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바닷가 마을을 지나고 있다. 빨간 목도리를 한 소녀와 검은 단발의 소녀가 교복 차림으로 가방을 메고 나란히 걷는다. 뒤로는 낮은 주택 건물, 나무, 하늘이 펼쳐져 있다.

솔직히, 이 학교로 전학 오기 전까지는 왕따당할 각오를 단단히 했다. 일본말도 어설펐고 누가 들어도 한국 이름을 가진 나를 애들이 차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홋카이도 바닷가 마을에 있는 한 대학의 한국어 교사로 채용되었을 때, 나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인천 할머니 댁에서 살지, 엄마를 따라 일본 홋카이도로 갈지. 하지만 고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엄마와 헤어지느니 차라리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는 게 나았다. 우린, 가족이니까.
  “엄마는 나 없으면 안 돼. 내가 돌봐줘야지. 학교야 여기나 거기나 똑같지 않겠어?”
  그렇게 큰소리쳤지만, 막상 큼직한 한자로 ‘中学校’(중학교)라고 쓰인 생소한 교문 앞에 서니 손끝이 달달 떨려왔다. 학교 건물은 내가 다니던 곳의 반의반도 안 되는 규모였지만, 그만큼 외국인인 내가 잘 드러날까봐 그것도 걱정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게 베스트다.
  아빠는 일본 사람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나는 반쯤 일본인인데,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와 사는 지금은 이름도 국적도 한국인이다. 아빠는 서너 살 이후로 본 적이 없어서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아빠 가족들하고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홋카이도 바닷가 마을 중학교는 걱정한 것 치고는 나름 괜찮았다. 다행히도 애들은 나한테 큰 관심이 없었다. 처음에는 한국말을 해보라거나 케이팝 가수 누구누구 아냐고 묻거나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거나 이러저러한 부탁을 했지만, 이삼 주 지나자 다들 시들해져서 자기 일상으로 돌아갔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이 작은 도시는 중학생 세계에 그늘을 드리울 만한 요인이 별로 없는지, 학급 친구를 괴롭히거나 패거리끼리 시비를 걸고 다니거나 선생님 앞에서 반항하는 애들도 없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조용히 집과 학교를 오가며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신경 쓰이는 애가 있었다. 카야노 유미라고, 마르고 까무잡잡하고 눈이 큰, 나처럼 말수가 별로 없는 여중생이었다. 같이 다니는 친구는 몇 명 있는 것 같았는데 목소리가 거의 안 들렸다. 크게 웃지도 않았고 소리를 지른 적도 없었다. 본래 목소리가 작은 건지,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건지 그것까진 모르겠다. 나한테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아서 나도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카야노가 나를 쭉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처음 왔을 때는 아이들 대부분이 나를 쳐다보았지만, 이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구나 싶은 시기가 왔는데도, 카야노만큼은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노려보는 건 아니었다. 그냥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교실 뒷문 근처에 앉아서 마치 마을 입구에 선 장승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수업 시간에도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카야노가 나를 지긋이 보고 있다. 운동장을 걸어갈 때도 뒤통수가 따가워서 고개를 들어보면 교실 창문 너머로 카야노가 날 보고 있다. 체육 시간에 체육복을 갈아입을 때도, 책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물을 마실 때도, 화장실 가려고 일어설 때도, 항상 카야노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면 생긋 웃을 법도 한데 웃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안 웃었다.
  날 좋아하나? 그럼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할 것이지. 숫기가 없어서 그런가. 그러기엔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나는 되도록 카야노 쪽을 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애를 의식하면 할수록 더 눈이 마주쳤다. 어색해서 먼저 고개를 돌리는 건 언제나 내 쪽이었다.
  “엄마, 학교에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애가 있어.”
  “어머, 남자애니?”
  “아니, 여자애.”
  “오호.”
  “눈이 사슴처럼 크고 반짝이는 애인데 계속 그러니까 좀 부담스러워.”
  “넌 걔랑 친해지고 싶어?”
  “글쎄. 아직 어떤 앤지 모르니까. 하지만 억지로 웃진 않는 걸 보면 가식적인 애는 아닌 것 같아.”
  “그렇게 궁금하면 네가 먼저 말 걸어보면 어때? 서로 쳐다보기만 해서는 영원히 속마음을 모르잖니.”
  “그럴까……”
  나는 따끈한 흰 밥 위에 올린 낫또를 젓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오늘은 학교에 가서 카야노에게 말을 걸어볼까 하고 생각했다. 만약 성공한다면 이리로 온 지 삼 개월 만에 내가 누구한테 먼저 말을 거는 거다. 한국에서도 나는 언제나 다른 애가 내게 말을 걸어주어야만 말을 트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평생 상대방이 나를 선택해주길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아니면 영원히 외톨이로 살던가.
  이번에야말로 내 성격을 고쳐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쭉 카야노에게 말 걸 틈을 보고 있었는데, 결국 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날 점심시간에, 카야노가 먼저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김 상, 오늘 학교 마치고, 내가 사는 고탐에 가지 않을래?”

*

고탐이 아이누말로 마을을 뜻한다는 건 얼마 전에 알았다. 지난주 토요일에 엄마와 사루 강 근처로 드라이브를 갔다가 아이누 부락이 밀집했던 비라토리 지역에 박물관으로 만들어놓은 니부타니 고탐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백 년 전만 해도 이 근방에 아이누가 무리를 이루어 살았다고 한다. 일본인이 홋카이도 땅에 들어와 살기 훨씬 전부터 터전을 이루고 살았던 민족이다. 일본인하고는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무엇보다 사는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니부타니 고탐에는 짚으로 지붕을 높게 이어 지은 치세라고 불리는 집이 남아 있었다. 그 안에서 아페오이라는 불 피우는 공간에 둘러앉아 밥을 먹기도 하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곰고기나 사슴고기를 말리기도 하고, 선이 굵은 미로 문양의 자수를 둔 옷을 해 입기도 했다.
  나는 옛날 아이누 사진을 보며 이곳에 살았을 그 사람들을 상상했다. 한국 민속박물관에 가면 조선 사람들이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았구나 싶은데, 백 년이 지나면 나도 누군가에게 박물관에 갈 때만 생각나는 사람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들어 조금 쓸쓸했다. 이제는 초가지붕 아래 사는 조선인도 없고, 다다미 위에 칼을 두고 앉은 사무라이도 없고, 치세(집)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 아이누도 없다. 다들 어디론가 떠나 버린 것 같다. 사실은 다 우리 안에 살고 있겠지만.
  석 달 내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카야노의 입에서 고탐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어쩐지 카야노와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에는 카야노가 당연히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 물론 지금도 일본인이 아닌 건 아니지만, 아이누의 후손인 줄은 몰랐다. 우리는 똑같이 핍박받은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어, 어~ 그, 그래, 좋아.”
  그나저나 신기한 건 카야노가 다른 날도 아닌 오늘 내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내가 엄마랑 얘기하는 걸 듣기라도 했나? 우연치고는 놀라웠다. 내가 말을 걸 마음을 먹고 있을 때 상대방도 똑같이 그렇게 한다는 게 무슨 마법 같았다. 원래 인간관계라는 게 그런 걸까? 하지만 어째서 날 자기 마을로 초대하지? 내가 외국인이라서? 전통을 소개하고 싶었나? 설마 요즘도 흙집에 사는 건 아니겠지. 고탐이라고 한 걸 보면 그럴지도 몰라. 수업이 끝났다는 종소리가 울렸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또 카야노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11월의 초입이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웠다. 나는 책가방에서 빨간 목도리를 꺼내 목에 둘둘 멨다. 카야노가 그 모습을 보더니 자기 어릴 때는 이즈음 더 춥고 눈도 더 많이 내렸다고 했다. 그렇구나. 나는 장갑까지 꺼내 끼려다가 관두었다. 두꺼운 스타킹을 신었는데도 교복 치마 밑으로 냉기가 술술 올라왔다. 카야노는 맨다리였다.
  나는 카야노 옆으로 걸으며 그애가 느릿느릿 입을 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기가 사는 마을은 산밑에 있는데 두 집 걸러 한 집은 아이누가 살아서 자기들끼리는 고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시멘트로 지은 집에는 전기도 들어오고 가스레인지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가까운 친척이나 사촌이 다 근처에 사는데 특히 할머니를 좋아해서 자주 놀러 간다고 했다. 어릴 때는 밤마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야노는 내게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은……, 오늘 널 집에 초대한 건 내가 아니라 후치야. 아이누말로 할머니라는 뜻. 후치한테 김 상 얘길 했는데, 널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뭐? 나를?”
  나는 들판을 걷다 말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난 너하고도 오늘 처음 이야기하는데, 너희 할머니가, 아니 후치가 날 어떻게 알고?”
  “널 아는 건 아니고…… 사연이 있어. 후치 집에 가서 직접 들어봐. 한국 여자애가 전학 왔다고 말한 날부터, 나만 보면 널 데려오라고 조르는 거야. 나는 네가 싫어할까봐 말 못 했거든. 근데 오늘은 새벽부터 집에 전화까지 해서는 그러는 거야. 오늘은 김 상한테 꼭 말해라. 오늘이라면 반드시 올 거다, 라고.”
  나는 머리칼이 쭈뼛 솟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늘 아침이라면……, 내가 엄마랑 낫또를 휘저으며 네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잠깐만, 이거 너무 무서운데.
  “저기, 너희 후치, 혹시 무당이니?”
  “아이누 여자들은 다 조금씩 무당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아……, 그래?”
  “근데 나의 후치는 좀 특별한 무당이야. 수십만 쪽이나 되는 이야기를 외우는 사람이거든.”
  “이야기를 외우는 사람?”
  “응. 아이누는 글자가 없잖아. 근데 대신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어. 유카라라는 영웅서사시도 있고, 우에페케루라는 옛날이야기도 있고, 우포포라는 동요도 있고……, 아무튼 많은데, 그걸 다 외워서 다음 세대에 전승하는 사람이야. 살아 숨 쉬는 책이라고 할까. 전국에서 연구자들이 와서 후치 목소리를 많이 녹음해 가기도 했어.”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이누에게 문자가 없는 줄도 몰랐고, 외워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때 언덕 아래로 아담한 마을이 나타났다.
  “저기야, 저 파란 대문 집.”
  나는 목을 길게 빼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참, 혹시 몰라 미리 말해두는데, 너무 놀라지는 마. 후치는 입가에 검은 문신이 있어. 우리 엄마 때부터는 안 하기로 한 모양이지만, 옛날에는 아이누 여자가 열두세 살쯤 되면 영화에 나오는 조커처럼 입에 큰 문신을 했어. 지워지지 않게 서너 번 그렸지.”
  하지만 내가 카야노의 후치를 만나고 깜짝 놀란 건, 볼까지 찢어놓은 듯한 입가의 검은 문신 때문도, 나를 보자마자 친손녀 대하듯 두 팔을 벌려 환영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아마도 평생 홋카이도 땅에서 살았을 아이누 할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대뜸 한국말을 꺼냈다. 나한테는 그게 기절초풍할 만큼 놀라웠다.
  “아이고, 아이고. 네가 조선에서 온 아이로구나. 아이고, 아이고. 잘 왔다, 잘 왔어.”
  나는 인천에 사는 할머니 생각이 났다. 관절이 쑤신다면서,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삭신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할머니의 ‘아이고’를, 홋카이도 산골 마을에 사는 아이누 할머니에게서 들을 줄이야. 나는 너무 놀라 인사도 잊고 곧장 한국말로 물었다.
  “와! 후치. 어떻게 한국말을 하세요?”
  그러자 후치는 검게 문신한 입을 활짝 벌리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크고 거칠고 아주 따뜻한 손이었다.
  “오, 너도 그새 아이누말을 배웠구나. 자, 일단 들어가자. 멀리서 귀한 손님이 왔으니, 맛난 것도 먹으면서 천천히, 천천히 옛날이야기를 해보자꾸나. 긴긴 이야기가 될 거야.”

*

내가 어렸을 때는 숲속의 작은 고탐에서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빠 둘과 언니 둘과 막내인 나까지 여덟 명이나 되는 가족이 한집에 살았어. 아버지는 숲에서 나무를 패서 숯을 만들고 그걸 강에 띄워 싣고서 도시에 나가 팔았지. 아버지의 숯은 향이 좋고 오래간다고 삿포로에서도 인기가 좋았어. 아버지는 인부 여러 명을 데리고 숲에서 작업을 하다가 며칠씩 지나서야 집에 돌아오고는 했지. 올 때마다 곡식이나 사탕이나 술이나 기름 같은 걸 사 와서 아버지가 오시는 날 밤은 늘 축제 분위기였단다. 오빠들도 사냥을 잘해서 집에는 항상 말린 곰고기와 사슴고기가 가득했고, 나는 언니들과 강가로 내려가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숲에 지천으로 널린 버섯이나 채소를 따기도 하면서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았지.
  그러던 어느 날,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겨울밤이었어. 그날은 마침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신 날이라서 다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고 화롯가에 모여 앉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어 있었지. 그때 집 앞에서 수상한 소리가 나는 거야.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동물 우는 소리는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사람 우는 소리 같았지만, 내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지.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선말을 들었던 거야. 식구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일어났지. 큰오빠가 일어나 문을 열자, 찬바람이 집 안으로 훅 들이쳤어. 나는 궁금증에 얼굴만 빼꼼 내밀고 밖을 보았지.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해. 눈 속에 바싹 마른 두 소년이 바들바들 떨면서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고 앓는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어. 큰오빠가 바깥 상황을 식구들에게 전하자, 할머니가 말했어.
  “물어볼 것도 없느니라. 어서 손님을 안으로 모셔라. 이 날씨에 얼마나 추우셨을까.”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나가서 두 소년을 부축해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어. 어머니는 장작을 더 넣어 불을 세게 지피고 먹을 것을 준비하려고 냄비를 올렸지. 나는 그때 열 살이었는데, 두 소년이 입은 옷을 보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 이 겨울에 저렇게 얇은 옷을 입고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얼어 죽지 않은 게 용하다 싶었지. 오빠들이 두 소년에게 솜을 넣은 도톰한 옷을 입혀주었고, 언니들이 곰 털가죽 이불을 덮어주었어. 나는 나무잔에 담긴 따뜻한 차를 건넸지.
  두 소년은 눈물을 닦으면서 그걸 받아 들고는 불가에 바싹 다가앉으며 자기들이 조선에서 온 형제라고 했어. 어머니가 고기를 듬뿍 넣고 끓여주신 사슴탕을 허겁지겁 먹고는 고기를 먹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난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나. 이야기는 주로 형이 하고 동생은 조용히 눈물만 흘렸지.
  “제 이름은 조주호, 제 동생 이름은 조명호입니다. 우리는 조선 땅 경기도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일본 순사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총으로 우리를 위협하며 트럭에 싣고 갔어요. 저희는 어머니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끌려와 배를 타고, 열차를 타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였습니다. 저는 열일곱 살, 명호는 열다섯 살입니다. 우리 형제는 평범하게 학교에 다녔고 명호는 공부도 잘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도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난생처음 보는 땅에서 곡괭이를 들고 흙을 파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게 정말 악몽 같습니다…… 매일 고된 일을 하는데 개도 못 먹을 죽만 주니까, 이렇게 있다가는 명호도 저도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매한가지다 싶어서 며칠 전 문어방을 탈출해 산을 서너 개 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이 집의 따뜻한 온기에 이끌려 문 앞에 쓰러져 있게 되었습니다.”
  때는 1942년, 일본은 전쟁이 한창이었지.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광물이 홋카이도에 많이 매장되어 있어서 그걸 캐낼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중국이고 조선이고 식민지 땅에서 마구잡이로 사람을 끌고 와서 일을 시켰던 거지. 문어방은 그런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먹고 자는 데라는 이야기를 나도 들었지만, 실제로 문어방에 사는 사람을, 그것도 소년들을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그날은 밤새도록 가족회의가 열렸단다. 일본말을 쓰면 조선에서 온 소년들이 알아들으니, 아이누말을 썼지. 어머니는 일본 경찰이 잡으러 오면 우리까지 다칠까봐 걱정했고, 할머니는 카무이가 이 가여운 조선 소년들을 우리 집으로 보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했어. 카무이, 아이누말로 신이라는 뜻이지. 우리는 이 숲에서 카무이의 가호를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어. 곰 카무이, 여우 카무이, 연어 카무이, 계수나무 카무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카무이였지. 그리고 우리도 죽으면 카무이의 나라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죽음도 두렵지 않았단다.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아버지가 말했어.
  “내가 숲으로 데려가겠다. 거기서 숯 만드는 걸 배우면서 나무 구멍 속에서라도 지내면 된다. 경찰은 절대로 못 찾을 거다. 거기가 어디든 문어방보다는 낫겠지.”
  나는 내 옆에 누워 여전히 덜덜 떨면서 잠들어 있는 조명호라는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빙긋이 웃었어. 이제, 우리 자주 볼 수 있겠네. 오늘 밤은 푹 자. 내일 해가 뜨면 좋을 일이 있을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속삭였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이제 우리가 지켜줄게.
  형제는 며칠 동안 끙끙대며 앓아누워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어머니가 해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따뜻한 곳에서 푹 쉬고, 밤에 같이 할머니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몸을 회복했단다. 형제는 아이누말을 할 줄 몰랐지만,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할머니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어. 자기들의 조선 할머니도 어릴 때 호랑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대. 여긴 호랑이가 없는데, 조명호는 죽은 호랑이를 직접 본 적도 있다고 했지. 우리는 조명호가 해주는 조선 호랑이 이야기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 아이누 곰하고 조선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며 긴 겨울밤을 보냈지.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 아버지가 숲으로 들어갈 때, 조주호 조명호 형제도 데리고 갔어. 사슴 가죽으로 만든 바지에 곰 털로 된 외투까지 입히니까 정말로 아이누가 따로 없었어. 우리는 마치 곰의 뱃속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조선 소년들을 보며 깔깔대고 웃었어. 조명호도 그때 처음으로 싱긋이 웃었는데, 나는 그때 왜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얼굴이 새빨개졌을까. 나는 그런 내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허리를 굽혀 조명호의 가죽 신에 끈을 묶어주었지. 조선에서도 가죽 신은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대. 정말 따뜻하고 편하다면서 내게 인사했어.
  “아베난카, 고마워. 이야이라이케레.”
  똑똑한 조명호는 아이누말을 금세 배웠지. 제일 어린 나한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았어. 내 이름이 뭐냐길래 아베난카라고 했더니 무슨 뜻이 있는 거냐고 묻더구나.
  “아페는 불, 난카는 얼굴, 이라는 뜻이야. 두 단어가 붙은 아베난카는 불의 여신을 뜻해. 막내가 저 모닥불처럼 아름답게 자라라고 할머니가 붙여주신 이름이지. 우린 불의 여신을 제일 소중히 여기거든. 이 추운 북쪽 나라에서는 불이 없으면 죽고 마니까.”
  “그렇구나, 불의 여신이라니. 진짜 멋진 이름이다, 아베난카.”
  정말이지 조명호의 목소리는 어째서 이렇게 맑고 고운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또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일부러 인상을 썼어.
  “하지만 이름을 잘못 지은 거 같아. 나는 별로 예쁘지 않으니까. 언니들이 더 예뻐.”
  “아니야, 아베난카. 너는 참 예뻐. 눈 속에 핀 꽃 같아.”
  그때 조명호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달맞이꽃 같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을 때, 하마터면 나는 그 마른 가슴에 와락 달려들어 안길 뻔했어. 왜냐하면 조명호는 나의 십 년 인생에서 만난 모든 남자 가운데서 가장 잘 생겼고, 가장 마음씨가 곱고, 가장 목소리가 좋았으니까. 나는 언니들이나 오빠들한테 그런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얼른 우스운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렸지.
  “하지만 어릴 때 내 이름은 진짜 더러운 이름이었어. 후치하타타, 할머니가 싼 똥이란 뜻이야.”
  “뭐라고? 하하하.”
  조명호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며 불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를 돌아보았어.
  “맞아. 저 할머니의 똥. 후치의 하타타야. 어릴 땐 악귀들이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더러운 이름을 붙이거든.”
  “할머니 똥이라니, 하하하. 너무해, 하하하.”
  조명호가 계속 웃으니까, 조주호도 웃고, 식구들이 돌아보며 다 같이 웃었어. 웃으니까, 명호는 더 예뻤지.
  “아베난카, 내 이름은 말이야, 빛나는 호수라는 뜻이야.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어. 어느 깊은 밤, 고요한 마을 호수에 드리운 달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렇게 온 세상을 비추는 사람이 되라고.”
  달빛이 반짝이는 호수 같은 소년. 그랬구나, 명호의 이름에는 그런 뜻이 있었구나. 나는 조금 감동했어. 아름다운 명호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이름이 있는지 꿈에도 몰랐거든. 그때 깨달았지. 우리 모두의 이름에는 누군가가 선물한 소중한 마음이 있구나. 그러니까 이름이 붙은 모든 것에는 사랑이 있고 축복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세상 모든 것들이 더 아름다워 보였어. 산도, 달도, 바람도, 그리고 명호도.
  숲으로 들어간 조주호 조명호 형제는 계수나무 밑동에 난 큰 구멍에서 살았어. 형제가 둘이 붙어 지낼 수 있을 만큼 널찍했지. 나는 명호가 떠난 집이 쓸쓸해서 매일 주먹밥을 만들어 숲으로 가져갔단다. 말린 연어 고기와 말린 곰 고기를 챙겨가기도 했지. 형제는 성실하게 일했고 아버지도 크게 만족해서, 이 아이들이 정말로 카무이가 우리에게 내려주신 선물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어. 나는 밤늦도록 조선인 형제들과 놀다가 같이 계수나무 구멍에서 잠들기도 했지. 다음 날 어머니한테 크게 혼이 났지만, 나는 아, 이누(개), 아, 이누(개), 멍멍, 짖어봐, 하고 놀림 받는 학교에 가기보다는 조명호 형제와 숲에서 노는 게 훨씬 더 좋았어. 조선말도 그때 배웠고. 조명호는 아주 좋은 선생님이었단다. 형제는 그 숲에서 삼 년을 살았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 년이었지.
  어느 여름밤이 생각난다. 숲속의 계수나무 위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하나둘 세고 있는데, 조명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와, 참 좋은 노래네. 나도 알려줘.”
  그해 여름에는 거의 매일 계수나무 위에 올라가 명호하고 같이 그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 우리 머리 위로 흐르던 은하수가 얼마나 크고 환했는지 이렇게 생생한데, 나에게는 그 모든 게 일주일 전 일처럼 눈에 선한데, 그게 벌써 팔십 년이나 흘렀다니, 믿어지질 않는구나.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어떻게 조선말을 기억하느냐고? 어떻게 반달이라는 예쁜 노래를 기억하느냐고? 그야, 나는, 명호와 헤어진 이후로, 매일매일, 명호가 내게 해준 말과 노래를 기억하고, 떠올리고, 노래하니까. 누가 듣든 안 듣는 나는 매일 노래했단다. 조선말로 조선인 조명호의 이야기를. 밤마다 아침마다. 별이 질 때마다 해가 질 때마다. 내가 기억하는 수백 가지 아이누 이야기보다 더 선명하게. 그건 또 왜냐고? 그건 말이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조명호는 나의 첫사랑이니까. 매일 노래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니까. 나는 죽을 때까지 명호를 간직하고 싶으니까.
  전쟁이 끝나고 조선에서 온 형제는 자기 나라로 돌아갔어. 아버지가 배표를 끊어주고 그동안 일한 품삯도 챙겨주었어. 나는 아버지를 따라 조명호 형제를 배웅하러 부두까지 함께 갔지. 간밤에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는데, 그건 명호도 마찬가지였어.
  “고마워, 고마워. 이야이라이케레, 이야이라이케레. 언젠가 다시 만나, 아푼노 오카 얀.”
  명호는 갑판 위에서 손을 흔들며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큰 소리로 인사했지만, 나도 명호도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지. 하지만 상관없었어. 명호는 이미 조선말로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어느 밤, 나는 꿈을 꾸었단다. 소년 명호가 달빛이 드리운 호수 위를 날아오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그때 나는 알았지. 아, 명호는 신들의 나라로 돌아갔구나. 카무이의 세계로 들어갔구나.
  유미한테서 같은 반에 조선에서 온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매일 밤 나의 카무이, 나의 신에게 졸랐단다. 너를 보고 싶다고. 너를 만나서 조선말로 노래하고 싶다고. 나의 오랜 바람이 이루어졌으니 참 행복하구나. 네가 오늘 나를 만나러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나의 카무이가 널 이리로 안내한 것이지. 그래, 나의 카무이는 나의 첫사랑, 조선인 조명호란다.

이 소설을 쓴 정수윤 작가의 작업실 벽에 붙어 있는 흑백 사진과 연필 드로잉. 전통 복장을 입은 아이가 바닥에 앉아 카메라를 응시한다. 사진 옆에는 연필로 그린 듯한 인물 소묘가 나란히 붙어 있다.
작업실 벽에 붙여둔 아이누 여성 사진과 그림. 조명호와 아베난카를 상상하며.



정수윤

해가 뜰 무렵 소설을 쓰고 달이 뜰 무렵 번역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파도의 아이들』 『한 줄 시 읽는 법』 『날마다 고독한 날』 『모기 소녀』가 있으며,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미야자와 겐지, 다와다 요코, 이바라기 노리코, 사이하테 타히 등 일본의 소설가, 동화 작가, 시인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2025년 가을, 홋카이도 아사히카와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누 박물관 《나카무라 가네토 아이누 기념관》(1912년 개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아이누의 삶과 밀착된 생활상을 보고 관심을 느껴 한국으로 돌아와 책을 찾던 중 재일교포 석순희 선생이 쓴 『조선인과 아이누 민족의 역사적 유대』(이상복 옮김, 어문학사)를 읽고, 식민지 시대에 홋카이도에서 강압적인 노동을 견디다 도망친 조선인을 아이누족이 숨겨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접했다.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아이누가 과거 어느 때 조선인과 만나 교감하였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그들의 시공에 숨을 불어넣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 밖의 참고문헌은 『아이누 서사시, 신요·성전의 연구』(지식을만드는지식) , 『アイヌと神々の物語』(ヤマケイ文庫), 『アイヌがまなざす』(岩波書店), 『アイヌ叙事詩ユーから』(岩波文庫), 『写真が語るアイヌの近代』(新泉社) 등.

2026/01/07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