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물에 봄비가 나리네



   등 푸른 아버지가 오시던 그 어슴푸레한 저녁을 새벽인 줄 아시고 내리네

   한참을 푸르스름 깔리다가 푸르뎅뎅 부어서 어둑이 가만가만 컴컴이 되네

   지난여름의 벼랑 끝에 개나리가 담벼락인 줄 아시고 노랑 십자가를 떨구네

   노랗게 노랗게 얻어맞다가 누렇게 달뜬 달

   잔뿌리같이 얽힌 골목이 허공에 내이던 낙엽을 데리고 떠나는지 돌아오는지 모퉁이로 섰네

   길 잃은 점집이 투항인지 저항인지 서낭기를 포도시 흔드네

   돌아오지 않는 건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걸 살갗에 오톨도톨한 바람이 돋아야 끄덕이네

   생의 철골 같은 빈 나뭇가지에 움트는 건지 끝내 지는 건지 알겠다고 모르겠다고 빗방울이 가물가물하시네





   몽고점을 축으로 자전하다가 둘째를 울리다



   두돌잡이 둘째의 엉덩이를 손찌검하다 원래부터 내가 아빠였다는 걸 알다 옆에서
   댕돌같은 주먹으로 눈물 짜내는 첫째가 태어났을 때도 낳기 훨씬 전부터 함께였다는 걸 알다
   손마디가 굵은 아버지가 둥글게 돌아가서야 원래부터 꿈속에서만 웃어주는 걸 알다

   물먹은 몽돌 같은 작은 엉덩이에 손바닥이 뻘겋게 달아올라
   둘째 전에 계류된 둘째 아이가 첫째랑 미끄럼틀을 같이 탔다는 걸 알다
   넷째일 뻔한 셋째가 세상에 나지 않아도 몽고점에 똥을 묻히고 뿔난 망아지같이 떼쓰는 걸 알다
   첫째랑 둘째랑 옥돌같이 자그락자그락 윤나게 키우고 싶은데
   자꾸 지나온 내 표정을 가지고 논다 앞서간 분침이 시침의 똥침을 찌르는 걸 모른 척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뒤통수가 아버지의 뒷골로 깊어지는 걸 알다

   원래가 언덕으로 돌아오다라는 걸 엉덩이처럼 펼쳐진 자전을 보고 알다
   아내의 뼈가 벌어지던 시간 속에서 늙은 채로 태어나 당신의 뱃속에서 죽고 싶다는 것도 알다
   내가 태어나지 않아도 첫째와 둘째가 미끄럼틀 타다 엉덩이를 깨고 아브락사스를 깨우는 걸 알다

   강돌 같은 똥구멍이 가려울 때마다 새빨갛게 알다

임현준

내가 사는 천안에는 후미진 골목이 물만큼 많다. 울지 않아도 될 때까지 후득후득 걸으면 될까. 가벼운 마음으로 살라는 게 가장 무겁더라. 《애지》 등단 일 년 아버지 가시고 일 년 첫째와 둘째의 우주 같은 일 년. 자꾸 가을 골목에 핀 개나리가 머릿속에서 흐드러진다.

2019/12/31
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