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형상을 찾으신다면 잘 찾아오신 거예요. 놀고먹는 호반 하나 파계승 하나 색시 꼬시려고 이리저리 흔드는 전통무도 있다 하고 그 춤을 바람의 형상이라 비평키도 한다지만. 바람은 그보다 자주 불어요.

  덜컹거리는 창문짝을 향해 거 누구요! 모습을 드러내시라! 한다면 보여주기야 쉽지요. 후 불면 지워지는 모래 만다라보다 간단하지요. 김장 다라이에 담기면 일 년 치 김치 모양, 우리들 콧구멍에 담기면 우리들 모양 아니겠어요?

  차라리 깃털과 나뭇잎, 촛불과 뺨, 아이 러브 유 하는 입술 같은 거나 들여다볼 일이에요. 세상에 뒤가 두둑한 게 어디 깃털과 나뭇잎, 촛불과 뺨, 아이 러브 유 뿐입디까? 반발하는 목소리에 깃든 바람 기미도 들어볼 일이랍니다.

  이십 년 전 길에서 전단지 하나를 받았는데 모자 쓴 두 석불1) 듬직하게 서 있었어요.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이 파면 죽나니” 주문을 외면 신선이 되는 법을 알 수 있다고? 으스스한 기분에 휩싸여 전단지는 버렸는데, 천 년 묵은 바위 한 쌍 마음에 들어선 거예요.

  왕의 꿈에 나온 두 수도승이, 배고프니 어서 암벽에서 꺼내달라 하여 파낸 불상이라던데. 파고 파고 깊이 파 바람에 합세한 것이라던데. 나도 가끔 안쪽에서 웅웅거리는 소리, 펄럭거리는 소리, 눈꺼풀 덜컹거리는 소리 들리거든요. 그런데 손수건은 아직 희고. 깨끗해, 깨끗해서 상서롭지 못한 나의 마음.

  십자로에 걸린 현수막은 국회의원들의 한말씀을 펄럭거리고 있지만, 아옹다옹 말 다투는 채팅방 같기나 하고. 바람 없는 것 같아…… 웃을 일인 줄 알았는데 울게 되는 일, 나 있는 줄 알았는데 나 없는 일, 산이 물이었다가 도로 산이 되는 일, 내가 걷는 줄 알았는데 배경이 걷는 일, 천 년 묵은 바위 한 쌍 배드민턴 치듯이 말이에요.

  여기서 저기로 움직이는 깃털과 나뭇잎, 촛불과 뺨, 아이 러브 유 하는 입술
  바람의 둥근 배 타고 가기 좋도록
  둥근 배 둥근 배 가벼워야 살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유계영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온갖 것들의 낮』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산문집 『꼭대기의 수줍음』 『무궁무궁』이 있다.

2026/01/07
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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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이불입상. 파주 용미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