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의 첫번째 글로 ‘에너지’ 문제를 다뤘습니다. 전문가의 성역처럼 느껴지던 기후위기 이슈가 이제 우리 일상을 파고드는 문제로 일상화되면서, 기후위기나 에너지 문제는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친환경 에너지, 탄소중립 등 신문의 사회 면에 종종 오르내리는 이슈가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정작 논의를 한꺼풀 벗겨보면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조민서 필자의 글은 ‘에너지’ 문제에 관한 여러 쟁점을 두루 소개하며,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통로를 제공합니다.



1. 수도의 에너지 문제

한국의 기후정치에 대한 박사논문 작성을 위한 현지조사 과정에서, 처음 몇 개월 동안은 정부, 정당, 기업, 시민단체, 연구소 등 주최자와 무관하게 ‘기후’가 들어간 행사는 무엇이든 참석했던 시간이 있었다. 가장 많이 들렀던 공간은 한국 정치·경제의 수도 서울, 그중에서도 여의도였다. 2016년 광화문에 이어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이 된 국회의사당역 인근에는 국회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도 즐비하다. 국회의사당과 금융기관의 공통점은 장소와 더불어 산업계의 동향에도 민감하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정책과 산업·금융의 열쇳말이 된 오늘날 수많은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열리는 기후 관련 행사 중 특히 자주 참석하게 되었던 것은 에너지와 관련된 행사였다. 국회의사당 회의실이나 금융기관의 행사장, 인근 호텔에서 열리는 이 행사들에서는 화석연료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전혀 생소하지 않을 자명한 명제를 공유하는 이들 간에 이 전환의 속도, 내용, 방식을 두고 논의가 전개된다.
  보통 포스터에는 푸르른 원형 지구 위, 나무들 사이에 ‘녹색’ 에너지 인프라들이 그려져 있다.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터빈, 전기차 배터리 충전소는 늘 있고, 가끔 이 사이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경우도 있다. 행사에서 나누어주는 자료집에는 세계의 에너지 정책·산업·금융 동향을 보여주는 수많은 그래프, 그리고 한반도 지도를 펴놓고 써놓은 에너지 수급 현황과 미래 계획이 등장한다. 비록 행사 표제에는 흔히 “기후” “탄소중립” 같은 키워드들이 숱하게 등장하지만, 여기에 초대받은 전문가들이 ‘환경’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에너지에 대해 견지해왔던 기존의 고민들과 환경적 기준을 조화시켜야 한다. 첫째, 어떻게 에너지를 가능한 한 저렴하게 구할 것인가? 이것은 기술 혁신으로 인한 에너지 원별 가격 변화와 수요·공급 현황, 대체 연료의 존재, 각 에너지원의 발전 단가를 두루 고려하는 에너지 경제학의 물음이다. 둘째는 에너지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인가? 에너지 안보의 문제다. 여기서는 국제 가격 변동,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망 구조, 원유 수송로 같은 키워드들이 등장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경제학과 안보의 관점에서 해결책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왔다.
  에너지 문제는 근대 국가의 통치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건 중 하나였다. 산업적 근대성을 상징하는 공장과 철도, 팽창과 건설을 뒷받침하는 물질적 조건이자, 동시에 이 모든 팽창을 요구했던 핵심적인 자원 중 하나가 에너지였다. 역사학자 빅터 샤우는 중국 둥베이 지역 랴오닝성에 있는 푸순시 탄광의 역사를 통해 제국주의 일본과 공산주의 중국을 가로지르며 작동했던 동아시아 탄소 기술관료주의의 역사를 추적한다.1) 탄소 기술관료주의란 에너지를 많이 쓸수록 강한 국가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국가가 자원의 채굴과 운송, 전력화 과정을 통제하고 이를 위해 노동, 조직, 관료제를 조직했던 하나의 제도와 상상, 담론의 집합체다. 에너지 소비량을 곧 국력과 동일시했던 사고방식은 물론 AI와 데이터센터를 위한 ‘컴퓨팅 파워’가 곧 국력이라는 정·재계 엘리트들의 말에서 여전히 변주되고 있다.
  여전히 에너지는 국가주의와 개발주의의 관점에서 중요하나, 전 지구적인 에너지 공급망 속에서 역사적 변천을 겪어왔던 에너지 논의는 가열되는 지구 앞에서 안보·경제학이 아닌 기후변화라는 축을 맞이하게 되었다. 주최 측의 인사말은 “올여름은 가장 더운” 혹은 “올가을은 전례 없는 고온으로” 같은 말들로 시작되고, 때론 재난의 스펙터클이 화면에 나타난다. 행사 참가자들마저 무시할 수 없는 ‘기후’의 존재감이 행사장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국제 기후변화 협약, 탈탄소화에 대한 유인을 부과하는 각종 무역 규제 등이 언급되면서, 기후는 분명 ‘에너지 믹스’, 각 에너지원의 비중을 최적화하여 조합하는 해법을 찾기 위한 방정식의 구성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석탄 발전 비중을 언제까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재생에너지는 충분히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는가? 추가적인 원자력 발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양하지만 하나로 연결된 물음들 앞에 전문가들은 저마다 최적의 해(solution)를 제안한다.

건물 내부에 걸려있는 행사 안내용 파란색 현수막. ‘CFE Leaders Roundtable’(CFE 리더 라운드테이블)이라는 행사명과 ‘탄소중립으로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부제가 적혀 있다. 제목 옆 일러스트에는 초록색 콘센트와 자동차, 풍력발전소 등이 그려져 있다.
여의도의 어느 기후 관련 컨퍼런스 행사장(촬영: 조민서)


2. 위험의 공간적 외부화와 원자력

서울이라는 수도의 포럼과 컨퍼런스, 회의들을 거쳐 수치화된 형태의 해법으로 도출되는 에너지 계획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나, 이 에너지 계획이 실제로 구현되는 과정은 지극히 물질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리고 그 해법이 실현되는 공간은 대부분 수도의 외부에 있는 ‘지역’이다. 여의도의 행사장에서 흔히 몇 가지 상징적인 이미지, 색채, 수치로 등장하는 에너지는 엘리베이터, 냉난방, 조명 등을 가동하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전원을 꽂는 플러그나 멀티탭을 통해 간편히 접속할 수 있는 ‘흐름’이 가능해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생산되어 소비되기까지의 물질적 여정은 생략되어 있다. 그 여정을 역으로 추적해보면 고압 송전탑, 발전소, 원료의 운송과 채굴 과정에 이르는 숱한 장소를 거쳐야 한다. 이 모든 여정 가까이에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 에너지는 명백한 물질이다. 그것은 엄격히 관리되어야 하며, 예기치 않은 막대한 위난을 초래할 수 있는 물질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만큼 이를 여실히 증거하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2) 방사선이 누출되어 출입과 거주가 금지된 구역의 표시, 그리고 일본 정부가 2023년 방류하기 시작한 오염수는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활용되어야 했던 물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후쿠시마 이전에도 이야기되어왔지만 후쿠시마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 재난의 강도는 탈핵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한국의 탈핵운동은 전국 각지의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가 수도권으로 향하는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원자력 에너지의 위험한 물질성을 문제 삼았다. 부산 신고리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수도권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는 경상남도 밀양의 송전탑에 대한 반대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운동이 일깨운 것은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사실이었다.
  비단 원자력 발전소뿐만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석탄 발전의 과정에서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지역들은 대개 석탄화력발전소가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원자력 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석탄화력발전소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세수를 증대시킨다는 이유로 지역 간 유치 경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역 경제(economy)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지역의 생태(ecology)를 일정 부분 희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가 세워진 강원도 삼척시 역시 마찬가지다.
  삼척과 석탄이라는 키워드는 세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 중반 인구가 삼십만을 넘어섰던 당시 삼척의 석탄은 삼척 내부 도계 탄광에서 생산된 석탄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는 이유로 탄광이 개발된 삼척은 오랜 기간 석탄화력발전소가 되어 국가 경제 발전의 에너지를 공급해왔다. 이후 1980년대 이후 폐광이 가속화되면서 광산 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들과 얽혀있던 이들 역시 삼척을 떠났다. 2020년대 이후 삼척시의 인구는 육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지역경제가 사그라드는 현실 앞에서 삼척시는 에너지 인프라를 여러 차례 유치하려 했다. 1990년대 삼척의 정치인과 상공인들은 근덕면에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려 했으나, 지역의 농민과 주민, 종교인들의 거센 반발 끝에 1998년 무산되었다. 근덕면의 공터에는 서 있는 ‘원전 백지화 기념탑’은 이때 세워졌다. 칠 년 후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을 유치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시의회의 부결로 무산되었다. 2010년대에는 삼척을 에너지 인프라의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시장의 계획으로 삼척이 신규 원전 부지로 거론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던 반대 운동은 후쿠시마 사고를 목도한 주민들의 참여가 더해지면서 점차 확산되었다. 〈고향의 봄〉을 부르며 수년 간 이어진 운동 끝에 2019년 원전 유치 계획은 철회되었다. 이십여 년 전 들어선 근덕면의 기념탑 옆에는 또다른 기념비가 나란히 세워졌다.
  싸움이 반복되는 동안 이들은 삼척 지역 내부의 유치 찬성론자들과도 논쟁하는 한편, 삼척에서 약 300km 떨어진 서울에도 수차례 방문했다. 199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변함없이 삼척에서 생산될 전력의 수요처이자, 이 생산의 입지를 계획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서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전이 들어설 뻔했던 삼척시 근덕면이라는 고유한 장소의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다. 지금도 삼척 외부에서 원전 백지화 운동의 역사를 듣고 찾아온 이들에게 주민 운동가들이 자랑스레 보여주는 기념비가 서 있는 공터는 근덕면을 비롯해 수많은 장소를 예정지로 검토하는 수도 서울 여의도의 공간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삼척과 같은 지역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서울은 소비한다. 지역은 인프라를 유치하고, 서울은 로컬로 인프라를 외부화한다. 지역은 그 내부에서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지닌 삶의 터전이나, 서울에서 지역은 여러 요건을 따져 에너지 믹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 추상화된다.
  원전이 백지화된 뒤에도 투쟁을 계속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원전과 함께 전임 시장이 유치하려 했던 석탄발전소는 여전히 착공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척의 탄광이 문을 닫은 이후, 이제는 해외에서 수입해온 석탄을 연소하여 발전시키는 석탄발전소. 이렇게 삼척은 석탄과 다시 한번 조우하게 된다.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반대 집회에 참여·관찰하러 갔을 때 필자는 흔히 언론에서 기후정치의 주역이라며 ‘미래 세대’라고 호명하는 청소년, 청년 운동가들을 여러 번 만났다. 그들에게 삼척은 사십 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석탄의 도시로 각인된다. 사십 년 전의 석탄이 국가와 지역 경제 발전의 견인차로 간주되었다면, 현재의 석탄은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부과받은 채 말이다.

방치된 공사현장처럼 보이는 삼척 맹방해변의 사진. 공사현장의 가림막 뒤로 바다가 보이고, 버려진 밧줄과 그물망, 고무 등이 곳곳에 있다. 공사현장의 가림막에는 “명사십리 맹방해변 반드시! 아름답게!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삼척 맹방해변(촬영: 조민서)


3. 변화하는 기후 속 화석연료

그렇지만 삼척블루파워를 막기 위한 반대 운동이 처음부터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발전소 반대 운동을 발족한 주체는 해외에서 실려 온 석탄이 발전소로 운반하기 전에 하역되는 삼척 맹방해변의 주민들이었다.3) 주민들은 석탄발전소 건설을, 아름다운 모래 덕분에 명사십리(明沙十里)로 불리던 맹방에서 이루어지던 삶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했다. 이들은 대책 위원회를 만들고, 소송을 제기했다. 맹방해변을 품고 있는 삼척시 차원에서도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고, 원전 유치 반대 운동이 전개되던 동일한 사무실, 동일한 장소에서 기자회견과 집회가 잇따랐다. 원전을 막기 위해 제창했던 “청정 삼척”이라는 구호 역시 “고향의 봄” 노래와 함께 반복되었다. 이들은 삼척시 차원에서의 선거 정치를 활용하는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반대에 나섰다. 그렇지만 지역 경제를 위해 발전소를 유치하고자 했던 이들 역시 지역의 찬성 여론을 증폭하고자 했고, 끝내 삼척시와 의회가 사업 계획에 동의를 표하고 산업부가 산업을 인가하면서 발전소는 2018년 8월 착공되었다.
  앞서 이 발전소가 한국에 지어질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라고 소개했다. 이것이 마지막인 이유는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가장 시급히 줄여야 할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지목되는 석탄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발전소가 지어진 2018년 8월은 한국을 넘어서는 기후정치의 역사를 쓸 때 다른 의미에서도 기록될 시기이다. 지구 반대편 스웨덴에서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해 등교를 거부하는 이른바 ‘기후 파업’을 시작했다. 약 두 달 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1.5도의 지구온난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삼 년 전이었던 2015년, 전 지구적 기후 거버넌스는 물론 국내 기후 정책·운동에서 가장 유명한 고유명사 중 하나일 소위 ‘파리 협약’에서 도출된 목표치인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가 상승하는 것의 의미를 과학적으로 논한 문서였다. 툰베리의 이야기를 접하고 보고서를 읽은 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최초의 기후위기 관련 대중 집회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2019년 가을 서울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되었다. 한국 환경운동 역사상 가장 많은 인파였다. “탄소중립” “넷제로” 같은 단어들이 정책 구상에 반영되기 시작했고 “그린 (뉴)딜”과 같은 아이디어들도 정책 결정자들이 보고 읽는 문서에 더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9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유럽 국가들에 이어, 한국 정부 역시 2020년 10월 중국, 일본 다음으로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삼척 바깥에서 확산되고 있던 기후운동의 물결은 삼척에도 도래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기후정치는 삼척을 통해 구체적인 장소와 이야기를 찾았고, 삼척에서 더욱 풍부해졌다. 원전이나 석탄발전에서 비롯되는 위험이 갖는 공간 지평은 지역이다. 이 위험을 외부화하는 이들은 이 위험을 부과받는 이들 덕분에 편익을 누리나, 양자는 공간적으로 분리된다. 위험의 외부화를 행하는 이들과 당하는 이들을 결정하는 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사회경제적인 권력의 낙차이다. 삼척 주민들이 서울에 가서 원전 유치를 백지화하라고 요구했던 ‘상경 집회’는 양자 간의 연결과 위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기후위기의 공간 지평은 지역이 아니라 전 지구적이다.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는 소멸될 때까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행성의 대기권을 순환한다. 그렇기에 기후변화의 강도를 결정짓는 온실가스는 어디서 배출되었는지를 가리지 않는다. 지구 곳곳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해 변화한 기후가 각 지역에 작용하는 양상 역시 천차만별이다. 즉 특정한 지역의 입장에서, 기후변화의 귀결은 기후변화의 원인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해법이 온실가스가 순환하는 대기권의 단위인 지구라는 행성적 차원에서 논의되는 이유이다. 기후위기라는 환경문제를 경험하는 이들과 초래한 이들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지켜야 할 무언가가 존재하는 구체적인 장소에 기반한 다른 환경운동과 달리, 기후운동의 장소는 그래서 모호하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결과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 편재하기 때문이다.4) 요컨대 기후위기는 모든 곳에 있지만, 그렇기에 운동의 장소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2019년 한국 기후운동이 부상하던 와중에 석탄발전소가 지어지던 삼척은 이 난점을 해결해주었다. 기후위기에 대해 말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활동가, 언론인, 법조인, 연구자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삼척을 찾아오면서 삼척블루파워 반대 운동은 더 많은 이들과, 더 멀리까지 연결되었다. 맹방해변을 이루고 있는 모래라는 땅(earth)을 지키고자 시작된 싸움은 지구(Earth)에 대한 이야기와 접속했고, 삼척이라는 지역은 전 지구적 기후정치의 현장이 되었다.

4. 녹색 에너지라는 질문

지역과 지구를 가로질러 제기되는, 기후를 위해 화석연료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직면한 수도의 전문가들에게 다시 돌아가보자.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입안하기 위해 기후라는 변수를 고안할 때 한 가지 자명한 것은 가능한 한 화석연료의 비중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 공급의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여기서 각광받는 것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이다. 한때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운동이라는 부정의 정치가 원전의 공백을 메울 에너지원을 요구하는 긍정의 정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채택한 “태양과 바람의 나라”에 어른거리는 바로 그 에너지원이다. 당시 탈핵운동에서 재생에너지는 중앙집권화된 전력 통제 시스템이 아니라 도시와 마을,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해서 사용하자는 ‘에너지 민주주의’의 기획으로 거론되었다. 십여 년 후, 기후위기 대응이 주류화되면서 재생에너지는 여의도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산업적 기회로 거론된다. 단순히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다하기 위해 요구되는 ‘산업의 녹색화(탈탄소화)’를 가능케 하는 방어적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생에너지와 수소,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이르기까지 ‘녹색 산업’은 차세대 산업으로 각광받는다.
  지역과 지구의 기후운동가들도, 여의도의 에너지 전문가들도 직접 참석하거나 혹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을 브라질 벨렘의 2025년 11월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도 재생에너지는 높은 관심을 받았다. 재선되자마자 첫번째 임기 때와 마찬가지로 파리협약을 탈퇴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불참했고, 그 빈 자리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선도하는 중국이 주목받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에너지 안보의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개발·투자에 집중했던 중국은 현재 자국 시장을 넘어 재생에너지 시장의 큰손으로 꼽힌다. 트럼프의 ‘반기후’ 행보를 개탄하며 차기 대선 ‘잠룡’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의 민주당 주지사 개빈 뉴섬이 비판의 포인트로 잡은 것은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트렌드’가 창출하는 막대한 경제적 기회에 대한 무지였다. 11월 11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전력(electric power)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경제적 권력(economic pow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캘리포니아주는 이 경주를 중국에게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경쟁에 뛰어들 겁니다.”
  2007년,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이 “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정책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국가의 대규모 ‘청정’ 에너지 투자를 제안한 이래로 재생에너지는 ‘경제도 살리고 지구도 살리는’ 대안적 에너지원으로 거론되어왔다. 갈수록 심화되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탈탄소화가 시급한 과제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의 수요와 설치 역시 나날이 증가하는 양상이다. 세계 각지에서 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가 석탄보다 낮아졌다는 소식은 에너지의 경제학에 부합한다. 더군다나 태양과 바람은 어디에나 있기에 에너지 안보에도 부합한다. 사고의 위험도 없고, 방사성 폐기물과 미세먼지도 배출하지 않으며, 화석연료보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현저히 낮은 재생에너지는 그렇다면 “녹색 에너지”라는 명예를 부여받기에 최적의 에너지원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재생에너지 역시 다른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물질성을 띤다는 점이다. 첫째,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설치하기 위한 면적의 문제이다. 원자력이나 화석연료보다 저밀도 에너지원에 해당하는 재생에너지는 대규모의 토지를 요한다. 농어민을 비롯한 주민, 그리고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들이 서식하고 있는 땅이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지구적 과제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지역과의 갈등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둘째,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라 해도 송전의 과정은 필요하다. 부산의 신고리 원전에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전기를 흘려보내는 길목에 있었던 밀양 송전탑의 갈등은 재생에너지 확대가 동반하는 전력망 확충 과정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재생에너지의 에너지원, 곧 태양과 바람은 말 그대로 고갈되지 않고 ‘재생가능’하나, 이 에너지원을 에너지로 변환하기 위한 설비는 그렇지 않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전략 광물’(critical mineral) 혹은 ‘희토류’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광물들이 있다. 재생에너지 수요가 높아질수록 이 광물들에 대한 추출 역시 필연적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이 추출은 화석연료를 비롯한 다른 자원의 추출과 다르지 않다. 원주민들은 쫓겨나야 하고, 막대한 오염이 발생한다.5) 다시 말해 재생에너지원은 화석연료, 원자력과 달리 추출될 필요가 없으나,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위한 ‘원료’는 어디선가 추출되어야 한다. 벨렘의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 난입했던 원주민 운동가들은 화석연료를 비롯한 자원의 채굴을 위해 아마존 밀림을 뒤엎는 추출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추출주의의 논리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비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는 “녹색 에너지”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녹색’을 무엇으로 정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기여 혹은 원전과 같은 리스크의 부재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재생에너지는 녹색이다.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하고, 동시에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전력 수요의 막대한 증대가 예상되고, 여기에 부응하는 에너지 믹스를 구하기 위한 방정식이라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전문가들에게 재생에너지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지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조차 피할 수 없는 에너지원의 물질성에 대한 주목은 모든 에너지를 공통적으로 규정하는 유한성과 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값싼 (그리고 특정한 의미에서 ‘깨끗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적의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행성에서 우리에게는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냐는 물음은 기술적 전문성의 영역을 벗어난다. 가열되는 기후 속에서 더욱 뜨겁게 부상하고 있는 에너지라는 질문이 소수의 전문가가 모인 여의도의 회의실과 포럼장을 벗어나, 작년 겨울 여의도에서 열렸던 또다른 대화의 공간, 곧 광장의 의제가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조민서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한국의 기후 정치를 주제로 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 지속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피투자자의 시간』(미셸 페어, 리시올, 2023)을 번역했다.

이 글은 학위논문을 위해 현지조사를 하면서 오갔던 여러 장소에서 떠올랐던 생각을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쓰게 되었습니다. 학위논문과 양식, 길이가 다른 이 글을 쓰면서 막연하게 남아있던 저의 느낌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2026/01/07
77호

1
빅터 샤우, 『탄소 기술관료주의』, 이종식 옮김, 빨간소금, 2024.
2
사토 요시유키‧다구치 다쿠미, 『탈원전의 철학』, 이신철 옮김, 도서출판b, 2021.
3
조민서, 「맹방해변의 민주주의」,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5년 여름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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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피트롱,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21 ; Thea Riofrancos, Extraction: The Frontiers of Green Capitalism, W. W. Norton & Company,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