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키의 택시는 맨해튼을 빠져나와 9번 국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뉴욕은 언제나처럼 정체가 심했다. 코키는 뒤차를 살피는 척 룸미러로 뒷좌석 승객을 힐긋거렸다. 승객은 목소리를 죽이고 통화중이었는데, 월가에서 택시를 부른 사람답게 고급 슈트를 입었고, 셔츠 앞섶에 타이를 매지 않아 편안해 보였다. 이십대 중반쯤 되었을까? 동양인은 열 살 정도 어려 보이니까 어쩌면 그녀와 같은 또래일지 몰랐다.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 전에 승객을 짐작하는 일은 택시 운전을 시작하고 얻은 작은 즐거움이었다. 장거리 손님을 실어나를 때는 힌트를 얻을 기회가 더 많았다.
  내 남편도 한국인이었어요.
  승객이 전화를 끊자마자 코키는 말했다. 짧은 결혼생활 동안 한국의 말과 노래를 들었고, 똑같이 말하지는 못해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꽤 있었다.
  전남편이요. 지금은 헤어졌어요.
  그 말은 괜히 덧붙였다고 생각했다. 더는 한국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었다. 룸미러에 비친 승객의 얼굴을 보자 그쪽에서도 코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말을 건네기 난감한 듯 시선이 창밖을 향해 멀어졌다.
  비가 오면 안 되는데.
  승객이 중얼거렸다. 날씨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닌 것 같아 코키는 말없이 차 속도를 올렸다. 택시는 여전히 허드슨강을 따라 9번 국도 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하늘과 강이 하나로 이어진 듯 경계가 희고 뿌옜다. 맨해튼의 빌딩들이 안개 속에서 무리지어 뒤로 물러났다. 지금까지 코키는 셀 수 없는 승객을 태우고 강을 건넜다. 대개 브루클린, 롱아일랜드, 뉴저지 아니면 코네티컷의 이름난 도시를 넘나들었는데, 와핑거스폴스의 주택으로 차를 모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쪽은 해가 드네요. 그렇게 말하고 차창을 모두 열자 습한 강바람이 차 안으로 파고들었다. 바람결에 무기력한 햇빛이 느껴졌다. 후더분한 바람이 불편한지 승객은 고개를 숙이고 작은 숨을 내쉬더니 이내 스위치를 당겨 뒷좌석 창을 닫았다. 차 안에는 이따금 울리는 경적과 어중간한 바람 소리가 남았다.
  와핑거스폴스는 한적한 소도시였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도로를 달리자 마당에 성조기를 걸고 농구 골대를 설치한 주택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왔다. 숲에서 내려온 새끼 사슴이 누군가의 앞마당에 자란 블루베리 나무를 노리고 있었다. 승객이 다시 입을 연 것은 이층짜리 목조주택이 즐비한 일방통행 길을 지날 때였다.
  혹시 저를 좀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세 시간 정도요.
  승객은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그다음에 JFK 공항으로 데려다주시면 돼요.
  세 시간 동안 일을 쉬라고요? 여기는 택시를 타려는 사람도 없을 텐데.
  요금을 더 낼게요.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계산을 좀 해보고요.
  코키는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집 앞 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마당을 살폈다. 잔디밭 위로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보였다. 커다란 노르웨이 단풍나무에서 뻗은 가지 아래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정성껏 식탁보를 펼치는 모습에 눈길이 갔다. 월가에서 택시를 부른 손님은 결혼식의 하객인 모양이었다. 뒤에서 다시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임 농장 근처 공원에서 무료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공연을 보면서 기다리면 시간이 빨리 갈 것이다, 빈 차로 맨해튼에 돌아가는 것보다 자신을 태우고 내려가는 편이 손해가 덜할 것이다…… 코키는 남자가 가리키는 길 건너로 고개를 돌렸다. 부모의 손을 잡고 걷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지나갔다. 돗자리를 든 가족들이 농장 표지판 아래로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코키는 공원 잔디밭에 마련된 플라스틱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 못했다. 아마추어 가수들이 위켄드,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을 마음대로 편곡해 부르는 무대가 이어졌는데, 가수도 동네 사람, 관객도 동네 사람이었다. 관객들은 아는 사람이 무대에 오르면 환호하고, 모르는 사람이 노래하면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나 과일을 먹었다. 코키는 네번째 가수가 소개되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돗자리 사이를 가로질러 공원을 빠져나온 다음에는 승객을 내려준 주택가 길모퉁이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목조주택 마당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큰키나무들이 유적처럼 서 있었다. 승객은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앞에서 위아래 흰옷을 입은 사람과 마주 서 있었는데, 차 안에서와는 다르게 검정 나비넥타이를 맨 채였다. 승객은 결혼의 당사자였다. 하객은 한 명도 없었다. 오직 서로만을 초대한 결혼식에서 두 사람은 혼인서약서로 보이는 종이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다른 곳보다 조금 짧게 깎아서 길을 낸 잔디밭 위를 행진하고, 행복한 얼굴로 입을 맞출 때까지 코키는 나무 뒤편에 가만히 서서 결혼식을 지켜보았다.
  코키가 다시 몸을 움직인 것은 사진 촬영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집 앞 데크에 삼각대를 놓고 테이블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급한 타이머와 셔터 소리가 계속해서 마당에 울렸다. 잠시 움직임을 멈춘 채 카메라를 응시한 둘은 결과물을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테이블 쪽으로 돌아와 나란히 팔짱 끼기를 반복했다. 사진을 찍어줘야겠다고, 코키는 생각했다. 나무줄기에서 손을 떼고 마당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코키의 어깨를 붙잡았다. 카메라 가방을 멘 건장한 남자였다.
  누구세요?
  코키가 묻자 남자는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은 누군데 내 집 마당을 보고 있죠?
  저 사람 택시 기사인데요.
  코키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승객과 나란히 선 사람을 손으로 가리켰다. 욕실이 딸린 다락에 세를 주고 있다고 했다. 출장에서 이틀 일찍 돌아왔는데 자기 집 마당에서 이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재차 남자가 물었다.
  그런데 왜 끼어들려는 거예요?
  사진을 찍어주려고요.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저 나라 사람들은.
  별로 원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친구거든요. 나는 포토그래퍼인데도 가만히 있잖아요.
  코키는 남자의 카메라 가방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마당에서는 물푸레나무 사이를 술래잡기하듯 오가던 두 사람이 구두를 신은 채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승객의 파트너가 흰 접시와 포크를 가지고 나오자 승객이 뒤따라 두 손으로 프라이팬을 들고나왔다. 둘은 언제 울었냐는 듯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국수 대신일까? 식사 메뉴는 오일 파스타였다. 고소한 마늘 냄새가 집 앞 도로까지 퍼지는 사이 하얀 식탁보에는 어느새 가지런히 줄을 맞춘 김밥과 디저트 접시에 담긴 케이크가 나란히 놓였다.
  승객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Smoke Gets In Your Eyes〉 피아노 연주곡을 틀었다. 한국인 커플은 둘만의 작은 우주에 머무는 듯 고요하고 안전했다. 가을의 정오였고 하늘은 이제 햇살을 가리는 먼지 하나 없이 투명했다. 식탁보 위에 올려놓은 미역취와 들꽃으로 만든 부케, 심지어는 아무렇게나 놓인 잔디깎이마저 특별한 의미를 품은 듯 빛났다. 코키는 작고 조용한 예식을 지켜보다 말고 자신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전남편을 따라 한국까지 가서 예식을 올린, 고딕풍 기둥이 천장까지 뻗은 대형 웨딩홀의 꼭대기 층 풍경을.
  결혼식장은 남편의 고향 부산의 상가 건물이었다. 시아버지가 뿌린 돈을 거두어들이려면 커다란 예식장을 잡아야 하는데, 어느 점집에서 돈을 주고 받아온 날짜에 대관이 가능한 유일한 장소라고 했다. 주변에 청첩장을 돌리면서 밥을 사느라 지쳐가는 남편을 따라다닐 때는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지금도 이해하지는 못한다. 왜 그것이 예의이고, 결혼식장에서 밥을 대접하는 걸로는 부족한 건지─즐거움이 더 컸다. 결혼식 날 신부 대기실을 찾은 남편의 친척은 대충 백 명 정도였다. 증권사에서 평생을 근무한 시아버지의 동료들, 고객들, 친구들 역시 백 명 넘게 찾아왔다. 식대를 빼고 대충 50달러씩만 계산해도…… 코키는 흐뭇한 시부모의 얼굴을 살피다 자기도 모르게 돈봉투를 머릿속으로 헤아려보았다.
  미국 사람이 계속 한국에 살려고 하겠어?
  한복으로 갈아입고 친척들이 꽉 들어찬 방에서 절을 하자 고모할머니인가 당고모인가 발음하기도 어려운 호칭의 노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이 코키에게 통역을 해준 뒤 뭐라고 대답하자 향수병이라도 나면 어떡해?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아, 같은 말들이 끼어들었다. 외국인이라 쉽게 헤어지는 것 아니야? 일을 안 하고 집에 있으려고 하겠어? 그런 말들도 한발 늦게 코키에게 전달되었다. 모르고 지나가도 좋았을 말들. 남편은 왜 그 말들을 전부 통역했을까?
  코키의 향수병이, 자유분방함이, 일에 대한 열망이 이혼의 사유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코키는 다시 뉴욕 주로 돌아와 소도시의 작은 예식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보기 좋네요.
  옆에서 집주인이 코키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는 조금 걱정이 되는데요. 이걸로 괜찮다고 할지.
  코키가 대답했다.
  누가요?
  부모나 친구들이요.
  그 사람들이 두 사람보다 중요한가요?
  집주인은 녹색으로 울창한 자신의 마당을 둘러보았다. 둘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듯 바짝 팔짱을 낀 모습이었다. 눈동자에는 말에 담긴 응원보다 솔직한 부러움이 가득했다. 코키를 돌아보고 웃는 남자의 얼굴 위로 노란 햇빛이 쏟아져내렸다. 그러자 한때 열정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했을 사춘기 소년의 표정이 환하게 드러났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코키는─침묵 속에서 승객을 짐작해온 경험으로─집주인 역시 두 사람의 사적인 결혼식을 바라보다 지난날의 실패한 사랑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처럼 확신이 드는 짐작은 없었다.
  저기, 농장 옆에 무료 콘서트가 있던데요.
  코키가 다시 대화를 건넸다.
  집에 들어가기 뭣하면 가실래요?
  이 결혼식이 끝나면요. 여기보다 두 사람이 더 잘 보이는 곳이 있어요.
  집주인이 가리킨 곳은 작은 창고 뒤편이었다. 둥근 지붕 위 아카시아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나뭇가지가 떨리는 소리 너머, 멀리 공원 방향에서 악기 소리와 아이들의 환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더이상 마당 테이블 앞에서 재잘거리는 한국인 부부나 공원의 음악 소리는 궁금하지 않았다. 코키의 신경을 끄는 것은 씁쓸함이 머물던 자리에 햇빛 같은 기쁨이 깃든, 사춘기 아이처럼 빛나고 있는 집주인의 눈이었다.
  가볼까요?
  집주인이 창고를 향해 서서 채근하듯 물었다. 코키는 시간을 흘깃 확인했다. 승객을 공항에 데려다주기로 한 약속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안리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자연에서 소재를 얻어 자연의 질서나 인간의 관계가 전복되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실제로 맨해튼에서 와핑거스폴스로 이동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썼습니다. 이번 가을, 아주 긴 해외 일정을 앞두고 출국 전에 완성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마치 JYP가 K-POP을 써내듯이 비행기와 기차 안에서 많은 문장을 쓰고 고쳤습니다. 이코노미석과 이등석에서……

2023/12/20
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