. 난.”
   “근데 이거 내가 알아봤는데 의대 가는 데는 크게 도움 안 되는 거 알아? 전공 적성 관련한 대회나 외부 활동으로 생기부 채워야 한대.”
   “그것도 알아.”
   강예지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우리는 방과 후 일주일에 두 번씩 학교 도서실에서 만나 토론 대회 준비를 했다. 현장에서 제비뽑기로 토론 주제가 결정되는 방식이니만큼 예상 주제를 최대한 많이 뽑아 자료를 준비하고 연습해보는 게 중요했다. 강예지는 소문대로 성실했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집요한 성격이었다. 나는 최대한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모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강예지가 준비해오는 양질의 자료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런 것도 과외나 학원에서 준비해주는 거야?”
   “아니, 진도 나가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건 내가 해야지.”
   “공부는 공부대로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어? 대단하다.”
   “귀찮아서 그래. 길게 하는 거 귀찮잖아. 재수, 삼수 없이 한 번에 끝내려면.”
   강예지의 대답은 언제나 효율적이고 간결했다. 아이들이 왜 강예지를 ‘넘사벽’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토론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우리 둘은 크게 다퉜다. 강예지가 뽑아온 예상 주제와 관련 자료를 보고 내가 몇 마디를 한 게 불씨가 됐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에 대해 찬반 토론을 준비해보자는 강예지에게 나는 이건 토론의 주제로 적합하지 않다고, 장애인이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하는 문제를 찬반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강예지는 그래도 최대한 많은 주제를 연습해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만약에 토론 대회에서 논제로 제시될 때에도 그렇게 말하며 잘난 척을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그래야 한다고 답했다. 찬반의 대상이 아닌 주제로 한 토론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약자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내 말에 강예지가 코웃음을 쳤다.
   “그렇구나, 민주 너는 참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커와서 뿌듯하겠다. 대단한 활동가 나셨어!”
   그 말 한마디에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화를 내다가 급기야 분에 못 이겨 울기까지 했다. 강예지가 내게 한 말이 별 뜻이 없었음을, 내 아버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기는 했지만,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채로 같이 팀을 이뤄 대회에 나가서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대회 출전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겨우 이런 일로 대회를 포기하는 거냐며 강예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게 끝까지 사과는 하지 않았다.
   마음을 돌려먹은 건 담임의 끈질긴 설득 때문이었다. 싫은 사람과도 한 팀이 될 수 있는 거라고, 팀원이 미워도 피해를 줘서는 안 되는 거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다. 정작 강예지는 별말이 없었다. 대회 포기하면 네가 더 손해일 거라는 식으로 구는 강예지에게 약이 오르기도 했다.
   토론 대회 날 아침, 강예지와 나는 담임의 승용차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둘 중 누구도 서로에게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다.
   “아이고 이 녀석들, 이제 화해한 거지? 하하, 민주야 나는 모든 활동가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대단한 활동가 나셨다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니라는 거 알지?”
   담임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 억지로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강예지의 표정이 굳었다.
   “뭐야, 그런 말까지 다 전한 거야? 치사하게.”
   나도 담임이 쓸데없는 말을 한 것에 당황했다.
   “계속, 물어보셔서 그랬어. 왜 안 하려는 거냐고, 내가 하도 분통 터져서 결국은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그럼 이제 다 털어놓았으니 분은 좀 삭이시지.”
   강예지 나름의 화해의 제스처로 보였다. 나는 대답 없이 입을 삐죽였다. 담임이 룸 미러로 우리를 힐끗 보며 웃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보기 좋다. 친구들끼리 괜한 감정 싸움할 필요 없잖아. 오늘 최선을 다해봐, 좋은 결과 있을 거라 믿는다!”
   담임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그저 같은 팀이었지 친구가 될 수는 없지 않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대회 장소인 광역시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강예지는 부러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프린트물 하나를 옆으로 건넸다.
   “예상 주제 찬반 입장 정리해 놓은 거야. 가는 길에 한 번 읽어봐.”
   주제에 따라 찬반 입장과 그 근거가 깔끔하게 정리된 인쇄물을 보면서 나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거나, 강예지는 팀플레이에는 진심이었다.
   “넘사벽답네.”
   “뭐라고? 자료 뭐 잘못된 거 있어?”
   “아니, 그런 거 아니고. 네 별명 말이야. 아이들이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고 널 두고 넘사벽이라고 그러더라. 그러고 보니 나 넘사벽이랑 한 팀이네.”
   “그래?”
   강예지가 피식하고 웃었다.
   “예지 네가 어딜 나가서 상을 받고, 좋은 성적을 받는 건 넘사벽이라서 리스펙트인데 그게 내가 되면 애들이 좀 아니꼽게 보더라. 자기랑 비슷하거나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조금 더 가지면 뭔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거 좀 웃기지 않아?”
   강예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담임도 더는 말이 없었다. 나도 특별한 답을 듣고 싶어서 물었던 건 아니었다. 조용히 프린트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프린트물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토론 장면을 시뮬레이션했다. 강예지와 2인 1조로 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못하는 것도 좀 부끄러운 일 같았다. 빈손으로 학교에 돌아가게 된다면 강예지가 더 부끄러울까, 아니면 내가 더 부끄러울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부담감이 몰려왔다. 대회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진땀이 났다.
   목적지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웠을 때부터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기어내리다시피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 바닥에 발을 딛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강예지가 급히 손을 뻗어 휘청이는 나를 잡았다. 담임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심호흡해. 괜찮아.”
   강예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강예지의 손을 붙들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미안, 갑자기. 이게 뭐라고 입구에 대회 현수막 보면서부터 막 숨이 가빠온다.”
   “야, 네가 그랬잖아. 나더러 넘사벽이라고. 나 한번 믿어봐, 그냥.”
   평소답지 않게 허세까지 부리는 강예지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강예지와 함께 건물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찬 공기를 마시니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기도 했다.
   “이민주, 너는 근데 벽을 타 넘어? 보통은 벽을 넘을 일이 없지 않나?”
   “응?”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벽이라는 거 용도는 막아주는 거 아닌가. 내 앞에 벽이 있으면 벽을 넘는 게 아니라 그냥 벽에 기대게 되던데. 벽은 기대라고 있는 거야.”
   강예지가 옆에 바짝 붙어 내 팔을 붙든 채 천천히 걸었다. 강예지의 옆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오늘만큼은 같은 편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유담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때로는 희망이고, 때로는 절망이다. 그럼에도 희망 쪽으로 조금 더 몸을 기울이고 싶다.

2023/02/28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