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인 애기똥풀



   노랗게 꽃을 피우면 아주 볼만하지

   상처가 나면 흘리는 노란 피
   건강하고 해맑은 애기 똥 빛깔이지

   아무리 그래도 이름이 참 직관적이야
   애기똥풀이라니!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지

   나도 잊히지 않는, 아니 그보단
   멋진 이름을 갖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

   고작 6학년 때 최휘, 최빈 같은
   좀 있어 보이는 필명을 궁리해봤으니
   싹수가 노랬나 봐

   최씨 집성촌이었던 동네 할아버지가
   지어주었다는 내 이름은 정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죽은 십팔년 독재자 이름

   결국 쓸모없는 희, 자를 버리기로 했지
   빛날 희(熹)였다면 망설였을지도 모르지
   내 이름은 여자 희(姬)야
   이미 여자인데 굳이 또?

   여자(姬)를 버리고 나니 글 쓰는 삶은 덜 뻔해졌지

   애기똥풀에서 뻔한 풀을 빼면 애기 똥?
   너무 노골적이라 풀을 버리기가 좀 그래

   밭둑에 애기 똥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나도 같이 노랗게 물들곤 하지

   애기 똥 빛깔로 환해져서
   낫질을 하다 슬쩍 건너뛰곤 하지





   4억년 먹기



   땅이 흠뻑 젖도록 비가 내리고 나면 아버지는 훌쩍 자랐을 고사리를 꺾으러 나섰다 아침참이면 벌써 큰 자루 가득 고사리를 담아 오곤 했다
   제사상에 오른 고사리무침은 씹는 맛이 어찌나 좋고 고소한지 제사를 지내고 나면 나는 무나물 다음으로 고사리나물을 좋아했다

   내가 사는 골에도 고사리가 많이 난다기에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낫으로 쓰윽 벨 정도로 고사리가 풀더미처럼 모여 있을 줄 알았다
   한번 꺾고 한두 발짝 가다 또 한번 꺾고 몹시 가파른 산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한나절 헤매며 꺾은 고사리를 삶았다 독성 때문인지 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다른 식물보다 오래 살아남은 비결은 강력한 독성일까 공룡은 멸종했어도 같이 번성했던 고사리는 살아남았다

   나는 이 4억년을 봄볕에 잘 말렸다 바싹 말리고 보니 겨우 200그램이었다 혼자 먹긴 아까웠다 반으로 갈라 한 접시 양은 도시에 사는 후배네로 보냈다

   정월 대보름날에 큰 달을 넣어 조선간장, 들기름, 다진 마늘에 조물조물 무쳤다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4억년 동안 독을 갈고 닦을 만했다
   고사리 나이를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내 나이를 씹으면 어떤 맛이 날까

   이제 비가 오는 봄날이면 어린 순을 밀어올리고 있을 고사리가 궁금해 한참 산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4억년 안에 잠들어 있다는 듯이
   아버지 나이를 씹으면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면서

최정

요즘은 풀 하나하나에 말을 걸고 싶다. 풀들 세상에 오래 빠져 있을 생각이다.
귀농 10년 차 1인 여성 농부. 『푸른 돌밭』에 산골 농사 이야기를 담았다.

2022/12/27
61호